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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ㆍ라오스 법제 협력 확대

    한ㆍ라오스 법제 협력 확대

    한국과 라오스가 법제분야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법제처는 18일 라오스 법무부와 법제분야 협력을 위해 ‘한·라오스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제정부 법제처장과 분큿 상솜삭(Bounkeut Sangsomsak) 라오스 법무부 장관이 체결한 ‘한·라오스 협력 양해각서’는 양국 법제전문가 교류, 정보공유, 공동 연구, 법령정보 시스템 구축 경험 공유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 제정부 법제처장과 분큿 상솜삭 라오스 법무부 장관이 18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한·라오스 법제 협력 MOU를 체결하고 있다. 상솜삭 장관은 “한국은 법제도가 매우 체계적으로 구축된 국가로서, 한국의 선진 법제 경험이 라오스 입법정책과 법제정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라오스 공무원의 법제처 연수, 한국 법제전문가의 라오스 파견, 라오스 법령정보시스템 구축 등 구체적 협력 사업이 추진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제정부 법제처장은 아상 라오리(Asang Laory) 사회문화부총리와 면담을 갖고 한국과 라오스의 협력강화를 위한 교류 방안을 논의했다. 아상 부총리는 "한국 기업의 라오스 진출 확대로 라오스 내 일자리 창출이 늘어나고 있다"며, "올해 라오스가 ASEAN의 의장국을 맡고 있는 만큼, 법제분야뿐만 아니라 농촌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이 강화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다본 방비칫(Davone Vangvichit) 국회 법률위원장과의 면담에서는 한국과 라오스의 투자․무역 등 경제법령을 비롯, 문화․서비스 분야 입법동향 공유 등을 협의했다. 윤소정 코리아넷 기자 사진 법제처 arete@korea.kr ▲ 제정부 법제처장과 아상 라오리 라오스 사회문화부총리가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 제정부 법제처장과 다본 방비칫 라오스 국회법률위원장이 면담을 갖고 있다. 한국과 라오스는 양국의 투자·무역 등 경제 법령을 비롯, 문화·서비스 분야의 입법 동향을 공유하기로 했다. 201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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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ㆍ아세안 정보미디어 협력 확대 논의

    한국ㆍ아세안 정보미디어 협력 확대 논의

    한국이 아세안 국가들과 정보미디어 분야의 협력 강화에 나서기로 했다. 정부는 필리핀 세부에서 17일 열린 ‘제4차 아세안+3 정보관계장관회의’에서 정보미디어분야 협력증진 방안으로 모바일 시대에 부합하는 뉴스미디어 협력사업 발굴, 지속적인 문화 콘텐츠 교류 강화, 언론인 역량강화를 위한 연수교류 확대 등을 제안했다. ▲ 필리핀 세부에서 17일 열린 ‘제4차 아세안+3 정보관계장관회의’에서 정부는 아세안 국가와 정보미디어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정보 미디어 협력과 관련, 정관주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은 한국의 ‘2012-2017년 아세안+3 정보미디어 협력 워크플랜’ 이행 노력을 설명했다. 이어 뉴스미디어 협력사업으로 ‘아세안+3 미디어 소비트렌드에 관한 공동조사 연구’를 제안했다. 아울러 정 차관은 한국이 뉴미디어 언론환경 변화 대응을 위해 각국의 디지털 저널리즘 상황을 공유할 수 있도록 ‘아세안+3 디지털 저널리즘 워크숍’을 2017년에 열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필리핀 세부에서 17일 열린 ‘제4차 아세안+3 정보관계장관회의’에서 정관주 문체부 제1차관이 한국의 정보미디어 분야 협력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정부는 ‘아세안+3 정보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한 중국과도 양자회담을 갖고 양국간 고위언론인 포럼의 발전적인 운영방안을 논의했다. 양국 대표들은 한국과 중국이 언론분야 외에 미디어, 정보, 방송 등 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가 확대되길 희망했다. 이어 레 르엉 민(Le Luong Minh) 아세안사무총장과의 양자회담에서 아세안사무국은 한국이 제안한 ‘아세안+3 미디어 소비트렌드에 관한 공동조사 연구’에 대해 사무국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윤소정 코리아넷 기자 사진 문화체육관광부 arete@korea.kr 2016.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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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청구권협정, 긍정적으로 평가받아야"

    "한일청구권협정, 긍정적으로 평가받아야"

