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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과 러시아, 가깝기 위해선 지식이 필요’

    ‘한국과 러시아, 가깝기 위해선 지식이 필요’

    최근 한국 공중파 방송에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났다.한국인과 별차이 없이, 아니 오히려 한국인 이상으로 한국어에 능숙하며 한국문화를 심도있게 이해하는 외국인들이 등장한 것이다. ;미수다;, ;비정상회담;으로 상징되는 브라운관의 프로그램들은 다인종, 다문화가 공존하는 한국사회의 세계화를 인식케 했다. 이들 외국인은 한국사회를 세밀하게 관찰한다. 때론 한국인들도 의식하지 못했던 점들을 지적하여 놀라게 한다. 한국문화와 자국문화를 비교하며 문화다양성을 생생하게 알려준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상대의 문화를 존중하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다.일리야 벨라코프. 그는 33세의 러시아 젊은이다.서울에서 비행기로 2시간 못미치는 극동의 항구도시, 블라디보스토크 태생이다.13년전 이 젊은이는 탄탄한 한국어실력 하나 믿고 대한민국에 유학왔다. 러시아 국립극동대학교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그는 국제교류재단의 장학생으로 연세대학교 어학당에서 공부했다. 그의 한국어 실력은 더욱 늘어나 그는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한국어 능력시험 최고 등급의 보유자가 됐다. 이후 한국어 공부를 계속하여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사우스캐롤라이나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인류사회언어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한국어를 비롯,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스페인어에 능통한 그는 탁월한 어학실력과 탄탄한 지식을 무기로 의료전문통역, 대기업직원, 칼럼니스트, 기자, 방송인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를 만나 한국 생활과 두 나라의 문화, 역사 등을 주제로 솔직하게 대화를 나눠봤다.▲ 한국어 전문가인 일리야 벨라코프. 방송출연, 언론기고 등을 통해 활발하게 문화소통을 하고 있다.능숙한 한국어가 인상적이다. 한국어 공부 어떻게 했나? 러시아어와는 전혀 다른 문법, 어휘, 관용구 등이 익숙해지기까진 어려움을 컸던 듯 싶은데. 2003년에 처음 온 후 한국생활 13년차이다. 한국어학과를 졸업했지만 특별한 노하우나 교수법은 없었다. 노력이었던 것 같다. 교재보고 단어 외우고 문법을 공부하는 식이다. 교수진은 99%가 러시아인, 한 두명 정도 한국인이었다. 제가 한국어를 배울 당시 러시아에 이미 한국어 전문가들이 어느 정도는 있었지만 상당히 많았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중국어학과의 교수가 20명이라면 한국어학과 교수는 1명 정도 되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었다.많은 언어 가운데 한국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일부러 한국말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우연히 공부하게 됐다. 고등학교 때부터 다른 언어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대학에 가면 무조건 언어학과에 입학해야겠다고 결심해서 여러 언어과에 지원했고 한국어도 그 중에 하나였다. 다른 언어과는 떨어졌지만 한국어학과는 붙었다. 그렇게 시작됐다. 우연에 의해 시작했지만 한국과 인연을 맺으면서 이렇게까지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한국어 관련 논문 주제는? 언어학 전공으로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논문 주제는 학사와 석사와 비슷하다. ;러시아에서 보는 한국어 통사론과 한국에서 보는 러시아어의 통사론의 차이점;이었다.러시아에 한국의 대중문화, 예술은 얼마나 확산되고 있는지?처음에 한국말을 배울 때 2000년대 초만 해도 한국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만약 한국음악이나 영화를 보고 듣고 싶다면 한국에 가는 친구들에게 부탁해서 가져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국말로 된 책, 음악, 영화 등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2000년대 초기에는 인터넷도 많이 발달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유튜브, 페이스북 같은 SNS 개념 자체도 없었기에 한국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옛날에 우리 교수님이 방학때 한국에 갔다와서 가져온 책들, CD들이 유일했다. 정말 ;맨 땅에 헤딩했다;는 표현이 맞다.비슷한 상황이었겠지만 1990년대 한-러 수교 시 한국에는 러시아어 통역도 없어서 급조해야 했다. 맞다. 그만큼 교류가 없고 서로에 대한 지식이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에 비하면 채 10년도 안된 짧은 시간동안 엄청나게 많이 달라진 것 같다.푸쉬킨, 톨스토이, 토스토옙스키를 비롯, 솔제니친에 이르기까지 러시아문학은 100년이 넘도록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에 왔을 때 러시아 작품들이 널리 번역돼 있다는 사실에 어떤 느낌이었나? 한국에 러시아 문학작품이 많이 번역, 소개되어 있는지 몰랐었다. 처음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것도 사실 많이 알려져 있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 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느껴진다. 