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일
- 2022.07.18
[Hidden Charms of Korea: 전남 신안] ② 갯벌이 들려주는 이야기
한국의 저명한 미술사학자 유홍준 석좌교수(명지대)는 그의 책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했다. 아주 유명한 곳이거나, 혹은 여느 곳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일상이라도 얼마나 알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풍경은 다르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코리아넷은 2022년 한국의 지역 문화와 여행지를 소개하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인터넷만 뒤져봐도 알 수 있는 유명한 여행지는 사람과 지역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중심으로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냥 지나쳤던 곳 중 명소로 부각될만한 장소도 발굴해 보려 한다. 대한민국 곳곳에 숨겨진, 매력적인 요소를 코리아넷 독자들에게 전한다.
신안 = 정주리 기자 etoilejr@korea.kr
영상 = 이준영 기자 coc7991@korea.kr
■ 갯벌을 메운 자연의 소리
“마음을 열고 들어보세요. 그래야 들려요.”
오후 1시 무렵 전남 신안군 증도에서 화도로 넘어가는 길. 신안의 아름다움에 빠져 2015년 부산에서 이주한 뒤 2018년부터 문화관광해설사로 신안을 알리고 있는 권성옥 해설사는 신안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다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가만히 갯벌을 들여다보니 짱뚱어, 흰발농게 등 평소 접하기 힘든 바다 생물이 움직이며 저마다 소리를 낸다. 특히 짱뚱어가 갯벌을 튀어 오르는 소리가 갯벌을 가득 메운다. 짱뚱어가 활동하는 4월부터 10월까지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진풍경이다.
권 해설사는 “물 안팎에서 모두 살 수 있는 짱뚱어는 썰물이 되면 광활한 갯벌에서 몸을 튕겨내며 영역 다툼을 한다”며 “그 모양새를 보고 수고스럽지만 아무 목적이 없는 일을 한다는 뜻의 ‘뻘짓한다’라는 전라도 방언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 신안군 화도 노두길 전경. 썰물 시간을 미리 알아두면 짱뚱어를 만날 수 있다. 신안군
갯벌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섬과 섬을 잇는 바닷길에서 잘 들을 수 있다. 신안군에는 하루 두 번 물이 빠지면 섬과 섬 사이를 이어주는 ‘노두길’이 나타난다. 섬끼리 이동이 어려운 주민들이 썰물 때마다 큰 바위를 놓아 만든 오래된 바닷길이다. 반월도와 박지도를 잇는 ‘중노두길’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 썰물 때만 그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증도와 화도를 잇는 ‘화도 노두길’은 밀물 때에도 차와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2년 전 공사를 해 언제든지 섬을 오고 갈 수 있는 길이 됐다.
▲ 짱뚱어(왼쪽)와 흰발농게. 흰발농게 수컷의 집게다리는 한쪽이 다른 쪽에 비해 매우 큰 것이 특징이다. 신안군
한국 서남단에 있는 신안군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갯벌이다. 신안 갯벌 면적은 약 378㎢로 서울의 절반 정도 크기로 전국 최대면적의 습지보호지역이다. 지난해엔 신안 갯벌이 포함된 '한국의 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이곳 주민들은 주로 농업과 어업에 종사해 유해 시설이 없어 청정 지역으로 꼽힌다. 자연 그 자체를 즐기고 싶다면 신안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 갯벌과 천일염
건강한 갯벌이 주는 선물이 있다. 갯벌에 바닷물을 가둬 만든 염전에서 만들어지는 ‘천일염’이다. 신안에는 약 800개의 염전이 있다. 비금도와 신의도에 가장 많다. 140여 개 염전을 보유한 비금도를 찾아 면사무소에서 제공하는 전기자전거를 대여했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양옆을 둘러보니 염전이 끝없이 펼쳐진다. 염전에 비친 하늘을 사진에 담고 싶어 자전거를 타고 내리길 반복하자 한 시간이 훌쩍 간다.
▲ 비금도 전경. 정주리 기자
염전을 둘러보고 나니 천일염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궁금해진다. 오후 네 시 무렵 임자도에 위치한 ‘마하탑’ 염전을 찾으니 소금 걷이가 한창이다. 뜨거운 햇빛에 몽글몽글 올라온 소금 결정을 직접 확인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이다.
▲ 염전에서 갓 거둔 천일염. 정주리 기자
천일염을 손에 가득 담아 들여다보니 알 하나하나가 굵고 단단하다. 하나를 골라 혀에 대보자 짠맛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쓴맛은 없고 달큰한 뒷맛이 따라온다. 바닷물을 전기 분해해 두 시간이면 만들어지는 ‘정제염’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맛이다. 임자도에서 천일염을 제조하는 마하탑 유억근 대표는 "바다와 갯벌이 주는 맛"이라고 했다.
유 대표는 “염도 3% 정도의 바닷물을 1차 증발지에 모아두면 5~6% 염도가 되는데 이걸 2차 증발지로 옮겨 11%까지 올린다”며 “이후 결정지에서 3mm 이상의 천일염이 만들어지면 창고에 모아두고 간수를 뺀다”고 설명했다. 굵은 천일염은 적어도 보름이 지나야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신안 천일염의 특징은 높은 함량의 미네랄과 마그네슘이다. 이 또한 건강한 갯벌 덕분이다. 그는 “신안 갯벌은 미네랄이 다량 함유된 양질의 갯벌”이라며 “여기서 바닷물을 빨아 먹고 광합성 하는 수생식물 ‘함초’가 1차 증발지 주변에서 자라나면서 바닷물을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 신안 염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함초. 손바닥 정도 크기에 단단하며 씹었을 때 돌나물과 같은 식감이 매력적이다. 정주리 기자
신안 갯벌은 보고 듣고 즐길 거리가 많은 곳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그저 회색빛의 펄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엔 동식물과 수많은 미생물이 나름의 삶을 꾸려간다. 인간은 그곳에서 자연의 맛을 담은 소금을 얻는다. 모든 존재가 함께 살아가는 삶의 터전인 셈이다. 올 여름은 신안에서 갯벌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
임자도에서 천일염을 제조하는 마하탑은 여행객들에게 하루 4~6시간 일손을 도움 받는 대신 숙식을 제공하는 글로벌 네트워크 활동 ‘우프(World-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 WWOOF)’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신안 천일염과 한국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내외국민 상관없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다만 천일염 체험은 비가 오는 장마에는 불가능하므로 이 시기는 피해서 신청하는 게 좋다. (http://wwoofkorea.org)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