    1965년 6월22일 한일기본조약이 조인되면서 한국과 일본은 외교관계를 회복했다. 일본제국주의체제의 패망 20년 만에, 1951년 10월 첫 외교접촉 후 14년 간 지난한 교섭과정을 거쳐 이뤄낸 성과였다. 같은 날 한일청구권협정(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 체결됐다. 동 협정 제 2조 1항에는, “두 체약국은, 두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한다)의 재산, 권리 및 이익, 또 두 체약국 및 그 국민 사이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 센프란시스코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 4조(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돼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은 위안부 문제를 포함, 양국간 모든 현안이 해결됐다고 주장하는 반면 한국에선 위안부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맞서왔다. 이처럼 정상적인 국교의 출발이었음에도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평가는 대단히 부정적이다. ‘굴욕협정’, ‘졸속외교’, 나아가선 한일협정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이런 부정적인 흐름에 맞서 청구권협정을 한국 외교의 성과물로 재평가한 연구가 나왔다. 최근 출간된 ‘대일외교의 명분과 실리’(역사공간)가 그 결과물. 저자는 동북아역사재단의 유의상(劉義相) 국제표기명칭대사. 유 대사는 1981년 외무부에 입부한 이래 주일한국대사관 2등서기관, 주일한국대사관 1등서기관(정무과장), 외교부 동북아1과장(일본담당) 등을 역임한 전문직업외교관. 그는 공개된 한·일 외교문서를 통해 청구권 교섭과정을 꼼꼼하게 복원해냈다. 유 대사는 교섭 과정을 들여다본 결과 "위안부 문제는 양국 간의 중요한 교섭대상의 하나로 토의된 적이 없다"며 "이 문제가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은 매우 자의적인 해석에 근거한 잘못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유 대사를 만나 한일청구권협정의 복잡다단한 편린들을 맞춰온 지난한 과정들을 물어보았다. ▲ 유의상 대사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은 회담이 시작된 배경, 교섭 상대국이었던 일본의 과거 역사에 대한 인식과 태도, 교섭과정에서의 미국의 직간접적인 관여, 한국의 빈약한 외교 인프라, 경제발전 등 당시의 시대적 요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한국의 외교 교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성과물로 인정받고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일문제는 무겁고 복잡한 실타래같다. 그런데 이 책은 어려운 내용을 시계열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잘 정리했다는 느낌이다. 이렇게 지난한 과제를 수행하게 된 배경은? 책 앞머리에도 밝혔지만, 대일 외교의 상대방은 일본만이 아니라 국내 언론과 민간 단체 등도 있다. 일본을 상대하는 것이 30이라면 70이 국내 정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과거사 문제는 아주 복잡하다. 그리고 과거사 문제가 나오면 빠질 수 없는 것이 한일 청구권협정이다. 현업 일선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청구권협정이 정말 쉽지 않았으리란 것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실무자로 협정 관련 문서에 접근할 수 있었음에도 업무를 하다 보면 막상 문서 전부를 꼼꼼히 살펴 볼 기회가 좀처럼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단편적인 지식만으로는 NGO 단체들과 면담을 할 때 스스로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등 한계가 느껴졌다. 그래서 한번쯤 청구권협정 문서를 제대로 살펴봐야겠단 생각은 늘 갖고 있었다. 2003~04년 한일 청구권협정 외교문서 공개를 요청하는 행정소송에 정부 측 증인으로 출석했는데, 이것이 좀 더 본격적인 계기가 됐다. 사실 정책에 일관성이 없었을지는 몰라도 정부가 국민을 속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마치 정부가 거짓말을 한다는 식의 억측이 나오니까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로부터 1년 후쯤 문서가 공개됐고 정부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그런데 이에 대해 아무도 뭐라 평가를 하지 않더라. 물론 1차 사료를 들여다보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학자들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5년 한국 문서가 전면공개 됐고, 일본에서도 NGO 등의 요구에 따라 문서 일부를 공개하면서 집필 준비를 할 수 있었다. ▲ 현재적 가치관에 기반한 규범적, 이상적 비판에서 벗어나 역사적 현실주의 시각으로 분석하고 재평가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유의상 대사. - 식민지배가 끝난 지 70년이 지났는데도 감정의 응어리는 더 굳어진 것 같다. 과거사 문제 등으로 감정이 맞서고 악화되다 보니 일본에서의 한류열기도 사그라들었다. 과장을 보태 임진왜란 이후 양국이 이렇게 사사건건 대립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일 관계는 산과 골짜기의 반복이다. 1945년 일제강점에서 벗어난 이후 늘 기복이 있었다. 이승만 정부 시절에는 반일정서가 지배적이어서, 양국이 화해한다는 생각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이승만 정권 시절의 한일 회담은 성과가 없었다고 봐야 한다. 협상을 종결짓고 수교를 한 것이 박정희 정부 들어서인데,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이 일어났을 때 한일 관계가 아주 나빴다. 1998년 1월 김영삼 정부 때 일본이 어업협정을 파기하면서 또 관계가 경색됐다. IMF 외환위기 시절 국내에 들어와있던 단기자금도 다 빼갈 정도였다. 양국 관계는 이런 식으로 늘 좋았다 나빴다가 반복됐다. 그러니까 최근의 양국 관계가 유별나게 악화된 것이라 할 수는 없다. 다만 최근의 관계 악화가 다른 부분이 있기는 하다. 과거에는 관계가 악화되면 풀려는 노력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좋지 않은 일제강점기의 유산인데, 과거에는 일본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김종필 전 총리가 대표적이다. 이런 분들이 일본의 막후 실력자들과 신속히 접촉을 해서 문제를 풀었다. ▲ 공개된 한∙일 외교문서를 통해 청구권 교섭과정을 복원해 낸 '대일외교의 명분과 실리'. - 위안부 문제는 이명박 정부 때도 거론됐는데. 우리나라 정부 특징 중 하나가, 정권 초기에는 한일 관계가 좋다가 정권 말기에 갈수록 점점 양국 관계가 나빠진다. 이명박 정부 때 대통령의 독도 방문, 천황 관련 발언 등으로 양국 관계가 나빠지면서 위안부 문제가 타결되지 못한 것이 이번 정권으로 넘어온 거다. 다만 전 정부까지만 해도 위안부는 수많은 대일 외교 과제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번 정부가 들어서자 위안부 문제가 한일 관계 안건 중 가장 큰 문제로 부각됐다. 그래서 당혹스러워 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결국 이렇게까지 악화된 배경을 놓고 학자들도 여러 가지로 분석을 한다. 일단 일본 정권이 아베 정권, 즉 보수정권이다. 과거에도 보수정권이 있었지만 그 때는 수면 아래에서 양국에 이해가 깊은 사람들이 만날 수 있었다. 이제는 그런 사람들이 없다. 한일의원연맹도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 식민지 유산이라지만 말이 통해야 뜻도 통한다고, 이제는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의원이 몇 안 된다. 결국 소통의 파이프가 없어졌으니 외교부가 일본 외무성과 해결을 해야 하는데, 외교부에도 최근에는 일본통이라 할만한 사람들이 그다지 없다. 두 번째는 구조적 변화다. 과거에는 일본이 한국에 양보를 했다고 할까, '전략적 관용' 정책을 취했다. 그만큼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20년의 불황으로 일본이 이제 여유가 없다. 한국이 턱밑까지 쫓아온 거다. 더는 봐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일본의 전직 외상 중 하나가 일본 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실제로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또 한편으로는 불황으로 일본에서 민족주의, 포퓰리즘 등이 거세졌다. 과거에는 특정 신문 몇몇을 제외하면 일본 언론이 균형적인 보도를 많이 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가 완전히 없어졌다. 요미우리에는 한국 때리기 기획기사가 연재되고, 산케이며 중립지인 마이니치조차도 달라졌다. 그러다 보니 일본 여론이 굳어져버렸다. 이것이 관계 회복에 방해요소로 작용했다. ▲ 청구권협정이 결코 완전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러한 불완전함 속에서도 마땅히 긍정적으로 평가받아야 할 부분이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는 유의상대사. - 본격적으로 책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한 지식인, 학생들의 시각은 부정적이다. 역사적 평가도 대단히 인색하다. 또 한편에서는 협정 이후를 '축복받아야 할 50년'이라고도 했다. 청구권 협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근거가 무엇인가? 청구권협정에는 비판의 여지가 많다. 일단 애초에 협정의 목표가 과거사를 정리하고 청산하는 것이었는데 목표 달성을 못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과거사가 문제된다. 