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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퍼 파워 - 한지의 뛰어난 다양성

    페이퍼 파워 - 한지의 뛰어난 다양성

    문(文)은 무(武)보다 강하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종이가 없었다면 갈피를 못 잡았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 더욱 그렇다. 한국 특유의 종이인 한지는 닥나무 껍질과 닥풀을 원료로 만들어진다. 이 특별한 종이는 한국의 학문, 문학, 예술, 건축, 여가 활동 등의 체계를 세운 재료로, 영향력이 광범위하다. 한지는 질기고 매끈하며 다방면으로 결이 져있다. 섬유질이 가로나 세로로 되어 있는 일반 종이와는 매우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처음 접해보는 사람에게 한지는 필기 용지보다는 서양식 베이킹 종이와 닮은 모습이다. 고고학자들은 한지가 고대부터 한반도에서 제조됐다고 한다. 원료로 닥나무 껍질과 황촉규(접시꽃) 뿌리에서 나오는 점액질을 닥풀로 사용한다. 이런 과정으로 탄생한 한지는 그 어떤 종이와도 다른 감촉과 질감을 갖게 된다. ▲ 팀 알퍼 유럽은 아시아보다 훨씬 뒤늦게 종이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유럽 대륙은 이베리아 반도(오늘날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이슬람교 지배자들이 11세기 말 동양의 제지업자들을 고용하면서 종이라는 재료를 얻게 됐다. 유럽 관료들이 저렴한 필기 도구를 찾던 찰나에 나타난 '종이'는 서양인들에게 문인들을 위한 특별한 자원으로 인식됐다. 반면 한국에서 쓰이던 한지는 필기도구이자 다른 여러 기능을 가진 만능 재료였다. 이미 기원후 1세기부터 한국 통치자들은 필경사를 고용해 마섬유를 원료로 하는 종이에 기록하게 했고, 그 후 7세기 불교 수도자들은 목재 인쇄판을 이용해 한지에 인쇄했다. 한지의 발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중세시대 초기, 한지 산업은 번창했다. 한국 상인들은 중국 무역상들과 거래를 통해 큰 수익을 남겼고, 중국 고객들은 고품질 한지를 찾았다. 한지의 상당한 융통성을 인지한 한국 정부는 닥나무 산림 자원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정부 지원으로 머지않아 한지 공급은 풍요로워졌고, 사람들의 재료를 창의적으로 일상에 응용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한지로 연을 만들고, 농부들은 종이로 가리개를 제작해 농작물이 한해를 입지 않도록 대비했다. 목수들은 창과 문틀에 한지를 덧붙였고, 공예가들은 가구, 부채와 전등갓을 만드는데 사용했다. 심지어 공병들은 병사들을 위해 방수·방패 역할을 하는 한지 소재 갑옷을 생산했다. 오늘날에도 한지는 공예가들이 선호하는 재료 중 하나다. 신세대 디자이너들은 한지를 액세서리, 인형, 장난감 등을 만드는 데에 사용한다. 한지는 매년 5월 초, 석가탄신일을 기념하여 전성기를 누린다. 이 기간 동안 불교 신자들은 화려한 색상과 다양한 형태를 지닌 한지 연등을 제작한다. 밤이 되면 도시 곳곳 사찰과 주변 거리들은 연등의 은은한 빛으로 물결친다. 연등회의 백미는 연등행렬이다.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직접 만든 등에 불을 밝히고 거리로 나선다. 각양각색의 전통 등은 서울시민들은 물론 관광객들에도 큰 볼거리다. 유럽에서는 르네상스 시대 전까지 종이가 매우 귀했다. 유럽인들은 종이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교육을 받은 중산층은 다양한 서적을 원했고, 종교적 혁명가들은 개혁의 메시지를 담은 글을 널리 분포하고자 했다. 상류층은 적당한 가격의 벽 장식을 찾고 있었다. 당시 종이를 대체하던 양피지 같은 필기 도구는 엄두를 못 낼 만큼 비싸고 사용하기 번거로웠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 기술의 종이는 이런 여러 애로사항에 해답은 줬다. 이슬람 이베리아 사람들이 먼저 재료의 우수함을 증명하자 유럽 대륙 곳곳에 제지 공장이 생겼다. 글과 그림을 인쇄할 용도로 제작된 이 종이는 전단지, 책, 벽지 등을 만드는데 사용됐다. 유럽인들이 사용한 종이는 한국의 다용도 한지와는 달랐다. 이 종이는 상업적으로 제작되어 상업적인 인쇄물을 찍어내는 데에 쓰였다. 한국의 공예가들은 여전히 일반종이보다는 한지에 높은 가치를 둔다. 하지만 한지의 단점들도 인정한다. 일반종이와 비교했을 때 한지는 글을 쓰거나 인쇄하기 어렵다. 제조 방법이 많은 노동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가격도 더 비싸다. 하지만 한지가 없는 한국은 상상하기 힘들다. 가장 한국적인 요소들을 지닌 손부채, 연, 병풍 등은 한지가 접목되었기에 제 기능을 하게 된다. 한옥의 여러 칸들은 한지로 만든 미닫이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전통한옥 문살을 완성하는 한지 창문은 햇빛, 달빛, 촛불 빛을 모두 은은하고 따뜻하게 연출한다. 한지는 모든 상황에 적응이 가능한 한국사람들과 많이 닮아있다. 한지의 역사를 살펴보고 옛 조상들이 한지를 어떻게 삶에 응용했는지 공부하다 보면 그 어느 교과서보다 더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영국출신의 팀 알퍼는 현재 한국생활 10년째로 음식평론 등을 하며 활동하고 있다. 번역 이하나 코리아넷 기자 2016.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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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빙속 정상에 오른 ‘이상화-이승훈’

