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70주년 특집] 19세에 참전한 간호장교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 반드시 기억해야"
▲ 국군간호사관학교 1기 출신으로 1953년 임관해 6.25전쟁에 참전한 이현원 예비역 중위가 16일 충청북도 청주시 자택에서 자신이 받은 국가유공증서를 보여 주고 있다. 이경미 기자청주 = 이경미 기자 km137426@korea.kr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 6일. 배화여학교를 갓 졸업한 16살 소녀는 딸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육군군의학교(현 국군간호사관학교) 간호사관생도로 입학했다. 유난히도 추웠던 그 해 겨울, 차가운 교실 바닥에서 모포 한 장으로 버티며 간호장교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았다. 임관과 함께 파견된 전장에서는 1.4후퇴 후 물 밀듯이 밀려들어오는 부상병들을 받기에 바빴다. 고통스러워하는 병사들의 끊임없는 신음 소리와 피 비린내로 가득 찬 병원에서는 전쟁이란 걸 무서워할 새도 없었고, 희생정신을 발휘해야겠다는 감상에 젖을 새도 없었다. 처참한 전쟁의 한 켠에서 주어진 임무를 다할 뿐이었다. 이현원 예비역 중위는 국군간호사관학교(국간사) 1기생으로 6.25전쟁 당시 후방에서 부상병들을 치료했다. 이 예비역 중위는 간호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시절 헌신적으로 임무를 수행한 공로를 뒤늦게 인정 받아 지난 6일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국가유공자 증서를 받았다. 지난 16일 충청북도 청주시 자택에서 만난 이현원 할머니(86)는 또렷한 발음으로 그 때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 할머니는 지금껏 가족들에게조차 자신의 참전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이 때문에 참전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 이유에 대해 “총 들고 전쟁터에서 싸워야만 참전용사라고 생각했다”며 "제가 했던 것들이 인정받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참전 용사들 덕분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다고 하자 “나 말고 진짜 전쟁터에서, 또 야전병원 등지에서 고생한 분들이야말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공을 돌렸다. 이어 국가를 위해 애썼지만 기록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사람들을 꼭 기억하고 반드시 찾아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국가보훈처는 간호장교, 학도의용군, 유격대, 노무자 등 나라를 지키고자 힘쓴 모두를 ‘참전영웅’이라 인정하고 이들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보답하기 위해 미등록 참전유공자 발굴 사업을 2014년부터 추진해오고 있다. 이 할머니 역시 이 사업을 진행하는 전북동부보훈지청의 적극행정으로 뒤늦게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6.25전쟁 여군 참전사 문헌을 근거로 국간사 1, 2기생이 참전한 사실을 발견했다. 국군간호사관학교 졸업 명부를 바탕으로 참전유공자로 등록되지 않은 사람을 찾는 과정에서 이 할머니 참전사실을 확인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현충일 추념사에서 “국가유공자와 유가족들에 대한 보훈은 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 중 하나”이며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은 가장 빛나는 시기 자신의 모든 것을 조국에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헌신과 희생 위에 서 있다”고 그들을 잊지 않고 보훈에 힘쓰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 국군간호사관학교는 6.25전쟁으로 당시 간호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시기였던 1951년 1월 6일 육군군의학교에 간호사관생도 교육과정을 설치한 것이 시초다. 1기 생도들은 교육 과정 수료 후 육군 소위로 임관해 전상자 간호 및 전투력 회복에 최선을 다했다. 사진은 열차 내에서 부상자를 간호하는 간호장교의 모습. 국군간호사관학교 1953년 임관해 부산 제3육군병원에서 첫 임무를 수행한 이 중위는 그 후 제주도, 마산 등을 거쳐 1957년 제대했다. “손가락 하나, 다리 한 쪽 없는 환자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죠. 처음에는 그런 병사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어요. 하지만 사람이란 게 신기하죠, 나중에는 별 거 아닌 것처럼 적응됐어요. 너무나 끔찍했던 그 기억들도 이제는 조금씩 잊혀져 가네요. 벌써 70년이라니....” 가장 기억에 남는 모습을 묻자 팔다리가 모두 잘린 한 병사 얘기를 꺼냈다. 머리와 몸통만 남아있는데 자꾸만 발가락이 가렵다 외쳤다고 한다. 양치도, 세수도, 화장실 가는 것까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그 병사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나라를 위해 헌신한 데는 집안 분위기도 한몫 했다. 그는 1907년 고종의 명으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헤이그 특사로 파견됐던 독립운동가 이상설 선생의 외손녀이자 구한말 일제에 맞선 애국지사 이남규 선생의 증손녀이다. 어린 시절, 일제의 창씨 개명, 단발령 등을 끝까지 거부하며 항일운동을 펼쳤던 증조부와 조부를 보며 자랐기에 '애국'은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지난 3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가 창궐하던 대구로 향했던 60기 국간사 후배들 이야기를 하면서 "코로나19 사태나 6.25 전쟁 모두 국가적 위기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하기에 후배들을 바라보는 감회가 남달랐다. 굉장히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최근 급격히 어려워진 남북관계를 이야기하면서 "양쪽이 그만 싸우고 서로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평화통일이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 6.25전쟁 참전 유공자인 이현원 예비역 중위(오른쪽)가 지난 6일 대전시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고(故) 김필달 대령 묘역을 참배한 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효자동 사진관 202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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