수많은 작가, 예술가들이 많다 있다 보니 그런 것 같다.;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푸쉬킨의 이발소의 그림에서 교양인의 서가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문화는 한국사회 곳곳에 깔려 있다. 한국문학이 러시아에는 사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도 요즘에는 조금씩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대중적이지 않다. 두 나라의 문화 차이가 너무 커서 현재로서는 러시아 사람들 정서에 잘 안맞는다고 봐야 한다.유튜브에 올라 있는 러시아 국가 동영상 가운데 러시아를 대표하는 문화, 과학, 발레 등 대중예술 유명인들이 줄줄이 나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진정한 콘텐츠의 나라는 오히려 러시아 같다. 그럼에도 활용을 덜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그렇다. 활용을 덜 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활용이 많이 안되어 있다. 원인은 재정적인 것에 있다고 본다. 현재 러시아 상황에서 한계가 있다고 본다.오래전부터 러시아와는 소통을 많이 해왔다. 문학은 물론이고 카츄샤, those were the days, 이오시프 코프존의 백학 등 한국인의 애송곡에 이르기까지 등 한국의 일상에는 러시아의 유산이 많다. 한류가 비교적 짧은 시기에 형성됐다면 러시아 문화는 오래가는 것 같다. 끈끈한 생명력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한국 문화에 러시아적인 요소가 많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 맞다.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잘 모르는 역사적인 사실이 있는데 고종이 일본을 피해 러시아 영사관으로 도피한 사건(아관파천)이 있었다. 한국의 일상에 파고든 러시아 문화의 생명력은 아마도 지리적으로 봤을 때 이웃나라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지금 보면 아무래도 문화교류보다 경제교류가 훨씬 더 많다. 물론 경제교류가 많아져야 문화교류도 훨씬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정치, 경제적으로 더 많은 교류를 하면 문화쪽으로도 더 많은 교류가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대조국전쟁의 승리, 러시아인의 저항력은 끈기 있기 투쟁을 해서 독립을 이룬 한국인의 그것은 상통하는 것 같다. 어떤 정서가 그렇게 강인하게 견디게 했나? 러시아인으로서 러시아 문화를 볼 때 러시아 사람들은 자유를 추구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본다. 국민성을 봤을 때 그런 것 같다. 러시아의 역사를 볼 때, 전쟁이 없는 때가 없었다. 한국과 비교할 때 한국이 5세기에 한번 전쟁이 난다고 치면 러시아는 10년간 전쟁이 항상 있어왔다. 아마 전쟁이 200개는 될 것이다. 이웃국가, 해외 국가와도 전쟁이 많았다. 영토싸움도 정말 많았고. 한국의 마지막 전쟁은 70년 전이었지만 러시아는 지금도 전쟁이 진행 중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누구보다도 전쟁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한국보다 더 훨씬 잘 안다. 러시아인은 그런 국민성을 갖고 있으며 자유를 추구하면서 독립을 아주 중요시하는 민족이다. 굉장히 많은 어려움, 힘든 점을 겪으면서 그런 역사를 밟아온 민족이다보니 그런 것 같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때, 당시 소련 체제에서 굉장히 심한 이데올로기가 있었다. 스탈린 같은 아주 강한 이데올로기가 러시아 사람들의 머릿속에 심어졌다. 그로 인해 싸울 마음(항전 의지)이 아주 강해졌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한다.스탈린시대의 엄혹함도 있었지만, 또 잘 견뎌내서 얻어낸 것도 많아 보인다.그렇다. 평가가 매우 모순적이다. 부정적인 면도 당연히 있었다. 지금도 역사전문가들의 평가가 아직 엇갈린다.메드베데프 대통령 때의 러시아 국가 버전을 보니 스탈린, 레닌, 니콜라이2세 등 러시아 역대 황제들과 사회주의 시절과 오늘날의 지도자들까지 모두 나온다. 좋다, 나쁘다를 떠나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것 같다.러시아 사람들은 과거 스탈린이 아무리 나쁜 짓을 했었다 하더라도 높이 평가하는 부분이 있다. 그 이유는 2차 세계대전 승리와, 과거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나라가 전 세계의 리더가 되었고 산업화를 이뤄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올랐기 때문이다. 러시아판 산업화를 이뤘고. 스탈린이 있을 때 러시아가 인류사상 처음으로 우주선을 발사했고, 최초의 우주인도 러시아사람이었다. 그런 이유들 때문에 긍정적인 평가도 존재한다.사실 1957년 스푸트니크(Sputnik,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쇼크는 대단한 경이였다. 그럼에도 1980년대 러시아의 상황이 왜 급히 악화된 것일까. 내부적인 이유들이 매우 많다. 매우 복잡하다.일리야 씨가 나고 자란 지난 30년이 러시아 역사의 격변기일 것 같다. 구 소련 말기에 태어나서 글라스노스트, 페레스트로이카 등 수많은 변화를 경험했으니까. 나는 소련 때 태어났지만 사실 그땐 너무 어려서 아무 기억이 없다. 기억이 나는 것은 1990년대 러시아는 소련의 붕괴 후 민주주의가 된 것이다. 2000년대 러시아도 변화가 너무 심했다. 그리고 지금은 극도의 자본주의, 즉 완전한 자본주의로 갔다.▲ 러시아 사회의 급변과 세대간 갈등의 심화, 적응을 위한 어려움 등을 밝히는 일리야 벨라코프. 한국의 현실과 비슷한 면이 적잖아 보였다.사회주의 막차에서 고도의 자본주의로 가다보니 변화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부모님도 아마 아직까지도 적응이 잘 안되신 것 같다. 얘기를 하다보면 그런 느낌이 있다. 아직은 소련 분위기에서 사시는 듯한 분위기가 있다. 그로 인해 세대 갈등도 많다. 가치관이 너무 많이 변해서이다.