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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확인된 고대 한반도의 중심, 충주

    다시 확인된 고대 한반도의 중심, 충주

    역시 충주(忠州)는 유서깊은 고대 도시임이 거듭 확인됐다.최근 충북 충주시 호암동 지역의 돌무지나무널무덤(積石木棺墓, Wooden chamber tomb with stone mound)에서는 세형동검(細形銅劍, Mirror with Slim Linear Design) 7점, 청동 잔줄무늬거울(多紐細文鏡, Korean Bronze Age Sword) 1점, 청동 도끼(銅斧, Bronze Axe) 1점 등 청동유물 19점이 출토됐다.▲ 충주시 호암동 일대에서 발굴된 청동유물들. 양질의 청동기와 권력을 과시하는 위세품인 잔줄무늬거울 등이 출토돼 충주지역이 고대 한반도의 주요 거점임이 재확인됐다.이번 발굴은 지난해 8월부터 중원문화재연구원이 충주시 종합스포츠타운 조성사업 부지 내 유적을 조사하면서 이뤄졌다. 특히, 이번 조사에선 지하에 직사각형의 구덩이를 파고 나무관을 놓은 후 그 위를 돌로 채운 돌무지나무널무덤 1기와 나무널무덤(木棺墓, wooden coffin tomb) 2기 등 초기철기시대 무덤이 발굴됐다. 이 가운데 돌무지나무널무덤은 상․하 2단으로 굴착하여 관을 넣는 공간을 만들었으며, 하단의 공간에는 통나무관을 놓고 윗부분까지 강돌[川石, River Stone]로 내부를 완전히 채웠다. ▲ 출토 청동기 배치(맨위) 및 청동기 유물들.이번에 발굴된 무덤은 기원전 2;1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되며, 당시 충주를 중심으로 형성된 강력한 세력의 수장(首長, elder of a clan) 묘로 보고 있다.지금까지 돌무지나무널무덤은 주로 전라남도나 충청남도 지역에서 확인됐으나 충청북도에서 확인된 드문 사례다. 뿐만 아니라 세형동검, 잔줄무늬거울 등 7종 19점에 달하는 청동유물은 그 수량과 종류에서 볼 때 국내 최대 수준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세형동검, 잔줄무늬거울 등은 전남과 경남 지역에서 출토됐을 뿐 충주지역에선 발굴되지 않았었다.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Jungwon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소장 김덕문 박사((Kim Derk moon)는 ;양질의 청동기가 대거 출토되었고, 특히 피장자의 높은 신분을 보여주는 위세품(威勢品, prestige goods)인 잔줄무늬거울의 출토는 의미 있다;며 ;상당한 영향력을 갖춘 집단의 지배자 또는 소국 국왕의 무덤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김 소장은 ;이번 유물출토는 기록엔 없지만 고대에도 충주지역이 남한강유역을 배경으로 거점역할을 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미발굴 지역이 많으므로 앞으로 추가발굴이 이뤄지면 고대문화의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날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글 위택환 코리아넷 기자사진 문화재청whan23@korea.kr 2015.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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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리톤 김승철, 노래는 내 운명

