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여행가 황안나, ‘내 인생 두 번째 봄날’
▲ ;길은 나에게 ;자유;;라고 말하는 도보여행가 황안나 씨는 40여 년간의 교직생활을 정리하고 혼자 걷는 여행을 하고 있다;그저 남들은 포기한 ;나이;를 잘 쓰고 있을 뿐이에요;올해 일흔 여덟이 된 도보여행가 황안나 씨가 ;가장 행복하고 자유로운 제 인생의 봄날은 65세부터 지금까지에요;라며 이같이 말했다.그는 40여 년간의 교직생활을 정리하고 예순 다섯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혼자 걷는 여행을 시작했다.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말렸던 그의 도보여행은 전라남도 해남 땅끝마을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23일간의 국토종단에서 시작됐다. 이어 지리산 종주, 강원도 고성에서 동해안을 따라 남해안, 서해안, 그리고 파주 임진각까지 두 차례의 해안일주 등 한국의 구석구석을 다녔다.그의 여정은 국내에 그치지 않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비롯해, 중국 동티벳, 아이슬란드, 인도 라다크 등 세계 총 53개국을 여행했다. 지금도 그는 배낭을 메고 걷고 싶은 곳으로 훌쩍 길을 나선다.14일 인천 송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황 씨는 역시나 배낭을 메고 있었다.▲ 도보여행가 황안나 씨가 카메라를 향해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제 2의 인생을 ;걷기;에 심취하게 됐다. 교직과는 정반대의 삶인데 그 계기는? 65세에 한 산악회에서 광주 무등산 등반 계획이 잡혔어요. 이 봄날 광주까지 간다면 나도 한비야 씨 국내 종주기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처럼 해남 땅끝마을에 가서 국토종단을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배낭에 지도와 갈아입을 옷, 비상약품만 챙겨 무작정 떠나게 됐어요. 그게 제 걷기의 시작이었죠.- 무엇이 계속해서 길을 걷게 만드나? 길이란 무엇인가? 우스갯소리로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고, 더군다나 무거운 배낭을 지고 춥고 배고프고 발도 부르트고 고생이 이만 저만 아니에요. 그런데도 왜 편한 집을 놔두고 이 고생을 할까 생각해보면 저는 사람만 그리운 게 아니라 자연 속에 묻히는 시간도 그리워요. 요즘 같은 봄철에는 꽃도 그립고, 새소리, 물소리, 바람 이런 모든 것들이 그리워요. 게다가 자유롭잖아요. 저는 40년 가까이 집과 학교만 오가고 시간에 쫓기듯 허둥댔어요. 근데 배낭을 매고 길을 나서니 먹고 싶으면 먹고, 걷고 싶으면 걷고, 하고 싶은 대로 결정할 수 있어요. 한마디로 길은 저에게 ;자유;에요.- 길을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하루 10시간씩 끝없이 펼쳐지는 길을 걸으며 지난 일도 생각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기도 하지만, 사실 아무 생각 없이 걸을 때가 가장 많아요.해안일주를 할 때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동해~남해~서해~파주 임진각까지 걷고, 웬만한 섬은 다 들어가서 걸었어요. 많이 걸을 때는 하루에 56km까지 걸었죠. 그 많은 시간을 걷다 보니까 걷는 길 앞에 이제껏 살아온 길들이 펼쳐졌어요.자기 성찰의 기회도 그런 기회가 없을 거에요. 끝이 보이지 않는 해안일주를 할 때 자연 앞에서 경외심도 들고, 경건 해져요. 한밤중에 정동진에 도착했을 때 폭풍이 몰려오고 사나운 파도가 쳤죠. 거기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가슴 아픈 고백성사를 했어요.저는 자존심도 강하고 남들보다 뒤처지기 싫었어요. 동료들보다 조금 더 일을 해서 올라가려고 했죠. 지금 인생을 길게 볼 때, 쓸데 없는 것에 매달리느라고 소중한 걸 많이 놓쳤어요. 소중한 것의 우선순위를 잘못 매겼어요. 우수교사 표창장이라 던지, 대통령 표창장, 그게 뭐라고... 얼마 전에는 그 상장들을 다 태워버렸어요. 일보다 집에 일찍 가서 아이들 엄마 노릇을 더 했어야 했는데 말이죠.젊은 시절 남편의 몇 차례 사업실패로 30년 가까이 절대빈곤으로 살았어요. 지난 시절의 고생은 잊을 수 있지만 천대받고 멸시 받은 기억은 잊혀지질 않았어요. 두고 보자 이갈고 사니, 끼니를 굶고 출근해도 배도 안 고팠죠. 한 마디로 ;절치부심(切齒腐心);하고 살았어요. 근데 길을 걸으면서 한 맺힌 마음을 많이 내려놓을 수 있게 됐어요.- 매번 여행을 결심하고 문을 나서게 만드는 비결은? 일단 ;문 열고 나가라;고 (저 자신에게) 말해요. 밖에 나서서 한 걸을 한 걸음이 모여 목적지에 도달했을 뿐이에요. 누구나 망설이다가 세월이 다 가죠. 걷는 것뿐 만 아니라, 어떤 것을 하고자 할 때 망설이지 말고 용기를 내서 해봐야 해요. 첫 걸음을 떼었을 때 90%를 성공한 거나 마찬가지에요.강원도 원주 종합운동장에서 출발해서 잠도 안자고 100km 걷는 대회를 나간 적이 있어요.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한번 해보자;고 다짐하고 출전했죠. 50km, 70km가 넘어서니 발에 감각이 없어졌고 왼발이 나가니 오른발이 나갔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완주했죠. 처음으로 출전한 대회에선 21시간만에 끝냈어요. 70세때 출전한 두 번째 도전에선 19시간만에 완주했어요. 그것도 제가 일단 나서 봤으니까 이룰 수 있었던 거죠.▲ 도보여행가 황안나 씨는 걷는게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길을 걸으며 마음을 내려 놓는 법도 배웠다;며 ;길을 걸을 때 너무 행복하다;고 웃었다.- 걷기를 결심하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만약 직장인들이 걷기를 시작해 보고 싶은데 코스가 안 좋거나 시간을 따로 낼 수 없을 때 전철 한 구간 전에 내려 걷는다 던지 걷기의 일상생활화를 추천해요. 시간을 많이 내지 않아도 걸으려고 맘만 먹으면 언제든 걸을 수 있죠. 요즘은 서울 근교나 지방마다 걷기 코스가 다 있어요. 그런 곳에 가서 한나절 걷고 오면 좋아요.- 지금의 ;걷는 삶;이 힘들진 않나? 지금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어요. 너무 많이 다녀서 안 걸어본 길이 거의 없을 거 같아요. 지금은 강연도 다니고 다양한 걷기 행사에서도 같이 걸어 보자는 요청이 많이 와요. 직장생활을 하며 바쁘게 살던 건 똑같은데, 지금의 삶은 바쁜데도 불구하고 너무 행복하죠.- 다음 여행지는 어디인가? 다음 달엔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을 걷다 오려고 해요. 아프리카 대륙 최고봉인 킬리만자로도 꼭 가보고 싶은 곳 중에 하나에요.강가희 코리아넷 기자사진 전한 코리아넷 기자kgh89@korea.kr 2017.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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