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 파워 - 한지의 뛰어난 다양성
문(文)은 무(武)보다 강하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종이가 없었다면 갈피를 못 잡았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 더욱 그렇다. 한국 특유의 종이인 한지는 닥나무 껍질과 닥풀을 원료로 만들어진다. 이 특별한 종이는 한국의 학문, 문학, 예술, 건축, 여가 활동 등의 체계를 세운 재료로, 영향력이 광범위하다. 한지는 질기고 매끈하며 다방면으로 결이 져있다. 섬유질이 가로나 세로로 되어 있는 일반 종이와는 매우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처음 접해보는 사람에게 한지는 필기 용지보다는 서양식 베이킹 종이와 닮은 모습이다. 고고학자들은 한지가 고대부터 한반도에서 제조됐다고 한다. 원료로 닥나무 껍질과 황촉규(접시꽃) 뿌리에서 나오는 점액질을 닥풀로 사용한다. 이런 과정으로 탄생한 한지는 그 어떤 종이와도 다른 감촉과 질감을 갖게 된다. ▲ 팀 알퍼 유럽은 아시아보다 훨씬 뒤늦게 종이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유럽 대륙은 이베리아 반도(오늘날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이슬람교 지배자들이 11세기 말 동양의 제지업자들을 고용하면서 종이라는 재료를 얻게 됐다. 유럽 관료들이 저렴한 필기 도구를 찾던 찰나에 나타난 '종이'는 서양인들에게 문인들을 위한 특별한 자원으로 인식됐다. 반면 한국에서 쓰이던 한지는 필기도구이자 다른 여러 기능을 가진 만능 재료였다. 이미 기원후 1세기부터 한국 통치자들은 필경사를 고용해 마섬유를 원료로 하는 종이에 기록하게 했고, 그 후 7세기 불교 수도자들은 목재 인쇄판을 이용해 한지에 인쇄했다. 한지의 발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중세시대 초기, 한지 산업은 번창했다. 한국 상인들은 중국 무역상들과 거래를 통해 큰 수익을 남겼고, 중국 고객들은 고품질 한지를 찾았다. 한지의 상당한 융통성을 인지한 한국 정부는 닥나무 산림 자원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정부 지원으로 머지않아 한지 공급은 풍요로워졌고, 사람들의 재료를 창의적으로 일상에 응용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한지로 연을 만들고, 농부들은 종이로 가리개를 제작해 농작물이 한해를 입지 않도록 대비했다. 목수들은 창과 문틀에 한지를 덧붙였고, 공예가들은 가구, 부채와 전등갓을 만드는데 사용했다. 심지어 공병들은 병사들을 위해 방수·방패 역할을 하는 한지 소재 갑옷을 생산했다. 오늘날에도 한지는 공예가들이 선호하는 재료 중 하나다. 신세대 디자이너들은 한지를 액세서리, 인형, 장난감 등을 만드는 데에 사용한다. 한지는 매년 5월 초, 석가탄신일을 기념하여 전성기를 누린다. 이 기간 동안 불교 신자들은 화려한 색상과 다양한 형태를 지닌 한지 연등을 제작한다. 밤이 되면 도시 곳곳 사찰과 주변 거리들은 연등의 은은한 빛으로 물결친다. 연등회의 백미는 연등행렬이다.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직접 만든 등에 불을 밝히고 거리로 나선다. 각양각색의 전통 등은 서울시민들은 물론 관광객들에도 큰 볼거리다. 유럽에서는 르네상스 시대 전까지 종이가 매우 귀했다. 유럽인들은 종이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교육을 받은 중산층은 다양한 서적을 원했고, 종교적 혁명가들은 개혁의 메시지를 담은 글을 널리 분포하고자 했다. 상류층은 적당한 가격의 벽 장식을 찾고 있었다. 당시 종이를 대체하던 양피지 같은 필기 도구는 엄두를 못 낼 만큼 비싸고 사용하기 번거로웠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 기술의 종이는 이런 여러 애로사항에 해답은 줬다. 이슬람 이베리아 사람들이 먼저 재료의 우수함을 증명하자 유럽 대륙 곳곳에 제지 공장이 생겼다. 글과 그림을 인쇄할 용도로 제작된 이 종이는 전단지, 책, 벽지 등을 만드는데 사용됐다. 유럽인들이 사용한 종이는 한국의 다용도 한지와는 달랐다. 이 종이는 상업적으로 제작되어 상업적인 인쇄물을 찍어내는 데에 쓰였다. 한국의 공예가들은 여전히 일반종이보다는 한지에 높은 가치를 둔다. 하지만 한지의 단점들도 인정한다. 일반종이와 비교했을 때 한지는 글을 쓰거나 인쇄하기 어렵다. 제조 방법이 많은 노동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가격도 더 비싸다. 하지만 한지가 없는 한국은 상상하기 힘들다. 가장 한국적인 요소들을 지닌 손부채, 연, 병풍 등은 한지가 접목되었기에 제 기능을 하게 된다. 한옥의 여러 칸들은 한지로 만든 미닫이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전통한옥 문살을 완성하는 한지 창문은 햇빛, 달빛, 촛불 빛을 모두 은은하고 따뜻하게 연출한다. 한지는 모든 상황에 적응이 가능한 한국사람들과 많이 닮아있다. 한지의 역사를 살펴보고 옛 조상들이 한지를 어떻게 삶에 응용했는지 공부하다 보면 그 어느 교과서보다 더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영국출신의 팀 알퍼는 현재 한국생활 10년째로 음식평론 등을 하며 활동하고 있다. 번역 이하나 코리아넷 기자 2016.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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