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일
- 2025.02.20
"역사 바로잡기는 인권· 평화 지키는 길···일본과 협력하되 해결 포기 말아야"
▲ 이진희 서대문형무소역사관장의 모습.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울 = 이지혜 기자 jihlee08@korea.kr
1919년 3월 1일은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해 비폭력 만세운동으로 한국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린 역사적인 날이다.
3·1운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과 광복군 조직 등 민족운동의 불길을 지폈다. 그런가 하면 중국의 5·4운동(반제국주의 혁명운동), 인도의 비폭력 불복종 운동, 베트남, 필리핀, 이집트의 독립운동의 촉매제가 됐다.
제106주년 3·1운동을 앞두고 이진희 서대문형무소역사관장을 만나 한국의 독립운동 역사와 그 의미를 되새겨본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어떤 곳인가
서대문형무소는 일본제국주의가 지은 근대식 감옥이다. 지난 1908년 문을 열어 1987년 폐쇄될 때까지 80년 동안 감옥으로 사용됐다. 일제강점기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광복 후에는 민주화운동가들이 갇혔던 역사적 현장이다.
1967년 서울구치소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1987년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옮겨가자 혐오시설로 간주돼 이곳이 완전히 철거될 위기에 놓였다. 그러자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민주화 운동가들이 적극 반대에 나서 일부 시설만 철거됐다. 이후 일부 지역이 독립공원으로 조성됐고, 1998년 11월 5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개관했다. 이제는 연간 60만 명이 방문하는 역사 교육 현장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서울서대문형무소역사관의 모습.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주요 독립운동가는 누구이며, 역사관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시하는지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김구 (1910년 초반), 천안 아우내만세운동을 주도한 유관순 (1919~1920), 미주 지역과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안창호 (1937년 가석방 후 1938년 서거),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를 이끈 여운형 등이 있다.
그러나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특정 인물보다는 사건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하고 있다. 독립운동은 영웅적인 몇몇 개인만의 노력이 아니라, 이름 없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헌신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 서대문형무소에는 수감된 독립운동가들의 머그샷 사진들로 벽을 가득 채운 공간이 있다. 사진은 그 벽을 확대한 모습. 이지혜 기자 jihlee08@korea.kr
서대문형무소와 관련된 역사적 순간이나 인물 중에서 특별히 감명받으신 분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서대문형무소는 3·1운동 이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된 곳이다. 이곳에서 고문을 당하거나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한 분들이 많다.
임신한 상태로 수감된 여성들이 출산을 위해 보석으로 석방되었다가 다시 갇히는 경우도 있었다. 신생아와 함께 1년간 감옥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감옥 환경이 비위생적이고 열악했지만 수감자들이 함께 기저귀를 빨고 음식을 나누며 서로를 도우며 버텼다는 점이 감동적이다.
강우규 의사처럼 고령의 독립운동가도 있었다. 그는 64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1919년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암살하려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를 감행했다. (지금의 64세와 당시 64세는 무척 다르지 않나). 이로 인해 그는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고 1920년 교수형으로 순국했다. 그의 용기는 지금도 깊은 울림을 준다.
▲ 사진은 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에서 자행된 고문 도구와 방식을 재현한 모습이다. 왼쪽은 상자 안쪽에 날카로운 못을 박아 놓고, 사람을 상자 안에 집어 넣어 마구 흔들며 못에 찔리게 해 고통을 줬던 고문도구. 오른쪽은 물 고문의 모습. 강제로 수조에 머리를 집어넣거나 코나 입에 물을 들이부어 호흡을 곤란하게 해 고통을 줬다. 이지혜 기자 jihlee08@korea.kr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관람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교육적 메시지는 무엇인가. 특히 외국인 관람객에게 어떤 점을 강조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처럼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서대문형무소는 단순한 감옥이 아니라 자유를 위한 투쟁의 현장임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외국인 관람객에겐 한국이 일본 식민지배에 맞서 어떻게 독립운동을 전개했는지, 그리고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이 현대 민주주의와 인권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강조한다.
3·1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준비하는 기념 행사가 있나
올해로 106주년을 맞이하는 3·1절을 기념해 여러 행사를 마련했다. 순국선열에 대한 추모식, 3·1절 당시 만세 행진 재현, 독립선언서 낭독, 공연 등을 준비했다. 3월 1일부터 2일까지 무료 입장할 수 있다.
▲ 사진은 지난해 3월 1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진행된 기미독립선언서 낭독 (왼쪽)과 어린이 합창단.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일본 정치인과 학자들의 독도 망언과 역사 왜곡, 군함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후 후속 조치 불이행 문제 등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는 행위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한국으로선 독도 문제를 국제법적,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감정적 대응보다는 체계적인 연구와 홍보가 중요하다.
일본 정부가 군함도를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는 과정에서 군함도에서 있었던 조선인 강제 노역 사실을 알리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행하지 않고 있다. 후속 조치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국제사회의 신뢰 문제다. 우리는 국제 기구와 다자 외교를 통해 역사적 진실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이러한 역사적 문제들은 단순한 양국 간 갈등이 아니다. 역사를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은 인권과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국제 학술 연구, 다국어 홍보 자료 제공 등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최근 한국과 일본은 경제, 군사, 외교적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협력 관계 속에서 역사적 문제는 어떻게 다뤄져야 한다고 보는가.
과거사 문제는 여전히 한일 관계에서 가장 민감한 요소 중 하나다. 협력이 강화되더라도 역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언제든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 따라서 실용적 협력을 유지하면서도 역사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결론적으로 ‘협력은 하되, 역사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코리아넷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한국의 독립운동 역사를 보존하고 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공간이다. 많은 외국인이 방문해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직접 확인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방문을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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