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리뷰: 김사량 ‘빛 속에’, 강경애 ‘모자’
한국문학번역원(LTI Korea)이 하는 일 중 하나는 해외교포들에게 알려졌거나 알려지지 않은 한국어, 일본어 또는 다른 언어로 쓰인 작품들을 보다 넓은 세계의 영어 문학계로 소개하는 것이다.그 중에는 1920년대에서 1940년대까지 활동했던 한국 교포 작가들의 작품들이 포함된다. 대개 한국어를 구사하고, 한국어로 공부하고 글을 쓴 이 작가들의 작품 대부분이 일본어로 쓰여졌다. 한국 작가들의 초기 작품 다수가 ;메트로폴(metropole, 본국)의 언어;, ;세계화의 언어;로 통했던 일본어로 저술됐으며 일본에서 출판됐다. 조선 후기 사람들은 유럽이나 다른 나라의 문학작품들도 일본어로 읽었다.한국문학번역원은 한국계 해외교포들이 쓴 한국의 하층민들, 즉 일본인이 아닌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급진적이고, 정치적인 작품들도 번역, 소개하고 있다. 이런 작품들의 대다수가 한국어로 출판됐으며, 자국어를 사용하고 이등시민으로 분류되지 않기 위한 정치적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런 움직임은 한국, 만주, 대만 등 일본의 식민지인 주변 나라 전역에서 일어났다. 특히 일본 식민지 중 가장 넓고 야생적인 지역이었던 만주가 중심지였으며, 옌변, 지린성 등지에서 거주하던 한국인들 사이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김사량 작가의 ;빛 속에(Into the Light); (1939)김사량(金史良, 1914~1950) 작가의 ;빛 속에(Into the Light);는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소외된 불우한 어린 학생에게 부성애를 느끼는 어느 교사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인지에 대해 더 이상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으며 제목처럼 ;빛 속;으로 나아간다. 이 교사는 내면의 평화를 찾는다. 그리고 그 아이 역시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한다. 이야기 말미에는 그토록 분노에 차있던 운전수마저도 행복해진다. 그들 모두가 빛 속으로 나아간다.김사량은 작가의 필명이다. 본명은 김시창(金時昌). 그는 도쿄대에서 독문학을 전공하였으며 1943년 29세에 서울로 돌아온다. 그는 일본 제국군에서 일하게 되나,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는 충칭과 중국 본토 각지에 있는 중화민국 국민정부 산하의 한국광복군을 위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40년대 초 동북아시아 각지에 흩어져 있던 많은 한국인 교포들처럼, 김 작가는 1945년 8월 한반도로 돌아온다.일본어로 쓰이고 1939년 일본에서 처음 출간된 그의 단편소설 ;빛 속에;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금서(禁書)로 지정됐었다. 친북 작가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모든 시민 개개인을 제도적으로 분류하는 행위와 일본 제국에 침투한 분류 체계를 다룬다.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apartheid)에 대해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피부에 존재하는 멜라닌 색소의 양으로 인종을 구별하는 제도였다. 이와 비슷한 정책이 일제시대에도 존재했다. 피부 속 멜라닌 양이 아닌, 일본의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는지, 부모님이 어디서 태어났는지에 따라 인종을 구별하는 제도였다. 만약 부모님이 일본 혼슈나 규슈 같은 지역 출신이면, 또는 모국어가 일본어라면, ;일본인;으로 분류됐다. 만약 부모님이 한국 출신이거나 모국어가 한국어라면 ;한국인;으로 분류됐다. 만약 부모님이 지린, 헤이룽장, 랴오닝, 내몽골 지역 출신이고 그 지역 언어를 사용하면, ;만주인;으로 분류됐다. 가장 낮은 4등급으로 분류된 계층은 ;중국인;이었다. 이런 계층분류 체계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작품 ;빛 속에;서 주인공 교수는 ;한국인;으로 분류된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게 된다. 