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일
- 2014.12.04
영화 '도희야'로 신인감독상 수상한 정주리 감독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돼 있더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가장 실감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첫 작품 '도희야'로 11월 스톡홀름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신인상을 받은 정주리(34) 감독이다.
성균관대 영상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정 감독은 첫 장편 시나리오로 영화를 제작해 이러한 행운을 얻었다.
정 감독은 영화광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어렴풋이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영화감독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어릴 때는 피아노를 배우고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생각했고 그림을 그릴 때는 화가가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며 "영화에 그 모든 게 담겨 있었다. 시각미술이면서 음악적인 요소, 철학적인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고 말했다.
배우, 스텝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매우 즐겁다는 정 감독은 "큰 보람을 느끼고 희열을 주는 일임에 틀림없다"며 "너무나 매력적인 매체인 영화를 혼자 하지 않고 함께하는 일이고 그 와중에 더 나은 것이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정주리 감독(오른쪽)
'도희야'는 작지만 아름답고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서 중학생 소녀 도희(김새론)가 이 마을의 파출소장으로 부임한 영남(배두나)을 만나면서 생겨나는 일을 그렸다. 의붓 아버지인 용하(송새벽)으로부터 학대 받던 도희는 영남을 만나면서 희망을 보았고 영남을 보호하기 위해 극단적을 선택을 하게 된다.
이 영화를 본 외신기자들은 "정말 완벽했다. 시나리오, 배우들의 연기 모두 완벽했다"며 "영상도 아름다웠고 다 조화롭게 어우러진 영화였다"고 호평했다.
이 같은 평가에 대해 정 감독은 "굉장히 지엽적이고 작은 인물의 내면을 다루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보편성이 있었다"며 "영화 주인공들의 외로움이나 상황들이 외국관객이 보기에도 공감할 만한 여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 영화 '도희야'의 한 장면. 도희 역의 김새론(왼쪽)과 영남으로 출연한 배두나
정 감독은 이 시나리오로 CJ 산학협력 프로젝트에 응모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파인하우스 필름의 공동대표인 이창동 감독이 "작은 이야기이지만 큰 의미"를 가진 이 시나리오의 진가를 알아보고 제작을 결정했다. 영국에서 촬영 중이던 배우 배두나도 이 시나리오를 읽은 지 3시간 만에 이 영화에 출연하겠다고 알려왔다.
정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면서 많은 외로움과 좌절감을 맛봤지만 자신이 쓴 이야기, 그리고 영화 속의 주인공들로부터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그가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라고 밝혔다.
정주리 감독과 영화 '도희야'를 만든 배경과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소감을 나눠보았다.
- 첫 작품 '도희야'로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됐고 스톡홀름 국제영화제에서는 최우수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는데 소감은 어떠한가?
- 칸 영화제 초청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영화를 완성하자마자 칸에서 첫 공개했다. 영화 상영 내내 오직 아무일 없이 제대로 상영이 되는지 신경 썼다. 박수갈채를 받을 때는 어리둥절해서 실감이 나지 않았다. 2층에서 기립박수를 치는 분들을 보고 그제서야 감동했다. 첫 장편영화를 만들었고 많은 관객들 앞에서 선을 보이는 것도 굉장히 떨리는 경험이었다. 공감하면서 박수를 치는 관객들이 영화를 주의 깊게 봐주신 것을 보고 스스로 놀라고 영화가 굉장히 큰 힘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국의 현실을 반영하는 영화여서 그렇지 않은가 싶다. 각 나라에서 비슷한 질문을 받았는데 물론 당연히 한국 사회와 저의 문제인식이 당연히 반영돼 있지만 구체적인 현실을 가지고 만든 영화는 아니다. 전적으로 영화를 위해 극화된 내용이다.