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와 젊은 세대의 갈등보다 더 심한 것 같다. 이데올로기, 가치관, 세계관이 너무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러시아를 제외하고 전세계에서 볼 수 없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이런 역사적인 경험을 갖고 있는 나라가 러시아 밖에 없다. 사회주의 체제 10년 만에 갑자기 민주주의 국가가 된 것이다.옛날에 사회주의의 길을 걸은 나라들, 중국, 쿠바, 북한, 베네수엘라 등은 아직도 사회주의의 길을 걷고 있지만 러시아는 완전히 바뀌었다. 그렇게 심한 변화를 겪은 나라는 러시아 밖에 없다. 똑같은 나라에서 그렇게 심한 변화를 겪다보니 사람들도 적응이 안돼서 1990년대 많이 힘들었다.당신의 고향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 원동지역은 구한말 한국인들이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거점이었다. 음으로 양으로 러시아의 지원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러시아가 한국사람들을 많이 지원한 이유는 시기가 겹쳐서 그랬을 것 같다. 그때는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했을 때이다. 당연히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일본이 20세기 초 태평양 지역에서 평가가 엇갈릴 수 있는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당연히 러시아사람들도 피해를 겪은 사람들에게 마음이 더 갔을 것이다. 피해자에 대한 공감일 것 같다. 러시아도 일본에 피해를 당했기 때문에 충분히 공감을 느꼈을 것이다.12년의 한국생활을 하면서 많은 변화를 경험했을 것이다. 특히 러시아의 고향과 서울은 대조적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적응했나? 한국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없었나? 사실 크게 문화적인 충격을 받진 않았다. 열린 마음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한국에 오기전에 이미 한국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었고 한국말도 어느 정도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도 어느 정도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있을 때 이곳에 유학온 한국학생들과 많이 어울렸기 때문에 문화적인 충격을 겪진 않았다. 사전준비를 했기 때문이다.물론 적응기간은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 관한 지식이 없이 한국에 온 외국인과는 전혀 다른 경우였다. 어느 정도 얇게라도 한국에 대한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문화충격 없이 연착륙을 했고, 1년 내지 1년 반 동안 그냥 즐겁게 살았다. 크게 어려움이 없이, 물흘러 가듯이 살았다. 하지만 한국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일을 하고 사회에 깊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직장생활을 하기 시작한 시점부터는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한국의 직장 문화가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서열문화가 심했다. 러시아에도 서열문화가 존재하지만 한국만큼 심하진 않다. 문화적으로 이해가 안가거나 이해가 가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음주 문화와 관련, 통계적으로 봤을 때 한국인들이 러시아인보다 술을 더 많이 마신다. 보드카는 알코올 도수가 높아서 러시아인들이 많이 못 마시지만 소주는 보드카만큼 도수가 높지 않다보니 한국인들이 진짜 많이 마신다. 그렇다보니 ;1인당 0리터; 같은 수치로 보면 한국사람들이 더 많이 마신다.한국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매우 다양하다. 여행을 좋아해서 많이 돌아다니는데, 여행을 아무리 많이 다녀도 늘 한국에 다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한국이 너무 편하기 때문이다. 다 고르고 싶지만, 특히 서울 같은 경우 인프라가 정말 잘되어 있다. 한국 사람들은 전혀 모르지만 외국사람들이 항상 말하는 점이 지하철에 화장실이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깨끗하고 무료이기도 하다. 외국인들 입장에서 이건 정말 신기한 일이다. 유럽의 경우 지하철에 화장실이 있을 수도 있지만, 만약 있다 해도 모두 유료다.사실 한국도 30년 전에는 화장실이 정말 더러워서 모두가 가기 싫어했다. 노력 하다보니 깨끗하게 됐다. 그렇다. 정말 많이 변했다. 서울에 2003년에 처음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서울도 엄청 많이 바뀌었다. 처음 서울 왔을 때는 청계천이 없었고 대중교통도 많이 없었다. 지하철은 7호선까지 있었다. 지금은 9호선도 운행된다. 러시아와 비교한다면, 도시마다 매우 다르지만 모스크바의 경우 서울만큼 잘 되어 있다. 나머지 도시들은 큰 차이가 있다. 60개가 넘는 민족들이 살고 있는 워낙 큰 나라이다 보니 그렇다.방송활동을 하면서 사교육, 선행학습 한국사회의 아픈 구석을 속속들이 지적한다. 매의 눈을 어떻게 갖게 됐나? 매의 눈이라기보다는 한국에 살면 다 보이게 되어 있다. 고립되어 사는 것도 아니고, 한국 사람들, 친구들과 같이 매일 얘기하고, 뉴스도 보다보니 보인다. 2003년에 한국 처음 왔을 때에는 백인들이 그다지 없었다. 한국인들은 백인이면 으레 미국인으로 대했다. 불쾌했다.아마도 그것은 한국사회가 외국인들과 많이 못 어울려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그 이유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런 이유로 인해 러시아 포함 동구권 사람들은 서운함이 많았다. 