    빙속 정상에 오른 ‘이상화-이승훈’

    ▲ 이상화가 14일 러시아 콜롬나에서 열린 ISU 여자 500m에서 74초859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며 시상대 정상에 올랐다. 사진 왼쪽에서부터 브리타니 보(미국, 은메달), 이상화, 장홍(중국, 동메달). 한국 빙상을 대표하는 이상화와 이승훈이 러시아에서 금빛 소식을 전해왔다. 이상화는 14일 러시아 콜롬나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500m에서 1·2차 레이스합계 74초859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 2012년과 2013년 연속으로 여자 500m 정상에 올랐던 이상화는 지난해 무릎 부상으로 메달획득에도 실패했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를 몰랐다. 존경하는 선배인 이규혁이 감독을 맡은 뒤, 빠르게 경기력을 회복하기 시작한 이상화는 여자 500m 부문 그녀의 아성에 도전하는 미국의 브리타니 보(75초653), 중국의 장홍(75초682)을 0.8초 가까운 차이로 따돌렸다. ▲ 이상화가 14일 러시아 콜롬나에서 열린 ISU 종목별 세계선수권 대회 여자 500m에 출전해 역주하고 있다. 이상화는 “2년 만에 다시 찾아왔습니다. 사실 많이 떨리고 힘들고 외로웠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드디어 이겨냈습니다”라는 글을 자신의 SNS에 남기며 소치 동계올림픽이 열려 대회가 열리지 않았던 지난 2014년과 부진했던 2015의 마음 고생을 털어냈다. 국제빙상경기연맹은 지난해 아쉽게 5위에 그쳤던 이상화가 다시 정상의 자리에 돌아왔다며 그녀는 이제 캐나다의 카트리나 르메이돈(Catriona Le May Doan)과 함께 3번 이 대회 정상에 오른 선수가 됐다고 밝혔다. ▲ 이승훈이 14일 러시아 콜롬나에서 열린 ISU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매스스타트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뒤, 환호하는 관중을 향해 꽃다발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승훈은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 첫 도입됐던 남자 매스스타트에서 한국을 넘어 아시아 선수 처음으로 정상에 올랐다. 7분18초26으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이승훈은 지난해 대회 정상 아리얀 스토뢰팅아(네덜란드)를 불과 0.06초 차이로 따돌리며 짜릿한 금빛 기쁨을 느꼈다. 지정된 레인 없이 400m 트렉을 16바퀴 도는 종목인 메스스타트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있다. 전한 코리아넷 기자 사진 연합뉴스 hanjeon@korea.kr 2016.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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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은 ‘스마트 팜’ 시대

    한국은 ‘스마트 팜’ 시대

    이제는 새벽같이 농장으로 달려가 농작물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비닐하우스의 온도나 습도 등을 하나하나 조작해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 하나로 간편하게 해결한다. ‘스마트팜 (Smart Farm)’ 덕분이다. 스마트 팜, 즉 스마트 농장은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 기술을 이용해 농작물 재배 시설의 온도와 습도, 햇볕량 등을 측정 분석해 모바일 기기를 통한 원격 제어가 가능한 농장으로 기존의 농장보다 적은 노동력, 에너지로도 생산성과 품질 향상을 이끌 수 있다. ▲ 세종시 연동면의 농부 부부가 스마트팜이 설치된 비닐하우스 농장에서 스마트폰으로 재배한 토마토를 수확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스마트 팜과 연결된 스마트 폰 등 모바일 기기에 내려 받은 애플리케이션으로 밖에 나가지 않아도 농작물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애플리케이션으로 비닐하우스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비닐하우스 안팎의 모습을 확인할 있다. 또한 농작물 관리 센서를 집 안은 물론 국내외 어디서든 인터넷에 접속해 손 안에서 작동할 수 있다.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딸기 농사를 짓고 있는 오희준 희망담은농장 대표는 “지난 8년여간 농사를 하면서 비닐하우스 곁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다”며 “이제는 인터넷만 되면 어디서든 농장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보니 삶까지 바뀌었다”고 말했다. 축산업에서도 스마트 팜을 도입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 돼지를 기르는 돈사에서는 온도, 습도, 정전 및 화재 감지가 PC와 스마트폰으로 24시간 실시간 모니터링 된다. 또한 분만, 출하, 폐사, 항생제투여 실적 등을 분석하며 돼지의 체중을 수시로 측정해 성장 단계에 맞게 사료량을 조절한다. 충청남도 천안시의 풍일농장은 스마트 팜 선도 농장이다. 풍일농장은 약 1만㎡에 이르는 돼지농장의 관리실, 돈사 내 온도·습도·화재 관리기, 사료 신선 저장고, CCTV 등 모든 운영 현황이 PC와 스마트폰으로 연결돼 있어 언제 어디서든 농장을 체크하고 정밀하게 관리할 수 있다. 정창용 풍일농장 대표는 “스마트 팜 시스템을 통해 여러 데이터가 모이면 모돈(母豚)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사료를 먹고 몇 마리의 새끼를 낳았는지 등을 쉽게 구분할 수 있게 됐다”며 “농장 운영비 가운데 고정비의 70%가 사료비인데, 데이터 분석을 통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정창용 풍일농장 대표가 스마트폰을 활용해 돈사를 실시간으로 제어하며 돼지를 사육하고 있다. 이처럼 스마트 팜이 농촌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스마트 팜이 보급되면서 지금처럼 추운 날씨에는 밤새 기온이 떨어져 농작물이 얼지 않을까 밤잠을 설칠 필요도 없다. 한시도 농작물 곁을 떠날 수 없었던 농부들은 이제 며칠 간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명절 때는 걱정 없이 다른 지역에 있는 가족들을 만날 수도 있게 됐다. 손지애 코리아넷 기자 사진 연합뉴스, 위클리공감 jiae5853@korea.kr 2016.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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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차, 봅슬레이 대표팀 기록단축 돕는다