▲ ‘도희야’를 통해 개인적으로도 치유를 받았다고 밝히는 정주리 감독
- '도희야'는 가정폭력, 동성애,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문제 등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다. 첫 작품으로 이렇게 무거운 주제를 다룬 이유는?
- 시나리오를 쓸 때 어떤 소재나 사건들로부터 접근을 했다기 보다는 도희라는 아이에서 시작했다. 도희는 굉장히 외로운 상황에 처해있었다. 자신이 외로우면서도 외로운 줄도 모르는 상태의 아이를 그려내야 했고 사랑 받지 못한, 버림받은 아이, 이런 설정들이 생겨났다. 오갈 때 없이 떠돌이처럼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의붓아버지와 할머니에게 학대 받은 것이다.
출발은 외로움이었고 또 한 사람의 외로운 사람을 등장시켜야 했다. 그게 바로 영남이다. 역시 그녀의 외로움을 가장 극대화시키는 차원에서 다른 요소들이 생겨난 것이다. 그 방법으로 남성중심의 사회, 경찰사회를 등장시켰다. 경찰 사회는 엘리트 사회다. 영남은 자기보다 훨씬 나이 많은 부하들을 데리고 있는 외로운 자리에 있었다. 또 동성애자라는 정체성, 외로움을 운명처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태였다.
영남은 도희와는 달리 본인의 외로움에 대해 잘아는 인물이다. 하지만 극복할 수 없어 숨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두 사람이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는 바닷가의 작은 마을에서 만나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그 마을의 현실을 보면서 이주노동자들을 집어넣었다. 또 그들에게서 외로움이라는 공통의 정서를 발견하게 됐다.

▲ 칸영화제에서 사진 촬영을 가진 송새벽, 김새론, 정주리 감독.
- 스톡홀름 국제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받은 최초의 한국 감독이라고 들었다. 칸과 스톡홀름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 우선 너무나 운이 좋게 칸 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에서 공개를 한 것이 큰 이유다. 칸 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문이었고 거기에서 많은 관계자들이 그 영화를 보게 됐다. 이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자국 영화제에 초청한 이유는 한국의 현실을 담고 있어가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자신들의 삶이 투영된 영화를 보고 외로움에 공감을 했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나라에서 공감을 얻었다.
-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도희와 영남이 함께 길을 떠난다. 이렇게 혹독한 시련을 겪어낸 두 주인공에게 하고 싶은 말은?
- 처음부터 영남이 도희를 데리고 떠나는 장면을 결말로 설정했고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힘든 상황에 처하지만 결말을 그렇게 유도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래서 힘든 과정을 거쳤다. 결말이 하나의 메시지다.
어떻게 보면 외면하지 않은 것, 영남이 도저히 외면하지 못하고 도희와 함께 떠나는 것. 우리 주위에 너무나 아픈 마음들, 너무나 힘든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길 바라는 그런 바램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의 결말은 관객들이 보시는 데로 추측할 수 있기를 바랬다. 영남의 마음을 헤아려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관객들마다 여러 가지 추측을 하면서 영남의 마음으로 결말을 보기를 바랬다. 그 많은 것들이 담기기를 바라는 것이 작가의 포부다. 영남의 입장에서 보면 영남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기로 결심했다. 스스로 외로움을 고수했던 인물이었지만 외로움을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영남이 누군가와 함께 하기로 한 결심한 것이다. 결코 두 사람의 미래가 희망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혼자가 아닌 두 사람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기를 희망하는 마음이었다.
내가 만든 인물이지만 내가 위로를 받았다. 어렵고 힘든 때 써나간 이야기였다. 시나리오를 만들기가 힘들었지만 그렇게 만든 시나리오가 영화가 만들어지고 또 영화를 만들면서 배우들과 스텝들에게 많은 위로를 받았다.
- 이 영화를 제작할 때 이창동감독의 역할이 컸다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받았나?
- 이창동 감독은 이 시나리오가 CJ 산학협력 프로젝트 심사에서 떨어지고 낙담했을 때 불러주신 분이다. 이 감독은 그때 '작은 이야기이지만 큰 의미가 있는 영화가 될 수 있다. 이 영화를 만들어보자'고 말해줬다. 이 영화의 의미를 알아봐주시고 이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게 해 주신 분이다. 프리 프로덕션, 캐스팅, 로케이션 등 준비과정에서 촬영, 마지막 후반 작업할 때까지 세심히 각 단계마다 살펴봐주셨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늘 버팀목이 있다는 안정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었다. 편집과정에서 굉장히 힘들었다. 장편을 만드는 것은 단편과는 정말 달랐다. '정말로 다른 것이구나' 그렇게 느낀 부분이 편집이었다. 모든 장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두 시간의 이야기에 맞는 호흡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줬다. 어떻게 강약조절을 해야 하는지 등 많은 조언을 해줬다.
- 어떻게 영화감독의 길을 걷게 됐나?
- 고등학교 2학년 일기장에 '나는 영화감독이 돼야겠다'라고 쓴 것을 보고 깔깔 웃은 적이 있다. 중학교부터 영화 보는 것을 좋아했다. 아버지가 비디오테이프들을 쌓아놓고 보셨다. 그걸 보면서 영화에 익숙해지고 좋아하게 된 샘이다. 중고등학교 때도 영화를 많이 봤고 자연스럽게 결심하게 됐다.
대학에서 다양하게 공부를 했지만 친구들과 소모임을 만들어서 단편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캠코더가 보급되면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영화감독이라는 것이 거창하기 보다는 매우 친숙하게 느껴졌다.