나도 그랬지만 지금은 너무 많이 변해서 그렇지 않다. 지금은 정말, 10년 만에 놀랄 정도로 많이 바뀌었다.;빨리 빨리;의 한국문화는 외국인에 대한 태도 또한 유연하게 바꾼 면이 있다. 맞다. 그건 장점일 수도 있다. 많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거기에는 당연히 언론 매체의 힘도 없지 않다. 처음 ;미녀들의 수다;를 통해서 한국사람들에게 ;외국인들도 한국말 할 수 있다;는 의식이 심어졌다. 그 다음에 외국인들이 방송에서 많이 활동하기 시작했고 ;비정상회담;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서 한국인들도 ;외국인이라고 해도 한국에 살 수 있고 한국말을 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그건 언론매체의 엄청난 힘이라고 생각한다.문학도가 의료통역사, 의외다. 그리고 상당히 실용적이다. 성격상 다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다 해봐야 알 수 있기 때문에 대기업에서도 일해봤고 의료통역도 해봤고 프리랜서로도 일해봤다. 그러다 보니 교사도 되어봤고 아르바이트, 기자, 방송활동도 하고 있다. 기자일의 경우 러시아 방송(한국에서 러시아말로 나오는 방송)과 한국 방송에서 모두 일해봤다.나이에 비해 매우 많은 경험을 한 것 같다. 지금까지 한 것만으로도 소설책 몇권 분량은 나올 텐데. 나중에라도 책을 쓰고 싶은 꿈이 있다.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일상적으로 늘 한국음식을 먹는다. 다 골고루 좋아하지만 특히 삼계탕, 설렁탕 같은 탕류를 좋아한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이 한국음식을 쉽게 좋아할 것 같지는 않다. 한국음식과 러시아음식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굳이 고르자면 삼겹살 정도랄까. 차이가 너무 크고 조리방법이 너무 다르다.▲ 러시아에 대한 지식이야말로 두 나라를 더욱 가깝게 할 것이라고 지적하는 일리야 벨라코프.한때 이념의 굴레로 단절되다가 한국과 러시아가 이웃이 된지 25년이 됐다. 더욱 가깝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지식이 필요하다. 지금 한국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다. 있다 해도 거의 대부분 왜곡되어 있다. 그 점은 바뀌었으면 좋겠다. 지금 한국에서 찾아볼 수 있는 러시아 관련 정보는 대부분 미국 등 서방을 거쳐 온다. 그것도 굉장히 왜곡되어 있고, 어떨 때는 거짓정보도 있다. 문화도 그렇고 경제, 정치 모두 그렇다.러시아에 대한 인지도가 너무 떨어져 있다. 왜곡된 정보가 너무 많다. 그렇다보니 팬들에게서 비슷한 질문을 너무 자주 받는다. 예를 들어 유튜브에 러시아 관련 동영상이 어떤게 올라왔다면, ;러시아는 정말 그래요?;라고 묻는 식의. 하지만 그건 정말 조작된 동영상이며 러시아를 비하하려고 하는 조작된 동영상인데도 사람들은 그걸 믿는다. 그건 영화처럼 대본도 있고 조작된 동영상이다. 현실과 전혀 관련이 없다.예를 들어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푸틴 대통령에 대한 정보라든가, 러시아의 경제 상태라든가. 모라토리엄 선언 루머 등은 정작 러시아에서 전혀 모르는 상황인데도 퍼지다보니 러시아인들은 ;우리가 정말 망했어?;라고 되묻는 식이다. 그건 전혀 다른 현실이다. 그런 것을 보면 솔직히 화가 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예를 들어 한국 공영방송에서 그렇게 나온다면 어쩔 수 없다. 전세계인들이 다 그렇지만 언론 매체에서 나오는 정보를 곧이 곧대로 믿는다. 나는 한국 방송에서 나오는 러시아 정보가 왜곡되어 있다고 늘 얘기한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기 때문에 내가 오히려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욕을 먹는다. KBS에서 하는 거랑 제가 하는 거랑 너무나 다르다. 사람들은 모두 KBS를 믿지 저를 믿진 않는다.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그 보도를 믿는다. 그렇다보니 한국에 살고 있는 러시아인들이 굉장히 억울해한다. 그런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일리야 벨라코프는 어디에 있든 한국과 관련된 교육을 하게 될 것이라며 한국과의 인연을 강조했다.한국, 한국문화와의 인연은 떼려야 뗄 수 없을 듯 싶다. 한국과의 소통을 통해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나의 꿈은 교수가 되는 것이다. 공부를 계속 해서 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언어학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다. 언어학에 대해 관심도 많고 좋아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조금 더 공부해서 자격을 얻고 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치는 것이 꿈이다. 물론 한국이든, 혹은 제3의 나라에 가서 하더라도 한국과 관련된 교육을 계속 할 것이다.언어학자인 당신이 봤을 때 한국어에는 어떤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나?굉장히 논리적이다. 러시아말과 너무나 비교되는 점인데, 언어학적으로 봤을 때, 예를 들어, 문법에서, 어떤 규칙이 있다면, 한국어는 99% 정도 그 규칙을 따르지만 러시아어는 예외의 경우가 50%정도 된다. 규칙이 있어도 예외가 너무 많아서 다른 언어를 모국어로 하는 학생들에게 러시아말을 가르치면 다들 너무 힘들어한다. 하지만 한국어는 매우 논리적이고 구조가 이해하기 쉬운 언어이다. 규칙을 알면 그 문법을 쓸 수 있게 된다. 독일어와도 비슷한 면이 있다.위택환 코리아넷 기자사진 전한whan23@korea.kr 201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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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미얀마 총선은 역사적인 이정표”

