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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넷뉴스

게시일
2016.02.04

이기호의 ‘사과는 잘해요’

“저를 정육점 아저씨라고 생각하면서 아주 세게 졸랐으니까, 이제 괜찮을 거에요.”

이 문장을 곰곰이 생각해보자. 누가 누구의 목을 졸랐나? 누가 누구에게, 무엇 때문에 사과하고 있는가? 누구 사이에 이제 다 괜찮아질 것이란 말인가? 마우리츠 에셔(Maurits Escher, 복잡하고 기하학적인 작품으로 알려진 네덜란드 출신 판화가, 1898~1972)의 작품 속 세계와 같이 비정상적인 세계에서 정신 이상은 정상인에게 유일한 피난처다.

날개 달린 붉은 도마뱀처럼 난데없이 휙 날아들면서, 혹은 미치광이나 난폭한 죄수에게 입히는 하얀 구속복을 입고 완충장치가 설치된 벽을 기어오르듯, 이기호의 2009년 장편소설 ‘사과는 잘해요 (At Least We Can Apologize)’ 속 뒤틀린 세계는 독자에게 찬물을 끼얹는다. 이 세계의 비정상성은 첫 페이지부터 두드러진다. 헌터 톰슨(Hunter S. Thompson, 글쓴이의 주관이 강하게 드러나는 곤조 저널리즘을 창시한 미국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이나 조지프 힐러(Joseph Heller, 2차 세계대전 참전경험을 바탕으로 쓴 ‘캐치-22’ 저자)도 맥을 못 출 듯싶다. 이기호는 착즙기에 레몬을 짓이기듯 작품의 구성을 비틀고, 결국 스토리의 일부는 예술, 일부는 이야기, 그리고 일부는 초신성(超新星)으로 발산된다.

2013년 한국문학번역원의 ‘한국문학총서(Library of Korean Literature)’의 일환으로 크리스토퍼 디카스 번역, 출판된 이기호 작가의 '사과는 잘해요' 영역본.

▲ 2013년 한국문학번역원의 ‘한국문학총서(Library of Korean Literature)’의 일환으로 크리스토퍼 디카스 번역, 출판된 이기호 작가의 '사과는 잘해요' 영역본.

먼저 소설의 배경을 살펴보자. 이기호 판 ‘코크타운’ (찰스 디킨스 소설 ‘어려운 시절’의 배경인 영국의 가상 도시)은 현대 도시의 어두운 아스팔트 위에 펼쳐진다. 획일적인 임대 아파트 단지가 작품 곳곳에 스며 있다. 비정상적인 인간은 위로 뻗은 성냥갑 같은 시멘트 건물 안에 쥐들처럼 살고 있다. 건물 사이에는 세상이 밝은 곳이라는 인간의 어리석은 믿음을 보여주는 빨간색 빛 바랜 그네가 아파트 그림자 속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이곳 주민들은 낙서된 엘리베이터를 느릿느릿 타고 오르내린다. ‘이런 게 인생이지. 인생이 다 이렇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구석의 한 슈퍼 아주머니는 말한다. “더러운 놈의 동네, 내가 빨리 가게를 빼든가 해야지 원!......내가 이번 달 안으로 뜬다, 떠.” 그러나 그녀는 소설이 끝날 때까지 그 곳에 있다.

이야기는 몇 달 전 도시 인근의 한 정신병원에서 시작된다. 등장 인물은 원장, 총무과장, 식당 아주머니, 남자 복지사 두 명. 이 중 키가 작은 쪽은 의사 가운을 입었고 키가 큰 쪽은 대머리 부분을 옆머리로 정성스레 덮고 있다. 종종 관청에서 공무원들이 나와 정신병원이 국가 지침을 지키고 있는지 조사한다. 이런 날에는 환자들의 비닐 침대보가 면 침대보로 바뀐다.

그리고 환자들이 있다. 완곡하게 ‘원생’으로 불리는데 이 환자들 중 두 명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바로 ‘시봉과 나’다. 서술자는 진만이지만 그가 자기 이름을 호칭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32쪽(번역본 기준)에 이르러서야 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다. 이 시설의 두 기둥은 언제나 ‘시봉과 나’다.