두 번째로는, 식민지배 피해자들이 개인청구권을 통해 일본 정부로부터 배상을 받고 싶어 했는데 국가가 일괄 타결 방식으로 협상을 함으로써 개인청구권이 함몰돼버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역사, 특히 외교는 상대가 누구인지, 교섭 당시의 여건은 어떠하며 다른 압력은 없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 결론부터 내리고 오늘날의 가치관과 기준으로 당위를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청구권협정에 대해 결론부터 내리고 규범적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이 책에서 제시했다. 일단 1950년대 일본과 협상을 시작할 당시 우리 외교부 인원이 30명이었다. 일본 외무성은 1천 명이었다. 2015년 말 기준으로 지금은 외교부 인원이 2천2백여 명, 일본 외무성이 5천8백여 명 정도 된다. 게다가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였다. 제국주의의 특징은 남의 나라에 가서 경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나게 외교가 발달했다는 것이다. 그런 노하우와 경험이 축적된 인력들을 상대로, 우수한 인재지만 외교관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교섭에 나선 상황이었다. 또 하나, 한일회담이 시작된 경위를 알아야 한다. 원래는 한국 역시 일본에 식민피해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미군정 하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이 직접 교섭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때문에 결국 전후 처리를 논하는 국제회의를 통해야 했고, 그게 바로 1951년 샌프란시스코 대일강화조약(Peace Treaty of San Francisco)으로 나타났다. 샌프란시스코 회담에 참가하고자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결국은 참가하지 못했다. 물론 이것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주요한 원인은 대일배상 강경책을 주장하는 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원래 미국은 일본을 영원히 재기불능으로 만들려고 했고 중국과 손을 잡으려 했다. 그런데 중국이 공산화됐다. 유럽이 절반 이상이 공산화된 상황에서 동아시아에서도 냉전의 움직임이 보였다. 동아시아에 대리인이 필요했는데, 가능성은 일본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에 강경한 배상을 주장하자 회담에서 제외된 것이다. 그러나 그냥 물러서지 않고 이승만 정부에서 청구권과 관련한 내용은 별도의 논의를 통해 해결한다는 내용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포함시켰다. 이것이 바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4조 (a)항("제2조의 규정에 의해 일본의 통치로부터 이탈된 지역의 시정 당국 및 주민(법인 포함)과 일본 및 일본국민(법인포함)간의 재산 청구권은 양국간의 특별협정으로 처리한다.")이고, 양자회담을 통한 청구권협정의 근거다. 일본이 패전 후 한국에 남기고 간 재산을 미국이 몰수했고, 미국 정부는 이를 다시 한국에 이양했다. 미국의 조치를 일본이 인정한다는 것이 4조 (b)항("일본은 제2조가 규정한 지역에서 미군정 당국이 정한 일본 및 일본국민의 재산에 관한 처분의 효력을 인정한다.")의 내용이다. 이 역시 한국 정부의 교섭으로 포함시킨 내용이다. 즉, 이렇게 미국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회담이었기 때문에 식민지 배상을 주장하기 어려운 배경이 있었다. 청구권 협상의 시작 자체는 일본이 한국에 남겨놓은 재산과 한국이 일본에 주장하는 내용을 상호 포기하되, 여기에 +α로 우리가 받아야 할 것들 정도다. 여기에서 여러 차례 교섭을 거쳐 끝내 5억 달러를 받아낸 거다. 당시 일본의 외화보유고가 16억 달러였다. 10년에 걸쳐서긴 했지만 5억 달러라는 금액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일본은 한국 식민지 지배에 반성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비단 일본만이 아니라 제국주의 국가는 모두 다르지 않았다.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 나서 피해자들을 위한 규정은 생겨나지 않았다. 그런데 교섭을 통해 이 정도의 성과를 얻어낸 것이다. 그런데도 비판만 할 것인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의 핵심은 그것이다. ▲ 상대가 있는 교섭에서 일방적인 승리는 없으며 부족한 가운데 얻은 성과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유의상 대사. 위안부 문제는 경위가 대단히 복잡하다. 보상은 한국 정부가 할 테니 반성을 보이라는 입장인 적도 있었다. 일본 자민당에서 과거 역사에 대해 반성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리고 1995년 사회당 출신 무라야마 총리 때에는 연립정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무라야마 담화가 나왔고, '아시아여성기금'도 만들어졌던 거다. 하지만 이것은 피해자가 원하는 바가 아니라고 한국 정부에서 거절했다. 핵심은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그에 따라 보상을 하라는 것이었는데, 아시아여성기금은 정부 차원의 책임 인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거절한 거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기금을 받은 사람이 실제로 있었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실제로 처음 7명은 공식적으로 기금을 받았다. 그래서 결국 한국 정부가 1인당 4천3백만 원씩 보상을 했다. 김영삼 정부 때 5백만 원, 김대중 정부 당시 3천8백만 원이다. 김대중 정부 당시 정부 3천1백50만 원에 성금으로 6백50만 원이 마련됐다. 당시 피해자 등록된 사람이 1백50여 명, 현재는 2백38명이다. 후에 추가 등록한 분들에게는 일시불로 4천3백만 원을 지급했다. 현재 매달 지불되는 금액은 1백20여 만원 정도다. 여기에 주택, 의료가 무상이다. 지방자치단체도 50만~1백만원씩 지급한다. - 당시 한일회담의 주체들이 30~40대들이었다. 국제법이나 외교협상 등 인재풀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 정도 결과를 얻은 것은 선전이었던 것 같다. 이승만 정부 시절에는 이승만 전대통령이 일일이 지시했다. 박실 전 의원이 이승만 전 대통령을 "외교의 신"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국내 정치적으로 여러 가지 과실은 많지만, 외교 능력에서만큼은 개인적으로 정말 탁월했다는데 동의한다. 예비, 1차 회담 수석대표 양유찬 주미 대사는 산부인과 의사 출신으로 일본어는 전혀 몰랐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양유찬을 일부러 수석대표로 선발해, 미국과 영어로 협의하는데 주력하도록 유도했다. 차석대표인 김용식 대사는 영어, 일어에 모두 능통했다. 어쨌든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이승만 전대통령이 사소한 것까지 모두 진두지휘를 했다. 이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외교관이 양성됐다. 여기서 핵심역할을 한 사람이 한일협정 당시 한국측 수석대표였던 김동조다. 장면 정권이 들어서고 5차 회담부터는 외교 실무자들이 가담한다. 이 때부터 진짜 협상다운 협상이 이뤄진 것이다. - 앞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일본은 회담 시작 이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을 전혀 보인 적도 없고, 이는 일본 뿐 아니라 모든 제국주의 국가들이 그랬다고 말했다. 독일은 반성했는데 일본은 안 한다는 식의 비판이 요즘 많이 제기되는데, 독일도 사실 전범자 처벌에 엄격하진 않았던 것 같다. 일본이 주장하는 바가 그렇다. 독일은 전쟁범죄의 주체인 나치가 완전히 소멸됐다. 그러니까 후세대가 편히 반성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에는 전범의 주체인 천황이 남아있다. 일본 부흥을 위해서는 정신적 지주가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맥아더가 천황을 남겨두었다. 또 하나 독일과 일본이 다른 점이라면 독일 사회는 분단과 통일 등의 아픔이 있었다는 거다. 즉 역사적 반성을 할 계기가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그런 계기가 없었다. 1955년 이후 쭉 자민당이 집권했고 자민당이 정권을 잡지 않은 시기는 아주 짧다. 즉 일본은 반성을 할 만한 분위기가 전혀 형성이 안 됐다. 반면 독일은 동독 출신이 총리가 됐고. - 마지막으로 청구권 협정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이 있다면 무엇일까. 교섭이란 상대가 있는 것이다. 상대가 있는 교섭은 1백 대 0, 일방적으로 이길 수 없다. 결국 타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규범적인 틀을 만들어놓고 그에 따라 평가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부족하다 하더라도 그 부족한 가운데 얻은 성과는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교훈이자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바다. 대담 위택환 코리아넷 기자 정리 장여정 코리아넷 기자 사진 전한 코리아넷 기자 whan23@korea.kr 2016.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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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차르트, 록 스타로 변신하다

