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일
- 2015.08.24
원산지에서 평가받는 한국산 머루와인
와인은 서구문명의 산물이다.
인류는 야생에 자라는 포도를 가공하여 술을 만든게 와인의 시초다.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와인은 진화의 진화를 거듭하여 우리의 일상에서 뺄 수 없는 기호품이 됐다.
한국에도 와인문화는 발달해있다. 대기업이 수준높은 와인을 만든지 이미 한세대가 지났으며 주택가 주위에는 와인 갤러리 와인바가 즐비하다. 이제 한국산 와인은 기업을 넘어 장인에 의한 수준 높은 질을 자랑한다.
이 가운데 일반 포도가 아닌 산머루로 와인을 만들어온 장인이 있다.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감악산 자락에서 한국산 머루로 와인을 만들어온 ‘산머루농원’ 의 설립자, 서우석 씨다.
▲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산머루농장’의 서우석 대표.
사시사철 일조량이 많고 배수가 잘되는 감악산 중턱에서 재배한 산머루로 만들어진 서 회장의 와인은 그의 성을 따서 ‘머루 드 서(Meoru De Seo)’라는 이름으로 와인 애호가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드라이(dry), 스위트(sweet) 두 가지 맛으로, 3년부터, 5년, 10년 등 숙성시기가 각각 다르다.
서 씨가 파주에 정착한 것은 1977년이다. 당시 흑염소 키우는 일에 종사했던 그는 흑염소를 키우기 적당한 곳을 찾아 파주로 왔다. 감악산에 흠염소를 방목하며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야생 산머루 군락지를 발견했고, 탐스럽게 여문 산머루를 맛보고 사람 손이 가면 보다 많은 산머루를 수확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 Meor ‘산머루농원’의 서우석 씨가 지난 30년 넘게 제조해온 산머루 와인 ‘머루 드 서’는 드라이(왼쪽), 스위트(오른쪽) 두 가지 맛으로 나온다.
▲ 스위트맛의 ‘머루 드 서’
여러 번의 시행 착오 끝에 야생산머루 재배 방법을 정립하여 국내 최초로 머루재배단지를 조성했다. 이후에도 머루만 재배하는 것이 아니라 머루를 가지고 제품화, 상품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머루와인.
일반 적포도로 만든 와인과는 달리 단맛과 신맛이 나는 머루와인은 국내뿐 아니라 일본, 싱가포르, 미국, 홍콩 등까지 수출되고 있다.

▲ ‘산머루농원’의 머루와인 숙성실.
▲ 서우석 씨의 산머루와인은 일반 포도와인과 달리 전통옹기에서 숙성된다.
산머루농원은 단순히 와인생산에서 벗어나,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직접 딴 머루로 와인, 쨈, 초콜릿 등을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농장도 운영하고 있다. 농장 주변에는 캠핑장도 조성되어 있어, 바비큐를 해먹으며 자연 속에서 캠핑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 산머루농원에는 방문자들이 직접 딴 산머루로 와인, 초콜릿, 쨈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서우석 씨를 만나 와인 이야기를 들어봤다.
- 와인과 인연을 맺기 전 뽕나무, 흑염소 등 전혀 다른 업종에 종사했습니다. 변신이 간단치 않았을텐데요.
염소 기를 목적으로 파주에 온지 3년째 되는 해였어요. 이른 아침, 염소 떼를 산으로 몰고 올라가서 방목하고 바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는데 건너편 산에서 탐스럽게 열려 있는 머루송이를 발견했습니다. 이후 매번 산에 갈 때마다 머루를 봤어요. 사람 손길이 안 간 이런 곳에서도 저런 탐스러운 머루가 열린다는 것을 보고 ‘사람 손길이 가면 더 훌륭한 머루가 달릴 텐데’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머루 12주를 가져다가 집 마당에 심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머루 한 송이도 안 달리더라고요. 수소문 끝에 경기도 남양주에 故김홍집 선생이 개량 산머루를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어요. 오토바이를 타고 남양주까지 달려가서 그를 만났죠. 도대체 머루가 안 달리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 분도 20여 년 전에 저와 똑같은 경험을 했더군요. 알고 보니, 머루에도 암나무, 숫나무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김 선생은 암수 꽃이 한 줄기에 동시에 펴서 교배가 될 수 있는 머루 품종을 20여 년 연구 끝에 발견한 장본인이었습니다. 개량 묘목 1주에 1,500원씩 총 1,500주를 샀습니다. 지금도 1주에 1,500원인데, 모두들 그가 저에게 바가지를 씌웠다고 말하죠. 하지만 저는 결코 비싸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 분이 20여 년 간 연구를 하며 흘린 땀을 생각하면 어떻게 바가지를 씌웠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 노력의 결과를 그냥 돈을 주고 가져다 심는 것인데 당연히 그만큼의 보수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죠.
