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소송과 한일 관계(자이마 히데카즈 변호사)
자이마 히데카즈일본 강제징용 소송 대리인 변호사 일본에서의 재판, 그리고 한국에서의 재판의 경과 1995년부터 한국 징용 문제에 임해왔다. 1944년 9월에 조선반도에서 징용령에 의해 강제 연행돼 히로시마 미쓰비시 중공의 공장에서 강제 노동에 종사하게 된 사람들이 그 당사자다. 1945년 8월 6일 원폭 피해를 입은 그들은 미쓰비시 중공의 구호 조치도 없이 일본 패전 후 목숨을 걸고 고향인 조선반도로 돌아갔다. 그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상도 없었다. 일본의 패전 후 50년째인 1995년 12월 히로시마 지방법원에 한 명 당 1000만엔의 배상을 요구하는 재판을 제기했다. 원고는 한국에 거주하는 46명의 강제징용피해자, 피고는 일본국과 미쓰비시 중공이다.1999년 3월 25일 히로시마 지방법원은 시효 등을 이유로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는 부당한 판결을 내렸다. 우리는 일본 재판소에서 징용 피해자들의 구제를 실현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 일본에서의 재판을 계속하면서 한국 재판소에서 일본의 전쟁 책임을 추궁할 수 없을까? 하고 생각했다. 거기서 한국의 최봉태 변호사들과 협의해 2000년 5월 1일 부산 지방법원에 미쓰비시 중공을 피고로 한 재판을 제기했다. 그 후 같은 형태로 전쟁에 가담한 일본 기업 신일철주금(현재는 일본 제철)이나 후지코시에 대한 소송이 제기됐다. 우리가 관여한 미쓰비시 중공을 상대로 하는 재판은 부산 지방법원, 부산 고등법원에서 패소했다. 그러나 2012년 5월 24일 한국 대법원은 부산 고등법원의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 판결은 1965년 일한청구권협정으로 인한 청구권문제 해결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 일본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 식민지 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협정에 의해 해결되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이 대법원 판결로 2013년 7월 30일 부산 고등법원은 미쓰비시 중공에게 징용 피해자 한 명당 8000만원을 지불하도록 명령했다. 징용 피해자들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판결이었다. 그런데 미쓰비시 중공은 이 판결에 따르지 않고 대법원에 상고했고 2018년 11월 29일 징용 피해자의 청구를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다(이전에 2018년 10월 30일 신일철주금에 대한 원고 승소의 대법원 전원 합의체 판결이 있었다).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일본 기업의 대응 2018년의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아베 총리는 ‘국제법 위반’이라는 최대한의 표현으로 비난했고 한국에 대한 반감을 심어주는 태도를 점점 확대하고 있다. 이후 한일 무역문제로까지 파급돼 한일 관계는 사상 최악의 상황이라고 불리는 지경까지 왔다. 이 상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첫째, 일본정부의 한국 대법원 판결에 관한 '국제법 위반'이란 비난에 대해서다. 전제가 되는 중요한 문제는 1965년의 협정에 의해서 징용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이 소멸됐는가의 여부다. 일본정부가 이를 잘못 이해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일본정부는 “협정에 의한 개인 청구권은 소멸됐는데 한국은 그 권리를 인정한다는 전제에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문제를 다시 꺼내고 있다. 이것은 국제법에 위반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일본정부도 “개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2018년 11월 14일 고노 외무 대신은 국회에서 개인 배상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이 말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이 끝났다’는 것만을 강조하고 있다. 소멸하지 않은 개인 청구권에 근거한 소송을 한국 법원이 인정한 것이 왜 국제법 위반이 되는가에 대해선 아직도 일본정부는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둘째, 일본정부가 대법원 판결에 대해 한국정부가 어떤 대응도 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는 점이다. 한국도 일본도 ‘삼권분립’의 국가체제다. 일본정부는 한국정부가 대법원이 그러한 판결을 내리지 않도록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대법원의 판결을 인정하지 않을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삼권분립의 근본적인 원칙을 부정하게 된다. 대법원 판결은 징용 피해자가 자신들을 강제 연행해 노동을 강요한 일본기업에 대해 배상을 요구한 것에 대한 판결이다. 이걸 정부가 무시한다는 건데 이게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재판의 원고인 징용 피해자들과 일본기업 사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거기에 일본정부가 가로막고 서서 해결을 못하게 하는 대응은 부당하기 짝이 없다고 밖에 볼 수 없다.