    모차르트, 록 스타로 변신하다

    ▲ 프랑스 오리지널 내한 뮤지컬 '아마데우스'는 18세기를 대표하는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삶을 노래로 그려낸다. 서른다섯이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는 일생 동안 클래식 음악의 전 장르에 걸쳐 6백곡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오페라, 협주곡, 교향곡과 소나타에 이르기까지 그의 음악은 다양하고, 예술적이며, 아름답다. 그를 서양음악사의 천재 작곡가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모차르트가 '록스타'로 변신해 무대에 선다. 귀에 익숙한 클래식 선율과 강렬한 록 사운드로 무대를 채우는 프랑스 오리지널 내한 뮤지컬 '아마데우스'는 18세기를 대표하는 작곡가 모차르트의 삶을 노래로 그려냈다. 지난 11일부터 세종문화회관에서 막을 올린 공연은 4월24일까지 화려한 로코코 의상과 현대무용부터 발레까지 아우르는 안무로 관객을 찾는다. ▲ 뮤지컬 '아마데우스'는 18세기 유럽의 화려한 의상과 조명으로 장면에 극적인 효과를 불어 넣는다. 극의 1막은 1772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대주교 콜로레도의 취임식에서 시작한다. 신임 대주교는 자유분방한 모차르트를 억압하고 무시한다. 이를 견디지 못한 모차르트는 음악 여행을 떠나고 여행 중 첫사랑 알로이지아를 만난다. 이어 그는 음악적 발전을 위해 파리로 떠나지만, 파리에서 어머니를 병으로 잃고 만다. 그 후 잘츠부르크로 돌아온 모차르트. 2막부터는 관객도 익숙한 살리에리와의 경쟁과 모차르트의 죽음에 초점을 맞춘다. 잘츠부르크를 떠나 빈에 정착한 모차르트는 황제의 총애를 받으며 명작을 만들어 내지만, 살리에리의 공격으로 모함에 빠지고, 아버지의 죽음까지 겹치면서 모차르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장송곡 '레퀴엠' 작곡에 빠져든다. 뮤지컬은 프랑스 제작자 알베르 코헨과 도브 아띠아가 1984년에 개봉한 밀로스 포먼의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 여기에 '라비앙 로즈'의 감독인 올리비에 다한의 연출과 안무가 다니엘 스튜어트의 안무가 더해져 록 뮤지컬 '아마데우스'가 탄생했다. ▲ 뮤지컬 '아마데우스'는 인간 모차르트의 내면과 실제 삶을 무대 위에 그린다. 뮤지컬은 '인간 모차르트'의 고뇌, 사랑, 절망, 성공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 까지의 삶을 무대 위에 그린다. 영화를 통해 보여진 천재성이나 과장된 몸짓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살리에리 역시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해 현실감을 높였다. 이번 공연에는 2009년 프랑스 초연 당시 모차르트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던 미켈란젤로 로콩테가 내한하며,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페뷔스 역으로 국내 관객들에게 알려진 로랑 방이 살레에리로 합류해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대립이 더욱 날카롭게 표현될 예정이다. 공연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www.sejongpac.or.kr/performance/view.asp?performIdx=25249&performCode=grpm1512241309001&menuNum=0101 이하나 코리아넷 기자 사진 마스트엔터테인먼트 hlee10@korea.kr 2016.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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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 대통령, "한ㆍ태국 경제협력 심화 기대"

