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러시아, 가깝기 위해선 지식이 필요’
최근 한국 공중파 방송에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났다.한국인과 별차이 없이, 아니 오히려 한국인 이상으로 한국어에 능숙하며 한국문화를 심도있게 이해하는 외국인들이 등장한 것이다. ;미수다;, ;비정상회담;으로 상징되는 브라운관의 프로그램들은 다인종, 다문화가 공존하는 한국사회의 세계화를 인식케 했다. 이들 외국인은 한국사회를 세밀하게 관찰한다. 때론 한국인들도 의식하지 못했던 점들을 지적하여 놀라게 한다. 한국문화와 자국문화를 비교하며 문화다양성을 생생하게 알려준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상대의 문화를 존중하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다.일리야 벨라코프. 그는 33세의 러시아 젊은이다.서울에서 비행기로 2시간 못미치는 극동의 항구도시, 블라디보스토크 태생이다.13년전 이 젊은이는 탄탄한 한국어실력 하나 믿고 대한민국에 유학왔다. 러시아 국립극동대학교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그는 국제교류재단의 장학생으로 연세대학교 어학당에서 공부했다. 그의 한국어 실력은 더욱 늘어나 그는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한국어 능력시험 최고 등급의 보유자가 됐다. 이후 한국어 공부를 계속하여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사우스캐롤라이나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인류사회언어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한국어를 비롯,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스페인어에 능통한 그는 탁월한 어학실력과 탄탄한 지식을 무기로 의료전문통역, 대기업직원, 칼럼니스트, 기자, 방송인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를 만나 한국 생활과 두 나라의 문화, 역사 등을 주제로 솔직하게 대화를 나눠봤다.▲ 한국어 전문가인 일리야 벨라코프. 방송출연, 언론기고 등을 통해 활발하게 문화소통을 하고 있다.능숙한 한국어가 인상적이다. 한국어 공부 어떻게 했나? 러시아어와는 전혀 다른 문법, 어휘, 관용구 등이 익숙해지기까진 어려움을 컸던 듯 싶은데. 2003년에 처음 온 후 한국생활 13년차이다. 한국어학과를 졸업했지만 특별한 노하우나 교수법은 없었다. 노력이었던 것 같다. 교재보고 단어 외우고 문법을 공부하는 식이다. 교수진은 99%가 러시아인, 한 두명 정도 한국인이었다. 제가 한국어를 배울 당시 러시아에 이미 한국어 전문가들이 어느 정도는 있었지만 상당히 많았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중국어학과의 교수가 20명이라면 한국어학과 교수는 1명 정도 되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었다.많은 언어 가운데 한국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일부러 한국말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우연히 공부하게 됐다. 고등학교 때부터 다른 언어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대학에 가면 무조건 언어학과에 입학해야겠다고 결심해서 여러 언어과에 지원했고 한국어도 그 중에 하나였다. 다른 언어과는 떨어졌지만 한국어학과는 붙었다. 그렇게 시작됐다. 우연에 의해 시작했지만 한국과 인연을 맺으면서 이렇게까지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한국어 관련 논문 주제는? 언어학 전공으로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논문 주제는 학사와 석사와 비슷하다. ;러시아에서 보는 한국어 통사론과 한국에서 보는 러시아어의 통사론의 차이점;이었다.러시아에 한국의 대중문화, 예술은 얼마나 확산되고 있는지?처음에 한국말을 배울 때 2000년대 초만 해도 한국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만약 한국음악이나 영화를 보고 듣고 싶다면 한국에 가는 친구들에게 부탁해서 가져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국말로 된 책, 음악, 영화 등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2000년대 초기에는 인터넷도 많이 발달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유튜브, 페이스북 같은 SNS 개념 자체도 없었기에 한국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옛날에 우리 교수님이 방학때 한국에 갔다와서 가져온 책들, CD들이 유일했다. 