이 정신병원에서 시봉과 나는 지속적인 집단구타를 통해 유대를 맺는다. 계속되는 구타. 허리띠. 군홧발. 쇠파이프. 주먹. 전화번호부. 머리에는 삽. 아침. 낮. 밤. 그들은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매를 맞는다. 그러면 이 둘은 웃고 사과한다. 그리고 다시 매를 맞는다. 그러다 구레나룻을 기른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 남자로 인해 소설 1장에서 시설의 비밀이 알려지고, 정신병원은 폐쇄되면서 우리의 ‘추장’과 ‘맥머피’(정신병동을 배경으로 한 미국 소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속 주인공들) 는 세상으로 풀려난다. 이 둘은 시봉의 여동생 시연과 함께 살기 시작한다. 시연은 삼류 매춘부이며 빈대 붙어 살고 있는 동거남이자 포주인 그녀의 남자친구는 경마로 돈을 날리고 있다.

두 주인공은 고향을 향해 여정을 떠나는 오디세우스처럼 소설 초반부 정신병원을 떠난 후 일련의 시련과 고난을 겪으며 사회로 나간다. 병원을 나온 이 둘은 시연의 집까지 걸어가야만 한다. 시골 도로의 갓길을 따라 몇 시간을 걷고 잠시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지난한 여정이다. 경마에 빠진 시연의 남자친구는 둘을 데리고 나가서 일자리를 찾으라고 한다. 둘은 남아 있을 알약을 수거하기 위해 폐쇄된 정신병원에 돌아가 벽을 넘는다. 그 곳에서 예전 원생이었던 실성한 아줌마를 만나고 비닐봉투 한 가득 알약을 구하고 원장의 일기도 발견한다.

구직을 막 포기하려는데 예전에 먹던 약 기운이 온 몸에 다시 퍼지자 둘은 자기들이 가장 잘하는 일이 ‘사과’라는 사실을 상기한다. 둘은 병원에서 매일같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알약을 먹으며 폭력적 상황에 굴종해갔고 구타에 대해 사과해야 했다. 둘은 조그만 ‘사과 대행업’을 시작한다.

시연의 아파트 건너편에는 고지식한 두 사람이 살고 있다. 모차르트 오페라에 광대가 등장한다면 이 작품의 광대는 바로 형과 아우처럼 지내는 과일 가게 주인과 정육점 주인이다. 우리의 주인공 정신병 환자들은 이들을 사과의 대상으로 정하고는 셰익스피어 ‘오셀로’의 이아고처럼 두 사람에게 질투의 씨를 뿌린다. 둘에게 의심의 씨앗을 심으며 사과가 사업으로 될 날을 기다린다. 작은 가게들을 착취하며 조용히 돈벌이 수단을 구축하는 폭력배들처럼 두 주인공도 그렇게 사업을 진행해 나간다. 그리고 프랑스의 대표적 만화 ‘아스테릭스와 예언자(Asterix and the Soothsayer)’에서처럼 대혼란이 일어난다. 두 사람들 사이에 싸움이 터진다. 이제 두 주인공의 사업은 번성한다. 그렇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현대 한국 문학의 기수로 꼽히는 이기호 작가.

▲ 현대 한국 문학의 기수로 꼽히는 이기호 작가.

사회 현실을 보여주는 문학

작가 이기호의 세계는 혼란스럽다. 현대 한국 사회 구조의 뒤틀리고 찢겨진 곳이 미래로 내던져지고 있으며, 명예로운 고결함으로 낭만화된 수 백 년 동안의 과거 때문에 사람들은 현재의 세계화 시대를 대처하기에 충분한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에는 단지 명예로운 행동의 요소들만 남아있을 뿐이다.

광범위한 의미에서 이기호의 세계는 약 50년 간 식민 제국주의라는 칼날로 도려내지고 다시 한번 군부독재라는 칼날을 50여 년간 겪어내며 어떠한 명예스러운 행동도 제거된 세계다. 시봉과 나처럼 충격을 받은 채 21세기에 내던져진 한국의 상처는 봉합되지 않은 채 피를 흘리고, 우리의 그 고통스러운 상처를 보듬으며 위안을 주는 이들은 바로 작가와 소설가, 그리고 시인이다.

진정한 한국인을 보려면 문학 작품을 읽어야 한다. 읽고, 읽고, 또 읽어야 한다. 패스티시(pastiche), 즉 모방한 인위적인 모습이 아니라 진정한 인간적인 한국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한국 문학을 읽어야 한다. 한국 문학을 읽으면 이 나라가 살아있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한국 문학을 읽으면 이곳은 훨씬 멋진 공간이 된다. 싸이도 인정할 것이다.

