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전체동향

게시일
2020.09.14

[스웨덴] 9월 주재국 문화 동향 보고

□ 문화예술 정책
ㅇ 스웨덴 문화예술위원회의 「포스트 코로나 컨퍼런스」 논의 내용

https://www.kulturradet.se/nyheter/2020/spaningar-fran-kulturradets-samverkanskonferens/ (2020.09.02.)


◇ 우리는 패러다임 전환의 한가운데에 있으며 코로나19 이후의 새로운 사회에서는 새로운 업무 방식, 협업과 리더십 및 혁신 능력이 요구됨.
◇ 코로나19의 대유행은 예술과 문화의 필요성이 얼마나 큰지 보여 주었음. 코로나로 문화 부문이 큰 타격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 흔적을 보여줌.
→ 국가, 광역, 기초 지역들의 관점을 공유하는 패널 토론, 생방송 진행.


▪ 말뫼시 문화부 수장, 퍼닐라 콘데 헬만(Pernilla Conde Hellman)
- “문화 부문에 기여하려는 새로운 액터들이 연락을 해오고 있는데 그들은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심층적인 방법으로 문화를 보고 있음. 예를 들어 공공공간에서 보다 질적인 예술을 요구하는 비즈니스 커뮤니티에 관한 것.”
- “전환 성공의 결정적 요소로 리더십 강조. 용기와 혁신적인 힘 필요.”


▪ 베스트라예탈란드주(Västra Götaland) 문화부 수장, 카티 호프린(Katti Hoflin)
- “불가능했던 많은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문화 생태계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빠르게 변화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밝혀짐. 디지털 콘서트에 비용을 지불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며, 우리는 우리 삶에서 살아있는 예술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고 있음.”
- “코로나 대유행 이전에도 우리는 기후 위기, 세계화 및 양극화를 겪었음. 이번 교훈은 정치적 의제에 있어서 문화가 중요하게 다뤄지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모바일 사회로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


▪ 경제 및 지역성장기구 사무총장, 구닐라 노드뤄프(Gunilla Nordlöf)
- “위기 이후 사회를 정상화하는 중요한 촉매제로 문화를 강조. 스웨덴은 디지털 성숙도와 혁신 역량 측면에서 OECD 국가에서 앞서 있으며, 이는 문화 및 창조산업에는 반영되어 있지 않음.”
- “비즈니스들이 새로운 현실에 부응하기 위해 단기간에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 위기 동안 기업들이 얻은 경험을 포착하는 것이 중요함. 자금 조달 측면에서 장기적인 형태의 지원, 지식 습득과 네트워크 구축 강화 강조”
- “부분적으로 새로운 세계가 시작될 것이며, 우리의 행동과 가치 변화가 위기 이후 매우 중요. 디지털 방식에 적응하고 새로운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는 능력은 기업이 미래에 대처하는 방법으로서 매우 중요”
- “또 다른 성공요인으로 평생 학습을 통한 기술 공급을 강조. 정책 영역 및 부문 전반에 걸쳐 호기심과 공동 헌신으로 새로운 행동과 가치를 충족시키는 것이 중요.”


▪ 스웨덴 문화위원회 사무총장, 카이사 라빈(Kajsa Ravin)
- “공적 자금으로 지원하는 문화지원 시스템의 발전을 목도하기를 원함. 너무 경직되지 않은 보조금 구조 필요.”


▪ 국가유산위원회(National Heritage Board), 라쉬 암레우스(Lars Amréus)
- “코로나19로 문화 부문의 모든 부분이 침체를 경험한 것은 아님. 스웨덴의 자연 및 야외 활동센터들은 2020년 코로나19가 있었던 여름 동안 대호황. 45만㎢의 전시 공간, 무료 입장 및 풍부한 경험과 지식. 많은 근로 생활 박물관과 농가도 큰 관심 속에 많은 방문객을 수용”
- “그것은 정보, 간판 및 경관 방문 장소의 유지 관리에 대한 새로운 요구를 제기하였으며 문화, 지역 개발 및 비영리 부문의 협업 중요성은 그간 우리가 충분히 탐구하지 않은 분야임.”