정말 ;맨 땅에 헤딩했다;는 표현이 맞다.비슷한 상황이었겠지만 1990년대 한-러 수교 시 한국에는 러시아어 통역도 없어서 급조해야 했다. 맞다. 그만큼 교류가 없고 서로에 대한 지식이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에 비하면 채 10년도 안된 짧은 시간동안 엄청나게 많이 달라진 것 같다.푸쉬킨, 톨스토이, 토스토옙스키를 비롯, 솔제니친에 이르기까지 러시아문학은 100년이 넘도록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에 왔을 때 러시아 작품들이 널리 번역돼 있다는 사실에 어떤 느낌이었나? 한국에 러시아 문학작품이 많이 번역, 소개되어 있는지 몰랐었다. 처음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것도 사실 많이 알려져 있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 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느껴진다. 수많은 작가, 예술가들이 많다 있다 보니 그런 것 같다.;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푸쉬킨의 이발소의 그림에서 교양인의 서가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문화는 한국사회 곳곳에 깔려 있다. 한국문학이 러시아에는 사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도 요즘에는 조금씩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대중적이지 않다. 두 나라의 문화 차이가 너무 커서 현재로서는 러시아 사람들 정서에 잘 안맞는다고 봐야 한다.유튜브에 올라 있는 러시아 국가 동영상 가운데 러시아를 대표하는 문화, 과학, 발레 등 대중예술 유명인들이 줄줄이 나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진정한 콘텐츠의 나라는 오히려 러시아 같다. 그럼에도 활용을 덜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그렇다. 활용을 덜 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활용이 많이 안되어 있다. 원인은 재정적인 것에 있다고 본다. 현재 러시아 상황에서 한계가 있다고 본다.오래전부터 러시아와는 소통을 많이 해왔다. 문학은 물론이고 카츄샤, those were the days, 이오시프 코프존의 백학 등 한국인의 애송곡에 이르기까지 등 한국의 일상에는 러시아의 유산이 많다. 한류가 비교적 짧은 시기에 형성됐다면 러시아 문화는 오래가는 것 같다. 끈끈한 생명력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한국 문화에 러시아적인 요소가 많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 맞다.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잘 모르는 역사적인 사실이 있는데 고종이 일본을 피해 러시아 영사관으로 도피한 사건(아관파천)이 있었다. 한국의 일상에 파고든 러시아 문화의 생명력은 아마도 지리적으로 봤을 때 이웃나라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지금 보면 아무래도 문화교류보다 경제교류가 훨씬 더 많다. 물론 경제교류가 많아져야 문화교류도 훨씬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정치, 경제적으로 더 많은 교류를 하면 문화쪽으로도 더 많은 교류가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대조국전쟁의 승리, 러시아인의 저항력은 끈기 있기 투쟁을 해서 독립을 이룬 한국인의 그것은 상통하는 것 같다. 어떤 정서가 그렇게 강인하게 견디게 했나? 러시아인으로서 러시아 문화를 볼 때 러시아 사람들은 자유를 추구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본다. 국민성을 봤을 때 그런 것 같다. 러시아의 역사를 볼 때, 전쟁이 없는 때가 없었다. 한국과 비교할 때 한국이 5세기에 한번 전쟁이 난다고 치면 러시아는 10년간 전쟁이 항상 있어왔다. 아마 전쟁이 200개는 될 것이다. 이웃국가, 해외 국가와도 전쟁이 많았다. 영토싸움도 정말 많았고. 한국의 마지막 전쟁은 70년 전이었지만 러시아는 지금도 전쟁이 진행 중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누구보다도 전쟁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한국보다 더 훨씬 잘 안다. 러시아인은 그런 국민성을 갖고 있으며 자유를 추구하면서 독립을 아주 중요시하는 민족이다. 굉장히 많은 어려움, 힘든 점을 겪으면서 그런 역사를 밟아온 민족이다보니 그런 것 같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때, 당시 소련 체제에서 굉장히 심한 이데올로기가 있었다. 