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코리아넷뉴스

게시일
2026.08.04

[기고칼럼] '부산에서 세계로' ···협력으로 여는 세계유산의 미래(최재헌 ICOMOS 한국 위원장)

▲ 이병헌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의장(오른쪽 세번째)이 지난 8일 부산 벡스코(BEXCO) 본회의장에서 본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유네스코

▲ 이병현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의장(오른쪽 세번째)이 지난 8일 부산 벡스코(BEXCO) 본회의장에서 본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유네스코



최재헌
건국대학교 지리학과·대학원 세계유산학과 교수, ICOMOS Korea 위원장



2026년 7월, 부산은 인류가 함께 지켜야 할 유산을 논의하기 위해 세계가 한자리에 모인 무대였다. 대한민국이 1988년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한 이후 처음으로 의장국을 맡아 치른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는 162개국에서 3,140명이 모여들었다. 장관급 인사 25명과 국내외 언론인 367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아잘리 아수마니 코모로 대통령의 방문이었다. 자국 최초의 세계유산 등재를 축하하기 위해 회의장을 찾은 그의 모습은 세계유산위원회 역사상 현직 국가원수가 참석한 첫 사례로 기록된다. 이런 장면은 부산 회의가 단순한 전문가 회의를 넘어, 문화와 자연유산을 매개로 국가 간 신뢰와 연대를 쌓아가는 자리로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회의의 중심에는 33건의 등재 안건이 있었다. 심사를 거쳐 문화유산 19건, 자연유산 5건, 복합유산 1건 등 25건이 새롭게 세계유산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의 갯벌'을 포함한 2건의 확대 등재와 1건의 등재기준 변경도 함께 승인됐다. 이로써 세계유산은 173개국 1,273건으로 늘었다. 특히 코모로, 상투메프린시페, 남수단이 처음으로 세계유산을 갖게 된 것은 목록의 지역적 균형과 문화적 다양성을 넓혔다는 점에서 뜻깊었다. 이 모든 결정이 위원국 간 이견 없이 합의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부산이라는 공간에서 대화와 상호이해를 통해 공동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음을 증명한 셈이다.

그러나 세계유산위원회의 몫은 새로운 유산을 등재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미 목록에 오른 148건의 보존 상태를 살피는 일 또한 이번 회의의 중요한 과제였다. 기후변화, 자연재해, 도시개발, 관광 증가, 무력 분쟁까지, 오늘날 유산이 마주한 위협은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수리남의 파라마리보 역사도심, 우크라이나의 케르소네소스 타우리카, 레바논의 티레 등이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목록에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긴급절차로 등재된 남수단, 레바논, 팔레스타인의 유산 역시 위험유산목록에 함께 포함됐다. 반면 자문기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보존과 관리에 힘써온 오스트리아 빈 역사지구는 그 노력을 인정받아 위험유산 목록에서 벗어났다. 이 대비되는 두 흐름은 위험유산 제도가 위기에 처한 유산에 국제사회의 관심과 전문적 지원을 모으는 연대의 장치임을 다시 한번 일깨웠다.

부산 회의가 남긴 가장 상징적인 유산은 아마도 본회의 첫날 합의로 채택된 '세계유산에 관한 부산선언'일 것이다. 이 선언은 무력분쟁과 기후변화, 개발 압력, 디지털 전환 같은 문제들이 어느 한 국가의 힘만으로는 풀리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신뢰성, 보존, 역량강화, 소통, 공동체라는 세계유산협약의 다섯 전략목표에 '협력(collaboration)'이라는 여섯 번째 목표를 더하자는 제안이었다.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통합적으로 보호하고, 현장관리자의 역량을 키우고, 지역공동체와 청년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며, 다양한 역사와 기억을 존중하는 포용적 해석을 추구하고, 인공지능을 비롯한 디지털 기술을 책임 있게 활용하자는 내용도 함께 담았다. 부산선언은 협력이라는 말을 그저 이상적인 구호로 남겨두지 않고, 유산을 실제로 지켜내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 원리로 끌어올렸다.

본회의만큼이나 풍성했던 것은 함께 열린 부대행사였다. 모두 61건에 이르는 부대행사에서는 군소개발도서국의 역량 강화, 황해 갯벌의 초국경 보전, 유산 해석과 평화 구축, 기후변화 대응, 근현대유산의 보존과 활용, 청년과 지역공동체의 참여 같은 현장의 목소리가 오갔다. 공식 심의가 국가별 안건을 다루는 자리였다면, 부대행사는 전문가와 국제기구, 시민사회와 현장관리자들이 저마다의 경험과 해법을 나누는 열린 지식의 광장이었다. 29개국 31명이 함께한 청년전문가포럼과 45개국 74명이 참여한 현장관리자포럼에서 나온 제안들은 본회의로 전달돼, 청년의 실질적 참여와 사람 중심의 포용적 관리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는 세계유산의 미래가 정부와 전문가만이 아니라 현장관리자, 청년, 그리고 지역 주민이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부산선언'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보여줬다.

회의는 전문가들만의 자리에 머물지 않고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외교의 장으로도 넓어졌다. 35개 기관이 참여한 대한민국관에는 열흘 동안 13만 7,000여 명이 발걸음을 옮겼고, 다양한 전시와 체험행사, 현장답사와 무형유산 공연을 통해 한국의 문화와 자연유산이 국내외 참가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한국의 갯벌' 2단계 확대 등재 역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전문가와 지역사회가 국제사회의 권고를 성실히 이행해 온 협력의 결실이었다. 여수, 고흥, 무안, 서산의 갯벌이 새롭게 더해지면서 유산이 지닌 생태적 연결성과 완전성은 한층 단단해졌다.

이렇게 열흘간 이어진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이 이제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보호하는 나라를 넘어, 세계유산 제도의 발전과 국제적 연대를 이끄는 책임 있는 파트너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줬다. 남은 과제는 부산선언과 회의에서 나온 여러 제안들을 일회성 논의로 그치지 않고 꾸준한 정책과 현장 사업으로 이어가는 일이다. 부산에서 시작된 협력의 메시지가 기후위기와 분쟁으로 위협받는 유산, 그 곁을 지키는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올 세대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으로 퍼져나갈 때, 부산 회의는 세계유산협약의 새로운 이정표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최재헌 교수는 건국대학교 지리학과와 대학원 세계유산학과 교수이자 세계유산연구소 소장이다. 서울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미네소타대학교에서 지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1995년부터 건국대학교에서 도시지리학과 세계유산학을 연구하고 교육해 왔다. 건국대학교 대학원 세계유산학과 설립을 주도했으며, 남한산성과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의 세계유산 등재에 기여했다. 현재 이코모스 한국위원회 위원장과 이코모스 국제해석홍보위원회(ICIP) 부회장으로서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유산영향평가, 역사도시경관, 포용적 유산해석 및 평화 구축을 위한 국제협력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 코리아넷 뉴스의 저작권 정책은 코리아넷(02-2125-3501)으로 문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열람하신 정보에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