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지성까지 번역했죠” 41년 영역 감수 에리자벳, 국민훈장 모란장
▲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에서 40년 6개월간 영역 감수자로 근무한 에리자벳 지 크랲트가 29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공무원 정년퇴직자 행사에서 도종환 문체부 장관으로부터 국민훈장을 받고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김순주 기자서울 = 김영신 기자 ysk1111@korea.kr 해외문화홍보원(이하 해문홍)에서 40년 6개월간 영역 감수자로 근무한 에리자벳 지 크랲트(78, 이하 에리자벳)가 29일 오후 국정 해외홍보 유공 분야에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에리자벳은 1987년 개정된 대한민국 헌법, 전∙현직 대통령 연설문, 남북정상회담발표문, 대통령 친서, 청와대와 정부부처 보도자료 영역 감수를 맡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에리자벳이 영역 감수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세웠고, 10명의 대통령과 함께하며 전문적 영역 감수를 통해 국가 이미지와 국격을 높였다”고 수훈 배경을 설명했다. 이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공무원 정년퇴직자 행사에서 도종환 문체부 장관으로부터 국민훈장을 받은 에리자벳은 “해문홍 근무는 제 자신이 한국 현대사의 일부가 될 수 있었던 대단한 기회”라며 “유일한 소신은 대통령이 누구든지 상관없이 정부가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왜 하는지를 분명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에리자벳을 직접 만나 영역 감수자로 국정 홍보에 헌신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에서 40년 6개월간 영역 감수자로 근무한 에리자벳 지 크랲트. 최태순 기자-정부문서 영역 감수는 어떤 과정을 거치나. “번역가들과 팀을 이뤄 영역 작업을 한다. 두 세명이 문서를 나눠 번역하면 이를 합치고 표현을 다듬는다. 그 후 함께 모여 원문과 멀어지지 않았는지, 더 좋은 표현은 없는 지 확인한다.” -영역 감수자로 철학이 있다면. “한국어와 영어 발화는 매우 다르다. 두 문화와 두 언어권의 세계관 차이도 크다. 대통령 발언을 영어로도 매끄럽게 들리도록 하는 게 매우 어렵다. 한국어로는 괜찮게 들려도 영어권에선 절대로 하지 않는 말도 있다. 직역을 해선 안 되기에 더 어렵다. 초기에는 대통령 발언이라 직역해야만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나는 ‘한국어로 대통령이 바보같이 들리는가? 그 말을 영어로 직역하면 바보같이 들린다. 그의 지성까지 함께 번역하지 못한다면 진정으로 그의 말을 번역한 게 아니다’라고 답했다.” -외국인에게 생소한 한국 표현이나 개념을 전달할 때 신경 쓴 부분은. “보도자료나 성명은 간략하게 괄호 안에 설명을 추가하지만 연설문은 더 복잡하다. 단순한 번역으로는 의미를 전달하기 어려운 경우 어떤 의미가 담긴 발언인 지 파악해 같은 뜻을 전달할 수 있는 영어 표현을 생각해야 한다. 그럴 때 대통령이 사용한 단어는 최대한 잊고, ‘대통령이 이 메시지를 전달할 때 어떻게 말할까?’라고 생각해본다. 대통령이 한 정확한 발언을 옮기지 않은데 대한 비판도 일부 있지만 단어보다 의미 전달이 더 중요하다. 드문 경우지만 도저히 영어로 그 의미를 전달할 수 없으면 생략한다. 예컨대 한국어로는 반복을 통해 의미를 강조할 수 있지만 영어로는 과도한 반복이 의미를 반감시킨다.” -10명의 대통령과 함께 일했다. 가장 연설을 잘하는 대통령을 꼽는다면. “누구든지 모든 대통령의 연설문을 모아놓고 정부 슬로건을 빼면 어느 연설이 어느 대통령의 것인 지 가늠하기 어렵다. 한국 대통령의 연설은 의례에 가깝다. 예컨대 행사에서 하는 대통령 연설은 조금씩 차이를 빼놓고는 매년 똑같다. 그래서 어떤 대통령이 가장 연설을 잘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다만 스타일이 다르다고 생각한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이다. 시적 표현을 잘 사용해 종종 번역하기 어렵다.“ -가장 기쁘거나 보람있었던 일은. “평생 일하면서 가장 흥분됐던 순간을 꼽자면 2000년 첫 번째 이산가족상봉 때다. 전국이 흥분 상태였다. 당시 워커힐호텔에 프레스센터가 꾸려졌다. 저 역시 가까운 곳에서 역사적 현장을 지켜봤다.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도 함께 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열린 남북정상회담은 최초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지만 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이 가장 흥미로웠다.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이 함께 국경을 넘나드는 장면이 특히 인상 깊었다.” -이 일을 어떻게 시작했나. “족벌주의 덕분이다(웃음). 결혼하고 나서 한국에 왔다. 당시 남편(이하우 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사무총장)은 문화공보부에서 일했다. 그의 소개로 영역 감수를 시작했다.” -남편과 같은 직장에서 일하니 어땠나. “해문홍은 아주 만족스러운 직장이다. 남편도 평생 정부에서 일했는데 특히 일을 시작했을 무렵 공무원들은 야근하고 집에 늦게 들어왔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어떤일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일이 많아 저녁을 함께 먹지 못하는 날도 이해했다.” ▲ 40년 넘게 영역 감수자로 국정 홍보에 기여한 에리자벳 지 크랲트가 26일 문재인 대통령 연설문집을 배경으로 서 있다. 최태순 기자-처음 일을 시작했을때와 퇴직한 지금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맨 처음 컴퓨터가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 사용법을 몰라 그저 책상 위에 놓아두고 타자기만을 사용했다. 타자기로 일할 때, 번역가가 타자기로 친 번역물을 넘겨주면 붉은색 잉크로 고치고 수정본을 전문 타자수가 다시 문서로 만들었다. 하루 종일 걸렸다. 대통령 연설 때마다 통행금지 시간을 한참 넘겨 작업했고, 정부 차량을 이용해 퇴근했다. 동료가 컴퓨터 사용법을 알려준 후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웃음). 단어를 이리저리 옮기고, 실수를 수정할 수 있는 게 놀라웠다.” -인터넷의 등장도 놀라웠겠다. “그때는 인터넷에서 무언가를 검색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사관에 전화해서 정보를 얻는 방식으로 일했다. 동료 제안으로 날짜, 이름 등을 기록한 메모지를 신발 상자에 보관했다. 일하면서 빨리 어떤 정보를 확인하고 오류를 정정하는데 도움이 됐다. 이 기록이 중요한 역할을 한 적도 있다. 청와대에서 처음으로 영어로 대통령 연설문집을 내려고 보니 자료가 없더라. 모든 자료를 보관하고 있던 사람은 정부를 통틀어 저뿐이었다. 제가 자료를 모두 보내줘서 청와대가 영어 연설문집을 제작했다. -은퇴 후 계획은. “왕립아세아학회한국지부 비서관도 맡고 있다. 그곳에서 해야할 일이 있다. 다음주 미국에 살고 있는 딸과 손녀들이 한국을 방문한다. 가족들이 다 같이 기차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2018.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