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지만 이상하게 재미있는 한국문학에 빠졌어요"
“한국어는 알면 알수록 재미있어요. 고전문학이나 사자성어, 토속적인 표현의 의미와 느낌을 모두 살려 전달하는 건 쉽지 않지만 간혹 그 뜻을 맞췄을 때 참 기뻐요.” 소피 바우먼씨(Sophie Bowman)가 수줍게 미소 지었다. 그는 지난 달 한국장애문인협회에서 내는 계간지 ‘솟대문학’에 소개된 시 50여 편을 영역한 책 ‘너의 꽃으로 남고 싶다(Let Me Linger as a Flower in Your Heart)’를 펴낸 주인공. ▲ 소피 바우먼씨는 런던 대학 재학 시절 한국어를 우연히 제2외국어로 선택한 후 한국에 대한 열정으로 번역가의 길을 택한 것을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런던대학 아시아 아프리카 학과(Studies of Oriental & African Studies, University of London)에서 인류학을 전공하다 한국어를 배우기로 한 것은 우연한 결정이었다. 그 결정을 계기로 그는 런던한국문화원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방학 때마다 한국행을 결심, 서울의 연세어학당에서 공부하며 한국어에 푹 빠졌다. 한국어에 대한 관심은 한국사회,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됐다. 그는 석사과정에서 한국학을 공부하며 한국에 대해 큰 흥미를 느꼈다. 2012년부터는 아예 한국에서 생활하며 한국문학 작품을 영어로 옮겨 해외에 소개하고 있다. 바우먼 씨를 만나 한국어와의 인연, 한국문학에 대해 얘기를 나눠봤다. ▲ 소피 바우먼씨가 한국문학과 문학 번역작업이 어렵지만 매우 즐거운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왼쪽은 그가 최근에 옮긴 시집 ‘너의 꽃으로 남고 싶다’. - 한국어를 공부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런던대 재학 시절 막연히 한국어가 가장 이국적인 언어로 생각되어 배우기로 했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우연한 선택이었지만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 7년 넘게 한국어를 공부한 후 직접 한국문학 번역에 나섰다. 이 같은 도전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이다. 석사과정을 마친 후 서울의 연세어학당에서 다시 공부했다. 2012년에는 한국 회사에서 일했다. 그 회사에는 영어를 하는 직원이 내가 유일했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한국어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었고 번역일도 많이 배웠다. 이후 한국문학번역원의 전문번역 심화과정을 수강하며 많이 공부하게 됐다. - 한국문학에 대해 흥미롭거나 끌린 면이 있다면 무엇인가? 런던대에서 인류학 학사 과정을 할 때부터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석사과정에서 한국학을 공부할 때 주로 접한 책은 서양의 시각에서 본 역사책 위주였다. 하지만 한국문학작품을 읽으며 접한 한국의 모습은 서양인이 쓴 책 내용보다 훨씬 많은 것을 담고 있었고 당시 한국 역사를 직접 겪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며 사실적인 부분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인이 자신의 나라에 관해 쓴 책과 서양인의 시각에서 쓴 한국에 관한 책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처음 읽은 한국소설은 황석영의 ‘손님’이다. 번역도 매우 잘 됐고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내용이었다. 이후 박완서를 비롯 많은 작가의 작품을 읽었고 한국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문학 번역가로 일할 생각을 진지하게 해보진 않았다. 하지만 한국문학번역원의 전문번역 심화과정을 지원했을 때 면접을 본 교수님이 내 안에 숨은 열정을 알아보신 것 같다. 사실 문학 작품을 한국어로 읽으면서 이해하고 동시에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이상하게 재미있다. 정말 즐기고 있다. - 장애인문인협회의 시집모음집 솟대문학을 번역하게 된 배경이 있는가? 친구 중에 방귀희 교수의 지인이 있어 우연히 저녁식사를 같이 하게 됐다. 