    현대차, 봅슬레이 대표팀 기록단축 돕는다

    ▲ 봅슬레이 대표팀 원윤종(앞)-김진수가 지난 1월 28일 스위스 생 모리츠에서 열린 유럽컵 대회에서에서 국산 썰매를 끌고 출발하고 있다. 지난 1월 23일 원윤종-서영우 한국 봅슬레이 대표팀이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역사적인 기록 자체도 화제였지만 이들이 처음 훈련을 시작했을 당시의 열악한 상황도 새삼 주목을 받았다. 억대를 호가하는 썰매를 살 수 없어 유럽 팀들이 쓰고 버린 썰매로 훈련했다는 내용이었다. 더는 대표팀이 중고 썰매를 구해다 쓰지 않아도 된다. 이들만을 위한 맞춤형 국산 봅슬레이 썰매가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제작한 봅슬레이 썰매가 지난 1월 28일 2015-2016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IBSF) 유럽컵 8차 대회에서 첫 선을 보였다.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이용 대표팀 감독은 새 썰매에 대해 가속력, 조종 모두 만족스럽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무엇보다 겨우 1년 반 남짓한 기간 만에 다른 썰매제조업체들의 수십 년 노하우와 기술력에 근접했다는 사실에는 놀라움을 표했다. 이전 대회까지 한국 대표팀은 라트비아의 썰매 전문제조업체 BTC의 제품을 사용해왔다. 봅슬레이는 '얼음 위의 포뮬러 원(F1)'으로 불린다. 가파른 커브를 엄청난 스피드로 질주하는 기록 경기라는 점에서 둘은 닮았다. 장비 측면에서도 그렇다. 봅슬레이와 F1 모두 기록을 조금이라도 단축할 수 있는 장비 개발이 중요하다. 때문인지 세계적인 자동차 제조사들이 봅슬레이 썰매도 제작한다.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서 영국 팀은 맥라렌, 이탈리아 팀은 페라리에서 제작한 봅슬레이 썰매를 탔다. 미국 팀은 독일 BMW에서 만든 썰매를 탔다. ▲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레이저 실험을 하는 모습. 현대차는 가볍고 안전하며 선수들에게 꼭 맞는 썰매를 개발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공기저항 분석 시뮬레이션과 실제 자동차 개발에도 쓰이는 윈드 터널 공기저항 평가를 통해 공기저항을 최소화한 디자인을 개발하는 한편, 탄소 소재를 사용해 가볍고 튼튼한 동체를 만드는데 주력했다. 트랙 맞춤형 프레임에, 3D 스캔 기술을 활용해 선수들의 체형을 완벽하게 반영한 내부를 만들었다. 현대차는 지속적으로 수정사항을 반영, 썰매를 보완하기로 했다. 2018년 평창에서 한국 대표팀이 경기를 할 최적의 썰매를 제작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장여정 코리아넷 기자 사진 현대자동차그룹 icchang@korea.kr 2016.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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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동에서 함께 웃어요

    명동에서 함께 웃어요

    ▲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2일 명동에서 '외국인 손님맞이 K 스마일 캠페인'에 참석해 외국인 관광객에게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비정상회담' 출연진들이 명동에서 관광객들과 함께 웃었다. 김 장관은 12일 명동 예술극장 앞 특설무대에서 인기 방송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의 출연진 알베르토 몬디, 샘 오취리, 니콜라이 욘센 등과 함께 '한국관광'과 '친절'을 주제한 미니토크 '응답하라 K-스마일'을 함께 했다. '2016~2018 한국 방문의 해'와 '코리아그랜드세일'을 맞아 계속되고 있는 캠페인 'K-스마일'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을 위한 친절문화를 정착시키고, 쇼핑, 숙박, 음식, 교통 등 주요 관광시설의 편의성과 관광객들의 만족도를 높이고자 시작됐다. 이하나 코리아넷 기자 사진 문화체육관광부 hlee10@korea.kr ▲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2일 명동에서 열린 '외국인 손님맞이 K 스마일 캠페인'에 참석해 인기 방송프로그램 '비정상회담' 출연진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2일 명동 '이니스프리' 매장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부가세 즉시환급제도'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2016.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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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밥상이 나라의 운명을 바꾼다'

    '밥상이 나라의 운명을 바꾼다'

