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일
- 2026.03.16
“경쟁 분야 거의 없는 완전한 보완 관계”···주한 에콰도르 대사가 본 한-에콰도르
▲ 파트리시오 에스테반 트로야 수아레스(Patricio Esteban Troya Suárez) 주한 에콰도르 대사가 11일 서울 종로구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코리아넷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우 기자 b1614409@korea.kr
김혜린 기자 kimhyelin211@korea.kr
1976년 7월, 현대자동차 포니 5대가 처음으로 해외 시장에 수출됐다. 목적지는 에콰도르. 당시 거래는 에콰도르 바나나와 자동차를 맞바꾸는 바터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듬해에는 대우건설이 키토의 주요 도로 포장 공사를 따내며 라틴아메리카에서 첫 인프라 계약을 성사시켰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흐른 지금, 양국 관계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지난해 9월 공식 서명된 전략적경제협력협정(SECA)이 그 신호탄이다.
파트리시오 에스테반 트로야 수아레스(Patricio Esteban Troya Suárez) 주한 에콰도르 대사는 11일 서울 종로구 주한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코리아넷과 만나 두 나라의 과거와 미래를 폭넓게 짚었다. 그는 독일, 미국, 카타르, 이탈리아를 거쳐 지난 2024년 10월 부임한 수십 년 경력의 베테랑 외교관이다. 풍부한 실무 경험에서 우러나온 통찰은 날카로웠다. 그는 한국과 에콰도르의 관계를 "경쟁 분야가 거의 없는 완전한 보완적 파트너십"이라 정의했다.
SECA는 무역을 넘어 투자와 산업 협력까지 아우르는 협정이다. 비준 절차는 양국 모두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트로야 수아레스 대사는 에콰도르는 4~5월, 한국은 7월~9월 사이에 마무리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SECA가 발효되면 양국 무역 지형은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2024년 기준 양국 교역 규모는 8억 9400만 달러. 한국은 에콰도르의 15위 교역국이다. 현재 에콰도르는 주로 새우, 카카오, 바나나, 꽃 등을 한국에 수출하고 있다. 협정이 발효되면 대한국 수출은 약 27%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 입장에서는 자동차 시장 점유율 확대가 기대된다. 현재 에콰도르 자동차 시장의 최대 공급국은 이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중국이다. SECA가 발효되면 현대·기아도 같은 출발선에 서게 되는 만큼 점유율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 LG·삼성 등 전자·기술 기업의 성장 여지도 크다. 에콰도르는 칠레, 페루, 콜롬비아에 이어 한국과 경제협력 협정을 맺는 네 번째 남미 국가가 된다.
SECA 효과는 무역을 넘어 에너지까지 확대된다. 에콰도르는 전력의 80% 이상을 수력발전에 의존한다. 친환경적이지만 기후변화로 강수량 변동이 심해지면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흔들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사는 "원자력 기술 도입을 놓고 한국과 협의가 이미 시작됐고 갈라파고스 제도에는 한국 기업이 참여한 풍력발전소가 가동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키토와 과야킬에 태양광 발전소와 폐기물 소각 발전소를 설치하기 위해 한국 기업과 협상 중이라고 귀띔했다. "에콰도르는 금, 구리 등 광물 자원도 풍부하다"며 이 분야에서도 한국 기업의 참여를 요청했다.
▲ 1976년 7월 현대자동차 최초의 수출 자동차 '포니'가 에콰도르 과야킬항에서 하역되고 있다. 현대자동차
두 나라의 인연은 자동차 수출보다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이었던 에콰도르는 한국을 지지하는 결의에 찬성표를 던졌고 식량과 의약품 500톤을 보냈다. "그게 두 나라 우정의 출발점"이라고 트로야 수아레스 대사는 술회했다. 양국은 1962년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했고, 그로부터 14년 뒤 에콰도르는 한국 자동차의 첫 해외 수출국이 됐다.
대사는 이 대목에서 자리에서 일어나 현대자동차 포니 미니어처를 가져와 보여줬다. "현대자동차는 수출 20주년을 기념해 에콰도르까지 사람을 보내 여전히 운행 중이던 차량을 찾아 들여왔다"고 설명하며 양국 교류의 상징으로 꼽았다. 에콰도르에서 20년간 택시로 150만km를 달린 포니는 현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헤리티지 홀에 전시돼 있다.
경제보다 먼저 문화가 닿기도 했다. 대사는 '진섭(Jinsop)'이라는 예명으로 알려진 한국계 미국인 가수를 언급했다. "1970년대 에콰도르 팝 차트 상위권을 달리며 엄청난 성공을 거뒀고, 에콰도르 여성과 결혼해 귀화했다. 어렸을 때지만 아주 유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돌이켰다. K팝이라는 말이 생기기 수십 년 전에 이미 한국인이 에콰도르 대중음악의 중심에 있었던 셈이다
▲ 파트리시오 에스테반 트로야 수아레스 주한 에콰도르 대사가 11일 서울 종로구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한국과 에콰도르 간 협력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이정우 기자 b1614409@korea.kr
지난해 크리스마스 연휴에 귀국한 트로야 수아레스 대사는 에콰도르의 변화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키토의 대형 쇼핑몰마다 한국 음식점이나 한국 화장품 매장이 들어서고, 슈퍼마켓 진열대에는 김치와 한국 라면이 놓여 있었다. 케이팝 대회에서는 10대 에콰도르 소녀들이 한국 걸그룹의 안무와 노래를 선보였다. "문화에는 언제나 힘이 있다. 스포츠, 음악, 관광이 모두 연결돼 있고,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알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
관광 교류를 넓히기 위해 양국 여행사를 연결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그가 한국인에게 소개하는 에콰도르는 "갈라파고스, 안데스 화산 지대, 아마존 밀림, 그리고 태평양 해안까지 네 개의 전혀 다른 자연환경이 하나의 나라 안에 공존하는 곳이자 생물다양성 기준 세계 상위 5개국 안에 드는 나라" 다.
내년에 양국은 수교 65주년을 맞는다. 어떻게 기념하고 싶은지 묻자 트로야 수아레스 대사는 잠시 생각한 뒤 답했다. "SECA 비준이 양국 모두에서 완료되고, 한국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에콰도르를 방문해 주길 바란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웃으며 음식 이야기를 꺼냈다. 에콰도르 새우로 만든 세비체와 김치, 한국 맥주가 의외로 잘 어울린다며 "언젠가 서울에도 에콰도르 식당이 생기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한마디. "대사관은 언제나 열려 있다. 한국 친구들에게 에콰도르를 알리는 일이라면 언제든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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