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 꽃피운 동서양 문화의 향연
유교의 효(孝), 도교의 선(仙) 사상이 깃든 재단, 침대 등 중국식 가구와 장식과 바닥에 깔린 유럽식 카펫의 조화, 아르누보 스타일의 서구식 창문과 타일 장식, 중국식 상의와 유사한 케바야(kebaya)와 사롱(sarong) 치마를 입은 남부 아시아 여인의 자태; 완전한 중국식도, 유럽식도 아닌 문화적 융화를 통한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이 모습은 ;페라나칸 문화;의 대표적인 한 단면이다.;페라나칸(Peranakan);은 말레이어로 과거에 동서양 중계무역이 활발했던 동남아시아 요충지, 특히 오늘날 싱가포르 지역에 거주하던 혼혈 인종과 그들의 문화를 가리키는 말이다. 중국, 인도의 남성 무역상들이 현지에서 말레이시아 여성과 혼인하여 후손을 낳고 정착한 이들은 말레이어로 ;페라나칸;이라고 부르는 독특한 인종과 그들의 문화를 창조했다. 이중 싱가포르에서는 많은 페라나칸들이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다수는 중국계이며 아랍계와 인도계, 유럽계도 있다.국립중앙박물관에서 3월 19일부터 5월 19일까지 개최되는 ;싱가포르의 혼합문화, 페라나칸; 특별전에서는 동서양의 문화가 꽃피운 문화적 융합의 결정체를 감상할 수 있다. 싱가포르 국립문화유산위원회, 아시아문명박물관 및 국립싱가포르박물관 소장품 230여 점이 소개된다.▲페라나칸 전의 하이라이트인 혼례침실 전시. 침대는 화려한 구슬 장신구로 장식되어있고 바닥에는 좌우로 아일랜드식 카페트가 깔려있다. (사진제공: 국립중앙박물관)5부로 구성된 전시의 제 1부 ;믈라카에서 온 신랑 신부;에서는 싱가포르에 정착한 중국계 페라나칸들이 상이한 문화요소를 어떻게 수용하고 혼합해 독특한 양식으로 승화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자수와 구슬공예로 장식된 화려한 예복을 입은 페라나칸 신랑 신부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말라카;로도 알려진 말레이시아의 믈라카는 페낭, 싱가포르와 함께 동서양 중계무역의 동남아시아 주요 요충지이자 금보다 더 비쌌다는 후추 등의 향신료의 산지였다. 1부에서는 붉은 중국식 재단에서 매일 조상의 예를 드린 페라나칸의 종교를 통해 중국 유교의 ;효;와 도교의 ;선;사상의 영향을 살펴볼 수 있다.제2부 ;페라나칸의 혼례: 중국의 영향;에서는 혼례 준비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 혼례 침실을 재현하여 보여준다.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아 길상의 의미를 지닌 장신구로 꾸며진 혼례침실은 페라나칸 공예미술의 정수이자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다. 화려한 구슬로 만든 침실 장신구와 침실 좌우 바닥에 깔아놓은 아일랜드식 카펫도 특징적이다.▲(왼쪽부터) 다이아몬드와 금으로 만든 케로상 (브로치), 신부 머리장식 (사진제공: 국립중앙박물관)제3부 ;뇨냐의 패션: 말레이의 영향;에서는 말레이 전통 복식인 한 장의 천을 랩처럼 감싸 입는 치마인 사롱(sarong)과 느슨한 긴 팔의 상의인 케바야(kebaya)를 착용한 페라나칸 여성의 다양한 복식, 케로상(kerosang)으로 불리는 화려한 보석 장신구도 감상할 수 있다. 뇨냐(nyonya)는 페라나칸 기혼 여성을 부르는 말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사롱과 케바야는 페라나칸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복식으로 오늘날에도 디자이너들에게 다양한 영감을 주고 있다.▲(좌측부터) 분홍색 비단에 화려한 자수가 놓인 신부 혼례복, 카바야와 사롱으로 구성된 페라나칸 여성복식 (사진제공: 국립중앙박물관)제4부 ;서구화된 엘리트: 유럽의 영향;에서는 무역과 사업을 통해 유럽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페라나칸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이들은 영어를 배우고 서구식 복장을 했으며 테니스나 크리켓 등을 스포츠로 즐겼다. 기독교로 개종하고 서구식 주택에서 거주하고 유럽 산 자동차를 타며 스스로를 ;영국신민(Queen;s Chinese);으로 여기고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표현했다.▲(왼쪽부터) 송옹 시앙의 초상화, 아르누보 스타일의 여닫이 문 핀투 파가르 (사진제공: 국립중앙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이들이 사회적 지위를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가 초상화 제작이다. 이 전시에서는 당시 싱가포르 사회의 저명 인사였던 송옹시앙(宋旺相, Song Ong Siang, 1871-1941)의 초상화를 통해 당시 엘리트의 전형적인 모습을 유추해볼 수 있다. 그는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하고 식민정부 입법부 일원으로 활동하며 해협식민지 최초로 영국 기사작위를 받은 인물이다. 초상화 속의 그는 성경이 놓여진 테이블 옆에 훈장이 달린 양복을 입고 의자에 앉아 앞을 응시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좌측부터) 커튼을 묶는 구슬세공 장식, 나비무늬 분홍색 항아리 (사진제공: 국립중앙박물관)마지막 제5부 ;페라나칸 공예미술;에서는 여성들의 자수와 구슬 세공품, 신부용으로 따로 주문 제작한 도자기인 다양한 뇨냐 자기(nyonywa ware)를 감상할 수 있다 페라나칸 공예미술의 발달에는 여성들의 주도적인 영향이 컸다. 이들은 뛰어난 바느질 솜씨와 음식 솜씨를 갖춘 며느릿감을 기대하는 중국 전통에 부합하고자 했고 이에 따라 훌륭한 자수와 구슬 공예품을 남겼다. 이 전시에서는 청록색(일명 터키색)과 분홍색이 주를 이루는 화려한 채색 도자기 추푸(chupu)와 켐쳉(kemcheng) 식기를 감상할 수 있다. 유럽에서 수입한 작은 구슬 100만개를 꿰어 만든 식탁보, 커튼 장식 등도 그 화려함을 뽐낸다.국립중앙박물관 박성혜 학예연구사는 ;다양한 문화의 편견 없는 수용은 다문화 사회를 맞이하는 한국 사회에 미래지향적인 메시지를 가져다 줄 것;이라며 이번 특별전의 의의를 설명했다. 이 전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알 수 있다. (http://www.museum.go.kr/main/index/index001.jsp)(9개 국어 제공)윤소정 기자, 코리아넷arete@korea.kr 2013.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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