    한국, “미얀마 총선은 역사적인 이정표”

    정부는 지난 8일 실시된 미얀마 총선에 대해 ;역사적인 이정표;라고 평가했다. 정부는 10일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미얀마 총선이 미얀마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국제사회의 지원 하에 평화롭게 질서 있게 치러진 것을 환영한다;며 ;한국정부는 미얀마 민주주의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이번 총선에 선거 참관단을 파견하고, 500여명의 국제 선거 참관단과 함께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10일 외교부 성명을 통해 미얀마 총선 결과에 환영하며 이번 미얀마 총선은 민주주의발전에 있어 역사적인 이정표라고 평가했다.이어 ;이번 역사적인 총선결과를 발판으로 미얀마 정부가 개혁;개방 정책과 국가발전을 계속해 나가기를 기대하며, 한-미얀마 양국 간 우호협력 관계 발전을 위해 미얀마 정부와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이하나 코리아넷 기자사진 코리아넷DBhlee10@korea.kr 201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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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부가 노래하는 삶의 이야기

    농부가 노래하는 삶의 이야기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노래하는 농부가수, 김백근 씨의 깊고 거친 목소리에는 농부로 살아가면서 느낀 삶의 애환, 그리고 인생 이야기가 담겨있다.7일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의 가락골마을에서 김 씨는 자신의 세 번째 ;논두렁 콘서트;를 열었다. 지금까지 쌀을 재배하는 그의 논두렁에서 공연이 열렸지만, 올해는 우천으로 인해 비닐하우스 밭에 직접 간이무대를 설치했다.▲ 농부가수 김백근 씨가 7일 경기도 광명시 자신의 비닐하우스에서 세 번째 ;논두렁 콘서트;에서 자신이 직접 작곡한 ;농부의 마음;을 열창하고 있다.비닐하우스 안은 대금과 바이올린, 드럼, 베이스, 기타, 피아노의 선율로 울려 퍼졌다. 떡과 막걸리를 나눠 마신 관객들은 이내 술과 음악에 취했다.30년 전 이곳 고향으로 내려와 농사를 짓기 시작한 김 씨는 6대째 벼농사를 짓고 있다. 직접 개발한 기능성 붉은 쌀 ;김백근 백작수수쌀;을 생산해오고 있다. 농부가 되기 전 좋아했던 음악은 힘든 농사일에 큰 위안을 주었다. 포기할 수 없는 음악에 대한 열정은 그가 매년 논두렁 콘서트를 이어오고 있는 이유다.▲ 동네 주민들은 물론 다른 지역에서 한걸음 달려온 팬들이 비닐하우스에서 열린 농부가수 김백근 씨의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6년째 콘서트를 이어오고 있다. 멈추지 않고 매년 열고 있는 이유는? - 저와의 싸움이에요. 음악을 통해, 제 목소리를 통해 농부들의 마음과 먹거리에 대한 소중함을 알리고 싶어요. 누군가는 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해요. 조금이나마 농민들을 대변해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콘서트를 계속 해온 이유는 주변 분들의 응원 덕분이죠. 노래는 그런 성원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는 저만의 방법이에요.지난 1년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 올해 농사는 정말 힘들었어요. 농부가 된지 30년 째인데, 특히 올해는 가뭄 때문에 눈물이 날 정도로 힘들었어요. 거의 포기 상태였죠. 농사를 그만 두고 싶었는데, 이렇게 포기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최선을 다했어요. 결국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주시더라고요. 그 답례로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요.힘든 순간에도 노래는 제게 큰 위안이 됐어요. 올해 ;빛;이라는 곡을 만들어요. 살아가면서 어두움이 있더라도, 빛을 봤을 때 그리고 그 빛이 전달됐을 때 이 세상은 더 밝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오늘 콘서트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나? - 오늘 공연은 사람, 친구, 그리고 자연에 대한 소중함을 노래할 거에요.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충실하신 분들이잖아요, 오늘의 공연은 다신 올 수 없는 순간이고, 지나가는 순간이에요. 이 안에서 지난 날의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농부에 대한, 그리고 자연에 대한 소중함을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글;사진 손지애 코리아넷 기자jiae5853@korea.kr 201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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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아이슬란드 정상회담

    한-아이슬란드 정상회담

    ▲ 박근혜 대통령(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9일 올라퓌르 라그나르 그림손 아이슬란드 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한국과 아이슬란드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북극항로 개척을 위한 협력을 강화해나가기로 했다.박근혜 대통령은 9일 청와대에서 올라퓌르 라그나르 그림손 아이슬라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북극항로 개척을 위한 협력 강화와 함께, 내년부터 북극정책 계획을 상호 논의하는 정책협의회를 추진키로 했다.기존 항로에 비해 북극항로를 이용할 경우 부산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거리가 2만2천km에서 1만5천km로 약30% 단축되고 운항일수는 40일에서 30일로 10일 단축된다.이와 함께 양국 정상은 친환경에너지 관련 경험과 기술을 교류하고 기후변화대응을 위한 국제적 노력도 강화해나가기로 했다.박 대통령은 ;아이슬란드는 지속 가능한 북극 개발에 큰 기여를 해오고 있고, 또 청정에너지를 통해서 에너지 자립을 달성하고 있다;며 ;이번 회담이 이런 분야에서의 협력확대를 포함해 양국 간 실질적 협력을 확대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이에 대해 그림손 대통령은 ;[아이슬란드가 2013년에 창설한] 북극서클 회의(Arctic Circle Assembly)는 매년 북극과 관련한 가장 큰 회의체로 성장하게 되었다;며 ;한국은 그 점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고 말했다.손지애 코리아넷 기자사진 청와대jiae5853@korea.kr▲ 박근혜 대통령(오른쪽)이 9일 청와대에서 올라퓌르 라그나르 그림손 아이슬란드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왼쪽)이 지켜보는 가운데 올라퓌르 라그나르 그림손 아이슬란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방명록에 서명하고 있다. 201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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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드라마, 세계를 꿈꾸다

