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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넷뉴스

게시일
2015.11.23

[심층인터뷰] 박시백 화백 : 만화로 조선시대 500년을 풀어내다 (2부)

실록도 사관의 충실도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는 거 같다.
동서 붕당이 되고 나서는 철저히 당파적이다. 똑같은 인물을 놓고도 A당에서는 천하의 몹쓸 사람, B당에서는 훌륭한 사람으로 묘사할 정도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록이 대단한 점이,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렇게 기록할지언정 그 사람의 행동과 말 자체는 사실 그대로 기록했다는 거다.
개인적으로 실록은 정말 어떤 현대 신문, 기록보다 더 대단한 것 같다. 팩트에 대한 기록만큼은 끝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다만 사론과 해설에서 당파적 입장이 드러났을 뿐이다.

그런 기록들이 다 남아있다는 점도 대단한 것 같다. 후대인 우리가 부활시키고 계승해야 하는 부분인 것 같다. 유례없는 역사 기록 시스템 아닌가.
역사를 대하는 관점, 역사 기록물을 대하는 관점. 이것은 정말 대단하다. 선조들이 우리보다 훨씬 낫다.

사관의 평가와 별개로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기록했다는 점에서 박 화백은 조선왕조실록을 높이 평가했다.

▲ 사관의 평가와 별개로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기록했다는 점에서 박 화백은 조선왕조실록을 높이 평가했다.

경종은 어떤가? 어머니를 잘못 만나 고생한 임금 아닌가? 요즘으로 치면 숙종이 최하층 말단의 여성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들이고 재벌가 딸인 장희빈 사이에 태어난 세자를 내치고, 말이 안 되지 않은가?
그렇기도 하지만 정말 문제는, 이미 같은 사례가 성종 때 있었다는 거다. 그러면 이 사례를 교훈삼아 이 아들을 폐세자로 삼든지 아니면 장희빈을 그렇게 죽이지 말든지 했어야지. 그런데 똑같은 반복을 한 거다. 다만 이 때는 장희빈을 죽인 세력 입장에서 볼 때는 장희빈의 아들이 세자에 오른다면 미래가 끔찍한 거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이 세력을 끌어내리려고 했는데, 어쨌거나 당시 주류 세력이었으니까. 그 과정을 지나 경종이 왕이 된 거니까 스트레스도 엄청났고, 몸도 허약한데 정서적으로 많이 위축됐다, 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다가 소론 세력의 지지를 등에 업고 어느 순간 본색을 드러냈다가 결국 허약한 몸 때문에 뜻을 이루지는 못했고.
그러니까 사실 영조의 탕평책이라는 것이 당파 투쟁이 심해서 나온 것이라기보다, 이 과정에서 형을 죽이려고 했다는 대역죄인의 혐의를 받은 영조가, 가담을 했든 안 했든간에, 왕으로서 이 불명예를 벗기 위해 보인 수십 년의 노력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인종은 참 착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착하고 똑똑하고. 계모인 문정황후가 워낙 강한 사람이었으니까 정치에 신물이 났달까 그런 게 있지 않았나 싶다.

식사도 안 하고 그랬다는 걸 보면 체념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똑같이 권력을 쥐어준다고 해도 참 각양각색인 것 같다. 숙종은 또 어떤가. 사극에 제일 많이 등장하는 왕인데... 수렴청정 시절 없이 소년시절 군주가 돼서 46년간 정국을 주도한 걸 보면 정치 수완은 최고가 아니었다 싶다.
수완도 좋고 결단력도 있고. 숙종이 십대에 그렇게 왕위에 오름으로써 관례가 바뀌었다. 원래 수렴청정은 스무 살까지였는데 조선 후기에 와서 숙종이 열네 살에 친정을 해 버리니까 이후 수렴청정은 열 다섯부터, 그래서 열네 살 말년부터 물러나게 됐다.

노회한 신하들이 있었음에도 어린 군주가 남인과 서인간에 교묘한 힘의 향배를 조절하는 능력이 있었다는 것이 참 정치적 능력이 대단한 것 같다.
정치 고단수다. 현대의 정치 리더들을 봐도 정치 투쟁에는 강한데 실제 국정 운영에는 아쉬움을 비치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숙종도 그런 정치투쟁의 견지에서 보면 기술이 빼어나고 정치를 잘 알았지만, 국정 운영에 있어서는 자신만의 정책 비전을 가진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선조도 비슷한 유형의 인물이라고 본다.

2013년 20권으로 완간된 조선왕조실록. 2015년 출간된 개정판에는 복식, 인물의 외양 등 세세한 면까지 실록의 기록을 철저히 고증하여 수정, 반영하고 각 권의 영문 초록을 수록했다.

▲ 2013년 20권으로 완간된 조선왕조실록. 2015년 출간된 개정판에는 복식, 인물의 외양 등 세세한 면까지 실록의 기록을 철저히 고증하여 수정, 반영하고 각 권의 영문 초록을 수록했다.