스탈린 같은 아주 강한 이데올로기가 러시아 사람들의 머릿속에 심어졌다. 그로 인해 싸울 마음(항전 의지)이 아주 강해졌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한다.스탈린시대의 엄혹함도 있었지만, 또 잘 견뎌내서 얻어낸 것도 많아 보인다.그렇다. 평가가 매우 모순적이다. 부정적인 면도 당연히 있었다. 지금도 역사전문가들의 평가가 아직 엇갈린다.메드베데프 대통령 때의 러시아 국가 버전을 보니 스탈린, 레닌, 니콜라이2세 등 러시아 역대 황제들과 사회주의 시절과 오늘날의 지도자들까지 모두 나온다. 좋다, 나쁘다를 떠나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것 같다.러시아 사람들은 과거 스탈린이 아무리 나쁜 짓을 했었다 하더라도 높이 평가하는 부분이 있다. 그 이유는 2차 세계대전 승리와, 과거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나라가 전 세계의 리더가 되었고 산업화를 이뤄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올랐기 때문이다. 러시아판 산업화를 이뤘고. 스탈린이 있을 때 러시아가 인류사상 처음으로 우주선을 발사했고, 최초의 우주인도 러시아사람이었다. 그런 이유들 때문에 긍정적인 평가도 존재한다.사실 1957년 스푸트니크(Sputnik,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쇼크는 대단한 경이였다. 그럼에도 1980년대 러시아의 상황이 왜 급히 악화된 것일까. 내부적인 이유들이 매우 많다. 매우 복잡하다.일리야 씨가 나고 자란 지난 30년이 러시아 역사의 격변기일 것 같다. 구 소련 말기에 태어나서 글라스노스트, 페레스트로이카 등 수많은 변화를 경험했으니까. 나는 소련 때 태어났지만 사실 그땐 너무 어려서 아무 기억이 없다. 기억이 나는 것은 1990년대 러시아는 소련의 붕괴 후 민주주의가 된 것이다. 2000년대 러시아도 변화가 너무 심했다. 그리고 지금은 극도의 자본주의, 즉 완전한 자본주의로 갔다.▲ 러시아 사회의 급변과 세대간 갈등의 심화, 적응을 위한 어려움 등을 밝히는 일리야 벨라코프. 한국의 현실과 비슷한 면이 적잖아 보였다.사회주의 막차에서 고도의 자본주의로 가다보니 변화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부모님도 아마 아직까지도 적응이 잘 안되신 것 같다. 얘기를 하다보면 그런 느낌이 있다. 아직은 소련 분위기에서 사시는 듯한 분위기가 있다. 그로 인해 세대 갈등도 많다. 가치관이 너무 많이 변해서이다.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와 젊은 세대의 갈등보다 더 심한 것 같다. 이데올로기, 가치관, 세계관이 너무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러시아를 제외하고 전세계에서 볼 수 없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이런 역사적인 경험을 갖고 있는 나라가 러시아 밖에 없다. 사회주의 체제 10년 만에 갑자기 민주주의 국가가 된 것이다.옛날에 사회주의의 길을 걸은 나라들, 중국, 쿠바, 북한, 베네수엘라 등은 아직도 사회주의의 길을 걷고 있지만 러시아는 완전히 바뀌었다. 그렇게 심한 변화를 겪은 나라는 러시아 밖에 없다. 똑같은 나라에서 그렇게 심한 변화를 겪다보니 사람들도 적응이 안돼서 1990년대 많이 힘들었다.당신의 고향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 원동지역은 구한말 한국인들이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거점이었다. 음으로 양으로 러시아의 지원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러시아가 한국사람들을 많이 지원한 이유는 시기가 겹쳐서 그랬을 것 같다. 그때는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했을 때이다. 당연히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일본이 20세기 초 태평양 지역에서 평가가 엇갈릴 수 있는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당연히 러시아사람들도 피해를 겪은 사람들에게 마음이 더 갔을 것이다. 피해자에 대한 공감일 것 같다. 러시아도 일본에 피해를 당했기 때문에 충분히 공감을 느꼈을 것이다.12년의 한국생활을 하면서 많은 변화를 경험했을 것이다. 특히 러시아의 고향과 서울은 대조적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적응했나? 한국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없었나? 사실 크게 문화적인 충격을 받진 않았다. 열린 마음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한국에 오기전에 이미 한국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었고 한국말도 어느 정도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도 어느 정도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있을 때 이곳에 유학온 한국학생들과 많이 어울렸기 때문에 문화적인 충격을 겪진 않았다. 