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구석구석의 숨은 맛: 전라북도 편
한반도의 서남부에 위치한 전라도의 지명은 전주와 나주의 앞 글자를 따서 유래한다. 전주는 서기 9세기말 백제왕국을 계승한 후백제의 도읍으로 36년 간 왕도의 구실을 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태조 이성계의 세거지지(대대로 살아온 고장)인 탓에 특전을 받기도 했다.전라북도는 노령산맥을 경계로 동부 산악지대와 서부 평야지대로 구분된다. 동부 산악지대는 노령산맥에서 소백산맥에 이르는 산간지대로 해발고도 1,000미터 이상인 산이 많고, 그 사이 여러 곳에 산간분지와 고원이 분포한다. 소백산맥에는 덕유산, 적상산, 지리산이, 노령산맥에는 운장산을 주봉으로 성치산, 명덕산, 방장산, 문주산 등이 발달했다. 여기에서 갈라져 나온 지맥으로 대둔산, 천호산, 마이산, 모악산 등 명승지를 이루는 국립공원과 도립공원 등이 형성되어 볼거리가 풍부하다. 반면 만경강과 동진강 등 하천의 유역에 자리잡은 김제평야는 한반도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다. 하천의 지류를 중심으로 주민들은 일찍이 이 곳에서 정착생활과 경작생활의 터전을 마련해왔다.산간지대에서 맥류, 고랭지채소, 인삼재배, 한우사육이 활발한 데 비해 구릉지 일대와 도시근교에서는 과수, 고구마, 채소, 양돈, 양계, 낙농업 등이 발달했다. 이 같은 자연조건은 풍부한 식재료를 낳았으며 예로부터 ;맛의 고장;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전라북도를 대표하는 음식을 소개해본다.[백합죽]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도의 사람들은 오랜 세월 백합조개와 함께 해왔다. 백합은 물 밖으로 나와도 한 달 넘게 죽지 않고 살아 있어서 ;생합;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을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다. 계화도 사람들은 갯벌에서 잡아온 백합을 문지방 앞에 깔아두고 지나다닐 때마다 지그시 밟아 주었는데, 이런 방법으로 자극을 주면 백합은 껍데기를 힘껏 닫으며 더 오래 살았다. 덕분에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도 백합을 오래 보관할 수 있었다. 배를 타고 뭍으로 나갈 때까지 백합을 싱싱하게 살려두기 위한 방법으로 활용했던 것이다.맛이 전복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백합은 탕, 찜, 회, 구이 등 어떤 요리로도 맛이 좋다. 수확량도 적어 귀한 대접을 받았다. 적은 양으로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연구하던 중, 계화도 사람들은 백합죽을 생각해냈다. 백합과 쌀 만으로 맛을 내고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하면 완성. 계화도 주민들이 먹기 시작한 백합죽은 이제 부안을 대표하는 전통 음식으로 자리잡았다.[애저찜]전북 진안군의 별미, 애저찜에 얽힌 이야기에는 슬픔이 있다. 과거, 무척 가난했던 한국에서 돼지는 농가에 돈을 벌어다 주는 매우 중요한 가축이었다. 아무거나 잘 먹는데다 새끼를 많이 낳아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새끼의 수가 너무 많다 보니 불상사가 생겼다. 새끼가 뱃 속에서 죽은 채로 태어난 경우도 있고, 혹은 잠든 어미 품에서 젖을 빨다가 깔려 죽는 경우도 있었다. 돼지를 키우는 농가 주인들도 돼지고기 맛을 보기가 힘들었던 어려웠던 시절, 태어나서 막 죽은 새끼돼지를 그들은 내다 버릴 수 없었다. 요리를 해서 먹었는데 새끼돼지(저)의 고기를 먹으면서 슬픈 마음 (애)을 달랬다 하여 ;애저찜;이라 부르게 됐다. 지금은 쉽게 맛 볼 수 없는 애저찜은 진안을 비롯한 몇몇 지역에만 남아있다.[추어탕]추어탕의 고장은 역시 전북 남원이다. 남원에서는 추분이 지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논의 물을 빼고 도랑을 쳤다. 겨울잠을 자기 위해 논바닥 밑으로 기어들어간 미꾸라지를 잡기 위해서였다. 추수가 끝난 논에서 잡은 미꾸라지로 남원 사람들은 동네 잔치를 벌였는데, 이 때 끓인 추어탕은 ;장유유서;라 하여 마을 어른들에게 먼저 대접하는 게 관례였다.고려시대부터 먹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추어탕은 가난했던 서민들에게 훌륭한 보양 음식이었다. 요리법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보통 미꾸라지를 통째로 끓이는 서울식, 매운탕과 유사하게 요리하는 원주식, 뼈까지 통째로 갈아 끓이는 남원식으로 나눠볼 수 있다. 남원식 추어탕은 특히 지리산 자락에서 채취한 고랭지 시래기와 젠피(산초) 등이 더해서 국물이 더욱 시원하고 개운하다.남원시에서는 남원 추어탕 고유의 맛을 지키기 위해 남원 이외의 지역에서 자란 미꾸라지를 남원으로 반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섬진강 상류의 적당한 온도에서 자란 미꾸라지는 살이 너무 단단하지도, 무르지도 않다는 데 대한 자신감이다.이승아 코리아넷 기자slee27@korea.kr 2014.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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