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일
- 2014.11.19
117년 역사의 국민소화제 활명수
19세기 말 조선후기는 약이 귀했다. 탕약이 전부였던 때라 사람들이 약을 구하지 못해 급체나 토사곽란(위로는 토하고 아래로는 설사하면서 배가 질리고 아픈 병)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빈번했다.
당시 궁중선전관 (왕을 측근에서 보필하는 무관) 민병호 선생은 늘 안타까움을 느끼다 1897년 궁중에서만 사용되던 소화불량에 좋은 생약 비방에 양약 처방을 섞어 신식소화제 활명수(活命水)를 개발했다. 탕제처럼 달여 먹을 필요가 없는 최초의 국산약이자 국민소화제 활명수의 탄생이었다.

▲ 창사 117년 기념으로 올해 출시된 활명수 한정판
민병호 선생은 1897년 장남 민강(동화약방 초대사장)과 함께 동화약품의 전신인 ‘동화약방’을 창업하고 활명수와 다른 약제를 만들어 팔았다.

▲ 1897년 활명수 초기 모습. ‘생명을 살리는 물’을 뜻하는 활명수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등록상품으로 기네스북에 올라있다.

▲ 1897년 창업 당시의 동화약방.
사명인 '동화'(同和)는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그 예리함이 쇠(金)도 자를 수 있다(二人同心 其利斷金). 나라가 화평하고 해마다 풍년이 들면 나라가 부강해지고 국민이 평안해진다(時和年豊 國泰民安)"는 역경(易經, I Ching, Book of Changes)의 구절에서 따왔고 ‘민족이 합심하면 잘살 수 있다’는 민족정신을 담고 있다.
117년이 흘렀어도 활명수는 한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국민소화제로 손꼽힌다. 활명수를 생산, 판매해온 동화약품은 국내 최초의 등록상품인 '활명수'를 비롯, 최초의 등록상표인 '부채표', 국내 최초의 제조회사 및 제약회사이자 국내 최장수 상장기업 기록 등 최고 타이틀만 5개를 보유하고 있다.
활명수는 아선약, 육계, 정향 등 11가지 생약성분으로 만들어져 과식, 소화불량, 체기 등에 탁월한 효능을 지닌다. 활명수의 성공으로 유사제품이 잇따라 출시되자 동화약품은 1967년 탄산을 첨가한 ‘까스활명수’를 개발했고 1989년에는 성분을 보강한 ‘가스활명수-큐’를 선보이는 등 연구∙개발로 품질 개선 노력을 거듭했다. 현재 활명수는 연 평균 1억 병이 생산되며 연 매출 460억 원, 시장점유율 70%를 차지하고 있다.
동화약품은 오늘날 활명수 외에도 400여 종의 의약품과 30여 종의 원료의약품을 생산하며 국내 공급은 물론 세계 3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 1897년 선보인 활명수는 오랜 역사와 함께 제품 외형도 다양한 변화를 거쳤다.

▲ 동화약품은 끊임없는 연구 개발로 400여 종의 의약품과 30여 종의 원료의약품을 생산, 해외3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 경기도 용인시의 동화약품 연구소

▲ 충주산업단지의 동화약품 공장

▲ 활명수 삼형제: 활명수, 까스활명수, 까스활
윤소정 코리아넷 기자
arete@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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