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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넷뉴스

게시일
2015.01.15

죽기 전까지 국정 챙긴 조선 왕의 일기

조선시대 1752년부터 1910년까지 국왕의 동정을 기록한 일기 ‘일성록(日省錄)’ 중 제22대왕 정조(재위 1776-1800)의 기록이 최근 한글로 번역됐다.

일성록은 조선 제1대 왕 태조(재위 1392-1398)부터 제25대 왕 철종(재위 1849-1863)에 이르기까지 472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책인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시대 왕의 비서실역할을 했던 승정원에서 취급한 문서와 사건을 기록한 ‘승정원일기’와 더불어 조선시대 3대 국가기록물 중 하나다.

 

 

조선시대 제22대 왕 정조의 통치기록인 ‘일성록’

 

▲ 조선시대 제22대 왕 정조의 통치기록인 ‘일성록’

정조는 국정 진행상황을 파악하고 반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1752년 일성록을 처음 만들었고, 이후 대한제국이 멸망한 1910년까지 158년에 걸쳐 꾸준히 기록됐다. 정조의 기록은 일성록 전체 분량의 40%를 차지한다.

한국고전번역원이 번역한 정조의 일성록 국역본에는 그의 국정철학과 함께 그의 마지막 사흘도 담겨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1800년 8월 중순부터 정조는 며칠째 음식을 넘기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할 정도로 종기를 심하게 앓았다. 서거 하루 전인 1800년 8월 17일 정조는 “도목정사(都目政事,`정기 인사)가 임박했는데 정관의 일이 딱하게 되었다”며 “민사(民事)에 관련된 일이 있으면 비록 지금 같은 상황에서라도 낱낱이 내게 물어서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심한 고통 속에서도 그는 마지막까지 병상에서 업무보고를 챙기며 국정에 매진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5일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일성록은 왕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됐다는 점에서 사관이나 승지가 쓴 실록, 승정원일기에 비해 왕의 통치 철학이 선명하게 드러난다”며 “내용도 실록에 비해 훨씬 자세하고, 사료적 가치가 높다”고 평했다.

실제로 정조 때 흉년을 맞아 전국에서 식량 구호 제도인 ‘진휼’을 실시했는데, 일성록에는 지역별로 곡식이 얼마나 배포됐는지, 고을마다 굶주린 사람이 몇 명인지, 재원은 누가 마련했는지 등 세세한 기록들이 담겨있다.

2004년부터 10년간 일성록 번역에 매달린 김성재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 2004년부터 10년간 일성록 번역에 매달린 김성재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2004년부터 일성록 번역에 매달렸던 김성재 번역위원은 1년에 원고지 3600장 분량의 번역문을 소화해야 했다. 그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800년 8월 16일, 오후 5~7시에 상(정조)이 창경궁 영춘헌에서 승하하였다’는 15자의 원문 번역을 마치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 컴퓨터 앞을 잠시 떠나있어야만 했다”며 “부모님을 떠나 보내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그는 굉장히 명민하면서도 정서적으로 불안했던 사람”이라며 “아버지 사도세자와 관련된 국면에서 감정 기복이 특히 심했다. 어렸을 적 아버지의 충격적인 죽음이 트라우마로 남았던 것 같다”며 그가 바라본 ‘인간 정조’의 모습을 전했다.

 

 

일성록 국문번역에 관한 15일자 동아일보 기사

 

▲ 일성록 국문번역에 관한 15일자 동아일보 기사

일성록 국역본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http://db.itkc.or.kr/index.jsp?bizName=MI

글 손지애 코리아넷 기자
사진 한국고전번역원
jiae5853@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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