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맛으로 세계인을 즐겁게”
;돈 버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한국음식에서 기본이 되는 것들을 만들어 완성도를 높이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60년 넘게 쌓아온 발효기술을 이용하여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즐겁게 먹으면서 행복감을 느끼도록 음식문화를 높이고자 합니다.;한국의 발효문화를 대표하는 샘표식품 박진선 사장은 ;우리 맛으로 세계인을 즐겁게 하는; 맛의 철학을 강조했다. 이력부터 독특하다. 서울대 공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 공대에서 같은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공학도이면서 미국 아이오와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고 철학교수로 강단에서 활동하다가 30대 후반에 늦깍이로 경영에 입문했다. ▲ 한국의 발효문화를 대표하는 샘표식품의 박진선 사장.한국 장류시장의 50%이상을 점유하는 전문발효기업을 이끌고 있는 박 사장은 간장으로 대변되는 장류를 비롯, 최신 발효조미료인 ;연두;에 이르기까지 한국 장의 세계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박 사장을 만나 장의 역사, 미래, 그리고 식문화기업의 역할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현재의 샘표식품이 있기까지 지난 68년 간, 한국의 산업화와 같은 궤적을 그렸습니다. 압축 성장과 함께 큰 변화도 겪었습니다. 1997년 사장으로 취임했던 당시만 해도 사회 분위기상 사업다각화를 생각하긴 어려웠을 것입니다. 기업의 영역 확장과 글로벌화를 이끌 수 있었던 배경을 꼽는다면?어려운 시간이 있었고, 실패도 분명 있었습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엔 거대 유통기업이 전무했고, 샘표식품 역시도 영업사업이 전혀 없었습니다. 지역 곳곳에 대리점이 100여 개 정도 있었고, 오전에 슈퍼마켓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상품을 배송하고 오후엔 수금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전문 마케팅이나 영업은 생각하지 못 했던 시절이었습니다.1997년 샘표식품의 사장으로 취임하기 전까지 미국에서 16년 정도 생활했습니다. 집안에서는 가업인 샘표식품을 물려받아 운영하길 원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간장을 파는 것보다 훨씬 멋진 직업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와 보니,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데 반해 샘표는 그저 작은 제조업체에 불과했습니다. 이대로는 샘표가 절대 살아남지 못 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어렸을 때부터 나를 무척 아끼고 사랑해주셨던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가슴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던 터라, 장남인 내가 직접 운영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처음 사업을 맡았을 때는 근대적이고 실력 있고 탄탄한 회사를 만들어야겠다는 조급함이 앞섰습니다. 창동에 있었던 낙후된 공장을 접고 새로운 설비를 갖추면서 현재의 충무로역 사무실로 옮겼습니다. 고객과 직접 소통하는 업무의 특성상, 시내 중심에서 시대의 흐름과 다양성을 접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3, 4호선이 통과하는 충무로역이 제격이었습니다.▲ 샘표식품은 온전히 콩으로 빚어낸 간장을 주력상품으로 내세우며 한국 장의 세계화를 이끌고 있다.많은 사람들이 가정의 손맛이 깃든 수제 장류가 고유의 맛을 낸다고 믿습니다. 기업의 기계화와 대량 생산의 산물인 식품이 그 고유성을 어떻게 유지 및 조화시킬 수 있다고 보시는지?많은 사람들이 인위적인 방식을 무조건 배제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전은 오히려 다양한 이점을 주었습니다. 샘표식품의 가장 큰 장점은 과학기법을 이용해 식품의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학기법의 활용이 없다면 장을 담글 때 마다 맛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를 테면 맛이 좋은 경우 왜 맛이 좋은지 모르며 맛이 좋지 않은 경우에는 이를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샘표식품에서는 미생물의 특성과 활동환경, 조건 등을 실험하고 연구∙분석하여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 냅니다. 따라서 품질이 항상 일정하며, 대량 생산으로 인해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도 있습니다.장류사업의 확장모델은 일본의 기코만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샘표간장과 기코만을 비교할 때 어떤 차별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기본적으로 간장에 사용되는 원재료도 다르고 입맛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맛도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콩을 재료로 사용한다는 공통점을 공유하지만, 일본 간장은 밀과 콩이 50대 50의 비율로 제조된다면 한국 간장은 콩이 100%입니다.그동안 콩을 완전히 분쇄하는 것에만 몰두해 왔는데 최근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거치면서 ;왜 맛있는가;를 파고들다보니 콩이 덜 깨어졌을 때인 ;펩타이드; 상태일 때, 훨씬 맛이 좋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실제로 밀에 많이 들어있는 아미노산은 종류가 스물 몇 가지인데 반해 펩타이드는 몇 만 종에 이르기 때문에 맛이 더 미묘하면서도 고급스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시장에서 새로운 맛을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개발한 콩을 발효하여 만든 요리 에센스 ;연두;는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서 MSG을 대신하여 사용할 수 있는 조미료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 샘표식품의 박진선 사장이 간장의 매력에 대해 얘기하며 웃고 있다.