    바리톤 김승철, 노래는 내 운명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한양(서울)으로 보내라;라는 한국 속담이 있다.사람은 교육시키기 가장 좋은 서울에서 살아야 하고, 말은 방목하기 가장 좋은 제주의 들녘에서 길러야 최적이란 의미다. 속담이 상징하듯 한세대전만 해도 한반도 남단의 섬 제주도의 교육환경은 그리 좋지 않았다.제주도의 극빈 가정에서 태어난 사내아이가 있었다. 초등학교로 가는 길은 험한 산길을 두어시간 걸어야 다다를 수 있었다. 특별히 놀만한 장난감이나 놀이터가 없었다. 광활한 한라산의 기슰이 놀이터였다. 놀다가 지쳐 초원에 드러누우면 구름 한점 없는 푸른 하늘이 보였다. 그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게 꿈이었다.소년은 노래를 즐겨 불렀다. 타고난 미성은 주변을 감탄케 했다. 초등학교 학예회 시간은 그의 독무대였다. 그러나 성악가란 직업은 언감생심 생각도 못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은 학교생활조차도 쉽지 않게 했다.제주중학교를 마치고 어려운 형편으로 제주상업고등학교 야간부에 입학했다. 낮에는 중학교 사환, 서점의 점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학교를 다녔다. 취업을 목표로 하는 상업학교였지만 어렴풋이 대학에 가야한다는 희망이 있었다. 대학입학 학력고사를 치렀다. 본인이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갈만한 성적은 아니었다. 나온 성적에 맞춰 선택한 것이 사회학과였다.한국의 젊은이들이 흔히 치러야하듯 대학을 휴학하고 그는 군에 입대했다. 또래의 제주도 젊은이들은 대부분 출신지에서 군복무를 했지만 바다건너 내륙땅, 낯설고 물선 강원도 화천의 육군 27사단에 입대했다.3년 가까운 군복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복학을 앞둔 시기에 주위에서 음악대학에 가라는 권유가 잦았다. 재능을 썩힐 수 없다는게 이유였다. 도저히 갈 수 없는 형편이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주변의 권유는 더욱 강했다. 1985년 25세의 나이에 제주대학교 사범대학 음악교육학과에 입학했다. 6,7년 늦은 입문이었다. 아니 십수년 늦은 출발이었다.한국의 음악도들은 대부분 유치원입학전에 피아노, 바이올린 등 악기수업을 받고 예술계 중, 고를 거쳐 음대에 입학한다. 그는 최소 12년이 소요되는 초중고의 음악교습 과정을 생략하고 성악전공에 진입했다.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는 사범대학을 마치고 공립고등학교의 음악교사로 발령받았다. 최소한 63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일자리였다. 그런 조건을 박차고 그는 경쟁의 무대에 몸을 던졌다. 1992년 32세의 늦은 나이에 성악의 본고장 이탈리아 로마로 떠났다. 배경, 연줄도 없이 도전으로 어려움에 맞섰다. 학업을 지속하기 위해 오랫동안 관광가이드를 하기도 했다. 이렇듯 산전수전의 과정을 거친후 2006년 대구 계명대학교 음악대학의 교수가 된다. 소위 말하는 일류대 출신 음악도들도 채용되기 힘든 ;바늘구멍의 문;을 통과한 것이다. 맨몸으로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성취를 이뤄낸 주인공은 바리톤 가수로 활동하며 음악도들을 지도하는 김승철 교수다. 그를 만나 오늘의 그가 있기까지의 인생역정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았다.▲ 유년시절 성악가가 되리라 상상조차 못했지만 음악을 계기로 운명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바리톤 김승철 교수.선생을 만나기 전에 ;세월;이란 노래를 들었다. 가사 내용이 선생님의 지나온 인생을 말해주는 느낌이다.(꿈이 있니 물어보면은 나는 그만 하늘을 본다구름 하나 떠돌아가고 세상 가득 바람만 불어돌아보면 아득한 먼 길 꿈을 꾸던 어린 날들이연줄따라 흔들려 오면 내 눈가엔 눈물이 고여아 아 나는 연을 날렸지 저 하늘 높이 꿈을 키웠지이 세상 가득 이 세상 가득 난 꿈이 있었지사랑도 생의 의미도 꿈을 키운 생의 의미도세월따라 흔들려 오면 내 눈가엔 눈물이 고여)실제로 부를 때마다 내 얘기 같다는 생각을 한다. 부르면 부를수록 가사에 공감한다. ;세월;이란 곡은 이요섭 작곡가가 만든 가요인데,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 멜로디만 있는 악보를 접하게 됐다. 노래가 좋아 여기에 반주를 붙였다. 사실, 이 곡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내가 가장 먼저 부른 의미 있는 노래이기도 하다.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알려지기 시작하니까 악보를 보고 싶다는 요청도 많았다. 한국에 귀국한 이후에도 가곡의 밤 행사 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젠 거의 나의 대표곡처럼 여겨지고 있다.;저 하늘 높이 꿈을 키웠다; 등 가사가 와 닿는다. 어린 시절 꿈은 무엇이었나?어린 시절엔 노래에 대한 꿈을 전혀 품어본 적이 없다. 가난했던 당시, 음악공부를 하게 될 거란 상상은 해본 적이 없다. 한라산 중턱에서 뛰어 놀았고, 풀밭에 누워 자주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 위를 나는 제트기를 보면서 공군조종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런저런 가정형편으로 도저히 실현될 수 없었다. 현실적인 형편에 맞춰 제주상업고등학교 야간부를 다니면서 중학교의 사환을 하다가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서점에 있으면 공부하고 독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못 했다. 부두에 가서 책을 받아오고, 포장하고 서점을 청소하면서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1981년 학력고사 성적에 맞춰 국립 제주대 사회학과에 진학했고, 군에 입대했다. 그런데 제대 이후부터 삶이 달라졌다. 제주 성안교회에서 만난 조영래 목사님과 피아노 반주자가 내 목소리를 들고 음악 공부를 해 볼 것을 권유했다. 큰 생각 없이 제안에 응했고, 그 때가 이미 학력고사가 60일 남은 때였다. 도서관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면서 공부에 몰두했다. 제대하자마자 밤을 새워가며 공부하다보니 면역력이 크게 약해졌고 급성 간염을 앓아 약 20일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군대에 있을 때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 혼자 고생하며 4남 1녀를 키우시는 상황이라, 입원비가 큰 문제였다. 그 때, 운명처럼 나타난 분이 같은 교회 출신의 아마추어 성악가이자 신경정신과 전문의 유순형 박사다. 당시 유박사는 클래식에 관한 자료, 음반들을 다량 보유하고 있었다. 유 박사는 치료뿐만 아니라, 이후 음악 레슨도 해주시면서 나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주신 분이다. 그 분과 함께 하며 많은 분야에 눈을 뜨게 됐다. ▲ 바리톤 김승철 교수가 25세의 늦은 나이에 음악입문, 이탈리아 유학 생활 등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생역정을 말하고 있다.실기시험 때는 서양가곡의 가사를 모두 소리 나는 대로 한글로 받아 적어 외웠고, 우여곡절 끝에 1985년 제주대 사범대학 음악교육과에서 4명을 선발하는 성악 전공에 합격했다. 그러나 입학 이후가 더 문제였다. 전문적인 음악 수업이 진행되는데, 난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성악의 기본인 시창, 청음은 물론 피아노조차 연주할 줄을 몰랐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1년을 휴학하기로 결정했다. 휴학 기간 동안 기본기를 익힌 후 다시 공부를 시작해 졸업할 수 있었다.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던 시기, 성남, 안양, 부천합창단 합동공연의 오디션을 통과해 솔로 베이스를 맡게 됐다. 제주대 출신인 내가 큰 비중의 역할을 맡게 되어 모두 놀랐다. 공연을 약 한 달 정도 남겨두고, 졸업과 동시에 경기도 전곡고등학교로 발령이 났다. 음악 선생님이 될 수 있는 기회였다. 행복한 고민이 시작됐다. 합창단 단원도 좋았고 선생님도 좋았지만, 오랜 고민 끝에 결국 음악교사가 되기로 결정했다.교회에서 만났던 지금의 아내와 그 때도 만나고 있었는데, 아내는 입시 전부터 나에게 늘 해외에 유학 보내준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었다. 발령을 받아 전곡에 있을 때였다. 당시엔 해외 자료를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많지 않았는데 아내는 어디선가 자료를 잔뜩 구해와 이탈리아어를 먼저 공부하고 있었다. 결국 2년 만에 교편을 놓고 이탈리아로 날아갔다.이탈리아에서의 생활도 상당히 빠듯하고 힘들었을 것으로 예상된다.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이었다. 아내는 도착 직후 바로 한식을 판매하는 서울식당에 취직했다. 하루 종일 설거지를 하면서 구정물이 튄 옷을 입어, 배에 염증이 생길만큼 환경이 열악했다. 그저 서로만을 의지하며 생활했다. 그러던 중에 첫 아이를 가지게 됐다. 몸이 허약한 탓인지 임신부터 출산 전까지 입덧이 심해 크게 고생했다. 