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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넷뉴스

게시일
2014.12.23

64년을 이어온 청량감, 칠성 사이다

1955년대~1966년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추억 가운데 하나가 소풍, 그리고 소풍 때 먹었던 음식이다. 당시의 추억을 자극하는 가장 일반적인 소풍 도시락은 김에 각종 야채를 돌돌 말아 넣은 김밥과 삶은 계란이었다. 여기에, 시원한 청량감을 더해주는 탄산음료 사이다까지 갖춰지면 완벽한 소풍 도시락의 조합이었다.

특히 경제사정이 넉넉지 못 했던 과거, 사이다는 소풍이나 운동회처럼 특별한 날에만 맛볼 수 있는 고급 음료이자 별미였다. 사이다를 넉넉히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곧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이러한 이유에서 사이다는 아직까지도 50-60대 사이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자극하는 매개체로 남아 있다.

초록색 유리병에 하얀색 글씨가 돋보이는 '칠성사이다'는 한국을 대표하는 청량 음료다.

▲ 초록색 유리병에 하얀색 글씨가 돋보이는 '칠성사이다'는 한국을 대표하는 청량 음료다.

초록 바탕에 큰 별이 찍힌 용기의 '칠성사이다' 여전히 지금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친근한 한국의 대표적 청량 음료다. 한 모금 마셔보면 먹어보면 레몬과 라임의 향이 입 안에 퍼지고, 달짝지근하면서 톡 쏘는 듯한 자극적인 청량감이 목까지 전해진다. 약품이 넉넉지 않았던 때는 마시면 트림이 나온다고 하여 소화제 대용으로 쓰이기도 했다.

 시원하고 상큼한 탄산 음료인 칠성사이다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 시원하고 상큼한 탄산 음료인 칠성사이다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현재까지 64년 간의 명맥을 이어온 칠성사이다의 역사는 19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에 '탄산음료'란 것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30년대. 주로 일본 제품이었다. 이에 영향을 받아, 이후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950년 5월 '동방청량음료' 회사가 '칠성사이다'를 출시했다. 처음엔 창립주주 7명의 성이 각각 다르다는 의미에서 '칠성(性)'으로 이름 지었으나, 이후엔 밤하늘을 밝히는 북두칠성처럼 국내 음료업계를 빛내자는 소망을 담아 칠성(星)으로 의미를 바꿨다.

당시, 경쟁사들과의 사이다 경쟁은 치열했다. 해방 직후에 나온 서울사이다, 삼성사이다, 스타사이다 등부터 킨사이다, 해태사이다, 천연사이다를 비롯, 외국에서 온 스프라이트나 세븐업 등 사이다 종류는 넘쳐났다.

그러나, 칠성사이다를 상징하는 초록 유리병과 별 모양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칠성사이다를 만든 동방청량음료는 이후 한미식품공업(1967), 칠성한미음료주식회사(1973)를 거쳐 현재의 롯데칠성음료로 바뀌는 등 많은 변화가 있어왔다. 그러나 고유의 신선하고 맑은 제품 이미지는 꾸준히 사람들의 인식 속에 남아 있으며, '칠성'은 단순한 제품명을 넘어 회사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초록색 유리병으로만 생산되던 고급 음료였던 사이다는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페트병과 캔 등 다양한 모양으로 출시되었고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누구나 쉽게 사먹을 수 있는 대중 음료가 됐다.

칠성사이다는 카페인, 인공색소, 인공향료를 쓰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 칠성사이다는 카페인, 인공색소, 인공향료를 쓰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칠성사이다는 2013년 말 기준, 누적 판매량이 185억 병을 기록했고,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250ml의 캔의 경우, 연 평균 1억 3천만 개가 판매됐다.

칠성사이다를 향한 식지 않는 국민들의 사랑에 대해 롯데칠성 측은 "우수한 물 처리 시설, 레몬과 라임에서 추출한 천연 향, 건강에 좋지 않은 카페인, 인공색소, 인공향료를 모두 빼냈다"는 점을 강조한다.

칠성사이다는 단순히 탄산 음료가 아니라 한국인의 생활과 맥을 같이 해 온 '삶의 아이콘'으로 기억되고 있다.

글 이승아 코리아넷 기자
사진 전한 코리아넷 기자
slee27@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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