    박 대통령, "한ㆍ태국 경제협력 심화 기대"

    ▲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청와대에서 쏨킷 짜뚜씨피탁 태국 경제부총리를 접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쏨킷 짜뚜씨피탁(Somkid Jatusripitak) 태국 경제부총리를 22일 접견하고 한ㆍ태경제 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다. 박 대통령은 쏨킷 부총리에게 “한국과 태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내실화되고 있다”고 평가하며 제1차 한-태국 경제협력위원회 등을 통해 양국간 경제협력 활성화 방안이 심도있게 논의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박근혜 대통령과 쏨킷 짜뚜씨피탁 태국 경제부총리가 양국간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쏨킷 부총리는 “태국이 한국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양국간 무역ㆍ투자 분야에서 한층 더 깊은 협력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디지털, 창조경제, 하이테크, 통신, 전자 등 여러 분야에서 특별경제구역 및 산업클러스터를 발전시키길 바라고 이들 분야에서 많은 경험과 지식을 축적한 한국과의 협력을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쏨킷 부총리는 “쁘라윳((Prayuth Chan-ocha) 총리가 한국 투자자들이 태국의 대규모 사업에 참여하길 기대하며, 애로사항 해소를 위해 정부가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등 한국과의 경제협력 확대에 큰 관심과 의지를 갖고 있다”며 총리의 친서를 전달했다. 박 대통령은 쁘라윳 총리의 호의에 사의를 표하며 한ㆍ태 양국간 경제 협력의 잠재력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노력해나가겠다고 화답했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 쏨킷 부총리는 “태국 정부가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 이행 등 북한의 태도를 변화시키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적극 동참한다”며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을 계속 지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윤소정 코리아넷 기자 사진 청와대 arete@korea.kr 2016.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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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세계의 인재들이 꿈을 구현하는 창조경제의 요람"

    "전세계의 인재들이 꿈을 구현하는 창조경제의 요람"

    경기도 성남의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가 22일 문을 열었다. 기업의 창업과 성장, 해외진출까지 모든 단계를 지원하는 기관이다. 2백 개 이상의 창업기업(스타트업)과 10개의 관련 기관이 입주할 계획이며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빅데이터, 모바일 (IoT, Cloud, Big data, Mobile, ICBM) 관련 분야의 창업과 혁신을 지원한다. ▲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 개소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개소식에서 “스타트업 캠퍼스는 판교창조경제밸리의 글로벌 전진기지가 될 것”이라며 ICBM(사물인터넷, 클라우드, 빅데이터, 모바일) 분야 공공 인프라 활용 지원, 기업의 개방형 혁신 지원 및 글로벌 인재 양성, 창업기업과 세계를 연결하는 관문 역할을 해줄 것을 주문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지난 주 인공지능 알파고와 인간(이세돌9단)과의 바둑 대결을 언급하며 “최근 관심이 집중되는 인공지능, 가상현실을 비롯한 ICT(정보·통신·기술) 융합분야는 앞으로 창업과 기술혁신의 보고(寶庫)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올해부터는 국내외 창업 지원기관의 자원과 역량을 한데 모아 창업과 사업화에 성공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등 선순환 혁신 클러스터를 전국 주요 권역별로 구축해나갈 계획"이라며 “판교에 2017년까지 창업기업 보육공간과 산학연 협업 공간을 마련하고 국제교류 시설, 전시와 컨퍼런스 공간 등을 확충해 창조경제밸리를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전 세계의 인재들이 찾아와서 창업의 꿈을 구현하는 ‘창조경제의 요람’이 이곳에서 펼쳐지기를 기대한다”며 "(스타트업 캠퍼스가) ‘아시아의 창업허브, 대한민국’으로의 도약을 위한 든든한 디딤돌이 되어 달라"고 당부했다. 윤소정 코리아넷 기자 사진 청와대 arete@korea.kr ▲ 박근혜 대통령(왼쪽)이 판쿄 스타트업 캠퍼스 입주기업의 제품을 시연해보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오른쪽 두번째)이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 관계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201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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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학의 보물들