사전준비를 했기 때문이다.물론 적응기간은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 관한 지식이 없이 한국에 온 외국인과는 전혀 다른 경우였다. 어느 정도 얇게라도 한국에 대한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문화충격 없이 연착륙을 했고, 1년 내지 1년 반 동안 그냥 즐겁게 살았다. 크게 어려움이 없이, 물흘러 가듯이 살았다. 하지만 한국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일을 하고 사회에 깊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직장생활을 하기 시작한 시점부터는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한국의 직장 문화가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서열문화가 심했다. 러시아에도 서열문화가 존재하지만 한국만큼 심하진 않다. 문화적으로 이해가 안가거나 이해가 가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음주 문화와 관련, 통계적으로 봤을 때 한국인들이 러시아인보다 술을 더 많이 마신다. 보드카는 알코올 도수가 높아서 러시아인들이 많이 못 마시지만 소주는 보드카만큼 도수가 높지 않다보니 한국인들이 진짜 많이 마신다. 그렇다보니 ;1인당 0리터; 같은 수치로 보면 한국사람들이 더 많이 마신다.한국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매우 다양하다. 여행을 좋아해서 많이 돌아다니는데, 여행을 아무리 많이 다녀도 늘 한국에 다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한국이 너무 편하기 때문이다. 다 고르고 싶지만, 특히 서울 같은 경우 인프라가 정말 잘되어 있다. 한국 사람들은 전혀 모르지만 외국사람들이 항상 말하는 점이 지하철에 화장실이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깨끗하고 무료이기도 하다. 외국인들 입장에서 이건 정말 신기한 일이다. 유럽의 경우 지하철에 화장실이 있을 수도 있지만, 만약 있다 해도 모두 유료다.사실 한국도 30년 전에는 화장실이 정말 더러워서 모두가 가기 싫어했다. 노력 하다보니 깨끗하게 됐다. 그렇다. 정말 많이 변했다. 서울에 2003년에 처음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서울도 엄청 많이 바뀌었다. 처음 서울 왔을 때는 청계천이 없었고 대중교통도 많이 없었다. 지하철은 7호선까지 있었다. 지금은 9호선도 운행된다. 러시아와 비교한다면, 도시마다 매우 다르지만 모스크바의 경우 서울만큼 잘 되어 있다. 나머지 도시들은 큰 차이가 있다. 60개가 넘는 민족들이 살고 있는 워낙 큰 나라이다 보니 그렇다.방송활동을 하면서 사교육, 선행학습 한국사회의 아픈 구석을 속속들이 지적한다. 매의 눈을 어떻게 갖게 됐나? 매의 눈이라기보다는 한국에 살면 다 보이게 되어 있다. 고립되어 사는 것도 아니고, 한국 사람들, 친구들과 같이 매일 얘기하고, 뉴스도 보다보니 보인다. 2003년에 한국 처음 왔을 때에는 백인들이 그다지 없었다. 한국인들은 백인이면 으레 미국인으로 대했다. 불쾌했다.아마도 그것은 한국사회가 외국인들과 많이 못 어울려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그 이유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런 이유로 인해 러시아 포함 동구권 사람들은 서운함이 많았다. 나도 그랬지만 지금은 너무 많이 변해서 그렇지 않다. 지금은 정말, 10년 만에 놀랄 정도로 많이 바뀌었다.;빨리 빨리;의 한국문화는 외국인에 대한 태도 또한 유연하게 바꾼 면이 있다. 맞다. 그건 장점일 수도 있다. 많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거기에는 당연히 언론 매체의 힘도 없지 않다. 처음 ;미녀들의 수다;를 통해서 한국사람들에게 ;외국인들도 한국말 할 수 있다;는 의식이 심어졌다. 그 다음에 외국인들이 방송에서 많이 활동하기 시작했고 ;비정상회담;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서 한국인들도 ;외국인이라고 해도 한국에 살 수 있고 한국말을 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그건 언론매체의 엄청난 힘이라고 생각한다.문학도가 의료통역사, 의외다. 그리고 상당히 실용적이다. 성격상 다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다 해봐야 알 수 있기 때문에 대기업에서도 일해봤고 의료통역도 해봤고 프리랜서로도 일해봤다. 그러다 보니 교사도 되어봤고 아르바이트, 기자, 방송활동도 하고 있다. 