셋째, 일본정부의 기본적인 자세 문제다. 일본정부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의한 피해자, 그리고 일본이 스스로 일으킨 전쟁에 의한 피해자를 생각할 자세가 전혀 없다. 전쟁 가해자로서의 책임 의식이 없다. 확실히 1965년의 협정에서 국가 간에 외교보호권이 ‘해결 완료’로 알려진 것은 사실이다. ‘해결 완료’인데 왜 징용 피해자가 배상을 계속 요구하는가? 왜 재판 소송을 하며 일본기업의 책임을 계속 묻는 것인가? 라는 피해자의 호소에 진지하게 마주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를 계속 취하는 한 피해자의 목소리가 진정되지 않는다. 이래서는 문제 해결의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징용 피해자의 호소를 한국 대법원이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는 사실을 일본이 국가로서 중대한 문제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넷째, 이렇게 보면 1965년의 협정에서 보상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는 동서냉전시대였고 한국도 군사독재정권하에 있었다. 한편으로 많은 일본 기업이 한국 진출을 희망했었다. 일한협의 과정에서도 최종적으로는 ‘정치적인 타협’으로 ‘해결’에 이르렀다. 일본정부는 ‘독립 축하금’이라고 칭했다. 또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는 ‘생산물 및 역무의 제공’에 의한 것으로 ‘공여 및 대출은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내용이 특별히 기재돼 있다. 이런 사실로 볼 때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라는 취지는 이해할 수 없다. 개인 청구권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 보상을 요구해 소송한다는 것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던 일이다. 이것을 부당하다고 할 이유는 없다.일본정부의 대응에 대해 2018년 10월 이후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일본정부는 갑자기 한국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 움직임은 매우 의도적이고 정치적인 대응이다. 이미 2012년 한국 대법원은 "일본의 반인도적 불법 행위 책임, 식민지 지배에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 배상 청구권은 협정에 의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라고 밝힌 바 있다. 대법원 판결이기에 쉽게 뒤집히는 것은 아니다. 원래는 일본정부도 일본기업도 이 판결을 무겁게 받아들여 진지하게 대응을 검토해야 했다. 그러나 이 때 지금과 같은 큰 소동이 없고 또 어떤 검토를 한 흔적도 없다. 그런데 2018년의 판결에 대해서 갑자기 매우 감정적이라고도 할 정도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본 참의원 선거를 앞둔 정치 상황 그리고 한국에서의 문재인 정권의 탄생이 그 배경에 있지 않을 까.현재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강제징용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다루지 않고 인권문제로 피해자들의 호소를 진지하게 마주할 필요가 있다.일본의 한국 수출 규제 등에 대해 일본정부가 수출규제를 하거나 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겠다는 대응은 최악의 정책이다. 당초 일본정부는 ‘징용문제 판결에 대한 대항'이라는 취지를 밝혔다. 그 후 지금은 ‘징용문제와는 무관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태도야말로 정책의 부당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 까. 경제적인 면에서 한국을 ‘적’으로 대처하게 되면 일본 경제도 막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또 그러한 사태가 현실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런 정책은 지금 당장 중단해야 한다. 그런 것에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의 이해를 높이기 위한 일한 정상회담을 신속하게 실시해야 한다.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 얼마나 노력할 것인가가 지금 우리의 가장 큰 과제이다. 구체적으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적어도 이웃국가간이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 얼마나 양호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또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일본인은 우선 이웃나라인 한국과 좋은 관계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평화적으로 공생할 수 있는 상황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다.
2019.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