    의학의 보물들

    “A doctor should have the wisdom of a snake and heart of a lion.” (의사는 뱀의 지혜와 사자의 용기를 지녀야 진정 의사다.) Aviccena (이븐 시나) 한국의 역사적인 위인이라 하면 세종대왕, 이순신을 떠올리지 혹시 허준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허준은 역사 속 진정한 의사의 본분을 일깨워준 의료인이었다. 허준에 대해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백성을 위하는 긍휼(矜恤) 정신이었다. 그러한 마음으로 모든 백성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동의보감’이란 책을 몇 달의 밤을 설치며 만들었다. 게다가 허준은 엔터테이너적인 의사였다. 허준은 환자에게 웃음을 주는 유모 감각이 의사의 필수 무기라고 말했었다. 환자의 보이는 병뿐만 아니라 환자의 마음마저 알아내 정신적으로도 치료해야 진정한 의사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허준의 사명감에 또한 감동했다. 허준은 전쟁이 나도, 전염병 환자라 해도 환자 곁을 지키며 자기보다 환자를 먼저 생각했던 모습이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 율다세와 샤흘로 (Yuldashevwa Shakhlo) 우즈베키스탄에도 허준과 비슷한 위인이 있었다. 세계로 널리 알려진 역사적인 인물 아부 알리 이븐 시나(Abu Ali ibn-Sina (Avicenna) 980 ~ 1037))다. 뛰어난 기억력과 공부에 대한 열정으로 유명해진 이븐 시나는 과학, 수학, 의학, 철학, 천문학, 문학과 음악에 의미심장한 이바지를 한 사람이다. 이븐 시나는 스승들의 가르침의 수준을 뛰어넘자 18세가 될 때까지 몇 년간 독학했다. 그 후 21세가 되자 운율법에 관한 ‘편집’이란 책을, 법학자를 위한 ‘합과 실질’, ‘양서들과 악’ 두 권의 책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그의 걸작은 무려 1백만 단어가 적힌 5권의 ‘의학 전범(The Canon of Medicine)’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12세기에 라틴어로 번역된 뒤에 16세기까지 유럽의 의학교육 교과서로 사용됐다. 생각해 보니 많은 점이 한국의 허준과 닮아 외국인인 나에게 허준이 꽤 친근하게 느껴졌다. 두 의사는 각 환자를 그저 들어주는 것보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했다. 이븐 시나는 정신적인 건강이 육체적인 건강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주장했었다. 그는 환자의 지금 사는 환경, 요즘의 고민 등 환자의 마음속을 알아내려는 의사였다. 허준이 우울한 아낙네를 약이 아닌 좋은 음식과 기분 좋은 웃음으로 낫게 해줬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이븐 시나도 그와 비슷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이븐 시나에게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한 병에 걸린 사내가 실려 왔다. 젊은 사람이 갑자기 맥이 빠져 계속 우울한 상태였다. 이븐 시나는 바로 손목에 맥을 짚고 숨소리를 들으며 묻기 시작했다. 근데 엉뚱하게도 이 동네, 저 동네 이름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근데 어느 동네 이름을 말하자 갑자기 사내의 맥박이 빨라지고 숨이 거칠어졌다. 그러자 이븐 시나가 그 동네에 사는 여자들의 이름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소녀의 이름을 말하자, 남자는 거의 기절할 것 같은 상태였다. 이븐 시나는 그 소녀를 데려오라고 했다. 영문도 모른 채 소녀가 불러오자 젊은이는 단번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웃기 시작했다. 바로 소녀를 너무 좋아하다 보니 생긴 상사병이었다. 사람의 혈압과 맥박상태를 보여주는 거짓말 탐지기와 같은 원리를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일화를 바탕으로 두 의사 모두 환자의 마음을 알아내는 능력이 정말 뛰어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화에 나온 상사병에 관해 이븐 시나는 허준의 ‘동의보감’처럼 역사적 가치가 높은 자기의 ‘의학 전범’이라는 책에서 언급했다. ‘의학 전범’은 정확했고 논리적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읽기 쉽다는 것이었다. ‘의학 전범’은 허준의 ‘동의보감’과 마찬가지로 병의 진단, 원인 및 치료법이 상세히 설명되어있어, 의학을 전혀 모르는 일반인도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 결과, 체계적으로 정리된 ‘의학 전범’은 오랫동안 유럽 의학의 기초가 되었으며 인기를 누렸다. 두 의사 간 거리도 멀었고 살았던 시대도 달랐지만, 현대 의사들과 달리 의사가 지녀야 할 책임감, 사명감 및 긍휼 정신이 시대와 국가를 초월해 허준과 이븐 시나를 이어준다는 생각이 든다. 안타깝게도 현대 의사들은 요즘 들어 지식과 기술 습득에 치중하고 있어, 허준, 이븐 시나와 같은 자세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래서 나는 한국의 허준과 ‘우즈베키스탄의 허준’인 이븐 시나를 항상 마음속에 기억해야 할 의학의 보물이라고 생각한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유학 온 율다세와 샤흘로씨는 경희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앞으로 한국에서 일하며 계속 살 계획이다. 201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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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료복지의 현장 탐방