▪ 베스터보텐(Västerbotten) 문화수장, 요아킴 산드베리(Joakim Sandberg)
- “갑자기 우리 모두가 TV 산업에 뛰어들었음. 카메라를 셋업하고 거의 모든 것을 스트리밍하는 것은 쉬워 보임. 그러나 이것은 접근성과 청중이 새로운 스트리밍 환경을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 아카이브 관리, 채팅을 담당하는 게시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 저작권?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일할 준비가 되어야 함”


--------------------------------------------------------------------------
※ 코로나19 상황에서의 스웨덴 예테보리 콘스트에피데민

◇ 한때 전염병 환자 수용병원에서 예술가 촌으로 탈바꿈한 콘스트에피데민( Konstepidemin) 역사와 현재를 현재의 코로나 상황에서 검토, 소개
* 예테보리 포스텐(일간지) 및 해당 기관 웹사이트
https://www.konstepidemin.se/ 참조


1. 콘스트에피데민 개요
ㅇ 콘스트에피데민은 스웨덴 제2의 도시 예테보리 중심부의 Linnéplatsen 근처에 위치, 대형 공원으로 둘러싸인 14개의 건물로 구성
- 건물은 원래 예테보리의 전염병 병원으로 사용, 1886년부터 1970년까지 전염병을 이곳에서 치료했고, 전염병 치료의 수요가 다했을 때, 1987년 예술가 그룹이 예술과 문화센터에 대한 비전을 수립, Konstepidemin으로 명명
- 오늘날 콘스트에피데민은 ‘예술로 사회를 감염’시키는 사명을 가지고, 시각 예술가, 음악가, 작가, 배우, 영화 제작자 및 댄서와 같은 다양한 예술 분야의 130명 이상의 예술가가 스튜디오를 보유하고 활동 중.
- 또한 문화 플랫폼으로 기능하며, 시각 및 공연 예술 행사, 전시회, 세미나, 워크샵 등의 광범위한 공개 프로그램 제공
ㅇ 콘스트에피데민은 아티스트들에 의해 운영되며, 스웨덴 및 국제기구 및 기관과 협력함. 예테보리 시, 스웨덴 예술위원회의 자금 등을 지원받고 있음.
ㅇ 이곳의 레지던시 아티스트 프로그램은 1990년에 시작. 매년 약 30명의 해외 예술가, 작가, 음악가, 큐레이터 및 연사에게 5개의 스튜디오 아파트 임대.
ㅇ 갤러리 콘스트에피데민은 스웨덴 및 국제 예술가의 현대 미술을 전시하고 전통 전시 공간, 설치 및 현장 특정 작업에 적합한 실험적인 장소를 제공하며 매년 평균 30개의 전시회, 세미나, 프리젠테이션 및 아티스트 대화 진행.