저평가된 인물들도 있는 것 같다. 특히 최명길은 이순신과 더불어 조선을 구한 인물이라고 생각되는데. 왕은 피난을 보내고 단신으로 적진에 들어가 청과 협상을 하고 말이다.
개인적으로도 조선시대 최고의 재상으로 최명길을 꼽는다. 황희도 자주 오르내리는 이름이지만 황희는 좋은 임금을 만난 덕도 크다고 본다. 재상이 갖춰야 할 자질이 첫째, 국정을 충분히 보좌할 수 있는 판단력, 둘째로는 아닌 것은 끝까지 왕에게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기개라고 본다. 황희는 자문관으로서의 자질은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재상의 자질을 갖춘 인물은 아니었다. 눈치를 많이 살피는 타입이고.
그러나 최명길은 절대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나라와 백성에 이익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의 관점에서 언제나 일관되게 행동했다. 그런데 판단력까지 우수하니까, 정말 최고의 재상이었지. 시에도 능했고 그 시대에 드물게 양명학에도 심취했고.
개인적으로 김상헌과 최명길의 라이벌 구도도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본다. 학교에서 배울 때 이 둘을 라이벌로 배우지 않나. 조선시대에는 김상헌이 기개의 대명사로 고평가받았었고. 그러나 그의 기개는 의리의 차원이라서 재평가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당시 "가는 길은 달랐지만 둘 다 애국이었다"는 평가가 최명길에게 주어진 최고의 칭찬이었지만, 이 두 사람에 대해서는 역사적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본다.
재미있는 것은, 그래도 최명길에 대해 "위급한 경우를 만나면 앞장서서 피하지 않았고 일에 임하면 칼로 쪼개듯 분명히 처리하여 미칠 사람이 없었으니, 역시 한 시대를 구제한 재상이라 하겠다. 졸하자 상이 조회에 나와 탄식하기를 '최상(崔相)은 재주가 많고 진심으로 국사를 보필했는데 불행하게도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진실로 애석하다'"라고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실록의 사관 평가를 보면 요즘의 기준으로 봐도 소신이 있다.
개인적으로 그런 부분은 소신이나 용기라기보다는 사관에게 주어진 특권이라고 본다. 그래도 벌을 받지 않는. 다만 예종 때 이런 일이 있었다. 한명회에 대해서 지나치게 솔직한 평가를 기록한 사관이, 제출 이후 후한이 두려워진 거다. 그래서 편집자에게 부탁해서 수정 제출을 했다. 이것을 듣고 연달아 몇몇 다른 사관들도 한명회, 신숙주 등에 관한 기록을 수정했다. 그런데 이것이 예종에게 발각된 거다. 예종 입장에서는 왕은 두려워하면서 대신들에 관해서는 우려를 했다는 데에 분노해서 한번 처벌받은 적이 있다. 그리고 이후 무오사화가 한번 있었고. 그 이후로는 이렇게 수정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 자리를 잡으면서, 사관들은 언제나 특권을 가진 존재들이었던 거다.

이런 시스템이 오늘날의 국가 기록 시스템에도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은 그런 기능을 언론이 대체하고 있으니까. 다만, 조선시대에는 누구나 정책에 대해 논할 수 있었다. 언론 삼사는 비판과 견제가 본업이었고, 공론화가 가능했고, 삼정승이 또 마지막으로 견제를 할 수 있었다.

인터뷰 내내 어떤 조선왕조 역사나 인물에 대해서도 척척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는 박 화백에게서 13년간의 노고와 내공이 느껴졌다.

▲ 인터뷰 내내 어떤 조선왕조 역사나 인물에 대해서도 척척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는 박 화백에게서 13년간의 노고와 내공이 느껴졌다.

조선왕조실록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을 든다면? 태조? 정조?
크게 들면 세종과 이순신, 더 나아가서는 정도전, 최명길, 대원군 등을 꼽겠다.

영문판 작업이 진행중이라고 들었다. 완역본은 언제 나오나?
휴머니스트 위원석 주간 : 내년 말쯤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서강대학교 국제한국학과에서 김동택 교수 지도 하에 번역을 진행중이다. 이번 개정판에 실린 영문 초록도 그쪽에서 작업했다. 서강대에서 정부의 지원을 일부 받고, 이쪽(출판사)에서 일부 지원하고 해서 진행하고 있다.

영문판이 나온다면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휴머니스트: 또 한국학과가 외국 대학 곳곳에 있는데, 영어로 된 한국사 자료가 많지 않다고 한다. 이 학생들에게도 좋은 자료가 될 것 같다.

정말 대단히 방대한 작업이었을 것 같다. 직접 손으로 노트에 기록했다고 들었는데.
막상 읽어도 워낙 방대하고 복잡해서, 직접 적어서 정리하지 않으면 머리에 남질 않았다. 손으로 직접 적고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통해서 독자들과 대화할 계획인가?
초반 인터뷰 당시에는 역사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원래 어릴 때 하고 싶었던 SF를 하고 싶기도 했고.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주어진 틀이 있는 것 같다. 당분간 계속 역사를 그리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나이가 서른이면 하고 싶은 것 다 해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으니... 재미 삼아 짬짬이 다른 일을 할 수는 있겠지만, 역사가 주요 프로젝트가 될 것 같다.

그럼 다음으로 일제시대를 다루고 그 다음에는...?
손이 허락하는 한 그렇게 될 것 같다.

대담 위택환 코리아넷 기자
정리 장여정 코리아넷 기자
사진 전한 코리아넷 기자
whan23@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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