    아시아 드라마, 세계를 꿈꾸다

    "아시아의 드라마가 어떻게 아시아권을 넘어 세계 시청자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7개국 드라마산업 관계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댔다.이들은 '텔레비전 드라마의 국가별 트렌드와 인기 요인'을 주제로 4일부터 8일까지 일본 기타큐슈에서 열리는 ;아시아 드라마 콘퍼런스;에서 각국의 드라마산업 동향을 소개하고 아시아 드라마가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제10회 아시아 드라마 콘퍼런스의 첫 일정으로 열린 '아시아 문화교류 특별 표창' 시상식에서 배우 지성을 비롯, 한국, 일본, 중국의 드라마 배우, 감독, 등이 아시아 드라마 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특별표창을 수여받았다.올해로 10회째인 ;아시아 드라마 콘퍼런스;는 2006년 한국, 일본, 중국의 방송작가를 중심으로 시작된 뒤 아시아 최고의 방송작가와 배우, 제작자가 참가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드라마 전문 콘퍼런스로 자리잡았다.▲ ;미생;을 비롯한 한국의 인기드라마 관련자료가 콘퍼런스 행사장에 진열되어 있다. 올해에는 아시아 '텔레비전 드라마의 국가별 트렌드와 인기 요인'을 주제로 열리고 있다.4일 열린 콘퍼런스 10주년 기념 '아시아 문화교류 특별 표창' 시상식에서는 ;올인;과 ;태양을 삼켜라;의 유철용 감독과 배우 지성을 비롯, 일본의 유명 작가 겸 제작자 故 이치카와 신이치, 배우 후에키 유우코, 중국 감독 시아시아오원, 배우 후거가 아시아 드라마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특별표창을 받았다.본회의에서는 한국의 정윤정 작가와 중국 리우이 작가, 베트남티비 응우옌 안 부 마케팅 책임자, 일본 코시미즈 야스히로 작가 등이 참여, 자국의 인기 드라마와 영향력에 대해 발표했다. 특히 한국 드라마 ;미생;과 일본 드라마 ;파트너;의 작가들이 직접 작품에 대해 대화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그 밖에도 한국과 중국, 일본 드라마 제작사, 방송프로듀서 등 관계자들이 각국 드라마의 최신 유행과 역사, 드라마, 산업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번 콘퍼런스가 문화 교류와 융합의 기회를 더욱 확대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며, 앞으로도 전 세계인이 공감하고 좋아할 수 있는 좋은 드라마가 제작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제10회 아시아 드라마 콘퍼런스 포스터이하나 코리아넷 기자사진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hlee10@korea.kr 2015.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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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한 특별전: 천국행 바람 담은 용신

    마한 특별전: 천국행 바람 담은 용신

    자수처럼 정교하다. 금을 조각해 만든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발등에는 막 하늘로 날아가려는 듯 용이 고개를 추켜들고 있다. 마치 신발 주인을 태우고 천상으로 데리고 갈 것처럼.용 장식 때문에 용신이라고도 부르는 금동신이 국립나주박물관 특별전에서 공개됐다. 발등의 용 장식에서부터 신발 바닥에 섬세하게 새겨진 연꽃과 도깨비 문양까지 상태가 거의 완벽하게 유지됐다. 지난해 전남 나주의 정촌 고분에서 출토된 것으로 이 지역에 자리했던 고대 국가 마한의 유물.▲ 2014년 전남 나주 정촌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신이 일반에 공개됐다.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장식이나 문양이 잘 보존되어 발굴 당시 많은 이목을 끌었다.마한은 고구려, 신라, 백제를 통칭하는 삼국시대 이전에 한반도에 있던 고대 국가다. 정확한 건국연대는 알 수 없으나 역사서에 전해지는 내용으로 백제 (B.C. 18 - 660) 건국 전후에 있었던 나라로 추정한다. 삼국시대를 다룬 역사서 '삼국사기'(1145)에는 백제를 건국한 온조왕이 건국 초기 마한에 사신을 보냈다는 내용 등이 남아있다. 중국 역사서 '삼국지'에도 마한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다. 역사학자들은 기록을 종합하여 마한이 백제와 함께 한반도 서남부에 자리했다가 백제가 성장하면서 서남부, 지금의 전라도 지역으로 세력이 축소됐고 결국 서서히 백제에 편입됐다고 보았다.▲ 금동신과 함께 나주 정촌 고분에서 출토된 토기(위)와 전남 고흥 야막 고분에서 출토된 갑옷(아래). 갑옷은 3차원 영상으로 복원, 전시됐다.이번 마한 특별전은 마한의 중심지에서 열리는 셈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2005년 설립 이후 10년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하고 소장한 유물들 450여 점을 한 자리에 모았다. 금동신과 함께 마한 대표 유물이라 할 옹관도 눈길을 끈다. 마한인들은 무덤의 관으로 옹기를 썼다. 고대 마한 장수가 입었던 갑옷은 3차원 영상으로 복원되어 전시됐다. 이들 유물과 더불어 주요 발굴 현장과 연구 과정에 대한 영상도 함께 상영될 예정.이번 특별전은 다음달 20일까지 계속된다.장여정 코리아넷기자사진 문화재청icchang @korea.kr 2015.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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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브르박물관에서 만난 한국의 문화유산