그렇게 고생을 시킨 첫 딸은 지금 나를 쏙 빼닮아 중앙대 연극영화과 4학년생이다. 뮤지컬에 관심을 두며 준비하고 있다.예술계의 인맥풀이 협소하고 텃세도 심했을 것이다. 세계 유수 대학에서 공부한 사람들도 많은 상황에서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는지?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이 인도해 주셨다고 늘 감사드린다. 현실적인 면에서 생각해보면 이탈리아 로마는 학력과 출신배경, 콩쿠르 입상 경력을 묻지 않고 내가 뭘 잘하는지, 그동안 뭘 해봤는지에 더 관심을 가졌다. 내가 갖춘 만큼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이었다.처음엔 이탈리아에 5년만 머물 예정이었지만 유학 기간이 길어지면서 한국인 관광객을 안내하는 가이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일을 하면서 이동시간 도중 틈틈이 짬을 내어 공부를 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오페라 스코어를 암기하는 ;주경야독;의 연속이었다. 유학기간중 코렌차 국립음악원, 로마 아람 아카데미아 등을 차례로 마쳤다.1997년말 IMF 외환위기사태가 발생하면서 관광객이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대안으로 콩쿠르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콩쿠르에서 20개의 상을 받았다. 아마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다른 연주자에 비해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작은 전자밥통에 쌀과 고기를 들고 다니며 그야말로 ;콩쿠르투어;를 다닐 정도였다.그 이후로 여러 매니지먼트사의 연락을 받기 시작했다. 그들은 직접 눈으로 확인하거나, 지인에게서 받은 믿을 만한 정보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그 때, 오페라계의 거장인 주세페 타데이(Giuseppe Taddei, 1916;2010) 선생님 밑에서 배우게 됐다. 내가 어려운 걸 알았던 선생님은 공짜로 레슨을 해줬다. 한국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때부터 베로나야외극장 등에서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됐다.▲ 김승철 교수는 의기소침해 있는 제자들이 자신을 통해 희망을 발견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이탈리아에서의 활동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2001년 국립오페라단에서 초연했던 베르디 서거 100주년 기념 공연에서 주인공 시몬 보카네그라(Simon Boccanegra) 역을 맡았다. 세명이 번갈아 가며 주인공을 맡게 돼 있었다. 개막 공연을 맡은 첫 배우가 1막이 끝난 후 갑자기 목의 상태가 좋지 않아 무대에서 하차했다. 객석에서 보고 있던 내가 곧바로 무대로 투입됐다. 짧은 시간에 옷을 갈아있고 분장을 급히 해서 무대에 올랐다. 먼저 주연에 비해 상대적으로 굵고 무게감 있는 나의 목소리가 청중들에게 받아들여진 것같다. 유학생활부터 시작해 그 이후의 모든 일들이 난 그저 기적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2001년 베로나 공연을 계기로 성악가 비자를 받게 됐는데, 그 비자는 계약서에 명시된 기간만큼만 체류할 수 있었다. 기껏해야 한 작품 당 두 달 정도의 체류기간을 허용한다. 그 때부터 치열한 삶이 시작됐다. 한 작품이 끝나는 대로 곧바로 또 다른 작품을 찾는 생활을 약 2년 동안 이어갔다. 덕분에 활동을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그러한 생활이 번거로워 2004년 귀국했다.2004년 한국에 돌아와서 나부코, 라보엠, 일 트로바토레 등 좋은 작품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한양대에서 1년 간 초빙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대구 계명대학교 교수채용 공고가 나서 지원하게 됐다. 학력과 경력 면에서 뛰어난 지원자가 많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1차 서류 심사에서 합격했다. 2차 실기시험을 보러 갔는데, 20여명의 명문대출신들이 와 있었다. 나를 보고 ;어떻게 제주대 출신이 서류에 합격했나;라며 의아해했다. 결국 내가 최종 합격이 됐고, 2006년 3월부터 교수로 활동을 시작했다.노래를 통해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나?무대에 서면 조명이 어둡지만 관객들의 얼굴이 다 보인다. 그들과 눈을 맞추며 대화하듯이 노래하려고 노력한다. 최대한 작곡자, 작사자의 의도를 전달하려고 한다. 성악가는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눈빛을 통해서도 소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관객들과 교감하면서 행복감을 느낀다.오페라의 경우, 물론 멜로디와 소리의 아름다움으로 교감할 수 있다고 믿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어이기 때문에 가사전달과 소통 면에서 단절이 있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극복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심포니, 관현악곡의 특징은 가사가 없다는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오페라를 이해하려고 한다. 말 속에 묻어나는 뉘앙스, 얼굴의 표정, 소리의 느낌에서 칭찬과 욕을 구별할 수 있듯 음악은 희로애락의 감정을 충분히 담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 감정을 잘 전달할 수 있는 표현 연습을 많이 하려고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다면?1999년, 유럽무대에서 첫 데뷔를 했다. 프랑스 디종(Dijon)극장에서 출연했던 ;나부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역할의 몰입도와 공감도 면에서는 시몬 보카네그라역이 가장 맘에 든다. 그의 캐릭터와 인간적인 고민에 크게 공감했다.▲ 성악가는 절대 마이크를 들어서는 안된다는 믿음과 관객들과 눈을 맞춰가는 소통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바리톤 김승철 교수.클래식시장이 위축되는 추세다. 이를 극복하고 청중들과의 소통 확대를 위해 ;크로스오버;를 택하는 음악인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그런 시도를 해 본 적은 없는지?음악에는 경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클래식 시장이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장르가 확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클래식은 좋은 무대와 오케스트라가 필요하다보니 아무래도 대중화되기 힘든 장르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분명 우리도 일반인에게 가까이 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크로스오버는 관객과의 소통을 위해 필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유행만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면 다양한 장르의 융합을 통해 조화가 중요하다. 항상 마음을 열고 교감해야 한다.그러나 원칙은 있어야 한다. 난 개인적으로 ;성악가는 절대 마이크를 들지 않는다;는 신념을 갖고 살아왔다. 마이크 없이도 이 공간의 가장 먼 곳까지 뻗어나가는 소리를 내야 한다는 믿음으로 항상 이를 연구하고 있다.당신에게 음악이란 무엇인가?나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꾼 운명의 기회를 준 것이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한라산의 중산간 지역인 제주 월평동에서 살았을 때 초등학교 등하교 길에 한라산 중턱을 4시간 이상 왕복했다. 목장의 초원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자연속에서 살았다. 쌀밥은 일년에 몇 번밖에 맛보지 못했다. 잡곡과 감자로 살아야했던 가난한 일상이었다. 어린 나에게 지금의 삶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음악을 하기전엔 자신감이 없었다. 음악이 내 인생을 바꾸었다. 음악으로 내 운명이 180도 바뀌었다. 음악은 나의 운명이며 삶이다.앞으로의 꿈은?교수와 성악가라는 두 가지 직업을 갖고 있다. 건강하게 노래를 부르고 싶다. 제자들에게 ;롤 모델;이 되고 싶다. 학생들이 의기소침해 보인다. 그들이 나를 보고 희망을 볼 수 있다면 좋겠다.글 위택환;이승아 코리아넷 기자사진 전한 코리아넷 기자whan23@korea.kr 2015.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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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영화로 한국을 더 잘 알 수 있어요