기자일의 경우 러시아 방송(한국에서 러시아말로 나오는 방송)과 한국 방송에서 모두 일해봤다.나이에 비해 매우 많은 경험을 한 것 같다. 지금까지 한 것만으로도 소설책 몇권 분량은 나올 텐데. 나중에라도 책을 쓰고 싶은 꿈이 있다.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일상적으로 늘 한국음식을 먹는다. 다 골고루 좋아하지만 특히 삼계탕, 설렁탕 같은 탕류를 좋아한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이 한국음식을 쉽게 좋아할 것 같지는 않다. 한국음식과 러시아음식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굳이 고르자면 삼겹살 정도랄까. 차이가 너무 크고 조리방법이 너무 다르다.▲ 러시아에 대한 지식이야말로 두 나라를 더욱 가깝게 할 것이라고 지적하는 일리야 벨라코프.한때 이념의 굴레로 단절되다가 한국과 러시아가 이웃이 된지 25년이 됐다. 더욱 가깝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지식이 필요하다. 지금 한국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다. 있다 해도 거의 대부분 왜곡되어 있다. 그 점은 바뀌었으면 좋겠다. 지금 한국에서 찾아볼 수 있는 러시아 관련 정보는 대부분 미국 등 서방을 거쳐 온다. 그것도 굉장히 왜곡되어 있고, 어떨 때는 거짓정보도 있다. 문화도 그렇고 경제, 정치 모두 그렇다.러시아에 대한 인지도가 너무 떨어져 있다. 왜곡된 정보가 너무 많다. 그렇다보니 팬들에게서 비슷한 질문을 너무 자주 받는다. 예를 들어 유튜브에 러시아 관련 동영상이 어떤게 올라왔다면, ;러시아는 정말 그래요?;라고 묻는 식의. 하지만 그건 정말 조작된 동영상이며 러시아를 비하하려고 하는 조작된 동영상인데도 사람들은 그걸 믿는다. 그건 영화처럼 대본도 있고 조작된 동영상이다. 현실과 전혀 관련이 없다.예를 들어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푸틴 대통령에 대한 정보라든가, 러시아의 경제 상태라든가. 모라토리엄 선언 루머 등은 정작 러시아에서 전혀 모르는 상황인데도 퍼지다보니 러시아인들은 ;우리가 정말 망했어?;라고 되묻는 식이다. 그건 전혀 다른 현실이다. 그런 것을 보면 솔직히 화가 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예를 들어 한국 공영방송에서 그렇게 나온다면 어쩔 수 없다. 전세계인들이 다 그렇지만 언론 매체에서 나오는 정보를 곧이 곧대로 믿는다. 나는 한국 방송에서 나오는 러시아 정보가 왜곡되어 있다고 늘 얘기한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기 때문에 내가 오히려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욕을 먹는다. KBS에서 하는 거랑 제가 하는 거랑 너무나 다르다. 사람들은 모두 KBS를 믿지 저를 믿진 않는다.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그 보도를 믿는다. 그렇다보니 한국에 살고 있는 러시아인들이 굉장히 억울해한다. 그런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일리야 벨라코프는 어디에 있든 한국과 관련된 교육을 하게 될 것이라며 한국과의 인연을 강조했다.한국, 한국문화와의 인연은 떼려야 뗄 수 없을 듯 싶다. 한국과의 소통을 통해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나의 꿈은 교수가 되는 것이다. 공부를 계속 해서 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언어학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다. 언어학에 대해 관심도 많고 좋아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조금 더 공부해서 자격을 얻고 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치는 것이 꿈이다. 물론 한국이든, 혹은 제3의 나라에 가서 하더라도 한국과 관련된 교육을 계속 할 것이다.언어학자인 당신이 봤을 때 한국어에는 어떤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나?굉장히 논리적이다. 러시아말과 너무나 비교되는 점인데, 언어학적으로 봤을 때, 예를 들어, 문법에서, 어떤 규칙이 있다면, 한국어는 99% 정도 그 규칙을 따르지만 러시아어는 예외의 경우가 50%정도 된다. 규칙이 있어도 예외가 너무 많아서 다른 언어를 모국어로 하는 학생들에게 러시아말을 가르치면 다들 너무 힘들어한다. 하지만 한국어는 매우 논리적이고 구조가 이해하기 쉬운 언어이다. 규칙을 알면 그 문법을 쓸 수 있게 된다. 독일어와도 비슷한 면이 있다.위택환 코리아넷 기자사진 전한whan23@korea.kr 201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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