이후 방 교수가 번역일을 제안했다. 처음에 그 분이 보내준 손병걸 시인의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란 제목의 시를 접하고 깊이 감명받았다. 우리는 사물을 보는 눈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다. 처음에 시 몇 편을 번역한 후 방 교수에게 번역일이 정말 재미있고 즐기면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책 번역은 그렇게 시작됐다. 총 53편을 번역하는데 4달 가량 걸렸다. - 책에 수록된 53편의 시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 손병걸 시인의 작품 외에도 20여 년 전 서울에서의 생활과 힘든 과거에 대한 향수를 다룬 김율도 시인의 ‘고통과 아름다움은 산 위에 산다’, 닭의 울음소리를 번역하느라 고민했던 이명윤 시인의‘안녕 치킨’, 남인우 시인의‘모과 하나 키우며’, 봄이 오는 과정을 꽃의 출산과정으로 묘사한 문명열 시인의 ‘동백의 분만’을 포함 4편을 들 수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시는 장애를 다루고 있지 않다. 그들의 시도 기쁨, 슬픔, 사랑 같은 사람의 감정이 주제를 주제로 한다. 그들의 느낌과 감정을 영어로 모두 온전히 옮기는 것이 중요하므로 번역할 때 특히 그 부분에 초점을 뒀다. - 한국어 작문실력이 한국인 기준에서도 상당하다. 이런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어떻게 공부할 수 있었는가? 본인만의 비결이나 방법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 책에 적힌 역자의 서문의 경우 거의 영어와 한국어로 문장 하나하나씩 썼다. 언어를 배우는 것은 의사소통을 배우고 그 소통으로 다른 사람, TV, 잡지 같은 것을 통해 세상과 연결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지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경우 한국에 살며 한국 친구와 대부분 한국어를 사용하다 보니 런던에 돌아가면 가족들이 내 영어가 이상해진 것이 아니냐며 농담하기도 한다. 영어도 이상하고 한국어도 이상해져서 중간 상태에 빠진 것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처음에는 영국인인지 한국인인지 정체성의 문제인가 싶기도 했지만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밖에 나가서 물건을 살 때나 누구를 찾을 때 내가 입을 열면 90% 가량이 한국어를 정말 잘한다며 놀란다. 하지만 앞으로 그런 외국인들이 많아질 것이므로 한국인들도 더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고전이나 어려운 표현, 사자성어 같은 한자표현 등을 발견하면 사전에 많이 의지한다. 다행히 친구 중에 고등학교 한문 선생님이 있어 전화로 물어볼 때도 있다. 주변에 한국 친구들에게 물어봤을 때 한국인들끼리도 이해가 각기 다른 표현도 있다. 그럴 때는 그들의 의견과 내 의견 중에서 판단하는데 내 생각이 간혹 맞을 때가 있다. 그러면 기분이 매우 좋다. 문학작품을 한국어로 바로 읽을 때는 읽는 속도가 매우 느리고 사전을 찾아가며 보는 경우가 많다. 사투리도 그렇다. 이제 경상도 사투리는 조금 알 수 있지만 대부분 다른 사람에게 물어본다. 지난 번에는 북한 사투리가 나오는 문학작품을 번역하게 됐는데 사전에도 없어서 애를 먹었다. - 좋아하는 한국작품과 작가는? 많이 읽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들고 싶다. 2010년에 읽었는데 번역도 정말 잘됐다. 작가의 강한 목소리를 잘 전달한 것 같다. 이 점은 번역자의 입장에서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 한국사회와 역사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주변의 많은 지인들에게 추천했다. 또 한 작품으로는 최근에 번역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영국에서도 인기가 있다. 외국인 시각에서도, 번역자의 관점에서도 매우 다르고 또 개성이 강한 작품이라 더 매력 있는 것 같다. 최근에는 김이환의 짧은 공상과학 소설 ‘너의 변신’을 번역했는데 처음에 책을 읽을 때 속도가 매우 빠르고 이해하기도 매우 편했다. 글 쓰는 방식이 매우 간결하고 의미가 분명했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은 전경린의 ‘염소를 무는 여자’를 번역하고 있다. 