    의료복지의 현장 탐방

    충청북도 괴산군(槐山郡)은 한국 중부에 자리잡은 산악지역이다. 지형이 산과 계곡으로 이뤄져 중부내륙의 오지로 불렸던 곳이다. 서울시의 면적(6백52 km²)을 훨씬 웃도는 규모(8백42 km²)지만 인구는 서울의 30분의 1인 3만8천2백50명(2016년 2월 현재). 이 가운데서 60세 이상이 30%에 달하는 1만1천4백71명이다. 이곳 또한 한국의 농어촌이 직면하고 있는 인구고령화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병·의원, 치과, 한의원 등 민간의료시설은 군의 중심인 괴산읍에만 집중돼 있다. 읍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마을 주민들은 원활한 의료서비스를 받기 어렵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큰 불편없이 살고 있다. 공공의료 지원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공중보건의(public health doctor)가 상주하는 보건지소(sub health center) 11곳, 간호사가 상주하는 보건진료소(primary health care post) 28곳이 군의 하부단위인 면과 마을에 있다. 공중보건의는 의과대학을 마친후 병역의무대신 의사가 없는 지역에서 3년간 진료활동을 하는 의사를 말한다. 보건진료소의 공무원은 간호사 또는 조산사 자격을 갖추고 24주간 교육을 받고 보건진료를 전담하며 제한된 범위에서 처방권한을 갖는다. 군청이 자리잡은 괴산읍에는 보건소(health center)가 있다. 보건소가 이들 보건지소와 보건진료소를 종합관리한다. ▲ 공공의료의 최일선인 보건진료소에서 마을주민이 진료를 받고 있는 모습. 보건진료소는 의료의 사각지대인 농어촌에 집중돼 마을주민들의 건강을 예방위주로 관리하고 있다. ▲ 보건진료소는 대개 부지면적 6백60㎡에 연면적1백65㎡ 규모로 진료실, 건강증진실, 찜질방 등의 시설이 구비돼 있다. 지난 14일 공공의료의 최일선으로 괴산군 사리면(沙梨面) 이곡리(梨谷里)에 자리잡은 강천보건진료소를 방문했다. 안정란(安定蘭) 소장은 “12개 마을, 9백여명의 주민을 담당하며 하루에 내원하는 환자는 월 1백60~2백50명에 달한다”며 “환자는 농한기에 집중된다”고 말했다. 보건진료소에선 간호사 또는 조산사 면허를 가진 '보건진료 전담공무원'이 합병증이 없는 복통, 기침, 발열, 피로, 설사 등을 동반한 증상 및 질환에 대해 규정된 약품 범위내에서의 치료와 투약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 소장이 밝힌 괴산군을 비롯, 소위 말하는 한국의 ‘시골’에서 균일되게 이뤄지는 의료서비스는 다음과 같다. 감기, 몸살, 소화불량 등 급성질환의 3일치 약값 5백원~9백원.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의 한달치 약값 1만2천2백원 물리치료, 발치, 잇몸질환 치료, 스켈링 1천1백원 65세 이상 전액 무료. 마을별 주 1회 무료사우나 서비스. 무상 운동처방 등 ▲ 안정란 보건지료소장은 간호사 혼자서 12개 마을 9백여 주민의 건강관리를 맡아 어렵지만 주민들이 무, 배추, 옥수수 등을 갖고 감사의 표시를 할 때 두터운 인심을 느낀다고 말한다. 사실 한국의 공공의료시스템은 서구에 비해 현저히 늦게 시작했다. 공공의료사업은 1945년 해방 후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예방보건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1946년 서울에 보건소가 설립되어 공공의료의 기초가 되었고, 1948년 정부 수립에 따라 국립중앙보건소 직제가 공포되었다. 그러나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였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의료시설과 기자재 등이 파괴됐고 극도의 빈곤으로 국가 차원의 보건의료는 생각지도 못했다. 의료는 주로 소수의 의료인력 중심으로 이뤄져 대부분의 가난한 국민들은 보건소나 보건진료소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으나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의 제공은 상상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1980년에 이르러서야 ‘농어촌 등 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이 공포돼 농어촌 의료취약지역에 보건진료소가 설치됐다. 지난 1977년 대기업 근로자를 대상으로 의료보험이 도입된 이래 1989년에는 전국민의료보험이 완성됐다. 환자와 국가의 공동부담 방식이지만 낮은 의료수가로 모든 국민에 언제, 어디서나 치료를 받게 된 것. 괴산군의 공공의료를 책임지고 있는 김금희(金錦姬) 보건소장은 이곳에서만 30년 이상 일한 지역보건 전문가. 그는 그동안 공공의료서비스의 변화 속도와 폭은 한마디로 말해 ‘경이’라고 말한다. “30년전 결핵, 가족계획, 모자보건(분만), 예방접종에 집중했다. 1980년~89년 세계은행(IBRD)의 차관을 도입해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농어촌지역 89곳에 설치한 모자보건센터는 임산부 및 영유아에 대한 건강관리와 분만을 실비로 제공했다. 당신 분만 비용은 9천원. 7년간 방문간호를 했다. 괴산군내 2백75개 마을을 다 돌아다녔다. 대개 마을 마다 중풍, 치매, 정신질환자가 각각 2명이 있다. 2007년 복지부에서 차량지원을 해주기 이전에는 버스, 스쿠터 등을 이용했다. 마을버스는 하루에 3번 운영하는 경우가 허다하여 정말 힘들었다. 보건복지부가 한 일 가운데 차량지원이 가장 잘했다고 생각한다. 모자보건센터에서 출산한 아이들이 이제 결혼하고 있다. 뿌듯하다.” ▲ 김금희 괴산군 보건소장은 아웃소싱 추세로 인한 의료서비스의 저하를 우려하며 보건과 복지의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면한 현안에 대해 김 소장은 “괴산군 인구의 30%가 60세 이상이다. 따라서 노인건강증진에 초점을 맞춰 건강수명을 늘리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며 “심내혈관질환, 치매예방도 중요하다. 따라서 치료위주에서 예방위주로 전환하고 있다. 금연, 운동, 절주, 영양, 비만, 심내질환, 치매, 정신보건, 구강보건 등 13개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보건의료는 아웃소싱추세다. 의료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군단위까지 아웃소싱을 하는 것은 문제 있다”며 “의료서비스의 질저하가 우려된다. 복지예산으로의 집중도 그렇다. 보건이 뒷받침돼야 복지도 제대로 이뤄지는데 균형이 잡혀있지 않다”고 현장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2014년 10월 기준 한국에는 보건소 254곳, 도시보건지소 33곳, 보건지소 1천2백84곳, 보건진료소 1천9백4곳이 있다. 글·사진 위택환 코리아넷 기자 사진 강천보건진료소 whan23@korea.kr ▲ 괴산군 보건소의 물리치료실. 1천1백원의 저렴한 비용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 괴산군 사리면의 보건지소. 내과, 치과, 건강증진사업, 방문건강관리사업 등이 이뤄진다. 201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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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리는 ‘작은 도서관’