주인공과 그의 학생 그리고 운전수는 ;한국인임;을 받아들이고 내면의 평화와 만족 속에서 사는 법을 배운다.이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한국인,; 당시 명칭으로는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제국시민;, 즉 ;일본인;이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헤맨다. 신체적 특성으로는 구별할 수 없다. 인물들의 마음가짐과 그들의 등록 서류, 그리고 그들이 태어나서부터 지닌 것들에 기반을 둔다. 사용하는 언어와 꿈꿔 온 사회에 기반을 둔다.실제로 아이들은 어른들보다도 더 인종차별적일 수 있다.;;이렇게 말했을 때 문을 열고 들여다보던 아이들 속에서 한 아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야, 선생님은 조선사람이다!; ;그리고는 ;야 조선사람!; 하고 혀를 날름 내민 다음 쫓기듯이 다시 달아났다; 순간 복도는 물을 뿌린 듯 조용해졌다.; (6페이지)일제 식민지를 배경으로 한 이 단편소설에는 이렇게 인간이 만들어 낸 인종차별주의가 만연해 있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들은 빛 속으로 나아가 더 큰 세계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이 작품은 일제 시대 ;일본인;이 아닌 사람으로 분류됐던 수많은 한국인들이 겪어야 했던 현실과 당시 사회시대상을 다룬 최초의 작품들 중 하나다. 출판 직후, 이 작품은 저명한 아쿠타가와상(Akutagawa) 후보작으로 선정됐으며 독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김사량 작가는 1939년 일본어로 단편소설 ;빛 속에;를 출간했다. 이 작품은 이후 한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영문판의 번역은 2013년 제인 김(Jane Kim)이 맡았다.강경애 작가의 ;모자; (母子, Mother and Child) (1935)창문이 열렸다가 이내 곧 닫힌다. 강경애(姜敬愛, 1907~1943) 작가의 단편소설 ;모자;는 전쟁과 독립운동의 어두운 모습과 한 여인의 운명, 그리고 1930년대 만주에서 살아가던 한국 농민, 촌락주민들이 직면한 현실을 보여준다. 죽어가는 여인이 임종에서 내뱉는 한탄과 살기 위한 투쟁으로, 단막극 또는 1인 독백으로 이야기 될 수 있다.;우리가 아무리 살려고 갖은 애를 다 써도 결국은 못살게 되고 또 죽게 된다.; (11페이지)이 작품은 딱히 밝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1930년대 한반도 북부와 남만주에서 살아가던 한국인의 존재, 특히 한국 여성들의 삶을 조명한다고 할 수 있다.작품 ;모자;는 투쟁에 대한 이야기며, 고통에 대한 이야기다. 강경애 작가는 페미니즘 투쟁과 노동계급 및 하층민의 투쟁을 그린 작품들을 썼다. ;모자;는 한국 민족주의 운동가 또는 독립운동의 고통과 투쟁을 보여준다. 1910년대에 시작된 식민주의의 속에서, 한국은 1930년대까지 고통 받아 왔다.이 작품은 한 어머니의 고통과 자식을 살리려는 한 어머니의 분투에 관한 이야기이다. 남편이 없는 한 어머니의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 해체된 가족, 대가족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배경 이야기에서부터 날씨, 짧은 대화에 이르기까지, ;승호 어머니;라고만 언급되는 주인공은 고통 받고, 고통 받고, 또 고통 받으며, 저주받은 삶 속의 역경과 고난을 견딘다. 차갑고 우울한 이야기(vignette)다.강경애 작가는 중국 옌볜에서 살았다. 옌볜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1930년대 당시 지린성 내 한국계 사회의 중심지였다. 한반도의 북부, 특히 지린성의 겨울은 매섭고 혹독했으며, 수개월 간 마른 눈과 영하의 추위가 몰아치고 시베리아 평원에서 불어오는 살을 에는 바람이 불어왔다. 가난과 집 없는 사람들, 폭풍우 속에 몸을 보호할 곳도 없고 아이를 돌봐야 하는 처지의 사람들. 이 모든 것이 강경애 작가의 글 속에 묘사되는 삶이다.고통 받는 여성의 삶이 이 11페이지의 짧은 단편 속에 녹아 있다. 승호 어머니는 폭풍우를 피할 곳을 찾기 위해 마을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내내 어린 승호를 등에 업고 있다. 남편이 죽어 홀몸인 그녀는 그가 속한 사회에 설 자리가 없어 더욱 고통스럽다.