    ▲ 조태권 광주요그룹 회장은 “문화는 축적되어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아름다운 도자기 그릇과 그 안에 담긴 맛있는 음식, 그리고 이에 걸맞은 술, 이 세 가지가 어우러져 완성된 한국의 전통 식(食)문화를 선보이는 이가 있다. 바로 ‘광주요그룹’의 조태권 회장이다. 광주요의 역사는 1963년부터 시작됐다. 조 회장의 부친인 고(故) 조소수 선생은 조선시대 왕실에서 쓰는 도자기를 구워내던 도자기 제조소 광주관요(廣州官窯)의 끊겨 버린 맥을 다시 이었다. 조선 초기 경기도 광주군에 설치됐던 광주관요에서는 고려청자와 청화백자가 주로 생산됐다. 19세기말 서양에서 대량생산된 청화백자가 들어오면서 광주관요는 쇠퇴기로 들어섰다. 그리고 광주관요는 1884년 문을 닫았다. 79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에 고(故) 조소수 선생이 관요의 꺼진 불을 다시 밝혔고 그렇게 시작한 ‘광주요’는 가마의 불이 꺼지지 않고 있다. 조태권 회장은 고(故) 조소수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난 1988년 광주요를 이어 받았다. ▲ 조태권 광주요그룹 회장은 고인이 된 부친이 제작한 도자기에 음식을 담아 손님에게 내 놓는다. 그런 그릇을 그는 아버지를 대하듯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그의 소중한 그릇에 진정으로 담으려는 ‘문화’라는 음식을 설명한다. 조 회장은 “음식을 담는 그릇이 음식문화의 품격을 결정하고, 국민이 품격 있게 먹어야 나라의 품격도 올라간다”는 신념을 갖고 각 공정의 장인들이 하나의 고려청자, 그리고 조선백자를 생산하게 했다. 견고함과 기교 없는 단순함을 강조한 광주요 도자기는 관상용에서 실생활의 도자기로 거듭났다. 광주요가 궤도에 들어서고 ‘도자기에 맛 좋고 몸에 좋은 음식을 담으면 어떨까?’라는 그의 생각은 2003년 한식당 ‘가온’, 그리고 ‘비채나’로 이어졌다. 그는 또 음식에 어울리는 술이 필요했다. 그런 그가 지난 2005년 내놓은 것이 전통 증류식 소주 ‘화요’다. ‘화요’는 밀 누룩 대신 100% 쌀로 빚은 술로, 압력을 낮춘 상태에서 섭씨 33~45도의 저온에서 증류한다. 옹기에서 3~6개월간 숙성해 향을 더했다. 17도에서 53도까지 도수도 다양하다. ‘화요’는 현재 미국, 호주,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인도네시아 등 9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도자기, 음식, 술까지 쉽지 않은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조 회장은 준비된 사업가다. 지난 1973년 미국 미주리대학 공업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이듬해 대우실업을 특채로 입사했다. 아프리카, 유럽, 중동 등을 처음으로 개척하고 해외 영업망을 구축했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삶의 의미를 되새기던 그는 대우실업을 퇴사하고 중동을 대상으로 개인 사업을 시작했고 성공했다. 해외시장을 대상으로 한 상사 영업담당자에 이어 사업가로서의 경험은 그에게 자연스럽게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식문화를 익히고 한국의 식문화를 알리고자 하는 욕망을 일깨웠다. 그는 “부친에게서 익힌 엄격한 동양문화와 미국에서의 유학시절, 그리고 사업을 하면서 경험한 서양문화가 자연스럽게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며 “이것이 내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 조태권 회장은 “사람에 따라 저마다 어울리는 옷이 있듯이 음식에도 어울리는 그릇이 있다”며 “그 어울리는 옷을 입어야만 그릇과 음식은 문화가 되고 우리가 인정한 그 문화는 세계 최고가 된다”고 강조한다. ▲ 조태권 회장은 음식처럼 다양한 저마다의 색감과 질감이 없는 맑은 술이지만 그에 어울리는 술잔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가온’에서 만난 조 회장의 목소리에는 ‘그릇, 음식, 술’에 대한 강한 애정이 묻어났다. - 조선시대 도자기 제조소인 ‘광주관요’를 계승한 광주요의 역사는? 제가 중학교 다닐 때, 부친께서 도자기 사업을 시작 하셨어요. 일본에서는 대접받는 우리 도자기가 왜 한국에선 홀대를 받고 무시당하고 있는 것에 대해 한탄하시고 어떻게 해서든 그 가치를 재현해 보고 싶은 마음에 1963년 경기도 이천에 ‘광주요’를 여셨죠. 도자기로 한국 미(美)의 가치를 재창조해내려고 노력하신 아버지는 차를 하나 마시는 것도, 꽃 하나를 도자기에 꽂는 것도 ‘도(道)’로 생각하셨어요. 가장 자연스러운 것을 가장 화려함 속에 넣으면서 조화롭게 만드는 것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봤어요. 당시 한국에는 도자기 시장이 없었어요. 그래서 일본의 도자기 시장을 연결시켜서 생산하고 팔기 시작했어요. 일본의 다도(茶道)는 찻잔에도 그들만의 정서와 아름다움의 기준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우리 도자기는 그런 기준이 없었죠. 아버지는 그 기준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스스로 철저히 공부하면서 도자기 만드는 법을 연구하셨어요. 유약이 자연스럽게 흘러 내리는 것을 통해 그 도자기만이 가진 자연스러운 ‘풍경’을 즐기셨죠. 똑같은 도자기가 만들어질 수 없는 이유에요. 혜강, 지순택, 안동호 등 각지의 유명 도공들을 경기도 이천으로 불러들여서 도자기를 만들었어요. 아버지는 이곳에서 만든 도자기 작품들을 일본으로 가져가서 선을 보였어요. 