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일
- 2014.12.17
“충주는 한국문화의 융합체”
충청북도 충주는 한반도의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도시다. 인구 20만의 중소규모이지만 유구한 역사를 품은 고도다. 남한의 최대하천인 한강을 끼고 있어 한반도의 중남부를 연결하고 육로 또한 동서남북을 연결하는 요지다.
이곳은 삼국시대 5세기초에서 6세기 중엽까지 고구려의 국원성(國原城, Gukwonseong Fortress)이었다가 신라에서 빼앗아 진흥왕(眞興王)이 국원소경(國原小京)을 설치했다. 서기 8세기 경덕왕(景德王)이 중원경(中原京, Jungwonsogyeong Administrative District)으로 확장했다. 충주를 중심으로 한 중원과 한강을 장악하는 세력이 곧 한반도의 패자였다. 이곳은 구석기, 신석기시대 등 선사시대는 물론 마한(馬韓, Mahan confederacy) , 백제, 고구려, 신라까지 아우르는 유적들이 가득하다. 도시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해도 한치의 과장도 없다. 이 지역의 역사유물을 한 데 모은 ‘중원출토유물보관센터’가 지난 11일 문을 열었다.

▲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전경. 설립된 지 7년만인 지난 12월 11일 신축공간으로 이전했다. 중원출토유물보관센터도 함께 입주해 있다.
문화재청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Jungwon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에 설치된 중원출토유물보관센터는 총사업비 179억 원을 들여 대지 16,430㎡, 총면적 6,938㎡,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로 건립되었다. 이 시설은 지난 2011년 6월 공사를 시작, 올해 12월 완공됐다. 연구시설로는 드물게 시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전시실, 체험학습실을 갖추고 있으며 시민과의 소통공간이자 학술회의를 위한 강당, 상주하며 연구할 수 있는 숙소까지 갖추고 있다.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는 유물보관센터를 바탕으로 지역사회 구성원과 함께 중원 지역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문화유산의 활용가치를 창출할 계획이다. 국립중원문화재 연구소를 총괄하고 있는 김덕문(Kim Derk moon) 박사는 조선 시대 전통목조건축을 전공, 충북대에서 학위를 받은 유물복원 및 설계전문가로 충북지역의 유적 복원, 숭례문 복원, 영주 선비촌 설계,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복원 등 굵직굵직한 역사복원의 현장에서 일해왔다. 김 박사를 만나 중원문화와 연구소의 향후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 중원지역은 한국문화의 융합체라고 설명하는 김덕문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장.
- 중원출토유물보관센터의 설립배경은?
발굴된 유물은 원위치에 보관하는 게 문화재보존의 원칙이다. 그동안 여건, 시설도 못됐다. 중요한 국보 보물은 국가가 보관할 의무가 있다. 강원, 충북지역엔 보관하는 국가기관이 없었다. 2007년 중원문화재연구소가 설립되면서 강원, 충북일원에서 발굴되는 중요유물들을 보관하고 있다. 유물들은 보존처리후 안정성이 확보되면 전시한다. 지역주민들이 역사문화를 교육하고 문화적인 향유도 병행해서 실천하려고 시설을 마련했다.
- 시민참여형 연구기관을 지향하는 이유는?
문화유산연구도 체계적으로 해서 중원지역의 문화정체성도 확립하고 나아가서는 국가 역사문화를 소개하는 작업도 본연의 업무다. 전시, 체험장의 규모는 작지만 가까운 지역시민들이 역사의 가치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시관 운영도 직접 시민자원봉사자들이 안내하고, 체험학습장도 가급적이면 어린이 수준에 맞춰 직접할 수 있도록 운영해볼 계획이다. 종전 우리가 갖고 있던 문화재, 고전, 역사에 관한 일반인들이 다가가기 힘든 면이 많았다. 실제 깊이 있게 들어가면 과학적이며, 역사철학적 깊이가 있는 분야임에는 분명하나 문화재를 보존하는 데 시민의식이 중요하다. 시민의식을 향상시키고 시민들과 함께 보존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설을 시민에게 개방하고 충실한 연구를 하려고 한다.
