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진실하고 일관된 자세로 한국인에 용서 구해야"
▲ 그레그 브래진스키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교수. 브래진스키 교수 제공윤소정 기자 arete@korea.kr최근 미국의 한 일간지에 실린 한 칼럼이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주목을 받았다. 현재 진행 중인 한일 갈등의 원인을 일본의 부족한 과거사 반성에서 찾은 이 칼럼을 기고한 장본인은 미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역사국제문제학을 연구하고 있는 그레그 브래진스키(Gregg Brazinsky) 교수이다.동아시아 역사와 국제 관계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가진 그는 대한민국의 근대화와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주의 모델의 특성에 관한 2권의 저서를 쓸 정도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제관계 분석에 정통한 전문가이다.그는 16일 코리아넷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이 이번 수출 규제 조치의 배경"이라며 "일본이 독일처럼 역사적 과오를 속죄하고 피해자 위로에 최선을 다했다면 애초에 이런 소송도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이번 한일 갈등의 해법으로 양국이 수출 규제 조치를 철회하고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한 브래진스키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광복절 축사에서 화해의 목소리로 대화를 제안한 것은 옳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일본이 진실하고 일관된 자세로 한국인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양국이 대화의 길을 모색할 것을 강조했다.이하는 인터뷰 전문.- 교수께서는 최근 기고하신 워싱턴포스트 칼럼에서 한일 갈등의 원인을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제대로 반성하지 않은 데서 찾았다. 이 주장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린다.일본 정부는 안보 상의 이유로 수출 규제 결정을 내렸다고 했지만 한국의 전략물자 수출 통제가 안보에 영향을 줬다는 주장에 대한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대다수 미국 전문가들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일본이 불만을 품고 이 같은 조치를 감행했다고 생각한다. 만일 독일과 유사하게 일본이 과거사를 속죄하고 피해자들 위로에 최선을 다했다면 애초에 이런 소송도 없었을 것이다. 일본에 대한 한국의 분노는 돈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분노는 일본 지도자들이 자국의 과거사에 보여온 태도에 깊은 실망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분노는 양국 간 경제 위기와 보복으로 악화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이같이 과거사 문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냉전 초기에 미국이 취했던 정책에서도 일부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당시 미국은 반공산주의(anti-communism)에 집중했고 한일 양국 간 화해, 2차대전 당시 과오에 대한 일본의 충분한 반성 등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와 2차 대전에서 한국이 겪은 막대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도쿄전범재판에는 한국인 판·검사가 한 명도 없었다. 나아가 미국은 일본 전범들과 가까운 관계를 도모했고 이들 가운데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1896-1987)는 훗날 1950년대 일본 총리가 됐다. 미국의 행보로 인해 일본인들은 자국의 역사적 과오가 전쟁의 불가피한 결과 일뿐 다른 전범국가보다 나쁠 것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 같다.그러나 미국의 외교정책만 그 원인으로 볼 수는 없다. 독일 지도자들은 일본 지도자들과 사뭇 다른 태도를 보이며 믿음을 얻었다. 예를 들어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1913-1992) 전 서독 총리가 1970년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한 행동은 세계적으로 존경 받았다. 당시 브란트 전 총리가 위령탑 앞에 헌화한 뒤 갑자기 말 없이 무릎을 꿇은 사죄의 행동에는 희생자들에 대한 진실한 공감이 담겨 있었다. 반면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은 자국 군대가 중국과 한국에 저지른 과오에 대해 브란트 총리가 보였던 것처럼 극적인 사죄의 행동을 보인 적이 한번도 없다.- 그 동안 일본은 1965년 청구권 협정을 통해 모든 배상문제를 해결했음에도 한국이 끊임없이 사과만을 원한다는 입장을 집중 홍보해왔다. 그 결과 많은 해외 언론은 한국이 일본에 계속 떼를 쓰고 있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일본이 제대로 된 사과를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은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국제사회에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나?한국은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 솔직하게 열린 자세로 대화에 나설 의향이 있음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대화를 갖기 위해서는 증거를 자세히 조사해야 하고 조사 결과를 양국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이 같은 대화를 통해 양국이 2차대전의 참상을 전 세계에 효과적으로 알리고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을 것임을 확인시켜야 한다. - 최근의 한-일 갈등에 대해 많은 언론은 한국 사법부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무역보복이라 분석한다. 반면 일본 정부는 이번 조치를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판결과 관계없는 순수한 무역의 문제일 뿐이라고 공식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객관적 입장에서 현 사태를 분석한다면? 일본의 조치가 한국대법원의 판결과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만일 한국이 북한에 민감한 전략물자나 기술을 밀반출했다는 증거가 있다면 일본은 그 증거를 공개해야 한다. 그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사실을 감안하면 일본이 다른 동기를 갖고 있을 확률이 높다. - 교수께서 생각하시는 이번 한-일 갈등의 바람직한 해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한일 양국이 먼저 수출 규제와 경제 제재를 철회할 것을 권한다. 그렇지 않으면 양국 간 갈등은 세계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가져올 것이다. 실제로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도 격화되며 지난 수십 년 간 동아시아의 번영에 기여해온 자유무역과 협력 체제의 기반을 뒤흔드는 위험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축사에서 화해의 목소리로 대화를 제안한 것은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 볼 때 한일 양국이 더 깊은 화해의 길을 모색하기를 바란다. 일본이 진실하고 일관된 자세로 한국인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양국이 상호 협력하면 서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길이 많이 있다. 한일 관계가 좋아지면 양국이 상호 번영과 안보의 길로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다.
2019.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