    문학•영화로 한국을 더 잘 알 수 있어요

    외국에 살면서 그 나라의 문화에 어디까지 잘 알고 가까워질 수 있을까?배리 웰시(Barry Welsh) 숙명여대 교수는 이에 대해 나름의 답을 제시한다.문학과 영화로 알아가는 것이다.몇 년 전 서울의 한 대형서점 한국문학 번역코너에서 그가 고른 책 한 권은 훗날 다국적 독서클럽 마련의 계기가 됐다.▲ 배리 웰시 숙명여대 교수는 한국문학과 영화에 대한 관심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독서클럽과 영화클럽을 만들었다.스코틀랜드 출신인 웰시 교수는 리버풀대학과 에든버러대학에서 문학과 영화 분야의 학사와 석사학위를 땄다. 재정적인 이유로 잠시 금융업계에서 일했지만 늘 각국의 문학에 대한 높은 관심을 지녀왔다.5년 전 한국에 처음 와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며 한국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는 서서히 영어로 소개된 한국문학작품을 접하며 한국 사회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혀갔고 자신과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모임을 조직해보기로 결정했다.그는 영어로 소개된 한국문학작품을 읽고 토론하는 독서 클럽을 만들고 지인을 통해, 인터넷을 통해 모임일정을 알렸다. 첫 모임은 단 6명이 참석했다. 모임을 그만 둘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온라인 상으로 알게 된 한국 작가들과 주변에 지인들이 하나 둘씩 나섰다. 두 번째 모임에는 20명이 참석했다. 세 번째 모임의 참석자는 60명으로 늘었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웰시 교수는 독서 클럽 운영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웰시교수의 독서 클럽은 SNS채널 등으로 소개되며 참석자가 점점 늘었다. 현재 4년째를 맞는 이 모임은 ;서울 북&컬처 클럽;이란 이름으로 매월 1회씩 명동의 해치홀에서 열린다. 작가를 초청해 작품에 대해, 또는 개인적인 경험이나 인생사에 대해 질의응답하며 토론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최근까지 이 모임에 초청된 작가는 신경숙, 공지영, 황석영, 김영하, 박민규 황선미 등이다. 외국출신 작가들도 있다. 매번 모임마다 100명에서 2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함께 한다. 참석자들은 교수, 학생, 외국인 교사, 외교관 관계자, 미군 등 다양하다.지난해부터는 한국고전 영화모임도 시작했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같은 장소에서 ;배리 웰시의 필름 소사이어티;라는 모임에서 한국 고전영화를 무료로 상영한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 ;자유부인(1956); 등 19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다양한 작품이 소개됐다.▲ 웰시 교수는 독서클럽 운영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그 모임을 통해 작가와 참석자들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웰시교수와 만나 독서;영화 클럽과 향후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한국문학 독서클럽, 영화클럽을 시작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 늘 각 나라의 문학과 영화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문학과 영화는 나와 세계를 연결해주는 소통의 장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온 후에도 한국문학, 영화에 관심이 생겨 서서히 알아가게 됐다. 그러다가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모임을 만들어보기로 결심했다.- 독서클럽이 지속적으로 이어진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독서클럽이 잘 운영되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그런 모임에 대한 갈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에서는 다양한 문화활동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 같은 모임은 잘 알려진 게 없었던 것 같고 있었다고 해도 사람들이 어디서 어떻게 참여할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작가들도 어디서 어떻게 자기 작품을 소개할 수 있을지를 몰랐던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작가를 직접 만나 작품에 대해서 토론하고 그들의 인생담을 듣는 기회는 흔치 않다. 또 하나의 이유는 한국 거주 외국인들도 참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모임은 한국인 외국인 모두 참여할 수 있고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오고 있다.- 지금까지 주제로 다룬 한국 작가는 얼마나 되는가? 황석영, 신경숙, 공지영, 김영하 등이 보이는데 이들의 어떤 작품을 갖고 대화를 나눴는가?총 35명의 작가가 초청됐는데 여기에는 한국 작가 15명, 미국, 영국 출신 작가 들도 포함되어 있다. 특정한 작품을 선정해서 토론하는 형식은 아니다. 사회자가 작가의 경력과 인생에 대해 인터뷰하고 나서 청중이 자유롭게 질문한다. 질문은 작가의 개인적인 인생사, 경험 등 매우 다양하다. 황석영의 경우 작품의 배경이 된 광주민주화운동, 베트남전 참전 등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위의 한국작가들의 작품중 눈길을 끄는 작품이 있다면?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흥미로웠다. 특히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는 우연히 대형서점에서 제목을 보자마자 바로 관심 갖게 됐고 내가 한국에서 읽은 첫 번째 소설이었다. 그 밖에도 황석영의 ;삼포가는 길;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 같은 작품도 다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독서클럽에 아직 초대하진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이문열의 작품을 좋아한다. 그는 세계적인 작가이며 그의 단편들은 정말 훌륭하다.- 마찬가지로 인상 깊은 한국영화를 소개한다면?개인적으로 이창동 감독의 ;시;를 들고 싶다. 이 작품을 통해 한국영화에 대한 눈을 뜰 수 있었다. 영화에 관심이 무척 많다. 한국 고전 중에서는 ;하녀;, 자유부인; ;오발탄(1961); 등이 인상 깊었다. - 당신이 체험한 한국문화들이 영미와 서구의 문화와 어떤 점이 차별적이라고 생각되나?분명히 차이점이 있다. 주로 접한 한국문학은 영어로 번역된 작품이지만, 번역 소개된 한국문학작품이 서구에 비해 장르문학이 적은 것 같다. 번역작으로 선택된 작품들이 주로 한국전쟁, 일제강점기 등을 배경으로 한 무겁고 진지한 내용의, 한국 역사를 주제로 한 작품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무거운 주제와 다른 작품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박민규, 김영하 같은 젊은 작가들이 관심 받고 인기를 얻는 이유다. 그러나, 추리소설이나 과학공상소설, 범죄소설 등 장르문학 중에서는 번역된 작품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지난 5년간 한국문화를 체험하면서 느낀 점은? 한국에 오기 전과 온 후의 소감은? 처음에는 새롭고 다 흥미로웠고 이제는 적응해서 모든 것이 일상이다. 내 삶과 집 같다.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아일랜드에서 살던 예전의 삶, 직업 등 모든 게 다르지만 좋은 변화이고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 서울은 국제적인 도시이고 이곳에 사는 것은 런던에 사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서울의 국제적인 면을 좋아한다.- 당신에게 비친 한국인, 한국사회는?한국학생을 가르치고 생활하며 느낀 점은 한국인들이 짓눌린 것 같다(pressurized)는 생각이 든다. 많은 일을 하도록 강요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교육문화나 저녁에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늘 경쟁 속에 있는 것 같다.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씨가 한 말이 인상 깊었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이 지난 50년간 어떻게 그토록 많은 것은 이룩할 수 있었는지를 얘기하면서 "때로는 앉아서 샴페인 한 잔을 음미할 필요도 있다"는 멋진 언급을 했다. 그녀의 생각에 동의한다.- 한때 한국인들이 애송한 애국가가 스코틀랜드의 ;올드랭사인;에 가사를 붙인 곡이었다. 사실 잘 몰랐다. 그런데 최근 영화 ;국제시장;에서 그 노래가 나오는 것을 보고 왜 사람들이 그 노래를 부르는지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 노래가 불리게 된 배경이 있었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게 됐다.- 스크틀랜드 출신 선교사들의 활동도 인상적이었다 차제에 한국인들에게 당신네 나라의 문학작품을 소개해달라.그럴 의향이 있다. 앞으로 독서클럽에서 영국 작가들을 소개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다음달부터는 해치홀에서 영국영화를 소개해볼 생각이다.- 문화 대화는 서로에게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화를 통해 이루고 싶은 당신의 소망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특별한 메시지나 소망을 갖고 있진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문학에 더 관심 갖고 사회와 문화활동에 더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길 바란다.- 보람 있던 순간이나 기억할만한 순간은?모임 후 많은 사람들이 좋았다는 소감을 페이스북 등 SNS 채널로 전할 때, 그들이 모임을 즐길 때 많은 보람을 느낀다. 지금까지 해온 일중 가장 많은 보람을 느끼며 많은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 모임을 오래도록 계속 해오고 싶다.- 향후 계획이 있다면?작가가 아닌 다른 유명인사도 초청하고 싶다. 예를 들어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같은 사람이나 특히 봉준호 감독 같은 사람을 초대해서 그들의 인생사, 작품 제작 관련 얘기 등을 나눠보고 싶다.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의원 같은 분도 마찬가지다. 웰시 교수의 독서 클럽은 이번 토요일 (24일) 2시 해치홀에서 열리며 고은 시인이 초청된다. 자세한 정보는 모임 홈페이지(http://www.seoulabc.com)에서 얻을 수 있다.윤소정 코리아넷 기자사진 전한 코리아넷 기자arete@korea.kr 2015.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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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 남북한 실질적 교류•협력•대화 강조