    루브르박물관에서 만난 한국의 문화유산

    ▲ 루브르박물관에서 지난 4일 시작된 ;국제문화유산박람회;에 주빈국으로 초청된 한국의 다양한 공예품들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루브르박물관에서 열린 ;국제문화유산박람회;에서 한국의 문화유산이 주인공으로 관람객을 맞이했다.지난 4일부터 8일까지 루브르박물관에서 열린 ;국제문화유산박람회;에 주빈국으로 초청된 한국은 조선시대 전통신, 궁중음식, 예복, 가구 등을 선보였다. 박람회를 주최하는 프랑스 공예자인협회(Ateliers D;art de France)는 한국과 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한국을 주빈국으로 초대했다.;기쁜 날(잔지);를 주제한 한국관에서는 전통신발을 만드는 기술 보유자인 ;화혜장(靴鞋匠);과 조선시대 음식의 정수를 담은 ;조선왕조궁중음식; 조리 기능 보유자들의 시연이 진행됐다. 한국관을 찾은 관람객들은 조선시대 궁중에서만 먹을 수 있었던 과자와 떡인 병과를 맛보며 한국적인 달콤함에 취하기도 했다.손지애 코리아넷 기자사진 국립무형유산원jiae5853@korea.kr▲ ;국립문화유산박람회; 한국관에서 맛 볼 수 있었던 조선시대 궁중 간식 ;병과;는 이번 박람회를 찾은 관람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국제문화유산박람회;를 찾은 관람객들이 한국관을 둘러보고 있다.▲ 국제문화유산박람회 개막식 축하공연을 마친 ;진주삼천포농악; 단원이 프랑스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5.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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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아시아와 기상예보기술 공유

    한국, 아시아와 기상예보기술 공유

    ▲ 한국이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한 기상예보 시스템을 아시아 국가와 공유한다. 사진은 한국의 기상예보 시스템 운영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한 필리핀,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3개국 기상청 직원들.한국이 아시아 3개국과 정보통신기술(ICT)를 접목한 한국 기상예보 시스템을 공유했다.한국은 필리핀,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3개국의 기상청 직원 14명을 대상으로 10월 18일부터 11월 7일까지 3주 동간 'ICT를 이용한 기상예보 과정' 초청연수를 실시했다.이 연수과정은 ICT를 접목한 한국의 기상예보 시스템을 국제사회와 공유하기 위해 시작됐으며 3년 과정으로 운영된다. 1~2차년도에는 실무자를 대상으로 기상업무와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하는 이론 및 실습 교육을, 3차년도에는 중간관리자 이상을 대상으로 수치예보 모델 운영 교육과 전문가 자문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3국은 2013년부터 이 연수과정에 참여해왔으며 올해로 3년차가 됐다.수치예보는 기상기술을 총체적으로 활용하는 종합기술이므로 독자적으로 수치예보기술을 확보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기상청은 이런 이유로 3개년의 단계적 과정을 통해 자체적으로 실행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고 밝혔다.ICT 기상예보 과정 개설 초기부터 참가해 온 스리랑카의 참가자는 이번 과정을 마치며 이 프로그램이 "한국의 기상예보 기술을 자국 기상서비스에 적용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며, ;향후 한국과 발전적인 관계를 유지해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장여정 코리아넷기자사진 기상청icchang@korea.kr▲ 한국의 기상예보 시스템 운영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한 필리핀,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3개국 기상청 직원들이 기상 예보 관련 현장을 견학했다. 2015.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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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음식 요리법 시리즈2: 설렁탕