마지막으로 작가는 하층민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모자;와 같은 단편 작품들은 공산주의 혁명을 촉발시킬 수 있다. 페미니즘 혁명도 일어날 수 있다. 단편 작품들로 인해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이 작품은 1935년 한 신문지면에 한국어로 실리면서 한국 독자들에게 머나먼 만주 시골에서 겪은 한 여성의 고통을 전해줬다. 한국인이 견뎌야 했던 빈곤의 이야기가 일제 식민지로 억압받고 있던 한국인들에게 전달됐다. 강경애 작가는 지금 여성들이 그렇듯 그 당시 여성들이 직면했던 현실을 조명했다. 우리가 보기 힘든, 아마도 볼 수 없는 세상을 글로 생생히 담아냈다.▲ 강경애 작가는 1935년 한국어로 단편소설 ;모자;를 출간했다. 그 당시 강 작가는 급진적인 페미니스트, 사회운동가로 여겨졌다. 이 작품은 2014년 영문으로 번역, 출판됐다. 번역은 소라 김 러셀(Sora Kim-Russell)이 맡았다.한국문학이 제대로 꽃을 피우던 시기는 1910년대 후반이었다. 1917년 매일신보에 연재된 이광수의 ;무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한국인이 쓴 최초의 현대 소설로 여겨진다. 이 작품에서 이광수 작가는 언어와 민족주의, 낭만주의(Romanticism)으로 실험적인 시도를 선보였다. 그러나 한국 교포들의 문학이 제대로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들어서부터였으며, 그들의 작품들 중 고작 절반 정도만이 한국어로 쓰였다.▲ 강경애 작가는 주로 페미니즘 투쟁과 노동계급 및 하층민의 투쟁 등 사회문제들을 조명한 작품들을 썼다.1919년 이후로 일제 식민치하의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식민정책에 변화가 있었다. 1919년 3월 1일 토요일 태화관(泰和館)에 모인 33명의 독립운동가들에 의해 촉발된 ;3.1 운동;으로 일본은 한국인들이 일제의 억압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했다.1920년대에 들어 일제의 규제가 약화되면서 한국어로 예술과 문학 작품을 창조해내는 것이 더욱 수월해졌다. 그러나 1920년대 조선의 문학작품은 국가 정체성을 위한 도구에 가까웠으며, 독립 이라는 개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담은 김동인(金東仁, 1900~1951)의 ;발가락이 닮았다; (1932)와 현진건(玄鎭健, 1900~1943)의 ;빈처; (1921)같은 작품들도 나왔지만, 1920년대 당시 문학계의 추세는 1925년 설립된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 (카프, KAPF)가 주도한 공산주의와 프롤레타리아(정치상의 권력이나 병력의 의무도 없고 다만 자식밖에 남길 수 없는 무산자들을 의미하는 라틴어 ;Proletarius;에서 나온 말) 문학이었다.독립운동을 위한 저의(底意)로 이해할 수 있는 있겠으나, 문학을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추세에 반발하는 새로운 바람이 문학계에 불었다. 이러한 움직임을 주도한 것은 ;구인회 문학 단체(the Circle of Nine);였다. 이상(李箱, 1910~1937), 박태원 (朴泰遠, 1909~1986) 등이 대표하던 구인회 문학 단체는 문학을 단지 도구로 사용하려는 움직임을 거부하고 문학을 그 자체로 존중하고자 했던 최초의 문학단체였다.그 결과, 이 문학단체 작가들은 저자의 성격과 글쓰기 방식을 존중했고, 더욱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들이 1930년대 들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초현실주의 작가 이상은 도시화된 서울을 소설과 시 속에 묘사했다. 일본에서 공부해 서구 문학에 영감을 얻고, 영향을 받은 박태원 작가는 소설 ;소설가 구보씨(仇甫氏)의 일일;에서 ;의식의 흐름; 기법을 도입했다. 구인회 문학 단체 자체는 고작 몇 년 밖에 지속되지 못했고 구성원도 자주 바뀌었지만, 한국 문학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학 단체 중 하나로 여겨진다. 1930년대부터 더 많은 소설작품들이 나왔다. 염상섭(廉想涉, 1897~1963) 작가의 ;삼대(三代);나 채만식(蔡萬植, 1902~1950) 작가의 ;탁류(濁流); 같은 소설 작품도 이때 등장했다.그레고리 이브츠 코리아넷 기자번역 손지애 코리아넷 기자사진 한국문학번역원gceaves@korea.kr
2016.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