    정부, 남북한 실질적 교류•협력•대화 강조

    정부가 통일 준비를 위한 남북간 실질적인 대화를 추진하고 남북 교류;협력의 질을 높이기로 했다.통일부, 외교부,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는 19일 열린 2015년 정부 업무보고에서 통일준비를 위한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정부부처 업무보고통일부는 통일준비위원회,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등과 함께 통일의 비전과 원칙, 미래상 등을 골자로 한 '통일헌장'을 제정하고 평화통일기반구축법 추진하기로 했다. 또, 남북 당국자 대화 재개를 북한에 촉구하여 이산가족, 국군포로, 납북자 등 인도적 문제뿐만 아니라 ;드레스덴 구상;, 북한 주민 생활 개선을 위한 복합농촌단지 조성, 모자보건사업 확대 등을 도모한다.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남북한 주민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교류협력과 대화를 추진해 주기를 바란다"며 "남북 교류의 질을 높이고 작은 협력부터 이루어 가려면 조속히 남북 간에 통일준비를 위한 실질적인 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한반도 종단 및 대륙철도 시범운행도 추진된다. 통일부는 박 대통령의 유라시아 구상 실현을 위해 올해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전남 목포에서 나진까지 연결되어 남북을 X자로 가로지르는 한반도 종단열차 및 신의주와 나진에서 중국 횡단철도로 이어지는 대륙철도 시범 철도 시범 운행을 추진하기로 했다. 외교부도 서울-중국-러시아-베를린으로 이어지는 유라시아 친선 특급열차를 운행하겠다고 밝혔다.남북 경협 추진과 관련, 통일부는 개성공단에 남북 경제공동체 인프라 구축 사업을 추진하며 외국 기업 유치로 공단의 국제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또, 나진;하산 물류사업을 확대 발전시켜 남북 경제 공동체 인프라 구축사업을 본격화한다.통일 공감대 확산을 위한 노력도 확대된다. 통일부는 북한에 '광복70주년 남북공동기념위원회' 구성을 제안하고 문화;예술;체육;종교 등 다양한 분야 공동기념행사를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아울러 문화체육관광부, 통준위 등과 광복 70주년을 계기로 '통일박람회 2015' 등 문화행사를 마련한다. 이어 '남북겨레문화원' 서울 평양 동시 개설을 추진하고 민간단체의 사회;문화 교류를 지원키로 했다.북한의 비핵화를 남북관계 개선의 선순환 구도로 연결짓는 노력도 심화된다. 통일부는 북한의 비핵화 진전에 따라 ;비전 코리아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북한의 철도;도로;전력;통신 등 인프라를 확충하고 국제기구 가입, 외자 유치 등을 지원해 북한의 경제적 자생력을 높여주는 것이 골자이다.대북 인도적 지원과 관련, 외교부는 세계보건기구(WHO), 유니세프 등과 대북 인도적 지원 국제공조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 아울러, 이산가족 문제 해결 및 탈북민 보호;안전이송 국제 체제 강화를 위해 국제기구 및 관련 국가들과 협력을 심화하기로 했다.아울러 외교부는 한반도 통일 비전에 대한 국제사회 공감대를 확산하고자 ;한반도 및 주변 정세 변화 주도;,;평화 통일 신뢰 인프라 구축', ;글로벌 통일 네트워크 강화;의 3대 목표를 세우고 통일시대를 열기 위한 글로벌 신뢰외교를 적극 전개해 나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외교부는 한미 공조 강화와 새로운 한일 관계 모색에 나설 계획이다.이날 업무보고에서는 통일정책을 뒷받침하는 군사정책도 발표됐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통일정책을 군사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긴장완화로 신뢰 구축을 모색하고 남북 교류협력사업 및 DMZ 평화공원과 관련한 군사적 지원 준비 등을 통해 통일 여건 조성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통일한국의 국방 설계를 위해 점진적;단계적 군비 통제 등 청사진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윤소정 코리아넷 기자사진 청와대arete@korea.kr 2015.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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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 대학생들, “사물놀이 진수를 배우러 한국에 왔어요”

    러 대학생들, “사물놀이 진수를 배우러 한국에 왔어요”

    러시아 대학생들이 국악을 배우기 위해 남녘땅 진도를 찾았다.지난 14일 입국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 사물놀이 연주단 ;해동; 단원 17명은 오는 30일까지 국립남도국악원에서 마련한 사물놀이 연수에 참여했다. ▲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 사물놀이 연주단 ;해동; 단원들이 전남 진도의 국립남도국악원에서 모듬북 연주법을 배우고 있다.해동 단원들은 극동연방대 한국학과 학부 및 대학원생들로 구성됐으며, 러시아 극동지역을 중심으로 각종 행사에서 한국 전통음악을 연주해왔다. 보름간 국악원에 머물며 사물놀이, 풍물놀이, 모든북 연주의 진수를 직접 보고 배운다. 이 외에도 다양한 전통 남도 문화체험, 한국어 수업 등에도 참가한다. ▲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 사물놀이 연주단 ;해동;단원들이 장구, 꽹과리, 징 등 전통악기를 연주하고 있다.이들이 연수에 참가한 것은 이번이 5번째다. 2011년부터 매년 겨울방학 때마다 이곳을 방문해 2~3주간 연수를 받았다. 이번 연수에 참여하는 단원 17명 중 고려인이 3명, 나머지는 러시아 현지인이다.이들을 이끌고 온 칸 루슬란 한국학과 조교는 ;매년 한국의 국악을 심화 학습하기 위해 체험연수에 참가하고 있다;며 ;연수 기간에 한국어와 한국문화도 배울 기회가 있어서 단원들의 참여율이 무척 높다;고 말했다. ▲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 사물놀이 연주단 ;해동;단원들이 국립남도국악원에서 농악놀이에 필요한 발걸음 동작을 배우고 있다.남도국악원의 한 관계자는 ;대다수가 러시아 인들이지만 한국학과에 진학할 만큼 한국의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이 높다;며 ;사물놀이를 배우려는 열정 또한 굉장히 높다;고 말했다.글 손지애 코리아넷 기자사진 국립남도국악원jiae5853@korea.kr 201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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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2015년 가봐야 할 세계명소: NYT

