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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10.12.15

과정과 절차 통한 ‘신뢰’가 국격의 밑거름

이 글이 게재될 즈음에는 서울에서 한창 G20 정상회의가 끝난 후 성과에 대한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을 것입니다. 대통령 말씀대로 유사 이래 우리나라가 주최하는 최대 행사라는 G20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서 시민생활에 불편이 생기면서 여기저기 불만의 목소리도 나왔었나 봅니다. 큰 손님을 맞이하면서 손님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으려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하는 것도 많고 이왕 손님을 맞는 김에 여기저기 단장을 하며 자기 집 자랑도 하고 싶은 것은 손님을 맞는 집주인의 인지상정이자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잠깐의 불편함은 감수해야 하지 싶습니다.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본 곳은 아마도 국내언론이 아닐까 싶습니다. G20정상회담 개최가 결정된 이후 G20 참가국인 독일 정상과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한 것은 이러한 언론의 관심이 반영된 것이겠지요.

국내 방송사와 중앙일간지들은 올해 초부터 독일 국가정상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의 인터뷰 주선을 요청해왔습니다. 언론사 사장 명의의 인터뷰 요청 서한도 보내오고 G20 준비위원회 명의의 협조요청서한도 보내오는 등 인터뷰를 성사시키기 위해 정성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뷰 시간을 할애하기에는 세계 주요 경제국이자 유럽연합을 좌지우지하는 독일 국가정상이 처리해야 할 일정과 현안은 너무 많았는가 봅니다. 국내 언론사에서 보내온 인터뷰 요청서한과 협조 요청서한 등을 전달하고 독일 연방총리의 공보실 관계자와 연방공보처 담당자와 직접 만나 빠른 시간 내에 총리와의 인터뷰를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때마다 돌아 온 대답은 "아직은 일정상 힘들다. 기다려 달라"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몇 개월이 지나도록 독일 총리와의 인터뷰 성사여부는 확정되지 않았고 8월이면 이야기해줄 수 있다던 대답이 9월, 10월로 미루어졌습니다. 10월 중순이 되자 독일 총리실과 연방공보처에서 국내 언론과 독일총리와의 인터뷰 일정을 잡아줄 수 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다만 국내언론과의 인터뷰는 1회에 그치고 할애된 시간도 20분 정도라는 통보였습니다.

독일 총리와의 인터뷰를 원하는 언론사는 많았고, 일방적으로 특정 언론사에 인터뷰를 배정한다면 다른 언론사들의 불만을 사게 될 것이 자명했습니다. 해결 방법은 오히려 간단합니다. 언론사 공동기자회견 형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동기자회견 형태가 된다면, 질문순서나 진행방식 등을 조정하는 사소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베를린에 특파원이 주재하는 2개 언론사와 프랑스 파리에 특파원이 주재하는 5개 언론사를 총리와의 공동기자회견에 참여시키기로 하고, 독일 정부측과 특파원단 사이를 오가면서 정확한 인터뷰 일정 및 인터뷰 진행방식을 결정하고 인터뷰 주제 역시 사전에 특파원단과의 협의를 통해 독일쪽에 전달함으로써 모든 준비가 갖추어진 것으로 보였습니다. 단지 20분 정도에 불과한 인터뷰였지만 국가정상과의 인터뷰이다 보니, 신경 써야 할 절차도 많았고 기자단과 독일 총리실과의 입장을 조율하는 것도 그리 간단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장소에서 총리와 인터뷰만 실시하면 끝나는 상황이었습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오른쪽에서 두번째)와 함께 한 필자(왼쪽에서 두번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오른쪽에서 두번째)와 함께 한 필자(왼쪽에서 두번째)

하지만 문제는 모든 것이 확정된 순간에 나타났습니다.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하기로 한 2개 방송사가 인터뷰 시일에 임박해서야 불참을 통보해왔기 때문입니다. 원래 방송사를 포함해 7개 매체가 참여하는 공동인터뷰로 진행하기로 한 것이라 뉴스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판단이었던 듯 합니다. 비록 'one of them'으로 참가한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니었지만, 국가정상과의 인터뷰 약속을 취소하는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2개 언론사가 불참하게 되면서 해결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총리실에 출입하게 될 차량 종류와 숫자를 변경하고 차량번호를 새로 통보해야 하는 것, 인터뷰 참가 기자단 명단을 새로 작성해서 통보하는 것 등의 사소한 문제부터 기본적으로 해당 언론사의 불참을 독일측에 통보하고 사유를 설명하는 것 자체가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인터뷰 당일 날 현장에 도착해서도 인터뷰 진행 방식을 변경해야 했습니다. 결국 기존에 협의했던 계획이 쓸모없는 것이 돼버린 것입니다.

어쨌든 한국언론사상 최초의 '독일 총리 인터뷰' 자체는 무사히 끝났습니다. 독일어에는 "Endes gut. Alles gut"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독일 총리와의 인터뷰가 끝나고 사무실에 돌아온 후, 제가 상대했던 독일쪽 관계자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이 와 있었습니다. 2개 언론사 불참, 현장에서의 인터뷰 진행방식 변경 등 독일 총리와의 인터뷰 실시과정에서 잦은 계획 변경이 있었다는 점에 대해 큰 불만을 털어 놓고 있었습니다. 사과의 뜻을 밝히고 그간의 노력에 대해 깊이 감사한다는 편지를 보냈지만 그의 불만이 누그러질지는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국격'을 이야기합니다. '국가이미지 제고'라는 말도 합니다. 이번 G20 개최를 통해 우리나라의 국격이 상승하고 국가이미지가 제고될 것이라 기대되고 있습니다. '국격' 혹은 '국가이미지'에 대해 학술적 정의에서부터 경제적 효과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 등도 있지만, '국격' 혹은 '국가이미지'의 기본이란 간단히 말하면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값이 비싸더라도 유명제품을 구입하는 것은 바로 해당제품에 대한 '신뢰' 때문이듯이, 세계가 우리의 국격을 인정하고 국가이미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되는 것은 우리에 대한 '신뢰'가 쌓일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주독일한국문화원

좋은 결과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과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신뢰'를 얻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원조수혜국에서 원조공여국으로 눈부신 성장을 했다고 자부하지만, 당장의 결과만을 평가하며 상대방의 신뢰를 얻는 과정이 부족하다면 '벼락부자'의 오만한 자랑으로밖에 비치지 않을 것입니다.

제게 불만의 이메일을 보냈던 그 관계자가 비록 우리말로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사과의 말을 전합니다.

기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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