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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넷뉴스

게시일
2016.09.21

술

한국 사람들이 러시아에 대한 갖고 있는 편견 중에 하나는 바로 술이다. 러시아가 추운 나라라서 모든 러시아 사람들이 물 먹듯이 독한 술을 마신다는 이야기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많이 들었다. 여기서 문제는 ‘러시아가 추운 나라’라는 점부터 시작해서 ‘모든 국민들이 술을 많이 마신다'는 편견에 이르기까지, 깨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깨야 할지 모를 정도라는 점이다. 편견은 우리의 의식에 정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여러 번 깨닫게 해 준 대화가 있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하더라도 선입견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믿지 않는다. 몇 년 전에 어떤 회사 대표가 러시아인들은 아기들에게 몇 살부터 보드카를 주기 시작하냐고 나에게 물어봤을 정도로 머릿속에서 딱 고정된 인식이 정말 흥미롭고 일반 상식을 무시하면서 아무런 근거가 없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억울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

일리야 벨랴코프(Ilya Belyakov)

▲ 일리야 벨랴코프(Ilya Belyakov)

러시아 사람이지만 나는 술을 전혀 안 마신다. 첫술은 한국에 오고 나서야 먹어 봤다. 그것도 맥주였다. 보드카는 몇 년 전에 처음으로 먹어 봤다. 서른 살이 넘어서 말이다. 그리고 주변 친구들도 한국 사람들이 놀랍게 볼 수 있지만 역시 나와 마찬가지이다. 한국에 오기 전에 러시아에 살았을 때도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을 거의 못 봤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술을 좋아해서 많이 마시고 아예 병처럼 술꾼이 돼버린 사람들이 당연히 있다. 새해 맞이나 생일파티 같은 큰 명절이나 기념일에 보드카나 다른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당연히 많지만, 갓 태어난 아기한테 보드카를 주는 건 누가 봐도 잘못된 생각이 분명하지 않을까 싶다.

통계를 보면 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의 경제전문매체 쿼츠(Quartz)의 2013년 기준 통계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일인당 알코올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한다. 러시아는 한명 당 일주일 동안 평균 6.3잔으로 자랑스러운 2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1위와 차이가 너무나 크다는 것도 충격적인 사실이다. 1위인 대한민국은 일주일 동안 한명 당 13.7잔이다. 바로 2배의 차이다. 나 또한 개인적으로 한국에 처음으로 왔을 때 한국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신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선 러시아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의 술 마시는 습관부터 다르다. 러시아 사람들 대부분은 평소에 많이 안 마시다가 명절 때나 파티 때 '올인'식으로 술을 엄청나게 많이 마시는 편이다. 거기에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을 선호하는 러시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외국인들이 '아, 역시 러시아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시는구나!'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그러나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많이 마시는 것뿐이지, 정말 술꾼이 아닌 이상 평일에 술을 피하는 것이 러시아 사람들의 보통 습관이다. 퇴근해서 즐겁게 술을 마시는 사람이 별로 없고 주중에 술을 소비하는 사람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도 곱지 않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술 습관이 다르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해 본 나도 많이 놀라운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주중에도 자주 하는 한국식 회식이다. 월요일이든 목요일이든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날에도 상사가 제안만 하면 온 팀이 회식하러 나간다. 한국 문화와 정서상 이런 자리를 피하면 동료들도 상사도 안 좋게 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같이 가게 되고, 한국만의 특유한 술 강요 문화가 있어서 외국인 직원들이 힘들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런 이유로 한꺼번에 소비하는 술의 양이 많지 않을 수도 있으나 자주 회식 자리가 생기면 술을 많이 마시게 된다. '많이' 마시지는 않더라도 '자주' 마시게 되면 그런 '자주'가 쌓여서 '많이'가 된다.

나는 지금도 술을 안 좋아한다. 맛을 몰라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웬만하면 술자리를 피하고 술자리에 참석해도 술을 많이 안 마시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이런 나의 모습에 약간의 변화가 있긴 하다. 살면서 느낀 것 중에 하나가 어떨 때는 술을 마셔도 되는 상황이 있다는 것이다. 커피나 음료수를 마시면서 잘 안 통하는 이야기도 있고 상대방을 좀 더 잘 알고자 전략적으로 술을 권하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 술은 방법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술은 절대로 답이 되지가 않다는 점을 모두가 다 유의했으면 좋겠다.

이 글을 쓴 일리야 벨랴코프씨는 러시아 출신으로 현재 방송인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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