    서울, 2015년 가봐야 할 세계명소: NYT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 ;2015년 가봐야 할 세계 명소 52선;에 포함됐다. 지난 뉴욕타임스(NYT)의 관광기사 ;2015년 가봐야 할 세계 명소 52선;에서 NYT는 최근 변화를 거쳐 탄생한 명소를 소개했다.이 기사를 쓴 칼럼니스트 엘리자베스 이브스(Elisabeth Eaves)는 서울에서 봐야 할 명소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용산 국립한글박물관을 꼽았다. ▲ NYT가 선정한 '2015년 가봐야 할 세계 명소 52선'에서 서울이 포함됐다. 사진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NYT가 소개한 DDP는 옛 동대문 운동장 자리에 지어진 복합문화시설로, 이라크 출신의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설계를 맡아 주목을 받았다. NYT는 DDP가 ;은빛 우주선 같은 자태;를 갖췄다며 ;근처의 낡은 쇼핑가를 초현대적 공간으로 변신시켰다;고 설명했다. ▲ 도심 속 일상에서 예술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대해서는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 같은 곳;이라며 예술 애호가들을 위한 코스로 소개했다. 과천의 본관, 고궁 내에 위치한 덕수궁관에 이어 세 번째로, 2011년 개관한 서울관은 도심 속 일상에서 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국립한글박물관은 한국 고유의 알파벳 '한글'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전시하고 있다.이와 함께, NYT는 지난 해 개관한 국립한글박물관 방문도 권유하면서 한국의 고유 문자인 한글에 대해;감탄이 나올 만큼(much-admired) 엄청나게 합리적인(ultra-rational) 고유의 알파벳;이라고 설명했다.NYT는 매년 자사 특파원과 기자 등에게 추천을 받아 그 해에 가볼만한 세계적 명소 52곳을 선정∙발표한다. 이 리스트에 대해 NYT는 ;새롭게 변한 요소가 있거나 올해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장소들을 엄선했다;다고 밝혔다.올해 52선의 1위는 5월부터 10월까지 세계엑스포가 열리는 이탈리아 밀라노가 차지했으며,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를 선언한 쿠바가 그 뒤를 이었다.*NYT 원문:http://www.nytimes.com/interactive/2015/01/11/travel/52-places-to-go-in-2015.html*동대문디자인플라자 공식홈페이지: http://www.ddp.or.kr*국립현대미술관 공식홈페이지:http://www.mmca.go.kr/eng*국립한글박물관 공식홈페이지:http://www.hangeul.go.kr/lang/en글: 이승아 코리아넷 기자사진: 전한 코리아넷 기자, 뉴욕타임즈 캡처이미지, 국립현대미술관slee27@korea.kr 201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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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루코, “면도날 과학으로 세계를 사로잡다”

    도루코, “면도날 과학으로 세계를 사로잡다”