2. 콘스트에피데민의 역사와 코로나로 인한 영향
ㅇ 전염성 강한 환자를 수용했던 병원으로서 사람들이 가까이 가기를 꺼려하는 가장 무서운 장소가 현재 135명의 예술가들의 창의적인 스튜디오로 탈바꿈.
- 200여년 전 예테보리는 콜레라 전염을 심각하게 겪었으며 1834년 가을 두 달 동안 도시 인구의 10분의 1이 콜레라로 사망. 마요나와 하가지구에는 특히 가난하고 과밀한 주택과 좁은 골목길로 최악의 타격을 받음.
- 콜레라는 19세기에 반복적으로 창궐했으며 매번 임시 병원이 설립. 다양한 전염병 환자들을 혼합 수용하여 병상을 공유해야 했음.
- 전염병 창궐과 이로 인한 피해는 사회 개혁과 보다 나은 의료에 대한 정치적 논쟁으로 이어짐. 예테보리에는 1874년 국왕이 모든 도시에 전염병을 위한 특수 병원을 갖출 것을 요구할 때까지 별다른 조치가 없었음.
- 예테보리의 의사 큘베리(A. Kullberg) 주도하에 의사들은 Linnéplatsen이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현대 전염병 병원을 건설할 것을 제안. 1886년 11월 스웨덴 최초의 현대 전염병 병원이 개설됨.
- 이 지역에는 병원 파빌리온 2개와 격리 파빌리온 1개, 사무실, 세탁실, 마구간과 영안실 마련. 총 128개의 병상이 있었음.
- 처음에 병원에는 요리사, 소방관, 농장주, 국장, 간호사 8명이 근무. 주치의는 파트타임으로 일했고 필요할 때 추가 의사 투입.
- 환자들은 이 신축 병원으로 몰려들었음. 예테보리에는 시민들이 콜레라 이외에도 여러 주요 디프테리아와 천연두 발병의 영향을 받았음. 당시에는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었기 때문에 건강 관리는 간호에 집중되었음.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았지만 감염 확산을 줄이는 방법에 대한 여러 가지 방법이 논의되었음.
- 감염이 공기 중에 있는 것으로 의심되어 병원 천장이 높았고 각 방에는 수도시설이 설치되어 직원들은 손을 자주 씻을 수 있었음.
- 임시 병원과는 달리 환자들은 질병에 따라 분리되고 간호사들은 병동 사이를 이동하지 않았음. 다른 부서 직원과 대화 시 2미터 거리를 유지.
- 옛날 병원에 대한 전시회를 진행 중인 아티스트 토마스 페름(Tomas Ferm은 린네플랏츤 지역에서 고고학 발굴을 시도했는데, 일부 환자가 친척을 만날 수 있는 방문객용 건물이 있어서 만남이 허락되면 환자가 내려와서 가족들과 면회한 것으로 밝혀짐.
- 새로운 전염병이 도시를 강타했을 때 128개의 병상이 충분하지 않았으며, 20세기 초 병원은 여러 단계로 확장. 욕실, 전등이 설치된 새로운 목조 파빌리온, 직원들을 위한 더 많은 주택이 건설됨. 다수 미혼인 간호사들이 상주함.
- 1908년 전염병 병원에는 1,363명의 입원 환자 수용. 가장 흔한 병은 신경열, 성홍열, 디프테리아. 약 7%의 환자가 사망.
- 1930년대와 40년대에 페니실린 등의 발명으로 전염병 환자가 감소했고, 예테보리 시민들의 위생 및 생활 조건이 개선됨.
- 정치인들은 Sahlgrenska 대학 병원을 개조하는 데 공적 자금 투입, 전염병 병원은 더 낮은 우선순위를 부여 받음. 60년대에는 병상이 20개 밖에 없었고 나머지는 다른 치료실로 임대되었음.
- 1968년에 예테보리 동부 대학병원이 완공되어 전염병 병동이 이전. 결국 14 개의 건물은 거의 비어 있게 되고 출입금지 지역으로 남음.
- 1983년 예술가 옌스 마티아손(Jens Mattiasson)과 로베르트 욘스빅(Robert Jonsvik)이 린네플랏츤 지역을 연구함. 그들의 임무는 Linnégatan 주변 지역을 지도화하고 공공 유틸리티 하우스에 예술적인 장식물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음. 우연히 그들은 린네플랏츤의 도로를 따라 "병원 구역-주차금지"라는 문구가 적힌 울타리 문을 통과했음.
- 당시 많은 예술가들이 스튜디오 부족을 겪는 상황이었음. 이 두 예술가는 철거된 병원 지역을 문화 노동자들의 스튜디오로 바꾸는 아이디어를 추진하게 됨. 비전은 예술가들이 서로 협력하고 그 장소가 방문객들에게 개방될 것이라는 것.
- 두 예술가는 63쪽 분량의 조사를 바탕으로 워킹 그룹을 시작. 그들은 시험을 통해 구역 내 집 중 하나를 빌려 프로젝트에 더 창의적인 사람들을 참여시킴. 그 중 한 명은 전염병 병원 개원 후 정확히 100년 만에 자신의 스튜디오로 이사한 베릿 욘스빅(Berit Jonsvik)임.
- 콘스트에피데민은 1987년 3월 28일에 공식 오픈. 많은 예술가들이 거쳐감. 환자의 강철 침대는 작업대로 사용되며 오래된 수술 가운도 예술에 이용. 예술가 집단의 모토는 도시를 예술로 감염시키는 것.


ㅇ 2020년 현재 코로나로 인해 갤러리들이 문을 닫고, 많은 전시회가 취소.
- 베릿 욘스빅(Berit Jonsvik),
“그러나 역사를 볼 때, 전염병이 예술을 막지는 못할 것입니다. 야외 전시회는 예정대로 진행되며, 9월에는 해외 작가와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가장 큰 위협은 시에서 임대료를 인상할지 아니면 이 장소에서 예술가들을 쫒아내고 다른 활동에 부동산을 사용하길 원하는지에 대한 것인데 전 그렇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 예술가들은 세련되고 강합니다. 아무런 협의 없이 135명의 아티스트를 쫓아 낼 수는 없습니다.”


□ 문화콘텐츠(문화산업) 정책
ㅇ Bonnier 출판사, 코로나 국가 지원금을 반납

https://sverigesradio.se/artikel/7547199 (2020.09.04.)
- 도서 판매량이 많은 봄과 여름이 지난 후 Bonnier출판사가 봄에 받은 정부 중복 지원을 반납하기로 결정.
- 출판사는 올해 4월 중순 약 60명의 직원을 단기 정리해고. 이들은 코로나 확산으로 경제가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예상보다 한 달 앞당겨 매출이 예상보다 나아져 5월 31일 단기 정리 해고를 중단.
- 여름 동안 판매량이 늘었기 때문에 정부 지원금을 상환하는 것이 당연한 원칙이라고 Bonnier 출판사의 CEO인 사라 붜스비크(Sara Börsvik)가 밝힘.

위 저작물은 "공공누리 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열람하신 정보에 만족하십니까?