- 게시일
- 2017.01.23
백제 무령왕(武寧王)
1971년에 발견된 무령왕(武寧王) (재위: 501~523년)과 왕비의 능은 전혀 발굴되거나 도난 당하지 않은 채 1천5백년이라는 시간을 견뎌내었다. 능 안에서는 금관과 정교한 예술품, 석판 등이 발굴됐다. 무령왕릉은 투탕카멘의 무덤과 로제타석이 결합된 것과 비교해도 될 듯 하다. 하나의 묘에 보물과 석판 모두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령왕릉은 백제 후기 왕실의 모습과 매장 풍습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충청남도 공주시는 서해 상류 약 70~80km 부근에서 굽어지는 금강을 끼고 자리잡았다. 공주에서 서쪽으로 바다에 더 가까운 곳에는 부여군이 있다. 이곳은 대부분이 평지인 쌀 재배지고 북쪽과 동쪽으로 몇몇 구릉이 이어진다.
공주와 부여에는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으로 지정한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있다. 총 여덟 개의 고고학적 부지로 성곽, 왕릉, 옛 행정처 터, 사원, 고대 도시 성곽의 일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네스코 웹사이트는 백제역사유적지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백제역사유적지구의 고고학 유적과 건축물은 한국과 중국 및 일본의 고대 왕국들 사이에 있었던 상호교류를 통해 이룩된 백제의 건축 기술의 발전과 불교 확산에 대한 증거를 보여준다.”
백제(18B.C.~A.D. 660)는 한국의 고대국가 중 하나로 부족연합국가였다. 만주와 한반도에 걸쳐 기원전 마지막 세기부터 600년대까지 존재했다.
▲ 백제는 기원전 18년부터 신라에 정복당하는 660년까지 한반도의 남서쪽과 서쪽에 존재했다. 오늘날 충청남도 부여에 있는 부여국립박물관에는 백제시대의 유물이 전시되어있다. 또한 공주와 부여 부근의 역사적 부지 여덟 곳은 백제역사유적지구로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오늘날의 역사학자들은 백제에 대해 연구할 때 두 가지 장애물에 부딪힌다.
첫째, 백제는 고대 시대에 대해 신화와 전설을 담고 있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잘 등장하지 않는다.
‘삼국유사’는 1200년대 초 한 승려가 신화와 이야기를 모아 집필한 것이며 기원전 100년대부터 650년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이야기나 설화, 신화 등이 수록되어있다. 이 책은 사건이 발생했던 때로부터 1천년이 지난 후에야 제작됐다. ‘삼국유사’ 1권 14장에 백제의 시조에 대해 짧게 설명하지만 그 후의 군주들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다.
‘삼국사기’는 1145년 고려의 궁정 학자들이 집필한 정서다. 공식적으로 ‘삼국사기’는 이 땅에 존재했던 고대 국가, 즉 고구려, 백제, 신라에 대한 사실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신라 왕조에 대한 기록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신라는 600년대 백제와 고구려를 정복했고 이 책은 신라왕조를 계승한 고려 시대에 집필되었기 때문이다.
고려인들은 신라인들의 신화 대부분을 계승했다. 따라서 고려의 문헌은 신라가 아닌 국가나 신라와 국경이 인접했던 부족들에 대해서는 짧게 언급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무령왕이다.
예를 들어 ‘삼국유사’에서 무령왕을 언급할 때는 백제 년도가 아닌 신라 년도가 사용되고 있다. 책에 적힌 정보 또한 500년대와 600년대 백제와 격렬한 전투를 벌였던 신라의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
무령왕과 동시대에 발생한 사건들*
A.D. 250~587 일본 야마토 왕국
A.D. 313~668 한국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
A.D. 317~589 중국 위진남북조시대
A.D. 401 서고트족이 이탈리아 침범
A.D. 431~751 메로빙 프랑크 왕조
A.D. 445~453 아틸라왕이 훈족을 유럽으로 이끔
A.D. 455 반달족이 로마를 약탈
A.D. 542~594 유럽에 전염병으로 사망자 수가 늘어남
A.D. 581~618 수나라
A.D. 585~607 일본 나라에 법륭사(法隆寺)가 세워짐
A.D. 600~700 티베트 제국의 성장
A.D. 607 일본이 중국에 첫 외교사절을 파견
A.D. 618~907 당나라
A.D. 628 무함마드가 메카를 장악
A.D. 645 일본에서 후지와라 가문이 집권
*자료출처: 콜롬비아 대학교
백제를 알아가는데 두 번째 장애물은 백제의 능이 도굴하기 쉽다는 점이다. 왕릉의 대부분이 몇 백 년에 걸쳐 도굴당했다.
고구려와 백제의 능은 봉분 안으로 향하는 입구가 지면과 수평으로 나 있다. 이런 구조는 도굴하기가 쉽다. 따라서 사실상 고구려와 백제 시대 능에 봉안된 유물은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왕들에 비교해 그 수가 현저히 적다.