이러한 현대 한국 문학의 기수로 꼽히는 작가가 바로 이기호다. 올해 44세인 그는 현재 전라남도 광주에 거주한다. 날쌘 산토끼가 펜을 잡은 듯 그의 소설은 과거와 현재 사이를 분주히 오간다. 영화 ‘펄프픽션(Pulp Fiction)’의 장면들처럼 독자는 그의 이야기 조각들을 맞춰야 한다. 하지만 그 속도가 고르지 못하거나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적절한 수준으로 전개되며, 독자는 절대로 감을 잃지 않는다. 작가는 단문을 구사하고 각 장의 길이도 짧다. 심지어 일부 장은 한 페이지 남짓인 경우도 있다. 이 작품의 영역본은 한국문학번역원이 출판한 ‘한국문학총서(Library of Korean Literature)’의 일환으로 2013년 크리스토퍼 디카스(Christopher Dykas)가 번역했다. 이기호는 ‘사과는 잘해요’에서 누군가에게 당신이 하지 않은 일에 대해 사과하고 그 대가로 당신으로부터 돈을 갈취하는 일을 소재로 한 것처럼 ‘비정상적’ 세계에서 ‘정상’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하얀 구속복을 입은 채 천천히 완충장치가 설치된 벽을 기어오른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고백한 다음, 반드시 죄를 지었다. 고백한 내용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아,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출판한 ‘한국문학총서'

▲ 한국문학번역원이 출판한 ‘한국문학총서'

체벌

현대 서양 독자들에게 이기호 세계의 순전한 신체성, 즉 ‘구타’는 충격적일 수 있다. 신체적 잔혹함은 해진 천을 스며드는 땀처럼 문단 사이에 스며있다.

비록 사라져가고 있기는 하지만 체벌은 현대 한국인의 심리 전반에 잔류하고 있으며, 이기호의 소설 ‘사과는 잘해요’에도 퍼져있다.

시봉과 나는 항상 맞는다. 플래시백(flashback, 추억이나 회상 등 과거에 일어난 일을 묘사하는 장면)이 등장할 때마다 두 주인공은 항상 맞고 있다. 작가로서 이기호의 기이함은 분명히 드러난다. 시봉과 나는 맞을 때 웃고 있는 것처럼. 사과하기로 돈을 버는 두 주인공들은 신체적 벌을 영화 ‘파이트 클럽(Fight Club)’에서보다, 일부 고문 장면에서보다 더 심하게 견뎌낸다. 이들은 웃고 사과한다.

이기호는 여러 장에서 이렇게 마무리를 맺는다. "내가 알고 있고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구타와 사과가 전부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한 줄기 빛, 그리고 혼자 일어서기

이기호의 디스토피아적 세계에도 빛은 있다. 세상의 모든 더러운 잔재와 허튼 소리에도 주인공들은 순수한 마음과 친절한 성품, 인간적인 감정을 지닌다. 하지만 독자는 작품의 3분의 1정도까지 읽어야 이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신선한 호흡으로 다가오다가 결국 독자에게 충격을 주며 끝난다. 이기호는 결코 느슨해지는 법이 없다.

시나리오 작가 찰리 카프먼(Charlie Kaufman)이 그의 각본에서 언급했듯이 “마지막 장이 영화를 만든다. 결말에 모두를 놀라게 하라. 그러면 히트작이 될 것이다. 작품에 결함이나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결말에 모두를 놀라게 하면 히트작이 될 수 있다. 결말을 찾아라. 하지만 속여서는 안 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e, 극이나 소설에서 가망 없어 보이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동원되는 인물 또는 사건)를 동원할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등장인물은 반드시 변해야 하며, 그 변화는 등장 인물로부터 나와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모든 것이 괜찮을 것이다.”

그렇다. 이기호도 괜찮다. 괜찮을 따름이다.

깜깜한 밤

이기호의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사과는 잘해요’ 초반부에 등장하는 짧은 회상 장면으로 이 글을 맺는다.

시봉은 이같이 말한다.

“예전에 택시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볼일이 마려운 적이 있었거든.” 시봉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말했다. “그래서 갓길에 잠깐 멈추고 도로 바로 아래에서 쪼그리고 볼일을 봤는데, 일어나니까 택시가 사라졌더라고.” “저런, 널 버리고 갔구나.” “아니. 트럭 아래로 그대로 들어가버렸더라구. 깜깜한 밤이었거든.”

그레고리 C. 이브츠 코리아넷 기자
번역 손지애 코리아넷 기자
gceaves@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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