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일
- 2016.06.02
내가 발견한 한국 무성영화
나는 원래 영화계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인데, 세계영화사에서 무성영화 시대가 특히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현대에 들어 잊곤 하는 것은 영화가 무엇보다 시각 예술이라는 것이다.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대화나 주제보다는 영상이다. 대사가 없는 형상적 영상을 통해 관객들은 영화의 내용, 느낌, 감정을 전달받는다. 이것이 바로 영화예술이다. 발성영화 시대 전까지 유럽, 미국, 러시아에서 영화 제작자들은 점점 더 복잡해지는 스토리를 전하기 위해 영상기술을 지속적으로 개선시켰다. 그래서 무성영화는 현대 영화와 비해 영상적 측면에서 보다 형상성이 뛰어나고 창의적이고, 혁신적이었다.
이러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 나는 한국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당연히 한국의 무성영화에 대해 알고 싶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의 무성영화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곧 바로 한국 무성영화의 상황은 서양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양 세계와 오랫동안 격리되었던 한국에서 영화는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를 처음 상영한 이후 7년 반이란 세월이 지나서야 소개되었다. 한국인들은 1903년에 서양 «활동사진»을 처음으로 봤다. 1919년10월 27일을 한국영화의 날로 제정하고 있지만 그 날짜는 첫 한국 영화가 아니라 «의리적 구토»라는 첫 한국 연쇄극이 (영화를 섞어 상연하는 특수한 연극) 상영된 날이었다. 첫 한국 영화는 그로부터 4년 후에 만들어졌다.
▲ 류드밀라 미해에스쿠(Lyudmila Mikheesku)
20년대 초반은 세계 영화계의 전성기는 아니었지만 기념비적 영화들이 이미 제작되었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로베르트 비네, 1920), «고단한 죽음의 신» (프리츠 랑, 1921), «유령 마차» (빅토르 셰스트룀, 1921), «노스페라투»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 1922), «마녀들» (벤자민 크리스텐센, 1922) 등 같은 내용적으로나 촬영기술면에서 복잡한 영화가 만들어졌지만 한국 영화는 아직 아이처럼 서투른 첫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1926년에 나운규의 «아리랑»부터 한국 무성영화의 전성시대가 시작됐다는 의견이 있지만 당시의 영화는 한 편도 보존되어 있지 않아서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다 (한국에서는 발성영화 시대가 1935 년부터 시작됐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무성영화는 1934년에 촬영된 «청춘의 십자로»라는 작품이다).
나는 앞서 언급한 한국 무성영화에 대한 사실을 알게 된 후에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한국영화사에 대한 책들을 읽다 보면 한국 무성영화는 처음부터 발성영화와 비슷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변사라는 사람들 때문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서양 국가에서는 무성영화가 상영될 때 보통 영화관에서 일하는 피아니스트나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연주했다. 영화 초창기에는 영화를 보여 주는 사람이 관객들에게 영상의 의미를 설명해 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이 일반적인 관습이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음악 연주 악단도 있었던 데다가 영화의 내용을 설명해 주는 변사라는 사람이 영화 상영의 필수 불가결한 부분이었다. 해설뿐만 아니라 변사는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흉내내기도 하고 여러 가지 효과음을 만들기도 했다.
변사는 일본에서 유래한 것으로, 무성영화 시기에 한국과 일본의 독특한 문화이다. 일반적인 의견에 따르면 한국인들이 일단 서양 영화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서 영화 해설자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것이 다는 아닌 것 같다. 영화의 내용에 대한 설명이 변사 일의 주요 역할이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관객들이 서양 영화에 익숙해지고, 국산 영화가 만들어진 후에는 변사 제도가 점차 사라져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변사들은 더욱 더 인기를 얻었고 극장 선전 광고지에 변사들의 사진을 넣어 광고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내 생각에는 영화의 내용을 설명할 필요에 따라 변사 제도가 생겨났지만, 변사의 주요 역할은 영화 해설보다는 관객과의 상호 작용이었던 것 같다. 변사는 대사가 있는 전통극인 판소리, 탈춤 등에 등장하는 배우처럼 관객에게서 호응을 받았다. 영화가 상영될 때 변사의 활동, 악단의 연주, 그리고 이에 호응하는 관객을 떠올려 보면 한국에서의 무성영화 상영은 마치 전통 연극처럼 보인다. 정말 신기하다. 한국인들은 익숙하지 않은 문화를 자국문화와 유사하게 변화시킨 것이다.
서양 무성영화와 전통이 강한 나라인 한국의 무성영화는 많이 다른 것 같고, 세계영화사에서 한국 초창기 영화 시대는 유일무이한 현상으로 보인다. 나는 이제 단편적 지식을 알게 되었지만, 관심이 많아서 앞으로 한국 무성영화 시대에 대한 많은 책을 읽을 계획이다.
이 글을 쓴 류드밀라 미해에스쿠씨는 러시아 언론사 네자비씨마야 가제따(Nezavisimaya gazeta)의 포토에디터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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