    한국음식 요리법 시리즈2: 설렁탕

    설렁탕은 쇠머리;쇠족;쇠고기;뼈;내장 소의 모든 부위를 모두 넣고 장시간 푹 고아서 만든 곰국이다.설렁탕의 기원과 이름의 유래에 관한 여러 설이 있지만 신라시대부터 지내온 선농단(雪濃湯)의 친경행사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조선시대에는 왕이 선농단에서 문무백관과 생쌀;생기장과 소;돼지를 제단에 희생의 제물로 올리고 제사를 지낸 뒤 적전(籍田, 제단 옆에 마련된 농사 짓는 토지)에 직접 소를 끌고 밭을 가는 친경(親耕)을 하여 천지신명에게 풍년을 기원하고 백성들에게 농사의 본을 보였다. 선농제 행사가 끝나면 제물로 올린 소를 잡아 통째로 끓여 선농제에 참례한 모든 이들이 나눠 먹은 것이 설렁탕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왕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선농단에서 친경행사와 선농제를 지내왔다. 행사를 마치면 제물로 쓰인 소를 통째로 잡아 모든 이들과 나눠 먹은 것이 설렁탕이라고 한다. 사진은 올 7월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서 열린 선농제를 마치고 전통 설렁탕 재현행사를 하는 모습.▲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선농단은 농사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왕이 친히 경작 시범을 보이고 농사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선농제 행사가 열리던 곳이다.설렁탕은 소의 뼈와 쇠머리;사골;도가니;사태고기;양지머리;내장 등 잡육, 내장을 넣고 10여 시간 끓여낸다. 이렇게 끓이면 골수가 녹아 뽀얀 국물이 만들어진다. 여기에 밥을 말고 각자 입맛에 맞게 소금과 고춧가루, 파를 넣고 먹는다. 이 국물은 단백질이 풍부해 겨울철 영양식으로도 좋다. 단백질 함량이 높아 병의 회복에도 도움을 주며 면역력도 길러준다. 또, 칼슘도 풍부해서 뼈를 튼튼하게 만들어 골다공증 예방에도 좋다.쇠고기 외에도 설렁탕에 들어가는 대파는 육류의 비린내를 없애준다. 파에 있는 유화알릴이라는 성분이 신경 흥분을 가라앉히는 역할을 하며 두통, 오한에 좋고 대소변을 잘 나오게 돕는다. 또, 파의 녹색 부분에는 비타민A와 백색부분의 비타민C가 다량 함유되어 있다. 파 특유의 자극적인 냄새성분인 알릴설파이드는 몸에 흡수되면 자율신경을 자극해서 에너지 대사를 높이고 디프테리아, 결핵균, 이질균, 포도상구균의 증식을 억제하는 정균작용을 한다.▲ 설렁탕* 재료 및 분량사골 1kg, 도가니 600g, 우설 700g, 튀하는 물 5kg(25컵)쇠고기(양지머리) 200g, 쇠고기(사태) 200g 물 7kg(35컵)향채: 파 30g, 마늘 65g, 생강 20g, 양파 50g파 40g, 소금 8g(⅔큰술), 후춧가루 0.3g(⅛작은술)▲ 설렁탕의 주재료인 사골, 도가니, 양지머리, 우설 등 쇠고기, 파, 양파, 마늘 생강* 재료 준비1. 사골과 도가니;우설은 물에 담가 1시간 마다 물을 갈아주면서 3번 정도 핏물을 뺀다.2. 양지머리와 사태는 핏물을 닦고, 향채는 깨끗이 손질하여 씻는다.3. 파는 손질하여 깨끗이 씻은 후 2cm 정도로 썬다.* 만드는 방법1. 냄비에 튀하는 물을 붓고, 센불에 20분 정도 올려 끓으면 사골;도가니;우설을 넣고, 5분 정도 끓여 튀해서 건진다. 냄비에 사골;도가니를 넣고, 물을 부어 센불에 1시간 정도 올려 끓이다가 약불로 낮추어 5시간 정도 끓인다.2. 떠오르는 거품과 기름을 걷어 내고, 우설;양지머리;사태를 넣어 1시간 정도 끓이다가 향채를 넣고, 다시 1시간 정도 더 끓인 후 약불로 낮추어 30분 정도 더 끓인다.3. 우설과 쇠고기가 익으면 건져서, 가로 3cm 세로 4cm 두께 0.2cm 정도의 편육으로 썰고, 육수는 식혀서 기름을 걷어 낸다.4. 냄비에 국물을 붓고 센 불에 10분 정도 올려 끓으면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한다.5. 그릇에 썰어 놓은 편육과 국물을 담고 파를 얹어 낸다.▲ 설렁탕 조리 시 떠오르는 거품과 기름을 걷어내고, 썰은 쇠고기를 넣어 1시간 정도 끓이다가 향채를 넣고 다시 1시간 정도 더 끓인 후 약불로 낮춰 30분 정도 더 끓인다.▲ 쇠고기가 익으면 건져서 일정한 크기로 썰은 뒤 국물을 넣은 대접에 고기를 넣고 파를 얹어 낸다.윤소정 코리아넷 기자협조 한국전통음식연구소자료 아름다운 한국음식 100선, 연합뉴스arete@korea.kr 2015.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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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자연을 담은 전통주, 중원 청명주

    한국의 자연을 담은 전통주, 중원 청명주

    향긋한 술 내음이 충북 충주시 창동의 한 가옥을 가득 채운다. 이 곳은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청명(음력3월)에 마시는 절기주 청명주(淸明酒)를 4대째 빚고 있는 전통주 제조장이다.▲ 4대에 걸쳐 청명주를 빚고 있는 충청북도 충주시 창동의 제조장충주의 옛이름인 중원(中原)에서 만들었다 해서 ;중원 청명주;로도 알려진 청명주는 금빛과 주홍빛이 감돌아 감과 비슷한 색을 띄며 숙취가 없기로 유명하다. 순찹쌀, 재래종 통밀 등 100% 국내산 원료를 사용하고 인공감미료나 방부제 등은 일체 넣지 않았다.청명주는 조선시대 이전부터 빚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궁중에 진상주로 선택되었고, 사대부 집안에서는 귀한 손님 접대용으로 쓰였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1681-1763)은 ;성호사설;에 ;나는 평생 청명주를 가장 좋아한다;고 적기도 했다.▲ 청명주 무형문화재 보유자 김영섭 씨는 4대째 대를 이어 청명주를 빚고 있다.▲ 청명주 제조법이 적힌 ;향전록;은 복원 당시 중요한 자료가 됐다.청명주의 계보는 일제강점기 때 잠시 맥이 끊겼지만 1986년 故김영기 옹에 의해 복원되어 현재 그의 아들 김영섭 씨가 물려받아 4대째 대를 잇고 있다. 청명주를 빚는 방법에 대해 기록한 문헌, ;향전록;은 복원 당시 중요한 자료가 되었고, 이 문헌 덕분에 청명주 제조법은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됐다.▲ 청명주 무형문화재 보유자 김영섭 씨가 누룩, 찹쌀, 고두밥 등으로 만든 반죽을 이용, 전통방식으로 청명주를 빚고 있다.청명주의 특징은 충주 노은찹쌀과 밀 누룩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술을 빚을 때 사용하는 물 또한 특별하다. 청명주 무형문화재 보유자 김영섭 씨는 ;옛날에는 남한강물과 달천강물 사이에 가장 깨끗한 물을 길어 사용했다;며 청명주 제조법에 담긴 정성을 강조했다.얼마 전 농림축산식품부는 이 곳을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했다. 여기에서는 충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직접 청명주를 만들어보고 시음해보는 ;청명주 빚기 체험;과 술잔을 비롯, 다양한 그릇을 만드는 ;공예 체험;을 할 수 있어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신재원 코리아넷 기자사진 전한 코리아넷 기자Jennys88@korea.kr 2015.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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