    ▲ 보급형 면도기부터 여성용, 세계 최초로 개발된 7날 면도기까지 다양한 종류를 선보이는 도루코의 면도기 제품들일회용 제품부터 여성용, 6중날, 7중날 면도기까지.유럽∙북미∙중남미∙아시아∙아프리카까지 세계인들에게 사랑 받는 업체가 있다.올해 창립 60주년을 맞는 한국의 도루코가 그 주인공.1955년 전신인 ;동양경금속주식회사;로 출발한 도루코는 1960년대부터 면도날 생산에 나섰다. 1990년부터는 ;동양경금속주식회사;에서 ;DO;, 면도기(Razor)의 ;R;, 회사의 ;Company;에서 ;CO;를 따온 DORCO를 사명으로 쓰고 있다.면도날 분야에서 도루코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한다. 2006년에는 휘어지는 절곡날 6개를 면도기 머리 부분에 넣은 6중날 면도기 ;PACE6;, 지난 해 말에는 7중날 면도기 ;PACE7;를 세계 최초로 선보이며 앞선 면도날 제조기술로 세계의 면도기 시장을 선도해오고 있다.도루코의 기술력은 국내외 소비자들에게 인정받고 있다. 도루코는 매년 15% 이상의 성장을 보여왔으며 지난 해는 약 2,256억 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특히 해외수출이 총 매출의 70%를 차지한다. 도루코는 1976년 수출을 시작한 이후 현재 130여 개국 소비자들과 만나고 있다. 특히 제품 연구개발에 인종 별로 다른 수염의 특징을 고려하여 유럽, 중동, 아프리카 지역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1970년부터 생산해온 양날 면도기. 도루코의 가장 오래된 제품 가운데 하나이다.▲ 도루코가 지난해 말 세계 최초로 개발한 7중날 면도기 PACE7▲ 백학기 대표는 ;나노미터급 정밀함과 쇠의 강도가 있어야 수염이 매끄럽게 잘리며 피부에 손상이 적고 깔끔한 마무리가 가능하다;며 도루코의 세계최고 면도날 기술을 강조했다.백학기 대표이사를 만나 도루코의 역사와 미래, 향후 계획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전쟁의 상흔이 채가시지도 않았던 농업사회였던 1950년대 면도날을 생산하게 된 배경을 설명해달라.도루코는 1955년 동양경금속주식회사로 출발할 당시 지퍼와 연필 깎는 칼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6.25전쟁 이후 미군들이 사용하던 면도기가 한국에 들어오자 우리가 자체적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62년도 면도기 사업에 진출하게 됐다.- 60년에 이르는 도루코의 장수 비결이 무엇에 있다고 생각하나?도루코의 장수비결은 제품을 구입하는 고객의 신용을 제품의 품질로 보답하며 정직하게 지켜온 것이다. 특히 정직과 신용은 회사의 역사와 함께 한다. 선대 회장의 경우 면도기 사업에 앞서 미곡사업을 하셨는데 전쟁 중에 피난 길에도 배낭에 돈을 짊어지고 일일이 돈을 정산하며 갈 정도로 정직과 신용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왔다.- 도루코는 2007년 휘어지는 6중날 면도기를, 최근에는 7중날 면도기도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그 연구 개발 과정에 애로사항은 없었는지, 있었다면 어떻게 해결하셨는지 궁금하다.6중날, 7중날 개발은 도루코의 좋은 면도날로 어떻게 하면 좋은 제품을 만드느냐에 중점 두고 제품 개발에 매진한 결과다. 타사의 경우 날 가운데를 용접해서 만든 유사 제품이 있으나 비용이 많이 들고 공정도 복잡하다. 이에 비해 도루코는 강한 날을 바로 굽힐 수 있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는데 이 기술은 가격이 월등히 낮고 공정이 훨씬 더 간소하다. 이 기술로 더 작은 공간에 6, 7중날 등 더 많은 면도날을 넣을 수 있게 되어 더 안전하고 깨끗한 마무리의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면도가 가능해졌다.사실 1980년대 후반 시장 개방으로 해외 업체들이 들어오면서 경쟁력에 뒤쳐져 사업이 어려워졌다. 이에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연구 개발에 집중, 1997년도에 연구소를 설립하고 연구개발에 투자했고 현재까지도 연매출의 15%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해외 경쟁업체들은 철저하게 자체 기술 보호를 해오고 있고, 또, 특수한 사업 분야라 국내 연구기관과의 연구도 한계가 있어 모든 것을 자체 내부 기술력으로 해결해야 했다. 10년 넘는 개발 과정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체적인 기술을 개발했고 최종적으로는 경쟁사의 핵심기술도 자체적으로 개발에 성공했다.그 과정에서 연구개발이 즉각적인 성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이 따랐으나 열정적인 도전과 경영진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연구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개인적으로도 많은 보람을 느꼈다.- 도루코만의 특수한 날 생산기술 개발 관련해서 연구 과정에서 가장 공들인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타사와 차별되는 좋은 면도날을 만드는 것에 가장 큰 비중을 뒀다. 영화에 나오는 무사들의 보검을 생각해보라. 그런 명검은 오랜 세월 동안 두드리는 연마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면도날을 깎아서 만드는 경쟁사들의 제품과 달리 도루코는 특수 스테인리스강 재질의 면도날을 두들겨 만드는 단조공법을 이용한다. 이 기술은 오로지 도루코와 단 한 경쟁사 만이 보유한 기술이다. 이렇게 만든 면도날로 면도를 하면 수염을 더 깔끔하게 자를 수 있고 피부가 느끼는 감촉도 부담이 적어 더 편안하다. 면도날의 수명도 더 오래가는데 쇠가 더 단단해지고 조직이 치밀해져 내구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도루코 백학기 대표이사는 ;도루코는 면도날 분야 세계 최고;라며 ;평균적으로 면도날 교체는 보름에 한번을 권장하지만 우리 제품은 수명이 길어 너무 오래 써서 걱정;이라고 미소 지었다.- 국가별;지역별로 특별히 사랑받는 도루코 제품이 있다면? 유럽, 미국, 호주 소비자들의 경우 3중날 이상의 고급면도기 제품이 크게 사랑 받고 있다. 중동과 남미 지역은 2중 날과 일회용 면도기의 월 판매 수량이 1억 2천여 개가 넘는다. 양날면도날도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권에서 매우 인기가 높다. 솔직히 생산이 달려서 공급을 다 못하는 상황이다. 현재 한국의 2곳 포함 총 6개의 공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올해 용인과 베트남에 공장 증설 계획이 있다.- 요즘 소비자들은 많이 똑똑하고 여러 제품과 비교도 많이 한다. 도루코에서 제품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가?도루코의 기본철학은 세계 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들고 정직하게 제품의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다. 디자인과 편리성도 마찬가지로 최고를 추구한다. 정직하게 실질적인 가치를 충실히 실현하는 제품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명품을 만드는 것이 회사의 목표이다.- 질레트, 쉬크 등 해외 경쟁사에 비해 도루코가 내세울 수 있는 강점이 있다면 무엇인가?도루코의 강점은 최고 수준의 날이다. 강하면서도 절삭력이 우수하며 피부에 손상이 적고 수염을 잘 자르고 오래 유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면도날에 대한 노하우는 면도날의 강도와 나노미터 급 정교함에 있다. 사람의 수염은 같은 굵기의 구리선과 같은 정도로 질기고 단단하다. 그러나 물에 불리면 알루미늄 같은 강도를 갖게 된다. 도루코 면도날은 끝이 미세한 톱날구조로 되어있어 날이 수염을 만나면 뚫고 지나가며 깨끗이 깎이고 피부가 적게 밀려 표면 손상이 적고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또, 면도날 위에 다이아몬드와 같은 강도를 가진 얇은 코팅으로 정밀도를 더 보완했다.- 도루코의 향후 계획은?현재 프랑스의 오샹;까르푸, 미국 Sam;s Club;코스트코 등 유럽과 미국 PL(Private Label;유통업체 상표 부착 판매) 시장에서 도루코가 2위를 차지하고 있고 해외 바이어들의 문의가 줄을 잇는다. 하지만 브랜드 인지도를 더 높이고 싶다. 앞으로 브랜드를 더 알려 온라인 비즈니스와 이머징 마켓(신흥시장) 마케팅 강화에 더 중점을 두고 싶다.글 윤소정 코리아넷 기자사진 전한 코리아넷 기자arete@korea.kr 201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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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로 이어가는 우정,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영화로 이어가는 우정,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영화를 통해 우정을 나누는 ;2015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15일 서울 종로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렸다.▲ 다음달 15일까지 계속되는 ;2015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공식포스터.2006년부터 시작된 이 영화축제는 지금까지 약 10년간 많은 ;영화친구들;이 참여해 관객들에게 작품들을 소개하고 생각을 함께 공유했다.올해는 영화감독, 배우, 영화평론가 등 18명이 선정한 총 23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15일 개막작으로 찰리 채플린의 마지막 무성영화이자 불후의 명작인 ;시티 라이트; (1931)가 피아니스트 강현주의 연주와 함께 상영됐다. ▲ 15일 ;2015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작품들 중 찰리 채플린의 ;시티 라이트; 와 1988년 미국 영화 ;허공에의 질주;의 한 장면.다음달 15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영화제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시네마테크의 선택;으로 영화제 10주년을 기념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설립자 앙리 랑글루아에 관한 다큐멘터리 ;앙리 랑글루아의 유령(Henri Langlois: Phantom of the Cinematheque);이 상영된다. 앙리 랑글루아는 1950년대 후반에 시작되어 1962년 절정에 이른 프랑스의 영화운동 ;누벨바그(Nouvelle Vague);의 아버지로 불린다. ▲ ;2015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상영되고 있는 미국영화 ;천국의 문;(위)과 ;조디악;.;친구들의 선택;에서는 영화감독들이 선택한 작품들을 관객들과 함께 관람하고 작품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는 시간을 가진다. 영화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은 영화 ;천국의 문;을, 영화 ;설국열차;의 봉준호 감독은 영화 ;조디악;을 선택했다.이어 세 명의 영화 평론가들이 지난 10년간 전 세계에서 발표된 작품들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영화로 6편을 선택했다. 스페인 영화 ;상그레;를 비롯해 아르헨티나의 ;공포의 역사;, 러시아의 ;리바이어던; 등이 상영된다.관객들이 선택한 영화도 공개된다. ;십대의 삶;이라는 테마에 맞춰 관객들이 선정한 10편의 작품들이 상영된다. 1988년 미국영화;허공에의 질주;와 배창호 감독의 1982년 작품;꼬방동네 사람들; 등이 상연된다.영화제 관계자는 ;세계 영화계의 최신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영화관계자들의 깊이 있는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글 손지애 코리아넷 기자사진 서울아트시네마jiae5853@korea.kr 2015.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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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언론도 주목한 영화 '국제시장'