한국 도자기의 붐이 일어났죠. 광주요 도자기는 아직도 일본에서 인정을 받고 있어요. 그때 만들어진 그릇을 ‘가온’과 ‘비채나’에서도 사용하고 있어요. 그만큼 가치 있는 음식을 여기에 담아보자는 의미에서 말이죠. 1988년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저 밖에 가업을 이어나갈 사람이 없었어요. 그때는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린다는 의미에서 사업을 맡았어요. - 일본, 미국에서 오랜 외국생활, 대우 상사맨 등 인생경험이 다채롭다. ‘코스모폴리탄’이라는 별칭까지 따라 붙는데. 미국 미주리대에서 유학 할 당시 집이 넉넉하지 않아서 혼자 돈을 벌어야 했어요. 돈을 벌면서 많은 경험을 했죠. 한 식당에서 빈 그릇을 치우는 등 웨이터의 심부름꾼 ‘버스보이(busboy)’로 일했어요. 버터, 케첩 등 소스가 있는 자리를 전부 파악하고 식당의 전체 시스템을 정확하게 파악하며 최고의 버스보이로 불렸어요. 어느 날 30kg이 훨씬 넘는 접시를 들고 주방으로 들어가다가 바닥에 있는 물에 미끄러져 순간 정신을 잃었어요. 노조원들은 보상비를 나눠먹기 위해 식당주인을 고발하라고 권했지만 저는 멀쩡했기 때문에 고발하지 않겠다고 버텼어요. 그 정직을 높이 산 주인이 저를 웨이터로 채용했죠. 웨이터로 일하면서 식당일을 모조리 익혔어요. 소스, 수프, 스테이크 등을 만드는 법도 눈으로 보고 배웠죠. 돌이켜보면 정말 값진 경험이었어요. 밑바닥 인생을 다 경험하고 나니 그 사람의 말, 행동에서 그 사람의 품격, 인성을 알아보는 눈도 생겼어요. 대우실업에 들어가서는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어요. 부산 대우봉제공장에서 유럽 시장의 와이셔츠 생산 담당을 시작으로 자동차 수출, 방위산업 등 전부 처음 해보는 일을 맡았어요. 정말 많이 배웠어요. 뭔가 짜여있는 것처럼 인생이 풀려 나간 것 같아요. 아테네 지사의 초대 지사장으로 지낼 때는 일본, 터키 등 세계 여러 국가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보는 눈을 넓혀갔어요. 돌이켜보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정말 귀중한 경험이 됐어요. ▲ 조태권 광주요 회장은 경험에 의한 배움과 문화의 중요성을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 -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나 사람이 있다면? 아테네 지사장으로 근무했던 1981년이었어요. 당시 아내가 만삭의 몸이었는데, 처제가 언니의 출산을 돕기 위해 아테네에 왔던 날이었어요. 아침에 아내가 급하게 저를 깨웠어요. 처제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처제는 이미 숨이 멎어있었어요. 처제의 죽음이 제 인생에 새로운 전기가 됐어요. 돈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제 자신을 발견했어요. 처제를 잃고 슬퍼하는 집사람이 너무 측은하게 느껴졌어요. 도대체 이 일을 하면서 내가 얻는 게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982년, 제2의 인생이 펼쳐지기 시작했어요. 중동에서 만난 에이전트와 함께 중동지역을 대상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막대한 부를 축적했어요. 그 자금으로 아버지의 도자기 사업을 물려받아 투자하게 된 것입니다. - 도자기 사업은 전혀 다른 분야인데 두려움은 없었나?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과 전혀 다른 사업이지만, 지금까지 세계를 누비며 그보다 더 어려운 사업들을 해봤기 때문에 ‘이거야 뭐 아무것도 아니지’라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사업을 물려받고 나서야 고민이 시작됐죠. 제 고민은 우리 나라에서 최고의 도자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세계 최고의 차별화된 우리 도자기를 만들까?’였어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도공들과 함께 박물관을 순례하고 관련 책도 읽고 옛 도자기를 분석하며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 끊임없는 도전을 이어온 조태권 회장은 결국 될 것이라는 ‘신념’과 ‘믿음’이 성공으로 이끈다고 말한다. - 당신에게 그릇과 음식은 어떤 의미인가? 음식이 몸이라면 그릇은 옷이에요. 화려하게 화장을 했으면 좀더 소박하고 점잖게 옷을 입는 것이 멋있는 것처럼 음식 역시 화려하면 그릇은 보다 심플하고 깔끔한 것을 써서 그 멋을 더하는 거죠. 음식의 모든 것은 미적 감각을 자극하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도자기와 음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죠. 음식이든 그릇이든 자연으로 만들어지고,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룰 때 가장 아름답죠. - 20년 넘게 사업을 이어오면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언제인가? 바보취급 받았을 때에요. 제가 도자기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전부 미쳤다고 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바보로 보였기 때문에 웃어 보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냥 무조건 된다는 자신감으로 밀고 나갔죠.