▲ ‘도희야’는 칸영화제의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받았다.
- 영화제작은 시나리오 작성에서부터 실제 제작에 이르기까지 길고 어려운 과정을 거친다. 이번 영화제작에서 또 지금까지 영화감독의 길을 걸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
- 2010년 3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걱정이 많이 됐다. 시나리오의 초안을 썼다. 그렇게 초안을 써놓고 시간을 보내다가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2012년 8월에 와서였다. 2013년 3월에 시나리오를 완성을 했다. 2010년에 초안을 만들어놓고 이것 가지고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2년을 그냥 보냈다.
시나리오를 쓸 때 가장 힘들었다. 암담한 2년이 흘렀다.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상태로 있었다. 첫 장편 시나리오기도 하고 이렇게 인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은 있는데 쉽지는 않고. 그 시간을 견딘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극복을 해야만 나아가는 것이다. 스스로 극복하는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다.
이야기를 완성하는 일이 정말 힘들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 하는데 사람들, 사건을 만들어내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작가 스스로 높은 기준이 있다. 자신은 스스로 독자이기도 하고 관객이기도 하다. 나의 창작행위는 기대에 받쳐 주지 않았고 굉장히 힘들었다. 어느 순간 포기 할 수 도 있었지만 버티고 하면서 그렇게 지나 온 게 아닌가 싶다.
실제 영화를 만들 때는 그 과정들이 너무나 바쁘게 지나갔다. 그렇게 해서 열심히 촬영했는데 편집을 할 때 장편영화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면서 다시 한번 괴로움이 찾아왔다. 나는 뭔가 장편영화를 준비하고 촬영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겠구나 할 때 힘들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좋은 스텝, 배우들을 만나서 정말 행운이었다.

▲ 영화 '도희야' 촬영현장에서.
- 본인이 생각하는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의 매력은?
- 첫 영화를 만들고 영화제작을 하면서 모든 과정을 다 겪어봤다. 스텝과 배우들을 만나고 촬영하고 후반 작업해서 완성하고 개봉하기 위해서 홍보하고 관객들을 만났다. 영화 한편으로 정말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내가 영화 감독이라는 게 좋다고 느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른 사람이 구현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면서 더 나은 것이 만들어지는 것이 남다른 기쁨을 준다. 그런 게 매력인 것 같다.
- 앞으로 구상중인 작품이 있거나 다루고 싶은 소재가 있다면?
지금 쓰고 있는 시나리오를 지난 부산영화제 프로젝트 마켓에서 공개했다. 40대 중반의 여인과 19살의 여자가 두 여인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다. 19살 여자가 주인공이고 그 주변 사람들과 얽히는 관계들. 그것으로 인해 영향 받는 모습들을 묘사하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 언젠가는 SF영화를 만들고 싶다. 가장 존재에 대해서 심오하게 이야기하는 장르이다. 우주 속의 인간, 돌연변이, 인간복제 등이 존재론적인 영역으로 느껴진다.
임재언 코리아넷 기자
사진 임재언, 파인하우스 필름
jun2@korea.kr

▲ 영화 '도희야'의 포스터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