    미국언론도 주목한 영화 '국제시장'

    한국 영화 '국제시장'(Ode to My Father)이 미국언론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이 영화는 1950년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을 온 한 소년이 아버지와의 약속을 평생 간직한 채 장남이자 가장으로서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난해 12월 17일 개봉한 이 영화는 빠른 속도로 입소문이 퍼지면서 1월 13일 한국영화로는 11번째로 관객수 1천만을 돌파했다.▲ 12일자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영화 '국제시장'에 대한 기사월스트리스트저널은 지난 12일 '국제시장, 한국의 역사를 배경으로 개인의 이야기를 풀어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영화의 주인공인 "덕수의 삶은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 1만4천명을 미군 수송선 메리디스 빅토리(Meredith Victory)호에 태우고 남쪽으로 탈출시킨 흥남 철수작전"에서 시작한다며 "덕수가 마치 포레스트 검프처럼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등 거물들과 스치듯 지나가며 만나는 장면도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고 평했다.이 신문은 윤제균 감독의 말을 인용하면서 "영화의 주제는 사회 분열이 아닌 화합과 소통이다. 부모, 조부모 세대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보면서 젊은 세대가 그들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랐다"며 "내가 최선을 다해 살았고,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라고 보도했다.LA Times도 지난 8일 '한국영화 국제시장은 훌륭한 휴먼드라마'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강렬하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관객들의 마음을 가슴을 찡하게 하는 영화"라며 "영화 '해운대'로 유명한 윤제균 감독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인물중심의 영화를 만드는 부인할 수 없는 재능을 가졌다"고 평했다. 또 "모든 장면이 입술을 떨리게 할 정도로 가슴이 찡하도록 잘 짜여졌지만 1983년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재현한 것만큼 눈물겨운 장면은 없었다"며 한국에서 이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 '호빗'을 누르고 티켓판매 1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 덕수가 서독의 광산에서 일하고 있는 장면영화전문지인 할리우드뉴스는 지난 4일자 영화리뷰에서 "많은 한국영화들처럼 이 영화도 가족과 가족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과거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왜 주인공 덕수가 자신의 가게에 그렇게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강렬한 감수성이 넘치는 장면들과 멜로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순간들은 곧 코믹한 장면으로 이어진다"며 "'국제시장'은 가족영화로 아이들부터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8일 LA Times는 영화 '국제시장'이 강렬하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가슴을 찡하게 하는 영화라고 평했다.'국제시장'은 미국 내 40개 상영관에서 개봉돼 많은 관객을 불러모으고 있으며 2월 열리는 제65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파노라마부문에도 초청됐다.임재언 코리아넷 기자사진 CJ엔터테인먼트jun2@korea.kr▲ 영화 '국제시장'의 포스터 2015.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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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 올해도 창조경제 활성화

    정부, 올해도 창조경제 활성화

    정부는 올해 경제 대도약을 위한 창조경제 활성화 지원에 힘쓸 계획이다.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5개 부처는 15일 열린 2015년 정부 업무보고에서 창조혁신경제 실현을 위한 추진계획을 발표했다.미래창조과학부는 올 상반기 안에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열기로 했다. 최양희 미래부 장관은 ;올해 안에 창조경제혁신센터 17곳이 모두 완성되면 신속하게 정보를 공유해서 전수받을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누구라도 아이디어를 갖고 혁신센터를 찾아가면 사업화, 투자유치, 마케팅, 해외진출까지 원스톱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창조경제혁신센터가 개소한 후에 완전히 뿌리내리도록 정부가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보완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관계부처의 지원과 협력을 강조했다.▲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정부부처 업무보고정보통신분야;게임분야와 관련, 미래부는 네이버, 엔씨소프트 등 IT;게임 업체가 밀집된 경기도 판교에 창조경제밸리를 조성하기로 했다. 판교 창조경제밸리는 창업자 육성과 지원을 위한 기관과 시설을 갖추고 정보교환, 비즈니스 인프라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고급 기술인력의 창업 지원도 확대된다. 중소기업청은 창업 초기 기업을 지원하는 ;하이테크 창업 캠퍼스;를 조성하고 창업팀 별로 최대 3년간 10억원을 연구개발에 지원키로 했다. 이 캠퍼스는 올 6월 서울 테헤란로에 설치되며 170개 창업팀 등이 입주 예정이다.기술 금융분야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도 확대된다. 금융위원회는 ;핀테크 지원센터;를 설치하고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연계해 운영할 계획이다. 아울러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과 소프트웨어;콘텐츠 등 미래성장산업에 100조원, 핀테크 육성에 2,000억원 등 올해 총 180조원의 정책자금을 공급하기로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정부업무보고에서 창조경제 활성화 방안 등을 강조했다.해외진출 기업에 대한 지원도 늘어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발효되는 한-중 FTA와 관련, ;차이나 데스크;를 무역협회에 설치하고 중국 시장 진출 기업에 대해 원산지 관리, 수출시장 개척 등의 서비스를 지원한다. 이와 함께 한국 기업의 해외진출을 늘려 올해 수출을 지난 해의 5,731억 달러에서 6,000억 달러, 외국인투자 200억 달러 달성 목표를 세웠다.방송, 문화 콘텐츠 분야에도 변화가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올해부터 방송광고시장에서 방송사가 광고 유형, 시간, 횟수를 선택할 수 있는 광고총량제를 도입한다. 가상광고, 간접광고에 대한 규제도 완화된다. 아울러 방통위는 올 1월부터 EBS(교육방송)에서 초;중등 교육과 영어교육을 확충한 다채널 방송 시범서비스를 실시하기로 했다.윤소정 코리아넷 기자사진 청와대arete@korea.kr 2015.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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