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일
- 2016.08.29
빈곤에서 번영, 그리고 공존으로 (2부)
(1부에 이어)
- 요즘으로 말하면 최상의 스펙인데 시험 공부해서 편하게 사는 삶도 있었을 텐데 굳이 낯설고 물선 이곳에서 머문 계기는?
직접 사회에 나와 공부한 것을 실천해보려고 하니 마땅치가 않았다. 일단 내가 있었던 학교 서클이 노동운동 쪽이라 노동조합에 가려고 하다, 그러나 한 선배를 통해 농민운동을 접하고 소개를 받아 1976년 이곳으로 오게 됐다. 당시에는 무엇을 하겠다는 어떤 뚜렷한 생각을 가지고 온 건 아니었다.
가족들은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으니 다 된 것처럼 생각했다. 언제든 빨리 사법시험을 보고... 나도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었고. 그런데 어쩌다 보니 선배들한테 이끌려서... 고시 공부를 하고 그럴 때가 아니더라. 가족한테 우리도 힘들지만 우리보다 힘든 사람들이 많다, 다 같이 나아져야 한다, 이렇게 설득을 했지. 다른 건 후회되는 게 없는데 돌아가신 부모님께 죄송한 게 많다.
- 친환경농업의 장점은 분명 있다. 질도 좋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을텐데.
많은 사람들이 다 이용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고 농업과 자연환경, 인류의 삶과 자연과의 관계, 이런 차원에서 가격에 관계없이 이런 농사와 삶의 방식을 실천하는 것에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지금 기후변화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데 우리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개인적으로는 가격을 매기고 사고 팔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이 공급하고, 물품을 대 주고 또 필요한 만큼 돈을 내는 이런 실험도 해 보려고 한다. 자급자족의 취지에서.
- 선생의 자급자족 주장은 맹자의 항산(恒産), 항심(恒心)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맹자는 자급자족을 주장한 게 아니라 분업을 강조했다. 그 당시도 제자백가중 농가(農家)가 있다. 이들은 스스로 농사짓고 먹고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가의 지도자 허행(許行, heohaeng)에 대해 맹자가 비판했다. 허행의 모자(冠)을 보고 직접 만들었냐고 반문했다. 곡식과 바꿔 구매한 거라고 하자 왜 자기손으로 짜지 않냐고 반문했다. 농사짓는 사람, 정치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孟子 縢文公上) 공자도 제자들을 정치하는 사람들로 가르쳤다. 제자 가운데 번지(樊遲)가 논농사에 대해 배우고 싶다고 하자 자신은 잘 모른다고 했다. 밭농사에 대해서도 묻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번지가 나가자 공자는 소인배라고 개탄했던 일화도 있다. 우리는 농사를 해서 자급자족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두드러져 보인 거라고 생각한다.
▲ 달걀 선별시설 내부. 섭씨 16도를 유지하며 중량, 신선도, 파손여부 등을 엄격히 적용하여 골라낸다.
▲ 선별과정을 거쳐 상품화된 유정란.
▲ 과자공장에서 달걀을 원료로 과자를 만드는 모습.
▲ 유정란과 과자 등 생산된 제품들은 유기농업제품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 눈비산 공동체의 농업연수과정에 대해 설명해달라.
눈비산 농장에서는 1968년 설립 당시부터 농업기술교육을 실시해왔다. 교육은 1년 단위로 진행되며 농사철의 경우 한 달에 한 번, 주말 1박2일 교육이 일반적이다. 정부에서는 연수생 1인당 60~80만원 가량을 지원하는데, 지원자가 많아 심사를 거쳐 가장 절실하고 농사지을 의사가 강한 사람, 그리고 젊은 사람을 우선 선발한다.
한국에 연수를 받으러 온 외국 공무원들이나 농업인들도 현장학습이나 실습을 위해 이곳을 찾는다. 최근에는 영국출신 청년이 남미에서 한국여성을 알게 돼 그걸 계기로 이곳에 찾아오는 등 연수생들의 국적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교육생과 공동체 일원들의 식탁을 책임지기도 하는 텃밭에서 옥수수, 딸기, 고추, 가지, 상추 등의 재배 실습을 한다. 이 곳에서 교육생들은 기계나 비닐 등을 전혀 쓰지 않고 호미, 삽 등만을 이용해 농사짓는 법을 배운다. 교육과정에는 이 밖에도 집 짓기, 길쌈 견학 등이 포함돼 있다.

▲ 눈비산 공동체에 체험하러 온 외국인 실습생들. 해를 거듭할수록 외국인 방문이 늘고 있다.
- 귀농현상도 늘어나지만 도시와 농촌의 문화차이로 인한 갈등도 적잖다. 문화격차를 줄이는 방법이 있다면.
이곳 괴산 지역만 해도 젊은 사람들을 포함해서 농사지으러 온 사람들도 있고 은퇴해서 온 사람들도 있고, 요즘 귀촌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마을에는 심지어 새로 유입된 사람들이 더 많기도 하고. 그 중에 여러 재능이 있는 사람들도 많다. 러시아 문학 박사, 물리학 박사 이런 분들도 있고... 문화적 소양이 있는 분들, 소위 지식인들이 공유를 한다. 괴산에서도 이런 저런 모임을 많이 하고 있다.
▲ 눈비산 공동체의 실습생들. 한달에 1회씩하는 일반연수에서 상주하며 농업의 전과정을 익히는 심화단계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 오늘날 한국사회의 물질적인 풍요는 지난 개발연대와는 비교할 수 없으나 상대적 박탈감은 심하다. 젊은 세대의 좌절감은 깊어 보인다. 기성세대로서,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안타깝다. 일자리가 없는 젊은 사람들이 와서 참여할 수 있는 농사 캠프 같은 것을 만들 생각을 하고는 있다.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순 없겠지만... 사실 이미 어느 정도 하고 있고... 다른 사람과의 차이, 상대적 박탈감은 신경 안 쓰는 것이 좋다. 내가 좋아하는 삶을 자신있게 살면 그게 가장 좋은 거지. 남이 어떻게 사는지 비교할 것 없다. 옛날에야 일 못하면 굶어죽고 그랬지만 지금이야 웬만해선 굶어 죽진 않으니까... 헬조선이니 박탈감이니 이런 건 자기 마음가짐이 달라져야 한다. 남들하고 똑같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또 자연 속에서 이렇게 사는 건 돈도 안 들고 이용하는 것 아닌가. 모든 걸 돈으로 평가해서 다 할 건 없다.

대담 위택환 코리아넷 기자
정리 장여정 코리아넷 기자
사진 위택환 코리아넷 기자, 가나안농군학교 제공
whan23@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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