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의 눈으로 본 한국전쟁
1950년대 한국전쟁(1950-1953)에 참전하기 위해 극동지역에 파견된 영국군인들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한국으로 파견된 제27연대(27th Commonwealth Brigade) 소속 군인들은 UN군 중 미군을 제외하고 한국에 제일 먼저 파견되었다. 매우 용맹한 스코틀랜드 출신들 중에는 백파이프를 들고 온 이들도 있었다. 호주군인들을 포함한 제27연대는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했던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기차를 타고 전장으로 떠났다. 이들은 아마도 바로 머지않은 곳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몰랐을 것이다. ▲1950년 겨울 스코틀랜드 군인이 현재 북한의 사리원에서 기관총을 설치하고 있다 (사진: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 올해는 정전 60주년이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많은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6월 21일 서울 시내 영국문화원에서 서울 주재 데일리 텔레그래프(Daily Telegraph) 기자 앤드류 새먼(Andrew Salmon)씨가 영국과 호주군인들이 증언한 한국전쟁관련 기록을 중심으로 강연을 했다. ▲앤드류 새먼 기자가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 임재언) 이 행사는 현재 영국문화원이 주최하고 있는 “영국인, 한국을 말하다”라는 주제의 강연시리즈의 첫 번째로 이루어졌다. 새먼 기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홍콩에서 평화를 만끽하고 있던 제27연대가 어느 날 갑자기 차출 되어 한국전에 파견되었다며 “영국군인들은 차출 된지 1주일 만에 전쟁에 투입됐다”고 설명했다. UN군이 참전하자 전세가 급격히 호전되어 3개월 안에 UN군들은 3.8선 이북으로 진격했고 평양을 점령했다. 그리고 겨울이 되자 북한-중국 국경으로부터 수십 킬로미터 지점까지 다다르게 됐다. 이들 군인들은 이미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생각했고 미군이 지급한 전투식량을 먹으며 크리스마스를 기념했다. 한국의 겨울은 매서웠지만 영국군인들은 홍콩에서 입고 있던 짧은 팔 군복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새먼 기자는 “영국군인들은 인원뿐만 아니라 무기, 수송차량, 겨울 옷도 부족한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들은 극동의 낯선 땅에서 이루어진 전투에서 매우 중요한 임무들을 맡았다. 그는 대부분의 전투는 육탄전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면서 “북한군들은 군복을 벗고 민간인 행세를 했다”며 북한군과 시민들을 식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시민들의 피해가 컸다고 말했다. 새먼 기자는 사리원에서 북한군인들이 북쪽에서 내려오던 영국군을 러시아인으로 착각해 이들을 환영했던 일을 언급하면서 매우 공포스러운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1950년 겨울 스코틀랜드 군인이 압록강에서 남쪽으로 30마일 떨어진 평안북도, 정주시를 내려다 보고 있다. 전쟁이 거의 끝났다고 여긴 이들은 며칠 후 중공군이 몰려올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사진: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 그는 “북한군들은 스코틀랜드 군인들을 러시아군인으로 착각해서 러스키라고 불렀다”고 설명했다. 새먼 기자는 두 권의 한국전쟁 관련 책 “그을린 대지와 검은 눈”(Scorched Earth, Black Snow)과 “마지막 한발”(To the Last Round)을 집필했다. 이 책을 쓰기 위해 그는 200여명의 참전용사들을 인터뷰했고 이들이 쓴 일기, 노트, 편지들을 수집했다. 새먼 기자는 “포클랜드 전쟁, 이라크 전, 아프가니스탄 전에서 사망한 영국군인들보다도 더 많은 군인들이 한국전쟁에서 사망했다”며 “미국은 한국전쟁 참전 첫 두 달간 베트남전 어느 전투에서보다도 더 큰 패배를 당했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거의 잊혀진 상태로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새먼 기자는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합기도를 배우기 위해 한국에 왔다. 그는 전부터 한국전쟁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류열풍이 세계를 휩쓸고 있지만 한국관광에는 관심이 없다”며 “내가 관심 있는 것은 전쟁의 비극이다”라고 밝혔다. 임재언 코리아넷 기자 jun2@korea.kr 2013.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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