▲ 중원문화재연구소 전시공간. 중원지역에서 출토된 토기류, 철기류, 삼국시대 유물들이 전시돼있다.
- 한국사에서 차지하는 중원지역의 위상은?
이 지역은 지리적으로 수로(水路)가 굉장히 발달돼 있다. 육로교통도 또한 마찬가지다. 충주를 중심으로 영남지역, 내륙이 서울로 이어지는 교통로가 발전돼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철이 생산되는 지역이란 점이다. 중국의 정저우(鄭州, Zhèngzhōu), 중원(中原, Zhōngyuán)지역과 아주 비슷한다. 중원문화들의 특징은 국가체제 형성에 가장 중요한 철이 생산된다는 점이다. 철이 생산돼도 교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발전하지 못한다. 이곳은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갖췄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교역이 이뤄지고, 우리나라 전체가 이곳에서 융합됐다. 탑평리 7층석탑(Seven-storied stone pagoda in Tap-pyeong-ri)도 이미지를 보면 고구려적인 요소가 강하다. 직선적으로 뻗어올라가는 이미지가 강하다. 수안보 일원의 미륵사(Mireuksa)지를 보면 북쪽을 향하고 있으며 본존불(The principal statue of Buddha)은 미륵불(Maitreya)이다. 미륵불이란 건 미래를 지향하는 불상다. 거북이 모양의 조각도 간략하면서도 역동적이며 북쪽을 향하고 있다. 석굴 건축을 보면 돌 하나가 수십톤씩 된다. 그런 표현들을 보면 한반도 남쪽에서 보기 드문 기상을 갖고 있다. 언뜻보면 북방 고구려 문화의 요소를 풍기고 있다. 월악산 국립공원의 덕주사 마애불(rock cliff Buddha)은 굉장히 우아하다. 마치 백제의 불상을 연상케 한다. 15,6m에 이르는 대규모인데 백제와 신라의 요소가 함께 표현돼 있다. 이 지역의 문화는 한반도 역사문화가 함께 융합된 특징이 중원문화의 특징이라고 본다. 이런 문화의 배경은 철 생산과 지리적 환경이라고 본다.
▲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의 어린이 발굴체험장. 직접 탐사복을 입고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여러 설비가 마련돼 있다.
- 중원지역이 한반도 역사를 포괄한 셈인데. 고대뿐아니라 조선시대는 어떠했나?
남한강과 북한강의 합류점이 경기도 여주인데 충주는 그곳과도 상당히 가깝다. 자연히 강을 통한 교역과 운송이 활발했다. 임진왜란때도 이곳이 보루였다. 이곳이 무너지지 않았으면 그렇게 심한 피해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 한마디로 말해 살기 좋았다는 얘기 아닌가?
생거진천(生居鎭川)이라고 조선시대 살기좋은 곳으로 충북 진천을 꼽았다. 충주는 진천과도 가깝다. 진천이야 규모가 적은 살기좋은 곳이지만 중원을 국가적인 면에서 보면 국토의 동서남북을 연결하는 전략적인 요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거점 도시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고구려의 중심은 평양이고 백제의 중심은 공주, 부여다. 신라의 중심은 경주다. 고려의 중심은 개성이다. 서울은 조선의 모든 것은 담고 있다. 위의 도시들은 단일 국가와 연계성이 있지만 한국의 전문화를 융합시켜 생각해볼 수 있는 게 중원, 충주라고 본다.
- 중원의 미래상은 어떠할 것이라고 보나?
미래에는 교통 등이 획기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중원이 갖는 융합 문화적인 특징, 산업적으론 지리적 장점들이 이와 합쳐져 제2의 중원시대가 도래하리라 믿는다. 중원지역은 인문 지리적 중심, 문화소통의 요지로서의 강점을 갖고 있다. 이미 지난날의 역사가 입증하고 있지 않은가.
글·사진 위택환 코리아넷 기자
whan23@korea.kr
▲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야외 전시물. 충주지역의 신라고분 모형(사진 아래)과 마애석불이 전시돼 있다.
▲ 유물 보존 및 정리 시설 내부. 충주지역에서 출토된 제철유적, 자기편 등 다양한 유물들이 정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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