▲ 서우석 씨가 최초로 머루를 심었던 집 앞 마당.
▲ ‘산머루농원’에 탐스럽게 여문 머루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그렇게 머루를 집으로 가져와 심었죠. 처음엔 그냥 거름만 많이 주면 잘 자라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냥 콩나물같이 자라나더라고요. 나무에서 싹이 하나도 안 나오고요. 1,500주 중에 다섯 주만이 살아남았습니다. 그 다섯 주로 재도전을 해서 소득작물로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결국 탐스럽고 맛 좋은 머루가 열리더군요.
-포도도 아니고 머루로 와인을 만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는지요.
머루 재배가 정착되면서 주변 농가에서 너도나도 심으면 과잉생산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대비책을 고민한 끝에 머루를 가공해서 상품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떠올랐죠.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머루와인이었습니다. 문제는 와인에 대해 전혀 지식이 없었다는 거죠. 어렸을 때 할머니가 막걸리를 항아리에 담그는 모습을 떠올렸죠. 할머니가 막걸리 항아리를 따뜻한 안방 아랫목에 넣어두었던 것을 생각하고, 막걸리처럼 누룩을 넣으면 되겠다 싶어 누룩을 넣었더니 와인에서 막걸리 냄새가 나더라고요.
그렇게 실패하고 나서 여러 책들을 보면서 과실주는 발효가 필수인데, 발효라고 하니 빵 효모가 생각났죠. 그래서 빵 효모를 넣었더니 이번엔 빵 냄새가 나더라고요. 여러 번 실패를 했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처럼, 고민하고 있는 찰나에 와인전문가 한 분을 만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 분으로부터 와인 효모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머루 와인이 탄생했습니다.
▲ 서우석 씨가 지난 30여 년 간 머루와인을 제조하며 경험했던 다양한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있다.
- 포도와인과 비교해 산머루로 만들어진 와인 맛은 어떻게 다른가요? 머루 와인에 대한 프랑스 등 유럽인의 반응은?
포도로 만들어진 와인보다 신맛이 강해요. 어느 날 유럽에서 활동한 와인소믈리에들이 저희 농장에 찾아왔었죠. 그때 각각 5년과 19년 된 머루 와인을 내놓았는데, 맛보고는 숙성기간을 정확히 맞추더라고요. 19년 된 와인에 대해서는 프랑스 보르도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하고 맛이 비슷하다며, 이정도 수준이면 프랑스 와인과 충분히 경쟁할 정도의 품질이라고 호평하더군요. 가격으로 환산하면 최대 50만원 정도의 고가 와인이 될 것이라고 평가해서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프랑스, 칠레 등 와인산업이 활발한 나라에 비해, 와인생산 정보도 얻기 힘들었을 텐데 그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오로지 ‘주경야독(晝耕夜讀)'이었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와인에 관련된 책들을 읽었습니다. 가장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서점의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이론지식만으로는 실제 현장에서 적용하는 것에 한계가 있었죠. 때마침 농촌진흥청의 농업기술센터연구소에서 ‘유럽 포도와인연수단’을 모집하는 공고를 보게 됐어요. 그런데 모집기간이 딱 그날 마감이었죠. 곧장 연구소를 찾아가서 ‘무조건 나는 가야 된다’고 했습니다. 와인을 만들려면 공부가 필요하다고 애절하게 간청했죠. 그 열정과 애절함이 통했는지, 저를 받아주시더군요. 프랑스와 독일에 가서 15일간 연수를 받았습니다. 가는 와인공장마다 배울 것들이 천지였어요. 재배부터 가공, 판매까지 다양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 뒤로도. 기회 될 때마다 이탈리아, 호주, 등 와인 만드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 다녔죠. 그 결과 저만의 ‘와인 교과서’가 만들어졌어요. 게르마늄 지대,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은 최고 품질의 와인을 만들 수 있는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 앞으로 이루고 싶은 소망은 무엇인가요?
지금은 정부로부터 국고를 지원받고 이 농장에서 농대생, 농업인, 귀농민들을 대상으로 총 7개 과목으로 기술전수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조건 없이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것이 제 소망입니다.
손지애 코리아넷 기자
사진 전한 코리아넷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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