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이 제 음식과 술을 맛보고 보이는 반응들을 봤을 때 저는 반드시 될 것이라고 확신했어요. 저 스스로가 믿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어요. 또 돈이 있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죠. 이 사업에 뛰어들기 전 축적해 놓은 돈이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었어요. 그 돈이 아깝지 않냐고 묻지만, 문화는 축적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의 재산은 없어질 수 있지만 우리의 문화는 축적되어 오기 때문에 절대로 사라지지 않아요. ▲ 화요 엑스트라 프리미엄은 싱글몰트 위스키에 못지 않은 깊은 향을 자랑한다. - 한식과 한국을 대표하는 소주 ‘화요’에도 뛰어든 이유는? 도자기가 유명한 나라들은 음식이 유명하고, 술이 유명하고, 식당도 자신들의 품격에 따라 다양하다는 점을 알게 됐어요. 그와 비교해 한국은 그 중 어느 것도 제대로 가지고 있지 않더라고요. 가치 있는, 품격 있는 전통문화와 음식이 그 나라의 경제를 만든다고 생각했어요. 내수경제가 이 모든 것에 들어있다는 걸 깨달았죠. 문화란 그 나라 사람의 정서, 관습이 깃들어 있는 것이에요. 물건은 모방할 수 있지만 이런 정서와 정신은 절대로 모방할 수 없어요. 우리가 가진 동양의 정신은 다른 서방국가가 절대 모방할 수 없는 것이고, 우리들이 가진 저력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도자기와 음식, 그리고 술에 이러한 힘을 봤습니다. - 전통에 대한 당신의 철학은? 전통을 존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창조하지 못해요. 우리 선조들이 수 천 년간 축적해온 전통이 변화해 지금의 전통이 있는 것입니다. 그 안에 들어있는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뽑아내지 못하면 절대 창조하지 못해요. 전통이 변하면서 창조가 이루어져요. 우리 것을 존중하고 그 전통을 품은 것을 만들어야 세계인들에게 알릴 수 있어요. 우리 스스로가 전통을 존중하고 그 속에서 가치를 만들어야 하는 거죠. 그런 점에서 저도 가야 할 길이 아직 멀었습니다. 아직 시작일 뿐입니다. ▲ 조태권 회장의 모친이 그를 위해 끓여준 약차로 만든 묵. 그는 한국을 넘어 세계를 대표 할 한식메뉴에 그의 어머니의 정성과 맛을 선보인다. - 당신이 보는 ‘전통의 세계화’란? 도자기를 보면서 우리의 음식을 봤고, 음식을 보면서 우리의 술을 봤고, 술을 보면서 식당을 봤고, 식당을 보면서 ‘국위’를 봤습니다. 도자기를 한국의 가장 귀한 가치로 만들어낸다면, 한국인들이 따라올 것이고, 그 가치를 보고 세계가 따라올 것이라는 믿음을 항상 가지고 있었어요. 우리의 음식을 세계 최고로 만들어야 합니다. 세계 최고의 음식을 만들어서 그 음식을 세계 최고의 도자기에 올려 놓고, 우리가 그것을 인정한다면 자연히 세계인들이 따라올 것입니다. 세계인들이 즐길 수 있게 하려면, 여기에 어울리는 좋은 술을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 고유의 차별화된 술이면서 모두가 마시고 인정할 수 있는 그런 술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즐길 수 있는 우리 고유만의 장소를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종합적인 연출이 완벽하게 이루어졌을 때 세계인들이 인정하는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보다 중요한 것은 세계인들이 즐길 수 있기 전에 한국인 스스로가 먼저 인정하고 즐기는 것입니다. -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우리의 음식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만드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즉 한국 문화의 품격을 올리는 것입니다. 음식을 어떻게 먹고 그 음식의 가치를 보고 그 음식의 미를 보는 여유를 만드는 것이 품격이에요. 그런 정서가 있어야만 문화의 품격이 올라가는 것이죠. 한옥의 디자인을 보고 ‘아 이것이 한국 건축이구나’하고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음식도 ‘아 이것이한국의 맛이구나’를 알게 해주는 음식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저 배부르고 취하기 위해서 먹는 음식이 아닌, 한 입 한 입 그 맛을 즐길 수 있는 품격을 만드는 것이 제 숙제입니다. 손지애 코리아넷 기자 사진 전한 코리아넷 기자, 광주요그룹 jiae5853@korea.kr ▲ 가온 온날 정식의 전복요리. 전복의 색감과 느낌을 최대한 돋보이게 하는 그릇이 인상적이다. ▲ 한우와 더덕이 함께 나오는 그릇에는 소금도 함께 나온다. 조태권 회장은 한식을 알리기 위한 식당 가온 개업에 앞서 가장 좋은 소금을 먼저 찾았다. ▲ 가온 온날 정식의 첫 번째 디저트인 도요묵과 연근차. 은은함과 담백한 맛은 흥분되었던 입안의 미각을 차분히 가라 앉혀 준다. ▲ 17도부터 53도까지 다양한 알코올 도수의 5가지 화요 라인업. 2016.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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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여년 전 선물에 보답하다