    달리는 ‘작은 도서관’

    ▲ 경의중앙선 ‘독서바람 열차’에서 승객들이 책을 읽고 있다. 달리는 지하철 안에 독서 바람이 분다. 경기도 파주 문산역에서 양평 용문역을 잇는 124km 구간 경의중앙선에 ‘독서바람 열차’가 달리기 때문이다. 독서바람 열차의 객차 한량이 책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네 개의 서가에 인문, 소설, 시집, 동화책 등 도서 5백여 권이 꽂혀있다. 그 옆에 설치된 4대의 단말기에는 다양한 장르의 전자책이 담겨져 있다. ▲ 올해 1월부터 운행을 시작한 ‘독서바람 열차’의 외관에는 ‘책이 미래다’, ‘책으로 하나 되는 세상’ 등 문구와 함께 출입문에는 열릴 때마다 책을 펼치는 듯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열차에 올라타는 승객들은 예상하지 못한 작은 도서관 등장에 모두 “신기하다”, “너무 좋다”는 반응이다. 한 승객은 “책들이 있어 긴 여행이 지루하지 않겠다”며 “사람들이 가는 목적지까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대신 잠시라도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이 달리는 작은 도서관에서는 매월 정기적으로 ‘작가와의 만남’, ‘북 콘서트’ 등 유익한 독서관련 행사들도 운영된다. 별도의 추가 요금은 없다. 기존 열차요금만 내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 승객들이 ‘독서바람 열차’ 안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을 꺼내 읽고 있다. 독서바람열차는 평일에 두 차례, 주말과 공휴일에는 세 차례 운행한다. 문산역을 출발해 용문역 방향으로 가는 열차는 평일 6시 34분, 12시 31분, 주말 6시 26분, 12시 30분, 18시 17분 출발한다. 용문에서 출발해 문산역으로 가는 열차는 평일 9시 41분, 15시 38분, 20시 24분이며, 주말에는 9시 31분과 15시 31분, 20시 21분(덕소역 출발)이다. ▲ ‘독서바람 열차’의 한쪽 면이 서가처럼 꾸며져 있다. ▲ 한 승객이 책장 옆에 설치된 전자책 단말기를 확인하고 있다. ▲ ‘독서바람 열차’ 안에 비치된 단말기에는 여러 장르의 전자책들이 담겨 있다. 글·사진 손지애 코리아넷 기자 jiae5853@korea.kr 201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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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인물: 시인 정지용

    한국의 인물: 시인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낙원에 대한 지향을 시로 표현한 ‘향수’의 시작부분. 한국인들이 즐겨 부르는 가곡의 가사이기도 하다. 이 시를 쓴 작가는 한국 현대시의 선구자로 불리는 정지용. ▲ 1902년 태어나 1950년 평양에서 타계한 것으로 알려진 정지용시인 정지용은 1902년 6월 20일 충청북도 옥천 하계리에서 태어났다. 1910년 옥천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1913년 송재숙과 결혼했다. 1918년 서울로 올라와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동인지 『요람』을 발간했다. 1919년 3ㆍ1운동 때는 교내 시위를 주동하다가 무기정학을 받기도 했다. 1919년에 창간된 월간종합지 <서광>에 『3인』이라는 소설을 발표하였다. 1922년 휘문고보를 졸업한 뒤, 시작(詩作) 활동을 하였고 이듬해인 1923년 일본 교토의 도시샤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다. 대학에 다니던 1926년 유학생 잡지인 <학조(學潮)> 창간호에 『카페 프란스』를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1929년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 휘문고보 영어과 교사로 부임하여 해방이 될 때까지 재임하였다. 1930년에는 『시문학』을 발간하고, 1933년에는 순수문학을 지향하며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34세 때인 1935년 그 동안 발표했던 시들을 묶어 첫 시집인 『정지용 시집』을 출간하였다. 1939년부터는 시뿐 아니라 평론과 기행문 등의 산문도 활발히 발표했으며, 1941년에는 두 번째 시집인 『백록담』을 발간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그로 인해 사회 상황이 악화되면서 작품 활동을 중단한 채 은거 하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이화여자대학교의 교수가 되어 한국어와 라틴어를 강의하였고, <경향신문>의 편집주간으로 활동했다. 1946년에 시집 『지용시선(芝溶詩選)』을 발간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이화여대 교수를 사임하고, 지금의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초당을 짓고 은거하며 『문학독본(文學讀本)』을 출간했다. 이듬해인 1949년 2월 『산문(散文)』을 출간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 서대문형무소에 수용되었다. 이후 북한군에 의해 납북되었다가 1953년 평양에서 타계했다고 알려져 있다. 정지용은 1930년대에 이미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시인 김기림은 “한국의 현대시가 지용에서 비롯되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참신한 이미지와 절제된 시어로 한국 현대시의 성숙에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한 시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분단 이후 오랜 기간 그의 시들은 다른 납북 문인들과 마찬가지로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금지됐다. 그러다 1988년 3월 해금(解禁)되어 대중에게 다시 알려지기 시작했고, 1989년에는 ‘지용 시문학상’이 제정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995년에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향수’가 가요로 만들어져 발표되기도 했다. ▲ 정지용의 대표시, <향수> 정지용의 시에서 가장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향수라 할 수 있다. 향수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상실된 낙원을 회복하고자 하는 소망을 간직하고 있다. 이것은 비관적인 현실인식에서 비롯되며, 그리움과 함께 비애의 정조를 띠게 된다. 향수[鄕愁]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섭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 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의 힘든 상황 속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 상실의 비애감을 시로 표현한 정지용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손지나 코리아넷 기자 사진 연합뉴스 ginason@korea.kr 201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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