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일
- 2019.02.25
3‧1운동 정신으로 미래 100년 준비한다
3‧1운동은 일제에 항거한 대한민국 독립운동이자 비폭력 평화운동으로 전 세계인과 함께 되새겨야 할 세계적 문화 자산이다.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한완상 위원장이 내달 1일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3‧1운동의 세계사적 의미와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의연하게 독립을 지원해준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특별기고를 보내왔다.

한완상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세계 시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 한완상입니다.
19세기 초 서방 선진국들은 제국주의적 팽창의 열기에 휩싸여 있는 상황이었고, 당시 동아시아의 새로운 군사 대국으로 성장한 일제가 1905년 군대를 동원해 강압적으로 대한제국과 을사늑약을 체결해 외교권을 박탈하고, 1910년 마침내 강제로 대한제국을 병탄한 후 헌병과 경찰에 의한 무단통치를 시행했습니다.
우선 독립운동을 도와준 외국인 세 명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1916년 의학을 가르치기 위해 한반도를 밟은 캐나다인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石虎弼, 1889~1970년)는 일제의 탄압도 아랑곳없이 1919년 3월 1일 일제의 식민 지배에 항거한 독립만세운동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일제의 고문과 비인도적 만행을 비판하는 강연과 국내외 언론 기고 등을 통해 국제 여론을 환기시켰으며, 1920년 캐나다로 돌아간 후에도 일제의 만행을 비판하는 활동을 계속하며 대한민국 독립을 위한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조지 루이스 쇼(George Lewis Shaw, 1880~1943년)는 아일랜드 출신 영국인으로 중국 단동시에서 무역회사인 이륭양행을 운영하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사무국 설치를 지원하고, 독립운동가들의 무기‧출판물‧자금 등을 안전하게 운송‧보관하는 등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했습니다.
후세 다쓰지(布施辰治, 1880~1953년)는 일본인이지만 일본 편에 서는 것을 거부하고 대한민국 독립운동을 위해 투쟁한 일본의 인권변호사로 대한민국 독립운동과 관련된 사건의 변론을 도맡으며 1930년대에만 세 차례에 걸쳐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하고 두 번이나 투옥됐습니다.
이들이 왜 자신과 직접 관련도 없는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편안한 삶을 버리고 스스로 위험한 길을 택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 대한제국 국민은 일제가 침탈한 국권을 되찾기 위해 국내외에서 산발적 또는 조직적으로 다양한 국권회복운동을 펼쳤습니다. 다양한 국권회복운동 중 대한민국뿐 아니라 세계사적 의미를 갖는 활동이 1919년의 3‧1운동입니다.
3‧1운동은 한마디로 말한다면 1919년 발발한 비폭력 평화운동입니다. 이 정신은 굉장히 공공적이고 인류 보편적인 정신입니다. 당시까지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반제국주의 민중운동이 평화를 내세우면서 비폭력으로 전개된 예는 없었습니다.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이 있었지만 지주들을 살해하는 계급투쟁의 유혈혁명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919년 한반도에서는 국민 1700만 명의 10%가 넘는 200만 명이 손에 태극기를 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며 일본 경찰의 총칼에 맞서 비폭력 평화시위를 벌였습니다.
3‧1운동이 발생한 지 100년이 지난 시점에서 아직도 세계 선진국들 사이에서 과거회귀(Retrotopia)운동이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세계사적 가치를 갖는 3‧1운동을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 전 세계인과 함께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세계적 문화 자산으로 확산하는 것이 절실합니다.
또 3‧1운동은 민족의 자주독립과 평화, 민주와 인권의 가치를 온몸으로 선언한 평화적 저항운동이었습니다. 남녀노소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청년, 여성, 종교인, 어린이, 기생, 도시민, 노동자, 농민 등 대한민국 국민의 모든 계층이 다 함께 참여했습니다. 만주와 연해주, 오대양 육대주 세계 어디에서든, 대한민국 국민은 대한독립만세로 모두 하나였습니다. 함께 외치고, 함께 저항하며, 함께 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독립과 자유의 용광로였습니다. 민주와 인권의 시대를 알리는 우렁찬 큰 합창이었습니다. 정의와 인류애, 평화주의를 세계만방에 온몸으로 울린 위대한 시대의 종소리였습니다.
3‧1운동이 바로 대한민국 독립을 가져온 것은 아니지만 3‧1운동의 가장 큰 성과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이었습니다. 3‧1운동으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헌장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명백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왕정과 식민지를 넘어 민주공화국임을 선포했으며, 지금 현재 대한민국의 뿌리가 됐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종료와 일제의 패망에도 세계 열강들의 영향력에 의해 대한민국은 온전한 독립국가로 탄생되지 못하고 남북 분단이라는 아픔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3‧1운동의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수레바퀴는 산업화를 뒤에서 밀고 민주화를 앞에서 끌며 오늘날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역사를 만들어왔고,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현재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의 심장 속으로 뜨겁게 흐르고 있습니다. 여전히 젊고 푸른 현재로 남아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얼어붙었던 한반도에 평화라는 새싹의 눈을 틔우고 있습니다. 이 새싹이 자라 무성한 미래 100년 나무가 되고 시들지 않는 꽃이 피면, 미래세대가 살아갈 한반도의 번영과 세계 평화를 만드는 새로운 100년도 열릴 것입니다.
21세기에 와서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퇴영적 복고주의 흐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럴 때 100년 전 한반도에서 터져 나온 3‧1운동의 비폭력 평화운동과 국민이 국가와 시장의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제운동임을 확인하는 일은 매우 공공적인 역사적 과업입니다. 자유와 평등, 인권과 복지 그리고 평화를 갈망하는 모든 세계인이 반드시 성찰해보고 참고해야 할 중요한 사건이 바로 한국의 3‧1운동임을 새삼 확인할 가치가 있습니다. 약소국가와 민족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3‧1운동의 경험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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