이와 반대로 신라의 능에서는 많은 유물을 찾을 수 있다. 신라의 능은 수직갱을 이용했고 그 위치는 흙으로 덮인 바위 봉분의 바로 아래 있었다. 때문에 도굴이 거의 불가능했다.
따라서 백제에 대한 문헌은 부족하고 고고학적 증거도 많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백제의 경제와 정치, 문화, 군사력을 보여주는 완벽한 능이 하나는 존재한다. 바로 무령왕릉이다.
1971년 온전히 보전된 무령왕릉을 발견하면서 우리는 백제 문화의 진수를 만날 수 있게 됐다. 공주 송산리 7호분에 있는 무령왕릉은 오늘날 공원 터로 조성돼 있고 출토된 유물은 부여와 서울의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 곳을 방문할 때 ‘충청남도 공주시 왕릉로 37’을 네비게이션에 입력하면 바로 왕릉 주차장에 도착한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과 보물은 백제 장인의 뛰어난 예술성을 증명하며 백제의 교역 범위에 대한 정보도 알려준다.
▲ 백제 왕이 썼다고 추정되는 관. 1971년 무령왕릉에서 1천5백년 만에 왕관 두 점이 출토됐다. 하나는 왕, 다른 하나는 왕비의 것으로 추정된다. 각각 국보 154호(왕) 155호(왕비)로 지정되었다.
무령왕의 통치와 행적에 대해서는 네 가지 사료를 통해 알 수 있다. 바로 무령왕릉에서 직접 출토된 글귀, ‘양서(梁書, 635)’ 중 “(한국) 삼국 시대 역사”와 ‘일본서기(日本書紀, 720)’에 적힌 기록이다. 사료에는 간단한 사실 위주의 정보가 기록돼 있다.
무령왕은 462년 출생했다고 추정된다. 그의 이름은 자료마다 다르게 기술한다. 백제의 24대 군주로서 자객에게 살해된 동성왕(東城王, 재위: 479~501년)의 둘째 아들이었다.
501년 무령왕은 고구려를 공격했으며, 503년 말갈(靺鞨)의 공격으로부터 성공적으로 백제를 방어했다.
507년에는 고구려-말갈의 연합 공격을 물리쳤다.
512년 고구려가 잠시 두 개 성을 함락했지만 무령왕이 손수 3천명의 군대를 끌고 성을 되찾았다고 전해진다. 같은 해에는 동아시아에서 교역 및 상업이 활발했다는 증거가 있다. ‘양서’에 따르면 512년, 무령왕은 양 남조(南梁, 502-587)에 외교 사절을 최초로 파견했다.
521년 백제는 두 번째 외교 사절을 양 남조에 파견해 고구려를 무찌른 여러 사례에 대해 언급했다. 양 남조의 군주는 자애롭게도 백제 군주에게 명예 군주의 칭호를 “하사”했다. 이러한 칭호는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석판에도 적혀있다.
523년 무령왕은 백제의 북쪽 경계를 따라 방어벽을 설치할 것을 명했다.
백제는 무령왕과 선왕인 동성왕의 노력으로 중흥할 수 있었다. 479년부터 523년에 걸친 이 기간 동안 백제는 더 강력하고 정비된 국가로 변모했다. 백제의 영토는 담로라고 불린 22개 구역으로 구획되었고 왕자나 다른 왕가의 일원이 각 담로를 관리해 중앙집권화에 일조했다. 무령왕의 아들인 성왕(聖王, 재위: 523-554년)이 결국 백제의 수도를 부여로 천도한 데에는 무령왕 시대의 치적이 기반으로 작용했다. 무령왕 시대에 강력해진 군사력과 재정비된 행정 조직으로 성왕 시대에는 더 적극적으로 불교를 해외에 전파하고 양 남조와 같은 중국 남방 국가들과 유대를 강화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백제와 동시대의 동북 아시아 고대 국가들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면, 다수의 왕가가 서로 결혼을 통해 관계를 맺었음을 알 수 있다. 영국 ‘가디언’지에 따르면 아키히토 천황은 가문에 백제의 혈통이 흐르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개인적으로 한국에 특정한 친족관계를 느낍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일본 간무천황(桓武天皇, 773~781년)의 어머니가 백제 무령왕의 혈통입니다”라고 말했다.
정리하자면 무령왕릉은 한국의 고고학사에서 참으로 중요한 발견이다. 도굴당하지 않은 채로 발굴된 몇 안 되는 왕릉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출토된 금붙이들은 놀라운 수준이고 관에 새겨진 세공은 정교하며 부의 규모는 압도적이다.
다음에 공주와 부여에 가게 되면 백제역사유적지구와 부여국립박물관을 방문해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보물을 보고 오는 것을 권한다.
그레고리 C. 이브츠 코리아넷 기자
번역 김영신 코리아넷 기자
사진 문화재청, 위키피디아
gceaves@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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