간장을 주력상품으로 내세운 식문화기업 대표로서, 간장의 강점과 매력은 무엇이라고 봅니까?간장은 대부분의 한국 음식에 사용됩니다. 달리 말하면, 음식의 ;기본 맛;을 결정하는 식재료이며 한국 식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식품입니다. 한편, 독특하고 강한 향이 있으면서 어두운 색깔을 내는 특성상, 잘 맞지 않는 음식도 존재합니다. 그런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요리에센스 ;연두;입니다.2013년 스페인 요리과학연구소인 알리시아연구소와 제휴를 맺고, 연두를 활용한 레시피 개발 등 외연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모험적인 시도인데, 이를 택한 배경은?일찍이 해외 시장 진출의 중요성을 늘 느끼고 있었습니다. 특히 거의 20년에 가까운 외국생활을 해 왔던 탓에 해외 진출에 대한 불안감이나 거부감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간장 수요가 없는 해외 시장을 개척한다는 것이 결코 쉽진 않았습니다. 새로운 물품을 개발하고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 틈새시장을 찾기 시작했고, 2010년 개발된 연두가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희망이 보였습니다. 연두를 갖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알리시아 요리과학연구소와 협력을 시작했습니다. 서양 음식 적용 테스트를 시작했는데 1-2주부터 긍정적인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현재, 한국 장을 이용해 만드는 서양요리 레시피 150개가 개발됐습니다. 스페인 요리 50가지, 프랑스 요리 50가지, 이탈리아 요리 50가지로 구성돼 있습니다. 요리연구가들은 연두가 소금 대체용으로 충분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습니다. 실제로 연두는 소금이나 후추에 비해 칼로리도 낮고 염도도 20-30% 정도 낮습니다. ▲ 샘표식품은 한국 장의 세계화를 위해 바베큐 소스(위)와 발효조미료 연두(아래)를 내걸었다.발효를 통해 만드는 장을 서양의 소스 문화에 적용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겁니다.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요즘 젊은이들도 즐겨먹지 않는 된장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한국음식에서도 된장을 활용해 만들 수 있는 요리가 찌개, 나물무침 등 제한적입니다. 그러나 스페인 연구소와 협력한 결과 예상치 못했던 다양한 메뉴가 상당수 쏟아져 나왔습니다. ;한국 발효 음식;을 내걸고 새로운 음식 문화를 창조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듭니다.한국 전통주에 대한 관심도 높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막걸리와 차별되는 곡주는 언제쯤 맛 볼 수 있을까요?마음은 늘 있지만 아직 실력을 쌓아야 할 단계입니다. 한국은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를 거치면서 거의 100년 동안 술 개발이 정체되어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전통을 거의 잃었습니다. 잃어버린 100년이 없고 꾸준한 성장을 거쳐 왔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해봅니다. 공부와 연구를 거쳐서 그 맛을 찾아내고 싶습니다. 단지 알코올을 즐기기 위함이 아닌, 음식과 잘 어우러져 음식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술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탄탄한 지식은 물론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거치려면 가까운 미래에 나올 것 같진 않습니다.창업 이래 노사분규가 없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직원은 가족이고 사람이 중요하다;는 창업자의 유지를 68년 동안 꾸준히 지속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경영 철학이 배경이라고 생각하시는지?선대 창업자인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당시는 사회 전체가 권위주의적이었고 계급이 강한 분위기였는데 두 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1970년대 중반 간장병을 세척하던 일용직 아주머니들이 자동세척기의 도입으로 인해 회사를 나가야 할 위기에 몰리자 기계가 들어오기 전 날, 모두 정규직 사원으로 전환시켰습니다. 직원들을 소중한 가족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고 봅니다. 늘 투명경영을 위해 노력하지만 노사 역시 대립보다 화목한 분위기를 추구합니다.한식의 세계화가 최근 화두입니다. 어떻게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까?지금까지 약 18년 간 식문화기업에 몸담아 왔는데, 최근 몇 해 전이 되어서야 ;맛;의 개념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식이 도대체 서양 음식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개념과 ;진짜 맛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이를 보완해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글 위택환;이승아 코리아넷 기자사진 전한 코리아넷 기자whan23@korea.kr 2014.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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