    60여년 전 선물에 보답하다

    ▲ 미 제40사단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3일 오전 경기도 포천시 관인중•고등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 참석해 졸업생과 포옹하고 있다. 경기도 가평은 한반도 한 가운데 있으며 한국전쟁 기간 중 격전장이었다. 1950년 6월 북한군의 남침으로 이내 점령당했다가 이듬해 6월에야 완전히 수복됐다. 치열한 전투의 와중에 이곳의 중학교 건물은 철저히 파괴됐다. 천막교실에서 어린 학생들은 공부하고 있었다. 1952년 당시 가평군수는 이곳에 주둔중인 미 육군 제40사단에 학교 건물을 지어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미 제40사단장(The 40th Infantry Division, "Sunshine Division") 조셉 클리랜드(Joseph Pringle Cleland, 1901~1975) 소장과 1만5천여 명의 사단 장병들은 1인당 2달러씩을 모았다. 이렇게 해서 모은 기금과 공병 장비를 동원하여 같은 해 8월 학교가 지어졌다. 학교의 이름은 40사단 병사가운데 처음으로 전사한 케네스 카이저(Kanneth Kaiser Jr) 하사의 이름으로 정했다. 카이저는 1952년 1월 20일 금성지구 전투에서 19세의 나이로 산화하였다. 주민들이 “카이저”를 “가이사”라고 불렀기 때문에 가이사중․고(Kenneth Kaiser Middle and High School)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현재의 가평고로 바뀌었다. 이어 40사단 장병들은 1955년 4월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에 관인중학교를 건립했다. 마을 이름은 부대마크인 태양에서 따와 '선버스트 빌리지'라 지었다. ▲ 3일 포천시 관인중고등학교 졸업식장에서 브렌트 제트(Brent Jett) 미 40사단 한국전 전우회 회장이 ‘한국전은 우리의 기억 속에 힘들게 싸운 전쟁터였다’고 당시를 회상한 뒤 ‘하지만 한국은 황량한 전쟁 폐허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나라로 발전했다’며 ‘학생들이 우리가 60년 전에 학교를 만든 일을 잊지 않고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 졸업생들에게 졸업장을 전달하는 브렌트 제트 미 40사단 한국전 전우회 회장. 최근 국가보훈처는 이들 참전 용사와 가족 40여명을 초청했다. 이들과 40사단 장병들은 가평고와 관인중고 졸업식에 참석하여 장학금을 전달했다. 현재 사단장인 로렌스 하스킨스(Lawrence A. Haskins) 소장과 부대원들이 동행한 것. 유엔참전용사 재방한 행사는 1975년부터 시작돼 지난해까지 3만여 명의 참전용사와 가족들이 한국을 다녀갔다. 위택환 코리아넷 기자 사진 국가보훈처 whan23@korea.kr ▲ 국가보훈처 초청으로 방한한 미 40사단 참전용사와 가족들이 2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을 방문, 전사자명비에서 전우의 이름을 찾고 있다. 201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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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세돌-구글 '알파고' 다음달 9일 대국

    이세돌-구글 '알파고' 다음달 9일 대국

    ▲ 세계 바둑챔피언 이세돌 9단은 1백만 달러의 상금을 걸고 오는 3월 인공지능 컴퓨터 '알파고'와 5번의 대국을 갖는다. 세계 바둑 정상 이세돌 9단이 오는 3월 9일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와 대국을 앞두고 있다. 바둑 세계정상을 놓고 벌어지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이번 대결은, 이세돌 9단이 세계 바둑 유럽 정상 판 휘(중국) 2단을 이기고 올라온 알파고의 도전을 받아들이며 이뤄졌다. 이세돌 9단은 12세이던 지난 1995년에 프로로 입단해 2000년 32연승이라는 대기록과 함께 국제 기전에서 15회 우승을 차지한 최고의 기사다. 이세돌 9단은 지난 1월 영국의 과학기술지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과 대결하는 영광을 안아 기쁘다”며 “바둑 역사에서 중요한 경기라고 판단해 도전을 받아들였고 승리 할 자신이 있다”고 밝혔다. 다섯 번의 대결로 승부를 가르게 될 이번 대국은 오는 3월 9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1국을 시작으로 10일, 12일, 13일, 15일 차례로 진행된다. 모든 대국이 유튜브로 생중계 될 이번 승부에는 상금 1백만 달러가 걸려있다. 이세돌 9단과 대결을 벌이는 알파고는 구글 딥마인드 개발자들이 입력한 3천만번의 대국 기보(棋譜)를 바탕으로 스스로 학습을 통해 바둑을 익힌 인공지능이다. 이번 대결에 앞서 알파고는 판 휘 2단과의 공식대결에서 5전 전승을 거두기도 했다. ▲ 알파고와 판 휘 2단이 벌인 대국 장면은 구글 딥마인드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사진은 알파고와 판 휘 2단의 대국 영상 캡처 장면. 바둑은 우주 전체의 원자 수보다 많은 10의 170제곱이나 되는 경우의 수가 있다. 그래서 프로그램에 기초한 컴퓨터가 경험과 직감에 의해 수를 놓는 인간을 이길 수 없는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이번에 대결을 벌리는 알파고는 기존 컴퓨터가 바둑의 규칙과 경우의 수를 무작위로 검색한 것에 의존했던 것과 달리 우선 예상 확률을 선정해 가능성이 높은 수를 선택한다. 반복적인 학습과 훈련으로 사람의 수를 기존 44%에서 57%의 확률로 예측 할 수 있게 된 알파고에 대해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는 이번 대결의 승률을 50대 50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이하나 코리아넷 기자 사진 연합뉴스 hlee10@korea.kr 201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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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록도 한센인의 두 천사