작가의 강하고 분명한 목소리를 영어로 올바르게 번역하는 것과 특이한 표현들을 다루는 것이 쉽지 않다. 이 작품 번역을 마치면 내 영어도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할 것 같다. - 한국어 이름은 누가 지었는가? 혹시 특별한 의미가 있나? 여름에 서울의 연세어학당에서 공부할 때 친구들과 생일 파티를 했다. 그때 늦게까지 남은 한국 친구들이 ‘너도 한국이름이 있어야 한다’며 강하게 추천했다. 친구들과 ‘소피’와 발음이 비슷한 ‘소희’라는 이름을 골랐다. 성은 내 이름 ‘바우먼’의 앞 글자와 뒷글자를 땄다. 친구의 어머니가 ‘반소희’라는 이름의 한자를 지어주셨고 좋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다. 그 친구의 할아버지가 ‘반소희’ 이름을 서예로 직접 적어주셨는데 정말 감동했다. - 한국생활에서 어려웠던 점은? 반대로 한국 생활의 장점을 꼽는다면 무엇인가? 2011년부터 한국에 살면서 처음에는 친구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비자나 출입국 문제는 늘 긴장되고 무섭기도 했다. 한국어가 익숙해져서 어려움은 많지 않지만, 런던에서의 생활과 많이 달랐기 때문에 처음 한국에 살면서 향수병이 있었고 가족과 친구들이 많이 그리웠다. 반면에 버스 같은 대중교통이 매우 편리하고 택시비도 매우 싸다는 점, 주문만 하면 신속하게 배달해주는 택배 시스템, 모든 것이 빠르게 처리되는 점 등을 한국생활의 장점으로 들 수 있다. 어느새 이런 생활방식에 익숙해진 것 같다. - 등산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즐겨 찾는 산은 어디이며 어떤 점들이 맘에 드나? 지리산을 8~10회 정도 간 것 같다. 정상까지 갈 때도 있고 중간까지 갈 때도 있다. 청주나 남원에서 올라갈 때도 있다. 북한산은 가까워서 더 자주 간다. 지리산을 가장 좋아한다. 노고단의 경우 올라가기도 쉽고 1시간 정도 올라가면 된다. 산이 높고 경관도 아름답다. - 한국 생활과 문학작품으로 접한 한국인과 한국사회에 대한 인상은 어떠한가? 사람마다 각기 다르므로 일반적으로 말하긴 어렵다. 도시 생활은 사람을 덜 친절하게 만드는 것 같아 보인다. 서울을 벗어나서 만나는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고 남을 도와주려고 한다. 예를 들어 음식을 같이 나눠먹는 공유의 문화는 도시보다 외곽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는 것 같다. - 한국 문학에 대한 애정 고맙다. 당신의 나라 영국문학 작품들은 한국문학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한국인들에게 권하고 싶은 소설, 시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현대 작가는 잘 모르지만 시를 좋아한다. 시머스 히니(Seamus Heany), 필립 라킨 (Philip Larkin) 등을 추천하고 싶다. 시머스 히니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필립 라킨도 유명한 영국시인이다. 소설은 공상과학책을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책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인데 공상과학 분야에서 매우 유명한 책이다. 한국어로 번역, 출판되어 있지만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내가 직접 번역해보고 싶다. - 한국문학과 관련하여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올 3월부터 이화여대 국문학과 석사 과정에 들어가 2년간 한국문학 공부를 한다. 목표는 최대한 많은 문학작품을 한국어로 읽고, 한국어로 글을 쓰는 것이다. 한국어 이해에 초점을 맞춰 현대한국문학 비평을 전공으로 선택했는데 이건 번역의 관점에서도 중요하다. 한국어책 독서량을 늘리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다. 글 윤소정 코리아넷 기자 사진 전한 코리아넷 기자 arete@korea.kr 한국문학과 번역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한국문학번역원의 홈페이지(http://www.klti.or.kr)를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2015.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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