    소록도 한센인의 두 천사

    한반도 남쪽 바다에 닿아 있는 전라남도 고흥. 이곳 고흥에서도 가장 남쪽 끝에 자리한 작은 섬 소록도. 한때는 외부 사람들이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가려 하지도 않았던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살았던 섬. 한센병은 이미 오래 전 완치가 가능해졌고, 이제 소록도는 다리도 놓이고 누구나 오갈 수 있는 곳이 됐다. 소록도가 이렇게 변하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간호와 헌신과 노력이 필요했다. 1962년 고흥 소록도에 외국인 간호사 두 사람이 도착했다.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간호대학을 졸업한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렛은 의료 봉사 차원에서 이곳에 왔다. 애초 여기서 한평생을 보내겠다는 결심을 하고 온 것은 물론 아니었다. ▲ 1970년 벨기에 다미안 재단 의료진과 함께 한 기념촬영에서 마가렛 피사렛(뒷줄 왼쪽)과 마리안느 스퇴거(뒷줄 오른쪽)의 모습. 1962년 고흥 소록도에 들어와 40여 년간 헌신적으로 한센인을 간호한 이들을 소록도 사람들은 살아있는 천사라고 부른다. 그러나 6천 명의 환자들과 도움이 필요한 어린 아이들 2백 명을 마주한 이들에게 애초의 계약은 더는 문제가 아니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루 종일 팔을 걷어붙이고 환자들을 돌봤다. 이들 환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상처를 맨손으로 매만졌다. 의료진조차 접촉을 조심스러워하며 치료를 꺼리던 시절이었다. 한센병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손수 바로잡는 것은 물론 약품과 구호물자까지 구해 날랐다. 고향 오스트리아의 지인들에게 부탁해 약을 구했고,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을 위해서 영양제와 분유도 구해 왔다. 외국 의료진을 초청해 수술을 하고, 물리치료기를 도입해 환자들의 재활을 도왔다. 환자인 부모에게서 격리된 아이들을 위해서 보육원도 세웠다. 구입할 돈이 없어 옷도 직접 해 입혔다. 이 같은 헌신과 노력으로 한센병 환자 수는 3천 여명으로 줄었다. 함께 봉사하던 의료진은 1971년 고국으로 돌아갔지만, 두 사람은 소록도에 남았다. 이들이 쏟은 정성과 헌신이 알려지면서 한국 의료진도 도움을 보태기 시작했다. 감사장과 공로패는 대부분 되돌려 보냈다. 못내 수락한 상금은 병이 다 나아서 소록도를 떠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데 썼다. 시간이 흘러 6천 명에 달했던 환자는 6백여 명 정도로 줄었다. 20대였던 이들은 어느새 바닷가 시골 할머니가 됐다. 가족들은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온다면, 재가 되어 올 거라고 생각했다. ▲ 소록도에서 한센인 자녀들을 돌보던 마리안느 스퇴거. 2005년 11월. 가족들의 염려와는 달리 피사렛과 스퇴거는 오스트리아의 가족들에게로 돌아갔다. 긴 세월 함께 보낸 사람들과 송별회 정도는 가질 법도 하건만, 어느 새벽 두 사람은 조용히 소록도를 떠났다. 짐이라곤 43년 전 들고 왔던, 이제는 다 해진 손가방 하나 뿐이었다. 주민들에게는 짧은 편지 한 장만 남겼다.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우리들이 있는 곳에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해 왔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때라 생각했다.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들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 드렸던 일에 대해 용서를 빈다." 송별에 마음 아파할 주민들을 생각해 조용히 떠난 두 사람의 배려에 소록도 주민들은 한동안 이별의 슬픔을 감추지 못한 채 일손을 놓고 기도를 드렸다. ▲ 언론 노출을 꺼리던 두 사람인지라 남은 사진조차 드물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소록도 방문 당시 환영식에서 사진에 찍힌 마가렛 피사렛. 그로부터 11년. 고흥군은 최근 피사렛과 스퇴거 두 사람을 노벨평화상 대상자에 추천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오는 5월 17일 국립소록도병원 100주년을 기념해 두 사람의 삶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도 제작한다. 사택과 유품은 등록문화재로 지정하고, 기념관을 조성할 계획이다. 소록도병원 100주년 기념행사에 맞춰서는 스퇴거가 11년만에 소록도를 찾는다. 피사렛은 건강 문제로 함께 하지 못하게 됐다.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라." 두 사람이 머물던 소록도 사택에 아직 남아있는 글귀는 그들의 평소 신념이었다. 명언을 써 붙이고 되새기기란 쉽지만, 명언을 실천하며 살기란 쉽지 않다. 수십 년의 헌신과 신념을 몸소 실천했던 두 사람. 아직 소록도와 고흥군 사람들이 이들을 잊을 수 없는 이유다. ▲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라." 지인이 써 주었다는 두 사람의 평소 신념과도 같은 글귀는 두 사람의 소록도 사택에 아직 남아있다. 장여정 코리아넷 기자 사진 고흥군청 icchang@korea.kr 201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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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 대통령 '핵 포기 않으면 생존없다 깨닫게해야'

    박 대통령 '핵 포기 않으면 생존없다 깨닫게해야'

    ▲ 박근혜 대통령이 4일 북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관련, 입장을 밝혔다. 사진은 2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박근혜 대통령은 4일 “북한이 핵실험에 이어 또다시 장거리 미사일까지 발사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한반도 평화와 세계 평화에 위협을 가하는 행위로 결코 용납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움직임과 관련해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을 통해 이 같은 입장을 밝히고 “북한의 매번 반복되는 긴장 유발과 도발 행위는 우리 국민들을 위협하고 공포심을 극한으로 만들기 위한 것으로 국제사회와의 적극적인 공조와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이번에 UN 제재가 논의되고 있는 와중에 또다시 도발을 하겠다고 공표하는 것은 UN 제재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킬 의지가 없이 오직 북한체제를 지속하기 위한 수단이자 고육책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앞으로도 체제 유지를 위해 국제사회를 향한 협박을 계속하겠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 김성우 홍보수석이 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러한 북한의 오판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강력한 UN제재를 통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국제사회가 깨닫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연합뉴스 2016.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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